“Marriage Blue (메리즈 블루)”
04화 | 인생에 한 번쯤, 인연은 있다



다음날, 울다 지쳐 잠이와서 잔 건지. 아니면 너무 울어서 탈진으로 쓰러진 건지, 잘 모르겠지만. 겨우 지각하기 전에 회사로 출근할 수 있었다.

사원증을 스캔하고 들어오니, 사무실 안에 대부분은 차 있었고. 다 열심히 집중하는 분위기라 방해되지 않게, 난 조용히 내 자리로 향했다.


김여주
…지각할 뻔 했네.

핸드백을 의자에 걸어놓고 컴퓨터 본체 전원 버튼을 누르는데, 김대리님이 의자 바퀴를 끌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김지원
여주씨, 무슨 일 있었어?. 한 번도 지각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딱 맞춰서 오고...

아, 차마 연인이랑 헤어져서라곤 말 못 하겠다. 그저 하, 하, 거리며 기계적으로 웃으니 김대리님이 알겠다며 손 뼉을 쳤다.


김지원
아!, 여주씨, 그거 때문이구나?.


김여주
뭐, 뭐... 어떤거요?.

설마 벌써 빠르게 눈치 챈 건가?, 애인 있다고 말도 안 했는데?. 불안감이 증폭되어 마른침을 삼키고 있는데.



김지원
어제 거하게 한 잔 했지?, 술도 못 하는 사람이.


김여주
네?, 아, 아 맞아요...!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다행히 눈치는 못 챈 모양이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는데, 김대리님이 볼펜을 돌리며 바싹 붙었다.


김지원
근데 여주씨, 그거 알아?. 이번에 ‘청년 웨딩 프로젝트’ 실행하기로 했다나봐.


김여주
그래요?, 몇 년동안 계속 밀리던 거 아니였나?. 이번에는 정말로 한데요?.

‘청년 웨딩 프로젝트’ 몇 년 전부터 기획에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몇 년동안 밀리고 밀려서 지금 상황까지 왔는데, 이번엔 진짜 할까?.


김지원
그게 사실은 밀린 이유가, 대표님이 원하는 디자이너가 없어서였대.


김여주
이번에는 찾았대요?.


김지원
그렇지 않을까?, 그러니까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을까 싶어.

난 고개를 얕게 끄덕였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 내가 그 프로젝트를 맡을 것도 아니고.



장지윤
자, 잠시만 집중해주세요.

손 뼉을 치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장팀장님의 큰 목소리. 팀원들은 죄다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팀장님을 향해 시선을 옮겨갔다.


장지윤
다들 들었다싶이, ‘청년 웨딩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되었습니다.

준비하게되었습니다, 라는 말에 끝마치기 무섭게 팀원들은 ‘와- 드디어 하는구나.’ 라며 다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도 왠지 분위기가 박수를 치지 않으면 안 될 것같아서, 김대리님과 함께 박수를 쳤다.


장지윤
이번 프로젝트는 대표님께서 신경쓰시는 만큼, 프로젝트를 진행할 사람을 신중히 뽑으라는 말씀이 있었어요.


“프로젝트 맡은 사람은 백 퍼센트 승진이겠네?.”

“말이 좋아야 승진이지, 실패하면 눈칫밥 엄청 먹을걸?.”

팀원들 반응은 극과 극이였다. 승진해서 좋겠다 파랑, 눈칫밥 먹을 바엔 안하는게 좋겠다 파.

나 역시 부정적인 반응 쪽이였다. 눈치밥 먹는게 무서운게 아니라, 나도 결혼을 못 하게생겼는데_ 타인의 결혼을 위해 일할 준비같은 건 못 했다.


김지원
여주씨, 여주씨는 저 프로젝트 어떻게 생각해?.


김여주
글쎄요. 이번엔 별로... 하고 싶지 않네요.

권우현도 같은 패션 업계 사람이라, 외근 나갔다가 마주치면 최악이니, 올해 만큼은 사무실에 틀어박힐 생각이다.


김지원
그래?, 여주씨라면 잘 할 것 같은데... 아쉽네.


김여주
하하... 그런가요?.

김대리님은 이 회사에서 날 좋게 봐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지만, 이번 만큼은 절_대로 할 생각이 없다.



장지윤
그래서 저는, 여주씨가 이 프로젝트의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정말로 상관없다고 생각하여, 김대리님과 함께 하하호호, 수다를 떨고 있는데. 한 순간에 조용해진 사무실에 난 어리둥절했다.


김여주
...?

뭐지?, 왜 나를 다 쳐다보는거야?.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나?.


김지원
왜, 다들... 여주씨 쳐다보는거야?.


김여주
그러게요...?

별 생각이 머리속을 헤집고 있을 때 쯤, 장팀장님이 ‘프로젝트를 맡을, 여주씨에게 박수-‘ 라는 말을 시작으로, 팀원들의 박수가 내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해봐요, 김주임_!”

“와-!! 여주씨라면 분명 잘 해낼거야.”


김여주
네?!, 제가 무슨 프로젝트를...

아뿔싸. 김대리님과 수다를 떠느라고 장팀장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한게 바로 나의 실수였다.



김여주
아뇨... 전 이번 프로젝트에서 빠ㅈ,


장지윤
대표님이 많이 기대하고 계세요ㅎ.

장팀장님의 상냥의 미소가 내 얼굴에 닿았다. 마치 ‘거부는 거부해.’ 라는 말을 표정으로, 내 거절을 사전에 차단하 듯 보였다.


김지원
그래 여주씨, 상황이 반대로 흘러가긴 했지만. 이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있겠어?.

김대리님의 쐐기까지, 이젠 거절을 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김여주
하...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예정에도 없는 프로젝트까지 떠 안아버렸다. 올해는 꼬여도 뭐가, 단단히 꼬인 듯 하다.



장지윤
그럼 지금 바로 회사 건너편에 있는 카폐로 가줄래요?, 그 곳에 디자이너님과의 미팅이 있어요.

어이구, 그렇게 몇 년을 미루더니만. 내가 맡자마자 속전속결이네.


김여주
아... 알겠습니다ㅎ.

가라면 가고, 기라면 기어야지. 방금 출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난 의자에 걸어둔 핸드백을 다시 어깨에 맸다.


김여주
협업 제안서에 싸인 받아오면 되는거죠?.


장지윤
네. 여주씨라면 아주_ 잘 하리라 믿어요ㅎ.


김여주
아... 네.





박지민
.......

한적한 카페. 통째로빌린 것처럼 사람은 딱 한 사람. 나 밖에 없었다.


ㅡ “안녕하세요 MY 브랜드 입니다. 혹시 ‘제이 박’ 디자이너님 맞으신가요?.”


박지민
맞는데요.

처음엔 패션 브랜드 기업에서, 내게 왜 전화가 왔을까 곰곰히 생각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탑으로 불리는 회사에서.

ㅡ “이번에 ‘청년 웨딩 프로젝트’ 때문에, 디자이너님과 미팅을 잡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드렸습니다.”

ㅡ “디자이너님과, 협업을 하고 싶은데. 혹시 미팅 날짜는 언제가 좋으세요?.”


오늘 아침에 갑작스럽게 전화와서 갑작스럽게 잡힌 미팅. 어차피 진짜로 그 협업을 받아드릴 생각은 전혀 없지만 궁금했다. 회사에서 어떤 조건을 제시할지.

그리고 내 악의적인 질문에, 땀을 뻘뻘흘릴 그 직원의 얼굴 또한,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회사 직원이 오기까지 창밖을 바라보며,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데, 카페 안의 종이 맑게 울려퍼졌다.


김여주
저기 혹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손님 분 계시나요?.

“아, 저기 구석 쪽으로 들어가시면_ 남성 분이 기다리고 계세요.”


김여주
아 감사합니다.

예의바르게 고개를 꾸벅이고, 날카로운 구두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한 여자.


김여주
안녕하세요. MY 브랜드에서 나온 김여주라고 합니ㄷ,


김여주
어?,


박지민
…어?.

샵에서 만난 그 여자를,

또 다시 만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