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 Blue (메리즈 블루)”
47화 | 대가 있는 진실




박지민
…전정국.

이건 여주와 내 사이에 끼어드는거야. 이런 정국이를 보는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 였기에, 최대한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정국의 입에서 분노를 꾹꾹- 눌러담은 숨이 흘러나왔다. 과연, 아까의 여주 모습을 보고도 저런 얘기가 나올까. 내가 아닌 다른 남자라도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였다.

이성적인 감정으로 부터 나온것이 아니다. 정국은 머릿속에서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처럼.


전정국
조금만 더 일찍와서 여주의 모습을 봤더라면, 형은 그런 말 못해.

숨이 넘어가도록 울던 여주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정국은 입 안의 여린 살을 짓씹으며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전정국
그러니까, 가. 가서 이유를 알아와.


전정국
그럼, 그때는 여주 만나게 해줄게.

단, 형이 관련이 없단 전제 하의 일이지만. 말하는 정국에 지민은 이번만큼은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박지민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물론, 여주가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아낼거야.


박지민
그렇다고해서, 네가 날 막아설 권리는 없어.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때였다. 방 문이 조심스럽게 열린 건. 어깨 주변에 담요를 덮고 나온 여주는, 유정에 부축을 받으며 나오고 있었다.


박지민
여ㅈ…


김여주
……

당장 달려가 몸 상태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허공에서 마주친 여주의 시선이 너무나도 차가워서.

분명, 아침까지만해도 저러지 않았는데. 여주가 시선을 피했다. 그제서야, 발끝부터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주하기 전 까지만해도, 이러한 불안감은 없었는데.


박지민
여주야, 왜 그래?… 혹시 권우현이 이상한 말이라도,

팔을 뻗어 손을 잡으려던 순간이였다. 찰나였지만 알 수 있었다. 여주가 제 손길을 피했다는 것을. 꺼내야 할 말을 고르듯, 여주의 목 울대가 울렁거렸다.


김여주
……저기, 당분간은 정국이 집에서 지낼게.


박지민
……뭐?. 그게 무슨,


김여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우리 사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라고 외치려는 순간. 덩치 큰 정국이의 몸이 제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들었냐는 얼굴로_


전정국
들었지?. 그럼 이만 가보는게 어때.


박지민
여주야, 제대로 된 설명이라도!…


전정국
그럴 시간에 차라리 권우현을 찾아가는게 어때. 그럼 여주한테 듣는 거 보단 빠를텐데.

눈동자가 심히 떨렸다. 여주는 그런 지민을 보며 지금과 어울리지 않게 죄책감을 가졌지만, 쉽게 사라지지않았다. 죄는 아버지가 지었어도, 그가 박 회장의 아들이라는 건 달라지지않는 사실이니까.


김여주
……

정적이 거실 안을 가득 메웠다. 28년간의 기억에도 이렇게 삭막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팔을 떨군 지민이 꽉- 막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박지민
…알았어.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


박지민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오면, 그때는 나랑 대화… 해줘. 여주 너랑 이렇게 어색한 사이 되고 싶지 않아.

차마 눈을 볼 수가 없어서 여주는 고개를 돌렸다. 안다. 그가 지은 잘못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쉽게 마음대로 용서가 되나. 제 부모를 죽인 살인자의 아들인데.

미워할 순 없어도, 적어도 연인의 관계를 유지하는데는 어렵다고까지 생각을 마친 여주는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쾅. 하고 닫힌 문 뒤로 다리 힘이 풀려버린 여주는 주저앉아버렸다. 아까 그렇게 울어놓고, 몸은 아직도 흘려보낼 눈물이 남았는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여주
…흡, 흐윽, 나 이제 어떡해야해?. 엄마……

돌아오지 못할 대답이란 걸 알면서도, 이 세상에 없는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쏟아냈다. 차라리, 이 순간 누가 내 기억을 다시 한 번 지워주었으면…

행복은 끝났고,

찾은 기억의 대가는, 생각보다 더 ‘잔인했다.’





회사로 돌아왔다. 끝끝내 사직서를 제출한 우현은, 제일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던 제 책상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정말로 정리해야 할 시간이였다.

책상으로 가는동안 주변에서는 수근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평생을 남의 눈에 잘 보이기로 노력했는데, 한 번의 잘못으로 물거품이 되다니. 꽤나, 씁쓸했다.


김지원
여주는요?. 여주도 그만 두는거에요?.

위아래로 지원을 훑었다. 그래도 끝까지 여주를 믿었던 사람이라지. 우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제 짐들을 하나 둘 씩, 상자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권우현
글쎄요. 돌아올까요. 아니면, 돌아오지 않을까요.

두루뭉술한 대답에 지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잘 모르겠네요. 우현은 생각했다. 내가 여주를 잘 알고있던게 맞았으면, 아마 그만두지 않을까.

그녀의 머릿속에 나는 이미 최악으로 기록되어버렸으니까. 이제는 최악을 넘어서 증오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후회 안 해. 그 사실은 유가족으로써 여주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이였다. 그러니, 정말로 후회……


권우현
…안 하는걸까.

지원은 중얼거리는 우현을 보며 환멸을 느꼈다. 제 멋대로인 사람. 여자 하나를 그렇게 망가뜨려놓고, 자기는 이렇게 도망가다니.


김지원
……허, 참.

순식간에 팀 내부가 조용해졌다. 차분하려고 애쓰려는 발걸음이 적막한 공간에 뚜렷하게 들려왔다.


권우현
…기다렸어.

우현이 느릿하게 입꼬리를 늘렸다.


권우현
찾아올 줄 알았거든.


권우현
박지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