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과분한 상사
프롤로그




김태형
헤어지자.



김여주
그게 한 달만에 데이트에, 집까지 데려다 주면서 할 말이야?


김태형
응, 못 할 이유는 없지. 여주야, 우리 7년이야. 무려 7년이야. 나 이제 너무 지쳐.


김여주
너 진짜 나쁜 새끼구나.


김태형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여주야, 너도 솔직히 힘들었잖아. 나도 많이 생각하고 하는 말이야. 알지? 그만 만나자.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다 끝난 관계였다는 걸.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였다는 거 알고도 붙잡고 놓아주지 못했다.

이게 7년 연애의 끝이었고, 너는 내 말에 끄덕이고는 차갑게 돌아서 가버렸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네 마지막 모습이고, 내 마지막 기억이다.

진짜... 이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따르릉, 따르릉*


김여주
으... 아, 머리 아파. 죽겠네, 진짜.

방 안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 어제 김태형을 그렇게 돌려보내고 홧김에 편의점에서 사온 술로 술판을 벌였다.


김여주
아, 진짜 얼마나 먹었... 망했다. 지금 몇시지?!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고,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8시 50분. 출근은 9시까지. 나는 방금 일어났다.


김여주
아... 미치겠네.

오늘은 마케팅팀으로 발령받고,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설렘과 공포심을 심어주었던 그 날... 드디어 그 날인데...


김여주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할 시간 없어.

아슬아슬... 은 개뿔. 20분이나 지각해버렸다. 진짜 고딩 때 육상부였던 실력을 발휘해 전력을 다해 뛰었건만.

발뒷꿈치를 들고, 조용조용 자리로 몰래 착석하려던 찰나...



민윤기
양심은 있어야죠. 지각을 했으면 숨을 게 아니라 사과가 먼저 아닌가. 그리고 첫날부터 지각을 하다니 대단하시네요, 김여주씨.

내게 마케팅팀 발령이 설렘만으로 다가오지 않은 이유, 바로 저 사람. 민윤기 팀장. 회사 내에서 품평이 좋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다.


김여주
아... 죄송합니다.


민윤기
인사하시죠. 오늘부터 우리팀에서 일하게 된 김여주씨입니다. 원래는 인사팀에서 일하던 친구였어요. 다들 인사하세요.


김석진
안녕하세요~ 일 같이 잘해봅시다!


박수연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옆자리네요?


황예은
안녕하세요. 잘해 봐요. 예쁘다.


강혜인
안녕하세요.


전정국
안녕하세요! 여주 씨, 진짜 잘해 봐요. 우리 친해져요.

대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인 것 같다.


민윤기
인사 다 했으면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자기 자리에 착석하시고 할 일들 하세요.

저 인간만 빼면.

아, 참고로 저 인간은 우리 회사에서 품평이 가장 안 좋은 인물 중 하나다. 회장님 아들, 낙하산. 들어오자마자 팀장 자리에 앉았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보다시피 성격이 더럽다는 것. 이 회사에서 제일 깐깐하고 까칠한 사람이다. 진짜 싫어. 어우, 무서워.

자리에 착석했다. 책상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앞으로의 열일을 다짐했다. 옆자리 수연씨와의 눈맞춤 후, 얼마 뒤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

???
누구신데 이러시죠. 문자 잘못 보내셨습니다.

순간 나는 이게 뭔 소린가 하고 이 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누르자, 나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또 한번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어젯 밤, 취한 채로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다.

- 이ㅆ쉬방ㅎ몸아 안ㅁㅁㄷㄹ보고상냐 7년ㅇㄹㅈㅂ이 아까우

- ㅈ보ㅗ고싶ㄷㅈ다

-꺼젿ㄲ개새끼야넍ㄴㄴ신고할거야

문자를 하나하나 확인할수록 내 표정을 굳어져만 갔다.


김여주
하아... 하하하!


박수연
?? 여주씨... 왜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김여주
아... 아니에요 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김태형과 번호 맨 뒷자리 번호가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김태형이 아닌 게 어디인가... 라는 생각으로 사과 문자를 대충 보내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카톡 프로필에 프로필 사진도, 이름도 기재돼 있지 않아서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보낸 사과를 읽씹 했는지 답이 오진 않았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아, 인사팀까지 갈 수도 없고... 누구랑 먹어야 되지.


박수연
여주 씨, 먹을 사람 없으면 나랑 예은씨랑 먹을래요?


김여주
저야 완전 좋죠!


황예은
가요, 얼른 가자. 나 배고파. 오늘은 국밥 콜?


박수연
야, 조용히 해. 오늘은 간단히 김밥천국이나 가자.


황예은
뭐래. 아, 여주 씨는 몇 살이에요?


김여주
아, 저는 24살이에요.


박수연
오?! 동갑이네. 말 편하게 해요.


황예은
맞아. 그냥 말 편하게 해.


김여주
그...럴까? 그래도 돼?


박수연
안될 거 뭐 있나. 밥이나 먹으러 가자.


황예은
가자, 빨리 제발 빨리!


황예은
그래. 현명한 선택이었어, 고기.


박수연
인정한다.


김여주
씹인정. 내가 또 한 고기 하지.


황예은
아, 맞다. 마케팅팀 단톡에 초대를 안 했구나!


박수연
내가 해줄게.

*카톡!*

- 박수연 님이 김여주 님을 초대하셨습니다.


박수연
- 마케팅팀 단톡방입니다. 주로 공지는 여기에서 하니까 확인해주세요!

수연이와 예은이 덕분에 적응은 빨리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른 팀원들과도 잘 지낼 수 있을까?

채팅방 팀원들 목록을 쭈욱 스크롤 하고 있는데...


김여주
엥???!!!!


박수연
앗, 깜짝아! 왜그래!


황예은
아오! 깜짝아... 놀래라.


김여주
이... 이... 이, 이 사람 누구야?


황예은
누구?


김여주
이, 이... 이 까만색 프사... 이름 없는... 이, 이... 이 아!! 됐고 누구야?

프로필이 익숙했다. 바로, 김태형으로 착각해서 카톡으로 술 먹고 개진상을 부렸던. 그 사람이 어떻게 나랑 같은 회사 단톡에 있는 거지?


박수연
뭐 누구? 까만색 프사에 이름 없는 사람?


김여주
어, 어... 누구야?


황예은
누구긴 누구야~ 딱 보면 몰라? 까맣고 음침한 분위기... 우리 팀에 한 사람 말고 더 있나?


박수연
맞아. 딱 봐도 그 한 사람인데.


김여주
아 누군데!! 누군데...?


황예은
민 팀장이잖아. 민윤기 팀장.

쿵. 오늘로만 세번째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진짜 뭣됐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 개진상을 부렸는데... 상사라고? 그것도 민윤기 팀장? 말도 안돼 진짜...

진짜 앞으로 내 회사 생활이 어떨지 난... 감을 잡을 수가 없이 그 자리에서 머리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카톡!*


민윤기
?

진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