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 너에게

서로 감춘 시선

한남동 조용한 골목 식당, 은은한 조명 아래 승철과 정한이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정한은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다물고 있었고, 승철은 휴대폰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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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곧 올 거야. 아는 동생인데, 오늘 데뷔 촬영도 끝냈다더라고.”

정한은 그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 별 관심은 없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섰다. 정한의 손이 멈췄다.

오전, B닐라코 촬영장에서 정한의 앞에 섰던 그 신인.

화장을 연하게 한 얼굴에 후드티를 걸친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정한의 눈에는 오히려 더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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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서연아, 여기!"

승철이 손을 흔들며 그녀를 반겼다. 서연도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조용히 걸어왔다.

정한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머물렀지만, 서연은 정한과 눈이 마주치는 걸 피한 채 그 둘을 마주 앉아 최대한 승철의 맞은편 쪽으로 앉았다.

이서연

“안녕하세요. 이서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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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윤정한이에요."

그 말에 서연의 눈썹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단순한 인사인데 그 말이 어쩐지 멍하게 다가왔다.

아까와는 다른 무언가 싸늘한 느낌이었다.

아침에 카메라 앞에서 수십 번 눈을 마주쳤던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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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얘가 이번에 새로 데뷔한 친구야. 비주얼 라인이지, 우리 회사에서.”

승철이 웃으며 분위기를 풀려 했고, 서연은 머쓱하게 웃었다.

정한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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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그래서 무슨 광고 찍었는데?”

서연이 딱히 승철에게 자신과 찍었다는 얘길 안한것 같은 상황에 정한도 그냥 받아드려 모른척 하기로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뭔가 부담됐던걸까.

정한은 평소와 같은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서연

아, 뷰티 브랜드였어요....오늘 첫 광고라 정신 없었어요.”

서연은 정한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답했다. 정한도 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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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같이 찍었던 나를 언급하지 않는 건, 불편해서 일려나?'

그런 정한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승철은 계속 서연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눈이 스칠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일부러 말을 아끼며 모른 척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정한의 손끝은, 무심코 만지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잠시 떨렸고,

서연은 그런 작은 떨림을 자신도 모르게 느끼고 있었다.

***

식탁 위로 따뜻한 안주 냄새와 잔잔한 웃음이 어우러졌다.

승철은 여전히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고, 서연은 적절히 반응하며 잘 따라가고 있었다.

이서연

“우와 진짜요?

이서연

그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자연스럽고 해맑은 리액션이었다.

그런 서연을 말없이 바라보던 정한은 잔을 돌리다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자신과 대화할 땐 조심스럽고 긴장한 듯 보이던 서연이, 지금은 분명히 훨씬 편해 보였다.

누가 봐도,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유독 반짝이는 눈빛.

정한의 입가엔 장난기 섞인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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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야, 왜 그렇게 웃냐?”

승철이 정한의 표정을 보고는 궁금한듯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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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뭔 생각했는데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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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아니야~ 그냥 재미있어서.”

정한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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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오늘 좀 뭔가 다른것 같아서."

서연은 당황한 듯 정한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서연

"아하하하...."

그러던때, 승철은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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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쿱스(승철)

“나 잠깐 화장실 좀.”

그 순간부터, 테이블에 조용한 공기가 깔렸다. 둘만 남은 자리.

정한은 잠깐 시선을 멀리 두더니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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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이서연씨."

이서연

"네..?"

서연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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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 승철이 좋아해요?”

그 말에 서연은 순간 얼어붙었다.

이서연

“네…?! 아, 아뇨! 아니에요!”

너무 빠르고 또렷한 부정이었다.

손사래를 치며 웃었지만, 그 미소는 약간 떨렸다. 정한은 여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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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그렇구나~ 내가 잘못 봤나?”

이서연

“…진짜 아니에요.”

서연은 다시 한번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정한의 눈빛이 변했다.

그녀의 눈가, 입가의 미세한 흔들림. 방금 그 반응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말해주고 있었다.

정한이 피식하고 낮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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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진짜 아니라니까 더 이상 묻진 않을게요. 근데…”

그는 젓가락을 내려두며 조용히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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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표정 관리는 조금만 더 연습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서연

".....!"

서연은 말을 잃었다. 정한은 장난스럽게 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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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뭐.”

그리고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아무 일 없던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