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관전중

가짜 사랑

아기가 울 때 이렇게 달래야 하는구나 라는 큰 조언 하나를 얻었다.

박지민의 성격은, 집착이 심하지만 다섯 살 아이처럼 단순한 정도이기 때문에 상대하기 상당히 쉬운 편이다.

겨우 쓰다듬는 로봇이 되고 나서야 종 치기 직전에 수학을 하는 온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방 뭔 놈의 학교가 이렇게 넓은 겨! 니네가 서울대여?

온실은 우리의 기숙사에서 한참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길 가다 텔레포트 준비하는 엑스트라를 붙잡고 같이 와야만 했다.

이동 수업만 걸어다녀도 쉬는 시간 다 쓰겠네, 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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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고맙다, 엑스트라!

엑스트라

그래, 그럼 우린 가볼게.

아, 맞아. 정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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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야 잠깐만! 너 기숙사 플러번이야?

엑스트라

아, 얘가 플러번에 있는 애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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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정호석이라는 애 알지? 걔 보통 끝나면 어디 가 있어?

옷을 누가 봐도 큰 사이즈로 입은 엑스트라가 대답을 했다.

여기도 오버사이즈라는 게 있나? 아님 그냥 단순한 미스사이즈인가?

엑스트라

전에 봤는데, 옥상에서 뭘 하는 거 같았어. 마법 연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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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으래, 고마워!

- 댕, 댕.

헐미친시발종이치고있어!

나는 급한 발걸음으로 온실 안쪽으로 쏙 들어갔다.

근데 나 수학은 공부 잘 안 했는데, 어차피 쉽게 나오겠지 뭐.

바로 다음 순간에 문이 열리며 어떤 키 큰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이야, 존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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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철

이 학기 약초학 선생님인 공지철이라고 한다. 수학이 너무 빈약해서 상대적으로 필요한 학문인 약초학을 시작하게 되었어. 다들 방학 중에 편지 받았겠지?

아니, 응? 갑자기 약초학?

나는 어버버거리며 선생님과 우리 앞에 놓이는 하나의 화분을 바라보았다. 작은 묘목이 하나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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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철

지금 너희들의 앞에 있는 건 호두나무 묘목이에요. 이 나무 아래에서 잠들면 생명력을 빼앗기지만, 이파리는 예지력이 있다고 알려져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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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철

이번 수업 시간에는 이 호두나무 묘목을 학교의 화단에 심고 변화를 지켜보도록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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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철

다들 화분을 들고 선생님 따라오세요~

아이들이 무리지어서 지나가는데, 박지민도 없는 한예화는 딱히 같이 갈 사람이 없으므로 그냥 혼자 움직였다.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법이지. 응응.

혼자 주변 경관을 구경하고 있는데, 여주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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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앗, 예화야!

헐 언니!

역시 인싸 대표 이여주, 민윤기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어쩌면 여주 언니랑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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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야, 민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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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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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잠깐 먼저 가 봐. 여주 언니랑… 아니 이여주랑 할 말이 있어서.

민윤기가 나를 썩은 표정으로 보았다. 아니, 친해지겠다는 것도 거부하냐!

그리고선 대답을 안 하고 멀어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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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여주야, 무슨 과목 좋아해? 좋아하는 음식이나 색은? 미러에 들어가본 적은 있구?

크, 빙의글 주인공과 질의응답이라니 짜릿해 새로워.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나는 여주 언니에게 빠르게 많은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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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이상형이라든가 취향인 동물은 뭐야?

여주 언니는 많이 당황한 표정이다, 읭. 내 말이 너무 빨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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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으음, 고대 문자를 좋아하구, 으, 음식은… 그냥 달콤한 거면 다 좋아해. 색은 초록색을 좋아해. 그리구 또… 뭐랬지, 예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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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앗, 미러는 무시해. 이상형이나 취향인 동물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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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가끔 날아오는 지즈(Ziz)를 좋아해, 착한 사람도 좋아하구.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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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으렇구나. 나한테 물어볼 건 없어?

나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여주 언니를 바라보았다. 여주 언니는 뭔가 찌푸린 표정이다.

앗, 내가 너무 부담 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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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으응, 그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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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좋아, 알았어. 고마워!

나는 기쁜 마음으로 호두 나무 묘목이 담긴 화분을 안아들고 화단에 달려갔다.

이 기상과 이 맘으로! 나는 나무를 심는다!

나는 여주를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는 마음에 기뻐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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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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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다 심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예화의 무릎을 열심히 턴 나는, 화분을 안아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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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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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미싱은 잘도 도,

순간, 누군가가 거세게 달려와 내 어깨를 친 거 같은 고통이 밀려오면서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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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아악!

화분은 다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고, 파편 하나는 무릎을 긁어놓았다.

미친 예화 언니의 금쪽같은 다리를 내가…! 언니 미안해요!

나는 급하게 위를 올려다보았고, 그 자리에는 여주 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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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흐읍, 끅, 예화야, 미안해… 나 때문에 넘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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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네?

왜 내가 넘어졌는데 언니가 우는 것이며, 민윤기는 어디다 버리고 오셨어요?

나는 최대한 「나 괜찮음!」 을 어필하기 위해 벌떡 일어나서 여주 언니를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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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언니, 아니 여주야. 괜찮아, 괜찮아. 나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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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흐윽, 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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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이여주, 한예화!

우리 근처에서 화분을 들고 날아가던 김태형이 우리를 봤는지, 다시 멈춰서선 바람으로 파편을 한 자리에 모아 주었다.

와, 인간 청소기.

내가 파편을 정리하려고 뒤로 돌아섰을 때엔, 화분 조각들이 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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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야, 어디까지 날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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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없앴어.

어머나 깜짝이야 너 왜 여기 있냐?

김태형은 나와 여주 언니 사이에 가만히 서 있었고, 전정국은 내 뒤로 가만히 걸어와있었다.

못 봐서 미안하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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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전정국…? 정국아, 태형아아. 나 위로해주러 온 거야…?

여주 언니가 눈물을 닦으며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아 언니 전정국은 또 언제 만났었어. 나도 데려가지, 먼지 한 톨처럼 가만히 있을 수 있는데.

전정국은 살짝 웃는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한 발 다가왔다.

…잠깐, 내 쪽? 한예화 쪽? 이여주 쪽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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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아니.

미친, 남주가 여주를 거절했어?

나는 입을 떡 벌린 상태로 내 쪽으로 돌아서는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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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한예화 도와주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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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너 쟤 목 졸랐다면서, 병 주고 약 줘?

김태형도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뒤에서 말다툼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발 왜 남주들이 단체로 여주를 배반 때리고 악녀한테 붙어!

스토리에 큰 문제가 생긴 거 같아, 난 일단 위로해주는 남주의 자리를 메꾸기로 했다.

여주 언니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꼭 안고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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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진짜 미안해 여주야, 내가 주의를 못 살피는 바람에. 못 피해서 진짜 미안해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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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그러니까 울지 마, 응?

악녀가 이렇게 해도 뭐 악녀는 악녀겠지만, 남주가 악녀 편으로 돌아서면 남주가 아니니까.

내가 열심히 토닥이고 있는데 여주 언니가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가까이 오라는 사인을 주었다.

할 말이 있는 건가? 나는 귀를 여주 언니 쪽으로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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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앞을 똑바로 보고 다녔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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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어?

여주 언니의 따뜻하고 귀여운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만 같은 차가운 목소리가 귀에서 뇌로 전해졌다.

뭐라고? 아니, 갑자기? 여주는 보통 남에게 탓을 돌리지 않는데?

내가 여주한테 그렇게 아프게 부딪혔나 싶어, 나도 조용히 말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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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진짜 미안해, 내가 잘 보고 피했어야 했는데. 그게, 화분을 안고 있어서 잘 못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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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착한 척 하면, 넘어가 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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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지랄도 병이야. 자꾸 내 어장에 그물 던지려고 하면, 너부터 매장시켜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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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여우같은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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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화

뭐라고?

내가 방금 들은 말을 재확인하려고 여주를 바라보자마자, 여주의 눈이 초록색으로 빛나더니 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가만히 서 있는 상태로, 움직이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뭐지? 여주 언니가 왜 한예화한테 욕을 하지? 늘 당하기만 했는데, 왜…?

욕을 듣다 보니 눈에 눈물이 맺힐 즈음이었다.

여주가 내 뒤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둘이 싸우던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여주가 또 다시 그 귀여운 목소리로 말하는 게 귀에 너무 잘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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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주

예화가, 예화가 나한테… 막 욕을 했어, 얘들아… 흐윽, 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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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뭐라고?

아니야, 아니야.

크게 말하고 싶은데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 빼고는 아무런 동작도 할 수가 없었다.

전정국이 나에게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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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나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진다. 내 눈물을 봤을까?

다음 순간, 미러 속으로 텔레포트되었다.

여주는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나처럼 또 다른 사람의 혼이 들어가 있는 건가?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셨겠지만, 여주는 인소에 나왔던 선량한 여주 그 자체가 아니에요.

그 이상은 한 번 추리해보셨음 좋겠네요. ;)

독자님들의 고구마 퇴치를 기원하는 인예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