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왕족 [시즌 2]
20.



"저, 총리님!"


김남준 (27)
"네?"

그렇게 더는 무엇을 알아내지 못하고 궁으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블타병 검사를 진행했지만 문제는 없었고, 다들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며 몸의 피로를 잠시나마 풀어준 상태였다.

우선 조금이라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니 얼른 다시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은, 아침부터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호석을 찾으려 노력중이다.

태형은 아침부터 늦지 않게 돌아오겠다며 또 훌쩍 어디론가 가버렸고, 석진과 정국은 주변의 상황을 살피며 혹시 모르니 호석과 백현을 똑같이 그린 그림을 들고 다니기로 했다.

최대한 기억을 살려 백현의 초상화까지 그렸으니, 대충 물어보는 용도로는 꽤 유용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남준은 혼자 궁에 남아 블타병에 대해 알아보고, 대처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안 보이시는데, 혹시 어디 계시는지 아시나요? 이거 보고 드려야 하는데... 아침부터 계속 자리에 없으셔서요."


김남준 (27)
"아."

김태형 이 개새끼, 또 말도 안 하고 도대체 어딜 간 거야. 맨날 말도 안 하고 혼자 개인활동 하지.

아침에 그냥 늦지 않는다는 말 남기며 아침도 안 먹고 간단한 옷차림과 모자 하나 눌러쓴 채로 창문을 넘어 날아가던 태형의 뒷모습이 다시 그려졌다. 진짜 내가 김태형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냐.


김남준 (27)
"하... 제가 볼게요. 제 자리에 두세요."

"아, 알겠습니다!"

나중에 오기만 해봐라, 일단 정호석이고 블타병이고 뭐고 머리부터 쥐어뜯을 거야.

한편, 처음 정한이가 호석과 떨어졌다고 했던 그 남준의 집 뒤인 그 강으로 다시 와본 정국과 석진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졸졸 흐르는 강물이 그냥 미웠다.


전정국 (22)
"뭐 좀 있어?"


김석진 (27)
"... 아니."


전정국 (22)
"저기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볼까? 우리 아직 저 숲으로는 안 가봤잖아."


김석진 (27)
"숲은 다 연결돼 있어서 딱히 상관 없을 것 같은데."


전정국 (22)
"아, 혹시 알아? 호석이 형 찾을 수 있을지?"


김석진 (27)
"..."


김석진 (27)
"그래... 한 번 가보자."

아까 흐르던 강의 원천은 이곳이었을까, 점점 숲으로 들어갈수록 세지는 물살에 어느덧 긴장하고 옆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둘이다.


전정국 (22)
"형... 우리가 길을... 이상하게 왔나?"


김석진 (27)
"... 일단 가보자. 끝까지 가보면 되지, 힘들면 날아갈래?"


전정국 (22)
"이 형이 큰일날 소리 하네. 날개 다 젖어!"

후웅-

착-


절벽 끝에 아슬하게 매달린 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골짜기를 훑었다. 숨겨진 동굴이 많은 곳. 어떤 동굴은 너무 안쪽에 있어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남쪽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큰 골짜기. 뱀파이어 세계에서도 가면 위험한 곳 중 한 곳이, 바로 여기다. 숲이 무성해 보이지만, 정작 안에 들어가면 생명이 없는 것 같고 앙상하기만 한 곳.

아까 석진과 정국이 따라 올라오던 큰 강의 처음 원천도 이곳이었다. 아마 그 둘도 계속 따라 올라오다 보면 이 골짜기에 도달하겠지.


"..."

오랜만에 드러낸 그의 윤택 가득한 검은 날개가 초록, 갈색 빛 가득한 숲에서 어색하게 어우러졌다. 한쪽 턱을 괴고 아슬하게 밑을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이 천천히 구겨졌다.


김태형 (25)
"만약 진짜 여기에 있다고 하면... 여기를 다 뒤져야 하는 거야?"

슥 훑어도 대충 보이는 동굴이 열 개가 넘는데, 그 안까지 샅샅히 뒤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뻗을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김태형 (25)
"진짜... 괜히 어제 걸리는 문장을 읽어가지고... 이게 뭔 개고생이야."

투덜거리며 바지를 털고 일어선 태형이 눈을 질끈 감고 부드럽게 날개를 펴며 아래로 몸을 던졌다. 곧 바람을 잡아 매끄럽게 떠오른 그는, 일단 제일 가까운 동굴부터 들어갔다.

입구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하나 찾아 한쪽에 밧줄을 감았다. 그리고 그 밧줄에 불을 붙인 태형은 그렇게 대충 횃불 하나를 완성해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나머지 소지품은 다 밖에 둔 상태였다.

물론 축축한 동굴로 들어가면서 은비 보고 싶다고, 이걸 언제 다 끝내냐고 욕을 뱉어내는 것도 잊지 않았고.

어제 저녁-

먼저 블타병 검사를 마치고, 다 씻은 태형은 저녁 시간도 훌쩍 넘어 한산해진 도서관에서 블타병에 대해 과거에 기록해둔 서적들을 넘기고 있었다.

이제서야 그동안 남준이 미리미리 좀 읽고, 선조들이 기록한 일기들도 익혀두라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는 정말 미루지 말아야지.

혼자 자아성찰을 하며 가장 최근의 기록으로 단숨에 페이지를 넘겼다. 근데 아무리 읽어도 딱히 도움 될만한 글귀가 보이지 않았다.


김태형 (25)
"검고... 투명한... 타액... 이건 우리도 다 아는 건데."

정신 똑디 차리게 도와줄 만한 신선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책을 맨 처음으로 넘긴 태형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글자를 읽으며 최대한 놓치는 거 없게 꼼꼼하게 익혔다.


김태형 (25)
"아, 허리야."

그렇게 한 한시간 흘렀을까. 평소에 많이 하지도 않던 독서를 눈 빠지게 하고 있자니, 방금 따뜻한 물에서 씻고 나왔는데 허리가 쑤셨다. 책은 한 중간 쯤으로 흘렀고, 딱히 얻은 건 아직 없는 거 같.. 어?


김태형 (25)
"잠시만... 아까... 는?"

서둘러 전 페이지로 넘어가 첫 환자 발생 장소를 읽었다.

- 자세히는 모르지만, 남쪽으로 추정됨. -


김태형 (25)
"..."

재빠르게 전, 또 그 전 페이지로 넘기며 첫 발생 장소를 읽었다. 이걸 왜 놓쳤을까.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남쪽. 아직 덜 읽은 뒤쪽도 다 마찬가지였다.


김태형 (25)
"... 이번에 우리는, 어디였지?"

정국과 둘이 눈 오는 밤에 뒷산으로 나갔던 날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렸다.

'블타병이라고, 알지?'

'그게, 발견된 것 같아. 남쪽에서.'


김태형 (25)
"..."

남쪽. 정국이는 그때 분명히 남쪽이라고 했어.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지금 상황에 오래 앉아서 맞고 아니고를 따질 시간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남쪽으로 가야 한다. 책장 맨 위에서 세계 지도를 꺼낸 태형이 바닥에 두고 쫙 펼쳤다.


김태형 (25)
"... 골짜기... 가... 있네?"

항상 그 지역만 신경을 썼지, 그 지역까지 가는 길을 보진 않았으니까. 왕궁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큰 골짜기를 발견한 태형은, 그 부분을 조심해서 찢어냈다.

다음 날 아침, 다들 비몽사몽 또 정신없는 하루를 시작하려 아침을 삼키는 와중에 태형은 벌써 외출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평범한 셔츠와 바지, 그리고 검은 모자를 대충 눌러쓴 그가 방에서 나오자 다들 눈이 커지며 자리에서 일어났지. 어디 가냐고, 같이 가자고 하는 석진이었지만, 늦게 오진 않겠다고 말하곤 그냥 바로 날개를 펴 창문을 통해 날았다.

자기 전에 비린 맛도 꾹 참으며 피도 마신 터라, 힘은 충분했다. 아직 남쪽이 블타병 근원지라고 확정인 것도 아니니 일단 혼자 가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태형이다.

철컥-

자신의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준이 바로 옆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사실 말이 좋아서 앉은 거지, 기진맥진한 상태로 거의 쓰러진 거다.

아침부터 이것들이 다들 개인 활동으로 사라지니, 궁의 일은 죄다 남준에게로 오고 있었고 지금 또 한동안 의사들과 대신들에게 볶이고 온 참이었다.


김남준 (27)
"아주 지들만... 아, 이게 뭐야."

겨우 일어나 책상으로 오니, 이번엔 또 가지런히 제 앞에 놓인 서류가 손을 흔들었다. 절망하며 읽어보니, 아까 태형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태형이 자리에 없다고 했던 그 자가 두고 간 것 같았다.


김남준 (27)
"뭘... 내가 이 서류를 뭐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자신에게 넘어오긴 했으니 처리는 해야 한다. 읽으면 답이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가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은지 점점 미간을 좁히는 남준이다.


김남준 (27)
"... 이게... 뭔."

결국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서류를 집어 던진 남준이 방황하며 책상에 놓인 업무용 전화를 들어 경호팀 단축키를 눌렀다.

* "예, 총리님. 필요하신 거 있으십니까?"


김남준 (27)
"ㄱ, 그 뭐냐, 왕자님이랑 전정국 아침에 같이 나갔죠."

* "예... 두 분 같이 나가셨습니다."


김남준 (27)
"혹시 어디로 갔는지 보셨어요?"

* "총리님 집 쪽으로 가시는 것 같던데요?"


김남준 (27)
"..."


김남준 (27)
"ㄱ, 경호팀장님."

* "예, 총리님... 혹시 어디 불편하십니까?"


김남준 (27)
"아니, 그게 아니고, 폐하도 그럼 아침에 나가시는 거 보셨죠. 폐하께선 아침에 어디로 가셨어요?"

* "폐하께서도 아침에 총리님 집 쪽으로 날아가셨습니다. 총리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김남준 (27)
"... 경호팀장님,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 "예? 예."


김남준 (27)
"지금부터 남쪽으로 가는 길은 전부 차단하세요. 그쪽에서 넘어오는 것도 차단하세요. 아무 왕래도 없게 하십시오. 아시겠죠?"

* "ㅇ, 예!!"

왕래를 차단했다는 확인 받은 후, 남준은 석진, 정국, 태형과의 연락을 계속 시도했지만 무심하게도 연락은 지직거리며 끊기기만을 반복했다.

남준의 집은, 왕궁이 있는 지역에서는 가장 남쪽에 위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뒤에 있는 강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남쪽으로 넘어가는 골짜기가 있었고.

그 강을 따라 올라가던 석진과 정국은, 이미 자신들의 연락망을 모르고 센 물살에 빠뜨린 상태였다. 태형은 애초에 동굴로 들어갈 때 사진의 소지품은 다 밖에 두고 들어갔고.

그리고 이미 세 명이 다 남쪽으로 넘어갔는데, 남준은 왕래를 차단하며 왕궁에 비상을 돌려버렸다.


김남준 (27)
"연락을 왜 안 받아... 미친 놈들이."

계속 연락망만 붙들고 있는 남준의 책상 위 보고서에는, 지금까지 블타병을 연구한 결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 중간 쯤에 적혀 있는 문장.

- 남쪽에서 첫 환자가 생겼다고 처음에 보고됐는데, 과거와 대조해보니 항상 남쪽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

태형이 알아낸 것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오늘도 분량 조절은 실패입니다.. 지루하시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