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호 나페스] 별바라기

5화. 그 날의 이유

“왔었어.”

“…….”

“너희 집 앞까지.”

“…….”

“이사 가기 전날.”

 

 

건호의 말이 끝나고도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조금씩, 조용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건호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왜 안 불렀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하게 나왔다.

건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촉하지 않았다. 이번엔, 정말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모른 채로 남겨졌던 이야기의 끝이, 이제야 조금씩 내 앞에 놓이는 것 같았다.

 

건호는 한참 동안 평상 아래쪽만 보고 있었다. 손끝이 느리게 움직였다. 낡은 나무결을 더듬는 것 같기도 했고, 그냥 어디든 붙잡을 곳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 집 사정이 안 좋아졌어.”

“…….”

“아버지 사업에… 일이 생겼고, 생각보다 빨리 기울었어.”

 

 

건호의 말은 느렸다. 한 단어씩 골라서 내려놓는 사람 같았다. 변명처럼 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속으로 꽤 놀랐지만, 잠자코 말을 듣고있었다.

 

 

“처음엔 잠깐 힘든 건 줄 알았지. 어른들도 그렇게 말했고.”

“…….”

“근데 아니었어. 집도 정리해야 했고, 동네도 옮겨야 했어.”

 

 

밤공기가 조금 차게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완벽한 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팔 끝이 조금 식는 것 같았다.

 

 

“부모님들은 알고 있었어.”

 

 

건호가 말했다.

 

 

“너희 부모님도.”

 

 

그 말에 나는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엄마가 그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건호가 너한테 말 안 했니?

 

그때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냥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 서운해서, 그 뒤에 있는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알고 있었구나. 아빠도. 건호네 부모님도. 어른들은 다 알고 있었고, 나는 몰랐다.

 

 

“몰랐어."

“…….”

"네가, 너네 집이 그런 일이 있었던 것도."

“…….”

"우리 부모님이 알고있는 것도."

 

 

건호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내가 말 안 했으니까.”

“왜 나한텐 말 안 해준거야? 너도, 우리 부모님도.”

 

 

감정을 숨기려 천천히 말을 이었지만, 서운함이 묻어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질문에 건호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답답해지는 속도 모르고 건호는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아냐, 그래도 기다리자. 거의 다 왔잖아. 지금 이야기 해주고 있잖아.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어린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내용들이었다.

건호는 한참 뒤 말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창피했어.”

“뭐가.”

“그냥 전부.”

 

 

건호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숨이 새는 소리에 가까웠다.

 

 

 

“우리 집이 망했다는 것도. 이 동네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도. 너희 집에는 계속 불이 켜져 있는데, 우리는 짐 싸고 있었다는 것도.”

“…….”

“되게 못났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의 우리는 너무 어렸고,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니까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그 애가 못났는지, 아니면 너무 일찍 많은 걸 알아버린 건지.

건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때 너는 계속 똑같았어. 학교 끝나면 우리 집 들르고, 숙제 핑계 대고 옥상 올라오고, 별 얘기하고.”

 

 

건호가 고개를 조금 들었다.

 

 

“내일도 당연히 볼 것처럼 굴고.”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은 평온했다. 적어도 내 쪽에서는 그랬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오고, 저녁을 먹고, 놀이터에 가고, 가끔 옥상에 올라가 건호랑 별을 봤다. 가끔 투닥거리고, 가끔 웃고, 다음 날이면 또 아무렇지 않게 만났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그게 싫었어.”

“내가?”

“…….”

 

 

건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너는 잘못 없었어.”

“…….”

“근데 그때는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게 싫었어.”

 

 

나는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건호는 하늘을 보지 않았다. 이번엔 계속 아래를 보고 있었다. 나도 그 손끝을, 가만히 바라보고있었다.

 

 

“너는 계속 여기 있을 수 있는 애 같았어. 이 집도, 이 옥상도, 네 방도 다 그대로일 거고.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웃고 있을 것 같았어.”

“…….”

“나는 그게 조금, 응.”

“…….”

“짜증이 났어. 그 땐.”

 

 

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건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후, 숨을 내뱉곤 눈을 감았다.

나는 그런 건호의 옆 얼굴을 바라봤다. 여태 저 못난 마음은 속에서 얼마나 썩었을까. 아마도 미련한 내 어린 친구는, 어렸음에도 내 탓을 하지 않은 성숙함은 갖추고 있었나보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간 적도 많았었지. 언제부턴가 그 횟수가 줄었다. 그 땐 마냥 서운하기만 했고, 다른 친구가 생겼나 질투가 나기만 했는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괜히 멋쩍게 웃으며 거절하던 그 얼굴을, 난 그냥 미워하기만 했으니까.

 

 

“그럼 그날은.”

“…….”

“우리 집 앞까지 왔던 날은.”

“…….”

“왜 왔어?”

 

 

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 침묵은 아까보다 길었다. 나는 건호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옥상 아래 어딘가에 대문이 있고, 그 너머에 골목이 있었다. 몇 년 전, 어린 건호가 그 골목 어딘가에 서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말하려고 했는데.“

 

 

건호 픽, 혼자서 실소를 터트리더니 말을 이었다. 아마도 제 추한 감정을 이렇게 말로 드러내는게, 쉽지는 않았으리라.

 

 

“…아줌마도, 아저씨도 너무 친절하시고.”

“…….”

“너도 착한 애 그대론데.”

“…….”

“나만 바뀐 것 같아서. 그걸 보는데 못 들어가겠더라.”

“…….”

“……열등감을 느꼈어.”

“…….”

“어둠 속에서 환하게 켜진 너희 집을 보면서.”

 

 

건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 말은, 사실 나를 미워했다는 말과 같았다.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빠르게 철이 들어버린 어린 건호에겐, 내가 가장 미웠을거다. 자신의 부모님보다도.

 

 

건호의 눈은 도심의 불빛을 받아서인지, 살짝 붉어보였다. 눈물을 참는걸까.

나도 대답을 해야하는데. "뭐야, 고작 그런 일이었어?" 하고 넘겨줘야 쿨한건데. 도저히 그런 밝은 태도는 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저 함께 착잡해져 갈 뿐이었다.

 

건호는 아무 대꾸가 없는 내 쪽으로 고갤 돌렸다. 이윽고 내 눈에서 복잡함이 얽히고 섥힌 눈물이 떨어지자, 놀란 표정을 하고 날 바라본다.

 

 

“왜 울어.”

“…그냥.”

“…….”

“미안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부모님께 사랑을 잔뜩 받으며, 세상 풍파라고는 모르는 아이. 그 때의 나에게 손길을 내밀어봤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동정일 뿐이었을거다. 그건 건호를 더 착잡하게 만들었겠지.

그게 미안했다. 내가 어리숙해서, 기댈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게. 홀로 남겨진 건호에게 그 어떤 버팀목도 없었다는게, 나도 되어주지 못했다는게.

 

건호는 조심스레 내 볼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미안해. 그 때도 네 잘못이 아닌걸 알면서 널 미워했어.”

“…….”

“처음엔 자존심이었고.”

“…….”

“그 다음엔 죄책감이 들어서 연락을 못 했어.”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들었다. 미움, 자존심, 죄책감.

그 단어 사이에 몇 년이 있었다. 내가 건호를 괘씸해하던 시간. TV에 나온 얼굴을 일부러 외면하던 시간. 엄마가 건호 얘기를 꺼낼 때마다 별것 아닌 척 넘기던 시간.

 

그리고 아마 건호에게도 다른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집, 내가 모르는 동네, 내가 모르는 밤들.

 

 

“…네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

“많이 들었어.”

“…….”

“그래서 왔어.”

“…….”

“많이 늦었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많이 늦었지. 몇 년이 지난거야. 그 사이에 우린 서로가 없이도 살 수 있게 자라버렸는걸.

 

 

“미안해.”

“…….”

“너한테 그러면 안 됐는데.”

“…….”

 

 

나는 고개를 숙였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보다 더 감정의 응어리를 혼자서 풀어냈을 그 어린 아이를 생각하면. 되려 내가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오늘 말해줘서.”

“…….”

“그건 고마워.”

 

 

건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가, 눈꼬리가 살짝 휘어졌다. 어쩐지 조금은 풀린 표정으로, 작은 웃음을 머금곤 날 바라본다.

 

 

“응.”

“…….”

“그 정도도 고마워.”'

 

 

나는 괜히 시선을 돌렸다.

옥상 위로 바람이 불었다. 유성우가 지나간 하늘은 조용했다. 별은 많지 않았고,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밝았다.

 

건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같은 평상 위에 앉아 있었다. 예전처럼 가볍지도 않았고, 조금 전처럼 완벽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사람은 없었다.

 

감정의 응어리가 처음으로, 진실되게 드러난 것 같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밤은 전보다 조금 덜 막막했다.

 


 

쓰고보니 오늘은 살짝 다크하네용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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