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11화 -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이상원과 만나기로 한 뒤 처음으로 RESET을 찾았다. 학교에서는 자주 마주쳤지만, 아무래도 데이트는 바깥에서 하게 되다보니 바에서 만날 일은 없었다. 명색이 여자친구, 남자친구이고. 애인이 일하는 곳 쯤은 한 번 가 봐야지. 싶은 생각에 오랜만에 들르게 되었다.

 

친구도 없이 혼자 바에 들어서자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스윽 내부를 둘러보면, 평일 저녁인데도 테이블 대부분이 차 있었다. 여전히 인기 많은 바네. 조용히 구석진 바 자리에 앉았다. 여전히 조명은 어둑했고, 테이블과 바텐더들의 자리에만 노란 조명이 중간중간 쏟아졌다.

 

별 생각 없이 바 쪽을 훑어보면 오늘도 검정 셔츠를 입은 이상원이 보인다. 상원은 여자 손님 둘을 상대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으며 대화를 하는 듯했지만 예전처럼 몸을 숙이거나 눈을 접어 웃지는 않았다. 입꼬리만 형식적으로 올린 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여자 한 명이 상원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요즘 왜 이렇게 차가워졌어요?”

“원래 이랬는데요.”

 

 

 

대답도 살갑지는 않았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쟤는 원래 저랬지. 나한테만. 지금은 반대긴 한데.

 

여자는 계속 말을 걸었지만, 더이상 응대를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상원은 빈 잔을 정리하는 데만 집중했다. 전에는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제법 그럴듯하게 들어주더니 이제는 대놓고 벽을 치고 있었다.

 

저러다 매출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때 이상원이 고개를 들었다. 바 안을 훑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무표정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풀렸다. 눈이 커지고, 얼굴에 생기가 돈다. 양쪽 입꼬리를 올려 빙긋 웃으며, 다른 직원에게 뒤처리를 넘긴 상원이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조금 전까지 말을 걸던 여자 손님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 뒷모습을 쳐다봤다.

상원은 내 앞에 서자마자 테이블에 한 손을 짚었다.

 

 

 

“언제 왔어?”

“방금.”

“왜 말도 없이 왔어.”

“바에 오는데 예약도 해야 하던가?”

 

 

상원은 대답 대신 시선을 아래로 내려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빙긋 웃었다. 상원은 펼친적 없는 메뉴판을 내려다보다가, 몸을 일으켜 허리에 두른 검은 앞치마 끈을 고쳐 맸다.

 

 

“오랜만이니까 맛있는거 만들어줄게.”

 

 

뒤를 돌아 재료를 꺼내는 상원의 등판을 바라보며 턱을 괬다. 네일을 한 손가락으로 바 테이블을 톡, 톡 치다가 상원의 뒤통수에 대고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여자 손님이 앉아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상원을 힐끔힐끔 쳐다보고있었다. 내 시선은 딱히 느껴지지도 않는 모양이다.

 

 

“야, 근무중에 너무 이러진 마. 영업이 네 일이잖아.”

“뭐 어때.”

 

 

상원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달그락거리며 술병을 여러개 꺼낸다. 이러면 꼭, 내가 감시하고 빡빡하게 구는 여자친구같잖아. 휴, 한숨이 나왔다. 눈을 감고선 마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일 때문이고, 난 별로 신경 안 쓰이는데.”

“그래? 난 쓰이는데.”

“…….”

“네가 다른 남자한테 잘해주면 싫을듯.”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고, 나는 조금 놀라서 눈을 떴다. 상원은 태연한 얼굴로 상체만 돌려 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정말 당연하다는 듯이.

 

 

“…제법 솔직하네.”

“그게 또 내 매력이지.”

“…….”

 

 

어이없어. 당당함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김준서 때도 제 감정을 숨기지 못했지. 그때도 저런 생각을 했을까.

 

 

“왜 웃어.”

“술이나 가져와.”

 

 

예, 예. 건들거리는 대답이 돌아왔고, 곧 셰이커에 여러 술과 과즙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미소를 띄고있는 나를 보며, 이상원도 웃는 얼굴로 셰이커를 흔들기 시작한다. 나한테만 웃어준다는 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

 

 

 

며칠 뒤, 교양 수업이 끝난 강의실을 상원과 함께 빠져나왔다. 이상원은 한 쪽 어깨에는 내 가방을, 다른 한 쪽 어깨에는 제 가방을 메고 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들어주겠다며 내 가방을 제멋대로 가져간 것이었다. 그 꼴이 우습고도 귀여워서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있던 때였다.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의도치않게 내용까지 귀에 박혔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내 욕에는 자연스레 귀가 기울어지는 법이었다.

 

 

“와, 쟤네 진짜 사귀네.”

“이상원이 한 여자만 만나는 게 가능해?”

“노여주도 만만치 않잖아.”

“카사노바랑 상간녀네. 끼리끼리 잘 만났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이상원도 들었는지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봤다. 수군거리던 애들이 황급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상원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그대로 돌아갈 듯 몸을 돌리기에 팔을 잡았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애초에 이런 소문이야, 익숙하니까.

 

 

“카사노바랑 상간녀라. 재밌네.”

“재밌긴,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데.”

 

 

상원은 여전히 뒤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잡고 있던 팔을 아래로 당기자 그제야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어차피 진실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 욕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보다는, 내 옆에 있는 이상원이 욕을 먹는다는 사실에 조금 더 마음이 쓰였을 뿐.

 

상원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닮은 부분이 꽤 많으니까. 본인에게 붙은 소문보다 그 옆에 있는 내가 함께 욕을 먹는 게 더 싫겠지. 그래서 오히려 더 담담해졌다. 무슨 상관이겠냐 싶었다. 픽 웃으며 장난처럼 말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어야 하는 법이잖아.”

“…….”

“난 그래서 좋은데. 안그래?”

 

 

상원은 못 말린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고, 서서히 얼굴을 풀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곤 보란듯이 내 어깨에 팔을 얹고, 제 쪽으로 힘을 줬다. 자연스럽게 몸이 가까워졌다. 뒤쪽에서 다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렸지만 이번에는 둘 다 돌아보지 않았다.

 

 

주변 사람을 신경 쓰지 말자는 뜻은 아니었다. 저들이 우리를 뭐라고 부르든, 그 말 때문에 서로를 의심하거나 밀어내지는 않겠다는 일종의 견고함이었다. 더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걸 보니, 내 뜻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이상원은 여전히 우스운 모양새로 내 가방까지 든 채 나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가방이나 내놔.”

“흠, 뭐 먹을까?”

“그 꼬라지 진짜 웃기거든.”

 

 

그리고 우리는 아까 나누던 대화를 마저 이어갔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달라질 것 없는,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말그대로 쓰레기는 원래, 쓰레기통에 모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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