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ecided not to cross the line.

Episode 10. Do You Like Brahms?

셋이 함께 식사를 한 며칠 후에,

구두로만 오갔던 소설 번역 건에 대하여

출판사와 정확하게 계약을 하게 되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연락을 달라고 부탁을 받았기에,

 바로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그날 식사도 제대로 못 하셨는데,

 가셨던 일은 잘 되셨어요?"




"아..정아씨!! 그 날은 식사 초대를 먼저 해 놓고

 너무 죄송했어요.

 이 쪽 일이 이래요.

늘 살얼음판 같고, 언제 뒤집힐지 몰라서요.

 그 날 훈지랑 식사는 잘 하셨어요?"




"네. 그럴 수 있죠. 저는 괜찮습니다. 

덕분에 맛있는 식사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대표는 나를 정아씨라고 부른 거지?'



나는 대표가 나를 '선생님'에서 '정아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훈찌 학생이 문자로 말했을 때 알았다.



"다름 아니라, 대표님..

좋은 제안 주셨는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아요.

 출판사와 오늘 소설 번역 건을 계약해서,

 당분간은 수업을 늘려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사과 인사를 먼저 하고 말을 이었다.




"훈지씨 수업은 이미 하기로 한 거니,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해요. 대표님.."




"그 날 훈지가 하도 펄쩍 뛰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



"아니에요.

훈지씨 때문이 아니라 새로 맡은 번역 일로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서요.

 대신, 다른 분 소개 원하시면 제가 알아 볼께요."




"네..우선은 정아씨가 소개해 주시는 분은 믿고

맡길 수 있으니 소개 부탁드려요.

그리고, 번역 일이 좀 한가해지면

이번 건은 다시 이야기하자구요!!"




'아..이 사람 내가 일하는 게 정말 마음에 드는구나..'




대표와의 통화가 끝난 후,

출판사에서 들러 작품 이야기도 듣고, 

한동안 바빠질테니

평일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졌다.




외출 준비를 하던 중,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정아씨 선생님, 지금 뭐하세요?  

 저 오늘 일정 빨리 끝났어요]



[오후 스케줄 다 비어놨는데,

인터뷰가 예상보다 빨리 끝나서요.]


[이런 날 집에 그냥 일찍 들어가기 아쉬운 마음

아시죠?ㅎ]




[훈찌학생~ 저는 오늘 번역일 때문에 출판사 갔다가

오래 간만에 서점을 갈 계획이에요.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데 온라인 보다는

서점 가서 사고 싶어서요.]




[와, 서점이요?

저 서점에 가 본지 백 만년은 된 것 같아요.]


[사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와는 친하질 않아서...

서점은 가 본 적이 없던 것 같긴 하네요.ㅎ]




[훈찌학생은 공부 말고 다른 데 재능이 많으니까요.^^]




[저 혹시 방해가 안 된다면 서점 같이 가도 돼요?]




[네? 지금요?]




'와우... 이 사람 의외로 굉장히 즉흥적이구나..

지난 번 한강 공원도 그렇고... 나랑 완전 반대잖아!ㅎ'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그는 아무말이 없었다.




'지난 번처럼 정말 같이 가자는 건가?...'




잠시 휴대폰을 보다가, 결국 답장을 보냈다.




[어차피 가려고 했던 서점인데 방해될 게 뭐가 있어요?

 훈지씨가 원하면 조인하세요.ㅎㅎ]




그리고, 바로 다음 메시지를 덧붙였다.




[대신, 서로 방해하기 없기.

 오늘 가서 보고 싶은 책들이 좀 있어요.ㅎ]




[진짜요?]

[가시려는 서점 찍어 주세요!! 

바로 방향 바꿔서 갈께요.]



[그리고, 방해 안 할 자신 있어요!!]




출판사부터 들렀다가 서점에 갈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출판사는 내일 가야 할 것 같았다.




서점 가는 게 저리 들뜰 일인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사람 같다.

하긴 배우라는 일은 이렇게 감정이 풍부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하는 일인 것 같긴 하다.

 


우리는 30분 후에 종로에 있는 한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나타났다.

하지만 풀메이크업 때문인지, 배우라는 직업 때문인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혼자만 다른 온도를 가진 것 같았다.




그가 내 책을 고르는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평일 낮 한가했던 서점 안 공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책을 들춰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엔

조금 어려워 보였다.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도 정말 피곤하겠구나..'




"사려고 했던 책만 사고, 나가는 게 좋겠어요."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그가 미안한 얼굴로 멋쩍게 웃었다.




"죄송해요. 오늘 여분으로 갖고 온 옷이 없기도 하고...

방해 안 하기로 해 놓고 너무 방해됐죠?"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방해 받을까봐

그러는 거에요.ㅎ

저도 간만에 시내 나왔더니 정신 없기도 하구요."




"그럼, 이제 집으로 가실 거에요?"




"훈지씨 오늘 스케줄 없다고 했죠?"




생각보다 스케줄이 일찍 끝난 날,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쉽다는 그의 문자가 떠올랐다.



잠깐 망설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럼 이번엔 내가 가보고 싶었던 카페 같이 가 볼래요?

 서울은 아니고, 김포에 있는데..."




그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멀진 않아요. 여기서 1시간 정도?

조용하고 한적해서,

처음 갔을 때 '여기 다시 와서 책 읽어야겠다'

싶었던 곳이에요."




"그런 곳 좋아요."



이번엔 대답이 빨랐다.



"가보고 싶어요."



"그럼 내 차로 움직여요."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훈지씨 차로 다니면서 온 동네에 나 어디 간다

소문내지 말고... 풉.."




매니저님은 먼저 보내고,

우리는 내 차로 김포의 한 한적한 카페로 향했다.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손님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주문 공간과 별도로 떨어진 곳에

별채가 한 곳 더 있었는데,

훈지씨 처럼 사람들 눈을 피해야 하는 입장에선

편히 커피 한 잔 마시기 좋은 곳이었다.




난 아까 서점에서 샀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책인데,

요새 다시 고전 읽기를 시작하면서 꽂힌 책이었다.

그에게는 아까 함께 샀던 '달과 6펜스'를 건냈다.




한참을 각자 책읽기에 몰두하다가 맞은편을 보니,

그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화면 속 배우 같은 얼굴인데도,

이상하게 지금은 그냥 피곤한 스물 몇 살 남자처럼

보였다.

새벽부터 준비하고, 나왔을 테니

피곤할 것 같아서 졸게 그냥 두었다.



1시간 쯤 흘렀을까,

그가 멋쩍은 듯이 잠에서 깨어 말했다.



"제가 너무 열심히 졸았죠?ㅎ"



"오늘 새벽에 나왔을 거 아니에요.   

그냥 좀 테이블에 편히 엎드려서 눈 붙여도 돼요."



"아니에요.

이런 경치 좋은 곳에 와서 자기만 하면 안 되죠.

무슨 책 읽으세요? 어?

이거 예전에 드라마로 나왔었는데..맞죠?"




"저는 드라마는 못 봤는데, 제목만 같다고 들었어요.

 이 책 내용이랑 드라마는 아무 관련이 없을 거에요."




"아..정말요? 이 책 내용은 뭔데요?" 




"파리에 살고 있는 오랜 연인이 있었어요,

어느 날 여자가 한참 어린 남자에게서 고백을 받고,

자신에게 시들해진 오랜 남친과는 헤어져요.

그런데, 그 연하 남친을 좋아하면서도

전 남친과의 익숙함을 못 잊고,

또 한참 어린 남친과 다니면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 해서

결국은 전 남친에게로 돌아가요."




"내용은 엄청 간단한데요?"




"그렇죠? 

심리 묘사도 그리 세심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유독 이 책이 기억에 남았던 게 유럽인데도 

사랑할 때 남녀의 나이 차이가 이렇게 큰 걸림돌이 

되는구나 놀랐었어요."




"선생님 같으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나 같으면, 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했을 거 같아요."





"그럼, 그 여자 주인공이 표면적인 이유를 댄 거고,

이전 남친을 더 사랑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음...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읽을 당시에는

왜 못 된 남친에게 다시 돌아가나 생각했었는데..."




그는 한동안 책 표지를 내려다보더니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사랑에 나이 차이가 얼마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면 쉽지는 않겠죠. 

현실적으로 신경 쓸 것도 많을 테고..."



잠시, 고민 후에 내 생각을 덧붙었다. 



"그래도, 서로 진짜 끌리고 좋아한다면.. 

나이 자체가 결정적인 이유는 아닐 것 같아요.

남들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건 아니니까요.."




"선생님 외국 생활 하셔서 그런지 오픈 마인드시네요..

다행이에요. 하하"




"캐나다에 있을 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커플도 꽤 

봤어요."




"얼마나요?"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구요.

처음엔 신기했는데

다들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더라구요."




"그래서 생각이 바뀌신 거에요?"




"음...나이 차이 자체보다 서로의 가치관이

얼마나 잘 맞느냐가 두 사람 관계에서 더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도 막상 내 일이 되면 또 다를 수도 있겠죠."




생각지도 않게 책으로 시작한 우리 대화는

끊임없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그가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실례인 것 같아서 그 자리를 정리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죄송하지만, 사무실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제 차로 왔으니 가시는 데까지

모셔다 드릴 생각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내내,

그는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내다봤다.




아마도 기획사에서 연락을 받은 것 같은데 

무슨 안 좋은 일로 호출을 받은 건가 싶었다.



1시간 좀 넘게 걸려 기획사 사무실 앞에 도착했고,

짧게 인사를 나눈 후 그가 황급히 내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를 확인하고, 

나도 출발하려는 찰나

조수석에 떨어져 있는 그의 휴대폰을 보았다.



안으로 들어가 전달해 주고 가려고, 잠시 주차를 했다.



이미 그는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고,

밖에서 남자 둘이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서 들은 거야? 확실해?"




"어..훈지 매니저한테서 들었어."




"한강 공원에서? 훈지 답지 않은 행동인데..."




순간 멈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한강 공원.



며칠 전 그와 함께 갔던 장소였다.



''...한강 공원이라면...혹시...'




"앞으로 조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11화 중에서>

Popular stories among Park Jihoon f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