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동화 : Adult Story

#Page 1. 어른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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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외각 북동쪽 바위산의 거대한 저택에는 사람을 산채로 잡아먹는 괴물이 산다. ]

  동쪽의 자그마한 마을, 아일론에서 나고자란 사람이라면 5살배기 어린아이도 알고있다는 전설이었다.

"진짜요?"

"그렇다니까, 아가씨는 온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나본데, 조심하는게 좋을걸?"

  으응, 그렇구나, 푸근한 인상을 가진 도나 아주머니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레이는 이내 바구니에 포장된 바게트를 마저 집어넣었다.

"감사합니다, 여기 5실버요,"

  그녀는 그저 햇살을 연상케하는 밝은 웃음을 얼굴 위로 띄우며 은색 동전 다섯닢을 계산대 위에 올려두었고 도나 아주머니께서 서비스라며 건낸 버터쿠키를 손에 꼭 쥔 채 빵집을 나섰다.

"다음은.. 아 맞다, 우유도 사야하는데,"

  그리 생각한 그레이는 유제품 가게로 방향을 틀었고 새하얀 벽돌길을 거닐던 그녀의 머릿속에는 방금전 전해들은 기묘한 이야기에 대한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다.

  문득 고개를 들어 북동쪽을 향해 시선을 옮긴 그녀의 시야에 회색빛 바위산 한가운데 비죽 솟아오른 뾰족한 지붕과 그 꼭대기에서 흑색의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이 비춰졌다.

  마을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저 성인지 저택인지 모를 거대한 건물은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년 전부터 저곳에 있었다고 한다.

  뭐.. 그냥 마을 명소에 대한 가벼운 스토리텔링이겠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니, 말도 안 돼.. 할로윈때 흉가체험 분위기 내기 좋겠네,

  그리 생각한 그레이는 이내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으며 잠시동안은 흥미로웠던 잡생각들을 떨쳐내고는 제 갈길을 마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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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어깨야.."

  시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장바구니가 꽤나 묵직해졌고 그레이는 언뜻 보기엔 바구니에 매달리다시피하며 겨우겨우 그것을 제 작은 집에 끌고왔다.

  부엌의 나무탁자 위에 바구니를 턱, 하고 내려놓았자 그녀의 입에서는 끄응, 하고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고야, 팔 빠지겠네, 나중에는 바퀴달린거로다가 하나 사야겠어,

  그레이는 잠시 무거운 바구니를 저멀리 치워두고는 이내 우편물이 가득찬 우편함의 주둥이에 손을 집어넣어 내용물을 한가득 꺼냈다.

  출판사 사장의 신작 독촉장, 브라운 촌장님의 안내문 등 새하얀 편지들 사이 유독 자흑빛 편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수신인 타운 아일론 11 - 6 그레이 발렌타인'
'발신인 발렌타인 공작령 펠릭스 발렌타인'


「 사랑하는 내 동생 그레이에게

네가 네 꿈을 쫒으러 가겠다며 집을 떠난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구나,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내느라 힘들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도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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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날 때 한번쯤은 집에 들러줘, 

- 오빠 펠릭스로부터 - 」


  무려 이 나라의 하나뿐인 소공작으로부터 날아온 편지였고 온갖 걱정과 안부인사로 가득찬 내용을 보며 그레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레이 발렌타인, 한때 발렌타인 공작가의 철없는 막내공녀 역할을 하던 그녀는 성년을 맞이한 어느날 오랫동안 꿈꿔왔던 작가의 꿈을 이루러 여행을 떠나겠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 하나만을 남겨두고는 집을 나섰다.

  그래, 그레이 발렌타인은 성년이 되자마자 집에서 가출했다. 이유는 겨우 꿈을 찾아 떠나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여행가방 하나만을 챙겨들고 동부 전역을 떠돌던 그녀는 극동쪽의 작은 마을, 아일론에 다다랐고 낭만으로 가득찬 이곳에 반해 그대로 정착했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님은 가출한 딸의 소식을 듣자마자 친히 장남인 펠릭스를 보냈고 그에 그녀의 오라버니가 제 하나뿐인 누이를 찾겠다며 선뜻 이곳으로 찾아온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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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어.. 오빠 안녕..?"

  아침 해가 미처 떠오르지도 못한 어둑한 새벽녘에 집 현관 앞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제 은발을 거칠게 쓸어넘기는, 가족이긴 하다만 같은 피가 흐르진 않는 묘한 관계의 미남을 마주하는 기분은 꽤나 오묘했다.

"...집에.. 가자,"

"..미안, 싫어,"

"....왜..?"

  집으로 돌아가자는 자신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제 누이에 그의 벽안이 파르르 떨렸고 그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어 상처받은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답답해서,"

  답답해서, 본래 어릴적부터 자유분방하고 유한 성격을 지녔던 그레이였기에 제도의 엄격한 규율은 늘 그녀의 숨통을 틀어막았고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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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있어,"
"연락 자주 하고,"

  그것이 제 오라비인 펠릭스 발렌타인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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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뭔 편지가 이렇게 많아,"

  탁자 위에 쌓인 편지뭉치들의 향연에 그레이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을 꾸욱, 짓눌렀다. 보자.. 이건 납부 고지서.. 이건 팬레터.. 하나둘씩 종류별로 차곡차곡 정리를 할 무렵 무언가 이상한 우편물 하나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수신인 타운 아일론 이안 제온(Ian Jeon)'

  이안 제온, 어째 그녀의 이름이 아닌 낯선 이름이 수신인 란에 적혀있었고 발신인도, 하다못해 주소조차 제대로 기입되지 않은 편지였다.

"...뭐야.. 편지가 이상하면 그냥 회수할 것이지,
왜 엉뚱한 사람 집에 보내고 있어.."

  아마도 그녀의 집이 마을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웠던 탓에 배달부가 대충 밀어넣은 것 같았다.

"아니 그리고 Jeon을 누가 제온이라 읽어?"

  종이의 재질이 꽤나 고급인걸로 보아, 최소 중상급 이상의 귀족인 듯 한데, 어째 서민들도 아는 글자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이건 누가봐도 인데 어느 돌대가리가 이걸 제온이라 하냐고,

"...내일 촌장님한테 물어봐야지.."

  결국 수상한 편지의 진상은 내일 차차 알아내기로 하며 그것을 대충 소파 위로 내던지고선 저녁을 차리기 위해 부엌으로 향하는 그녀였다. 오늘은 닭고기스프 해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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