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하고 씁쓸한
6_씁쓸하면서도 달콤한

훈승전결
2023.04.11조회수 14
청천벽력, 말 그대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소리였다. 원우가 조직 활동 때부터 쓰던 잭 나이프가 민규 손에 쥐어졌다. 민규는 원우와 잭 나이프를 번갈아 보더니 나이프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미쳤냐며 소리쳤다. 하지만 원우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 오늘 내뱉은 말에 거짓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오늘 민규 앞에서 내뱉은 말에 거짓이 섞인 적은 없었다. 원우는 정말 자신이 써왔던 잭 나이프가 마지막으로 저 아니면 승철을 끝내주길 바랐다. 하지만 자신조차도 끝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끝낼까.
결국 원우가 민규에게 내뱉은 말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떠넘긴 책임전가에 불가했다. 민규가 이대로 거절하면 그럼 조직 활동은 그만두라고 할 명분이 생기니 생각보다 머리를 쓴 것이다. 하지만 민규의 행동은 원우의 예상을 벗어났다.
민규는 숨을 고르더니 제가 던진 잭 나이프를 주웠다. 그리고는 현관으로 향했다. 원우가 뭐 하냐는 거냐면서 민규를 붙잡았다. 잭 나이프가 마치 사용하는 사람의 운명을 정하는 것처럼 민규의 표정이 무미건조해졌다.
"끝내달라며, 그렇게 할게."
"김민규."
"이 나이프의 마지막엔 형이나 그 자식이길 바랐지?"
"당장 그 나이프 돌려줘."
"난 형을 죽이진 않을 거야. 그럼 누군지 알지?"
"김민규!!"
"대신 형은 이제 그 누구도 죽이지 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조직을 나갈 수 없는데 어떻게 살인을 안 할 수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민규를 막아서려는데 민규가 원우의 손목을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어떻게든 자신을 막아서려는 민규의 진심이 민규의 손, 눈빛, 숨결에서 느껴졌다. 그 뒤로 원우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민규를 보내주는 것뿐이었다.
-
민규가 떠나고 집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불도 키지 않은 채 이렇게 싸웠었던가. 원우는 캐리어를 들고 나와 대충 짐을 구겨넣었다. 그리고는 조직에서 쓰던 폰으로 승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철이 웃으며 원우를 반겼다. 저 자신은 죽을 것 같은 지옥에서 숨쉬고 있는데 뭐가 좋은 건지 실실 웃고나 있다.
"어 원우야. 무슨 일이야?"
"...형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뭐?"
승철의 목소리가 단번에 날카로워졌다. 당연하겠지 제 재미를 책임지고 있던 것이 원우였으니까. 승철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러는 거냐고 원우를 잡으려 했지만 민규가 했던 말이 원우의 마음 속에 태풍이라도 일으킨 걸까? 순종적인 원우가 승철에게 불복했다.
"원우야, 네가 조직을 그만두면 지켜주는 것도 없어."
"알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죄인으로 죽거나 조직에서 죽거나 둘 중 하나야."
"네, 알고 있습니다."
"네가 그만둔다고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아?"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 걸 안다. 자신은 수 없이 많은 목숨들을 제 손으로 죽여왔다. 괴물이라는 낙인을 제 스스로 찍었던 걸 알고 있었다. 남탓을 하기에도 늦었다. 자신을 탓해도 달라질 건 없을 걸 알기에 원우는 전화 너머에 있는 승철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달라질 걸 바라고 그만두는 게 아닙니다."
"웃긴다. 조직을 나간다는 녀석이 달라질 걸 바라는 게 아니야?"
"그냥 사람 죽이는 일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전화 너머로 기가 차다는 승철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원우는 이 상황을 아주 잘 알았다. 조직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 사람을 처리하는 것도 원우의 일이었으니까. 원우는 캐리어에 시선을 두었다. 이것들도 다 짐덩이에 불과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구겨넣은 짐들도 다 내려놓은 상태로 원우는 현관 앞에 섰다. 승철이 마지막으로 원우에게 말했다. 이젠 뭐 할지 알지? 다음은 자신이라는 소리었다. 승철은 그 뒤로 전화를 끊었다. 원우는 이 전화를 마지막으로 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
'허억...허억-'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딱 이런 느낌이다. 승철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조직에서 도망치는 원우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마주했다. 현관문을 열고 느껴지는 해방감과 자유는 달았다. 하지만 그 달콤함을 만끽하기에는 뒤에서 좇아오는 죽음이 생각보다 두려웠다.
원우는 자신의 조직 생활 마지막이 죽음보다는 해방 그리고 자유로 끝맺음되길 바랐다. 아마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이런 거 아니겠냐고 과거 민규와 한 잔하며 얘기를 나눈 적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욕심이 났다.
조직을 그만두고 조직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얻는 자유를 지금껏 쌓아온 죄들을 속죄하는 것에 할애하여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살아남아야 된다는 전제 조건이 존재한다. 아무리 제 할 일을 민규에게 떠넘겼다고 해도 멋대로 올인을 해버린 건 제 자신이니까.
-
다리가 저리고 숨도 차고 무엇보다 내리는 비가 원우의 발걸음을 무겁게 끌어당겼다. 원우는 제가 머물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건 그 집과 민규뿐이었다. 조직 활동 덕분에 사람관계는 완전히 엉망이었던 원우. 그나마 민규가 원우를 정말 소중한 형으로 챙겼던 덕분에 민규랑은 떨어지기도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고 결국 답은 민규였다. 긴 고민도 없이 원우는 주변을 둘러보다 공중전화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제 주머니를 뒤적거려 나온 지갑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넣고는 민규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몇 번의 발신음이 들리고 민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민규야."
분명 지친 것 같은데 밝은 것 같은 원우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숨소리 조금 거칠었던 것 같다. 원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이 전화번호는 또 무엇인지 민규가 물었다. 원우는 조직을 그만두었다면서 사람을 죽이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며 도망 중에 공중전화를 걸었다 했다. 그 말은 들은 민규가 큰 소리로 놀라다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 저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상황 같은 거였을 것이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랬어."
"그러게 누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받아가래?"
원우의 입에서 웃음이 나왔다. 소리내지는 않았지만 민규가 적잖이 놀란 건지 잠깐 말이 없었다. 속으로 원우가 이렇게 마음 편히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저와 술을 마실 때도 이렇게 편히 웃지 않았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 형이 드디어 해방이라는 걸 느낀 거구나. 예전에는 자신과 소소하게 보내던 행복 뒤에 바로 조여오는 답답함에 원우가 마음 편히 웃는 걸 본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편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자유로워졌구나. 민규는 조금은 안도하고 용건을 물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오는 원우의 말에 막 안도했던 민규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민규야, 나 갈 곳이 없어."
원우 저 자신은 도망자인 걸 어쩌겠냐며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이 형은 대책도 없었던 건가. 도망자면 계속 도망치지 갈 곳을 왜 정해 놓냐며 민규는 대책도 없이 일을 저지른 원우를 혼냈다. 하지만 저 아니면 누가 원우를 챙겨주리.
물론 원우에게 민규밖에 없다는 건 승철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과거에 같은 조직의 일원이었고 승철의 눈에 원우가 들어왔을 때부터 저 자신 말고는 그 어떤 사람도 원우 옆에 오지 못하게 철저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승철도 민규만큼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승철은 원우가 저에게로 올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원우를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승철이 예상해도 마음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곳. 결국 고민 끝에 민규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말하기로 했다.
"위치를 알려주면 거기로 갈게."
"와서 어떻게 하게?"
"그건 이쪽에서 결정하자."
드디어 민규도 제정신이 아니게 된 건가 싶었다. 저 보고 정한 쪽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였으니까. 원우가 처리한 정한 쪽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민규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당연하게 저 자신이 한 짓이 있고 무엇보다 정한이 그런 걸 봐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원우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고 하자 민규는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냐 물었다. 민규의 말에 원우는 대답하지 못 했다. 사실 이거 말고도 다른 방법이 없는 걸 알지만 원우는 조직이란 틀 자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제서야 막 찾은 해방과 자유인데 쉽사리 빼앗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딱 한 번만 더 참고 완벽한 해방. 완벽한 자유를 가질 수만 있다면 이번 한 번만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한 편으론 생각했다. 그리고 원우는 민규의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김민규, 잘 들어. 난 조직원이 되는 것 따위는 하지 않을 거야."
"그 목적으로 말한 건 아니야.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어."
"알지. 알고는 있는데."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부당한 거래라도 해야 된다고."
"그래도 이건 아니야."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이면 하라고 형이 그랬잖아."
예전에 민규에게 했던 말들이 이렇게 제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미 말을 꺼냈을 때부터 항복 상태였지만 원우는 결국 하얀 깃발까지 흔들었다. 곧바로 제 위치를 전달하고 공중전화부스에 쪼그려 앉아서 민규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그 안에서 민규를 기다렸을까.
공중전화부스 문이 덜컥! 하고 열렸다. 원우는 긴장해서 굳은 몸으로 눈만 굴려 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안심했다. 제가 그렇게 기다린 반가운 얼굴이 살갑게 미소 짓고는 원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 가자."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