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보야. 내가 너 좋아한다고.
내가, 여주씨 좋아한다구요.”
“.....저..팀장님..”
“난 기다릴거에요.”
“…”
“여주씨 힘든거. 봐와서 아니까.
괜찮아지고, 나를 봐줄 때까지.
그래서 나에게 와줄때까지.
기다릴거라구요.”
“…”
“그정도는, 허락해주죠?”
팀장님과 내가 연인이 되는걸,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상상에만 그칠 뿐, 생각해본 적은 없다.
팀장님이 나를 좋아한다고.
그 말이 뱉어지는 순간부터,
모든 감정이 섞이고 섞여 정체를 알아볼 수 없어지고 말았다.
꾸역꾸역 정리해보려던 내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려
더이상 나조차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저녁은.. 다음에 먹어요....”
어떠한 대답도 못했다.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미안했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내려버렸다.
심장이 막 두근두근 간지럽게 뛰었다가,
또 크게 쿵- 하고 떨어져 고통을 만든다.
미어질 듯 아파 눈에 눈물이 고이고,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마음에 가슴이 할퀴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나를 따라 차에서 내린 팀장님이 내 손을 잡고 나를 돌여세웠다.
“잠깐만. 이건 아니잖아...
차라리 거절이라도 해요.”
거절도 하지않고, 그냥 도망쳤다.
“아직까지 힘든거 알아요.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기다릴게.
그러니까....
가지마요.”
견디지 못하고 흘러내린 눈물에 당황해하던 팀장님이다.
나도 가고 싶지 않아.
팀장님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우중충한 내 생활이 한결 밝아지고,
그냥 하루일 뿐인 날들이, 좀 더 특별해진다.
모르지 않았다.
내 마음이 팀장님을, 향하기까진 아니더라도
그를 보고있다는 건.
하지만 외면해야했다.
팀장님을 볼 때마다, 나는 틀림없이 의건이를 떠올릴 거니까. 그건 모두에게 반가운 일이 아니니까...
그게 팀장님이 잡은 나의 손을,
놓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팀장님을..
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놓아주세요..."
다른 한 손으로 팀장님의 손을 밀어내며,
미안하다고, 한 마디 사과를 건낼 수밖에..
나에겐 그런 선택권밖엔 없었다.
"내가 기다린다니까..
나 기다릴 자신 있다니까.."
내가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의건이를 잊을 자신이 없었다.
또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고,
그 말 너무 잘 알지만,
나만 변하지 않으면, 너만 변하지 않으면,
영원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자신이 없어요...."
결국 그에게서 돌아선다.
이것이 나를 위해서, 그리고 팀장님을 위해서
서로에게 좋은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팀장님을 밀어내고 더 멀어지는 걸음을 걷기 시작했을 때
여러 감정들이 막 섞여 복잡했던 감정에서 눈물이 새어 나오면서
그저, 슬픔이 되었다.
내가 그의 마음을, 나의 마음을 외면한 날로 부터 약 한 달이 지났다.
저녁 약속은 그렇게 자연스레 없었던 일이 되고,
다음날 회사에서 다시 만났을 때, 팀장님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셨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커버리기 전에 정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눈을 피하는 팀장님, 내게 인사도 하지 않는 팀장님은,
한 달이 지나도록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 달 사이 비가 퍼붓던 날도 없었고,
그렇기에 의건이가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이 일이 생기고 나서 난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 오늘, 비가 많이 내린다는 일기 예보.
"저... 팀장님... 오늘..."
"사적인 일은 업무 시간에는 사양입니다.
업무에 관련된 용건입니까?"
나를 여주야, 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던 팀장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딱딱한 '다니까' 말투로 다시 '김여주씨'가 되었다.
우리의 대화에 또 다시 회사 사람들은 '헤어졌다' '싸웠다' '누가 차였냐' 누가 찼나' 등의 얘기가 오가고, 한 일주일 가량 나나 팀장님이 보일 때면 언제나 점심시간의 이야깃거리고 우리의 연애사가 되곤했다.
머리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해면서도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거리를 둘거라곤 생각도 안해봤으니까..
오늘 비가 많이 온다, 또 의건이가 돌아오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이것조차 물을 시간도 내게 주지 않았다.
말을 걸어도 시선도 안주는 건 기본,
제대로된 대답도 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게 그가 나에게서 마음을 접는 방법이라면,
내가 뭐라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나머지의 감당은 나의 몫이 당연했다.
오늘은 비 소식에 혹시몰라 일찍 퇴근하려고 했다.
만약 의건이가 돌아왔는데 내가 집에 없으면 비를 맞고 서있어야 하니까.
"퇴근하겠습니다~"
퇴근 시간.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도 눈치를 보며 짐을 챙기는 중이었다.
"아, 여주씨! 내가 아까 준 거 말인데,
내일까지 다 해서 보내줘야 한다? 좀 부탁해~"
"내일..까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 역시 야근을 피하지 못할 것 같았다.
"하... 어떡하지..."
내가 혼자 작게 중얼거리는 동안, 팀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한 달동안 거의 처음 눈이 마주친 팀장님은 나를 가만히 보며 무슨 생각을 하다가 다시금 내게서 시선을 돌리셨다.
팀장님은 퇴근을 하시는 것 같았다.
"저...!"
나의 부름도 무시하신채 말이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기 위해 저녁도 굶어가며 일만 했다.
야근을 하는 사람도 하나 둘 끝을 내고 컴퓨터 타자소리도 조용해졌다.
온전히 회사 안에 나만 남았을때서야 일이 끝났다.
어깨에 손을 올리고 빙빙 돌리며 목도 풀었다.
오늘 오후 늦게 준 건을 내일까지 보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겉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서 보니 이미 비는 내리기 시작한 후였다.
시간을 확이했을때, 10시를 조금 넘은 시간.
어제보단 비교적 일찍 끝난 야근이었다.
이 시간대에 집에 가면, 의건이가 돌아오기 전일 것이다.
급하게 밖으로 뛰어 나가는데,
아차..!!
비가 온다는 소식에 의건이를 떠올리느라 우산을 챙기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하... 김여주 넌 바보야...
한숨을 깊게 내쉬며 바보같은 나 자신에 내 머리를 주먹을 한 대 쥐어 박았다.
가방을 머리 위로 올리고, 심호흡을 하며 버스 정류장까지만 뛰어가기로 마음 먹고 뛰려고 할 때였다.
"비가 오는 건 알면서, 우산을 안 챙겨오는 건 뭡니까?"
내게 우산을 건네는 팀장님이었다.
"팀장님...? 팀장님이 여기 왜...
아까 퇴근 하셨잖아요.."
"다시 왔죠. 비가 이렇게 오는데.
타요."
팀장님이 차키를 누르자 차가 소리를 냈다.
한 달만에 타는 팀장님의 차였다.
하나뿐인 우산은 내게 주고,
팀장님은 뛰어가 운전석에 타셨다.
나도 조수석에 올라탔을때,
항상 하시던 안번밸트 매라는 말 한 마디도 없이
차는 출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