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EP 4. [혜이]




"···아냐, 이건 아냐. 그래! 꿈···, 꿈에서 깨지 않은 모양이야."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자신의 뺨을 꼬집고 내리쳐 봐도, 이미 손에 얼룩이 진 핏자국과 의식이 있는 지도 모를 국왕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진짜일 리 없어, 그럴리가···!"


여주가 얼이 빠져 같은 말만 중얼거리던 때, 저 멀리서 창호지 너머 여주의 인영을 본 의금부 대장의 불호령이 들려왔다.

"자객! 자객이다, 폐하를 보호하라!"

"이럴 시간이 없어, 일단 궁에서 벗어나야 해···."


반 쯤 이성을 놓은 상태로 궁을 벗어난 여주가 터덜터덜 저잣거리 구석 길을 걷고 있는 때, 포졸들이 우르르 몰려와 방을 붙였다. 여주는 들킬새라 재빨리 숨어 방의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이내 방을 붙인 후 포졸들이 떠나가자 그제서야 방을 확인하러 나온 여주는 얼굴을 반 쯤 덮고 있던 두건을 더 여밀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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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머니, 자객이라네 자객!"

"게다가 자객단이래잖아! 어휴···."


아낙네들이 저마다 내뱉는 푸념들이 모두 여주는 자신을 겨냥한 말들로만 느껴져 도망을 치고 말았다.


자객의 삶을 접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 산 중턱의 허름한 폐가를 발견해 살기도 벌써 여주에게 두달 째였다. 아니, 그건 살았다기 보단 죽어있었다는 것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끼니도 하루에 한 끼 먹을까 말까 하였던 폐인의 삶.


점점 생을 연명하는 것이 고달파 지고, 하루에도 수백 번 자결을 결심 하던 여주가 문득 핼쑥한 얼굴로 나지막이 말하였다.


"···전하는, 어찌 되셨을까."


아무도 없는 곳이기에 어디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 여주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방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나 혹여 의심을 살까 남장을 해야겠다 생각한 여주가 도포를 대충 챙겨입고 망건을 두른 채 갓을 머리에 얹고 저잣거리로 향했다.


전과 다름없이 시끌벅적한 저잣거리 풍경에 여주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산 속에는 잘 들지 않던 햇빛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자 여주의 눈이 부셔왔다. 

하지만, 이상했다. 시끌벅적한 저잣거리에서 무언가 이유모를 암울함이 감돌았다. 

심지어는 상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백성들 또한 곳곳에 보였다.이에 의문을 느낀 여주가 옆을 지나던 나이 든 사내에게 말을 물었다.


"···어찌, 저잣거리가 이리 암울한 것입니까. 저 상복을 입은 자들은 또 뭐고요?"

"며칠 전에 방이 붙었는데, 아직도 모르는거요? 아직 붙어있을테니 가 보쇼."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사내에 살풋 미간을 찌푸린 여주가 방이 붙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묻어 나 조금 때가 탄 방이 붙어 있었다.


"······."

방을 본 여주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건 침묵이 아니었다. 속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제지하려 입을 열지 못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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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헛구역질을 하며 저잣거리를 떠나 온 여주는 두달 간 묵던 산 속 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누가 쫓아오는 듯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살피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문까지 걸어 잠그고서야 여주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아아, 어찌 그리···. 그리, 허무하게 가셨습니까······."

왕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여주가 아무도 듣지 못할 말을 이어 내뱉기 시작하였다.

"저는···, 죽어 마땅할 년입니다. 부모님의 모든 것이었던 그 자부심도, 그 긍지도 다 팔아 먹었어요···."

잠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쉴 새 없이 눈에서 떨구어 내며 가쁜 숨을 고르던 여주가 옆에 있던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름 난 자객이던 저의 최후가 고작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 칼이, 당신의 몸을 향해 제가 꽂아넣었던 바로 그 칼이지요."

눈꺼풀이 떨려올 정도로 눈을 꽉 감고 칼을 칼 집에서 빼낸 여주가 칼로 그녀의 심장을 겨눴다.

"폐하는 며칠 간 얼마나 고통이셨을까요···. 저를 보던 그 눈빛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잊을까요. 저는 어쩔 수 없는 겁쟁이인가 봅니다, 그 고통마저 무서워 저는 절 단칼에 죽이려고 하지요. 이런 절 용서···, 하시렵니까."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심장에 칼을 깊숙이 박아넣었다. 몇 분 후, 그 집에 남아있던 일말의 생명의 온기까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화려함으로 시작해 어둠에 가려졌던 나의 한순간 반짝였던 삶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