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항상 간식 먹는 시간인데 다이어트 때문에 간식 안 줘서 집사한테 삐진 고양이 같은 저 얼굴은.
내가 게임 캐릭터였다면 머리 위로 물음표를 크게 띄우지 않았을까? 나는 그 정도로 의아했다. 노아 형이 키득거리며 일어나 자연스럽게 하민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내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너 실려 갔다는 소리 듣자마자 얘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어? 등치에 안 맞게 울면서 병원으로 쫓아가려는 거 우리 셋이 간신히 말렸다."
"아, 그 얘기 하지 말라고오-!"
"어, 어, 유하민 여기 병원이다. 조용히 해야지."
폭로 아닌 폭로에 뚱한 표정만 짓고 있던 하민이 얼굴을 확 붉히며 노아 형에게 소리쳤다. 낄낄 웃는 노아 형을 째려보며 씩씩대던 하민이는 그제야 좀 기분이 풀렸는지, 형에게 순순히 이끌려 이쪽으로 걸어왔다. 나도 장난기가 도져서 과장된 몸짓으로 양손을 겹쳐 가슴 위로 얹으며 감동한 척 말했다.
"하민이가 이 형을 이렇게 걱정해주다니, 이 형은 죽어도 여한이 없-"
"형이 죽긴 왜 죽어!"
기껏해야 놀리지 말라며 칭얼거릴 정도만 예상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과격한 반응에 나는 깜짝 놀라 입을 꾹 다문 채 당황한 눈을 깜박였다. 우리는 다 놀래서 똑같은 시선으로 하민이를 쳐다봤고, 정작 소리 지른 본인도 당황했는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도르륵 눈을 굴리곤 우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하민이가 말했다.
"... 어... 소리쳐서... 미안해요."
"아, 아냐. 우리가 너무 놀렸지."
왜인지 모르게,
뭐랄까, 하민이의 눈동자에 알 수 없는 슬픔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나는 더 이상 놀릴 수 없었다.
다행이도 어색했던 기운은 그리 어렵지 않게 사라졌다. 하민이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하도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모르는 척 그에게 장난을 쳤고, 순식간에 묘한 분위기를 거둬내는데 성공했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일상 이야기를 하거나, 투닥거리거나,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 동아리 작곡 담당은 원래 예준이 형과 노아 형이었는데, 올해 1학년으로 입학하고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은호 역시 우리 동아리 작곡가 라인에 합류해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하민아, 베이스랑 일렉기타는 친한 친구인 거 알지? 친구 연주자로서 우리도 빡세게 가자."
"저야 형들이 멋진 노래 데려오면 언제든지 연주할 수 있죠."
"크으, 우리 막내가 이렇게 든든하다."
당돌한 하민이 말에 예준이 형이 씩 웃으며 감탄사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하긴, 생각해보면 하민이는 참 다재다능한 아이였다. 키도 크지, 춤도 잘 춰, 운동 잘해, 베이스 연주도 수준급이야, 노래도 잘해, 심지어 랩도 잘한다. 이 정도면 얘 인생 2회차 아니야?
하긴, 작년에 동아리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는 덩치도 큰 애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아무 말 안 하고 조용히 앉아 있어서 동아리실에 못 들어가고 멀뚱멀뚱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앙냥냥 거리는 고양이 같은 후배지만.
...난 첫 만남 때 절대 쫄지 않았다. 그저 낯가림이 있어서 그랬을 뿐이다. 정말이다.
"은호 형도 작곡 잘하니까요. 잘하는 작곡가가 셋이나 모였는데 절대 질 수 없죠."
"에이, 난 이제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냐, 은호 너 진짜 잘해."
"은호는 이제 1학년이잖아. 그거 생각하면 완전 잘하는 거지."
하민이 칭찬에 손을 내저으며 웃던 은호가 예준이 형과 노아 형의 칭찬에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도 기분이 좋았는지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좋댄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소파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대며 우리 동아리 부원들을 바라봤다.
우여곡절도 많았지... 작년에 내가 1학년일 때는 2학기 무렵에 부원이 둘이나 나가버려서 나랑 하민이, 예준이 형, 노아 형 이렇게 넷이서 열심히 활동했었다. 런치 패드 다루던 선배랑 드러머였던 선배가 나갔었지. 다행히 올해 은호가 들어와 드러머 자리를 채워줘서 동아리는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잠깐, 작년에 나랑 예준이 형, 노아 형, 하민이...'
새삼 작년 일을 회상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위화감이 들어 생각이 그대로 정지해버렸다.
'안녕하세요. 봉구 형!'
그래, 내가 입학하고 밴드부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이미 밴드부에서 베이시스트를 맡고 있던 하민이.
1학년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형이라 부르며 인사해온 하민이.
그리고 올해, 성휘예술고에 입학해 밴드부에 들어온 1학년 은호에게 형이라 부르는 하민이.
거대한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잠깐, 예준이 형과 노아 형이 지금 3학년, 내가 2학년, 그리고 은호가 1학년...
그리고 작년 내가 밴드부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동아리에서 베이시스트를 맡고 있던 하민이. 우리 모두에게 형이라 부르는 하민이...
하민이가 몇 학년 몇 반이지? 아니, 몇 살이었더라? 그러고 보니, 동아리나 학교 행사 외에 하민이를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
여태까지 인식하지 못한게 이상할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자 피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형, 왜 그래요? 안색이 창백한데."
"어... 어!?"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몸이 차갑게 식는 것 같은 느낌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으니 옆에서 은호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은호를 쳐다보곤, 다시 예준이 형, 노아 형, 그리고... 하민이를 바라봤다.
내가 영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아 보이자 예준이 형이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슬슬 늦은 시간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친 애를 우리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 시간도 늦었으니, 슬슬 가자 얘들아."
"그래, 쉬는 게 좋겠다. 슬슬 병원에서 저녁밥 나올 시간인 것 같고."
"너무 무리하진 마. 봉구 형."
"퇴원하는 날 우리 회식하러 가요. 형."
베시시 웃으며 말하는 하민이의 말에 약간 긴장감이 돌아 멈칫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들을 마중하는 순간에도, 병실로 돌아와서 밥을 먹은 순간에도, 슬슬 소등 시간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답답한 마음에 동아리 회장인 예준이 형에게 카톡을 보냈다. 한 팔은 꿰매서 드레싱하고, 한 팔은 링거 바늘을 꽂아 드레싱 한 상태라 타자는 자연스레 느려질 수 밖에 없어서 답답했다.
나>형 뭐해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예준>방금 씻고 나왔어 뭔데?
나>하민이 말이에요 언제 우리 동아리 들어왔어요?
예준>응? 그건 왜?
예준>나랑 노아랑 같이 들어왔었지?
머리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참 무어라 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내가 답장을 안 하고 있으니 예준이 형이 무슨 일이냐 묻는 답장을 보냈고, 나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형 하민이 몇 살인지 알아요?
예준>하민이? 우리 막내잖아~
나>아니 하민이 몇 학년 몇 반인지 알아요?
예준>막내지?
이후에 대놓고 형이랑 같이 동아리 들어왔는데 나랑 은호한테 형이라고 하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예준이 형이 의아해하면서 '하민이는 원래 막내잖아?'라는 답만 할 뿐이었다.
예준이 형은 내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으면서도 전혀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답변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형과의 카톡을 종료했다.
한 번 더 테스트해야겠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으로 은호의 연락처를 찾으며 수액 걸이를 끌고 다시 휴게실로 나갔다. 휴게실에 도착할 때 쯤 전화를 걸어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있으니, 연결음이 세네번 흘렀을 때 쯤 은호가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은호야. 내가 물어볼게 있어서."
[뭔데?]
"... 하민이 말이야."
[하민이? 하민이가 왜?]
"너 혹시 하민이 몇 학년 몇 반인지 알아?"
이번에도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택했다. 내가 질문 하자마자 휴대폰 너머로 '음...' 하는 고민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은호는 이상한 점을 눈치 채주는게 아닐까? 약간 기대감이 들어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있으니 힘 빠지는 답변이 들려왔다.
[하민이는 우리 플레이브 막내잖아요?]
예준이 형과 똑같이 우리 동아리 막내이지 않느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그 대답에 갑자기 소름이 쫙 돋기 시작했다. 목이 막힌 듯한 감각에 한참 대답을 못하고 있자 은호가 의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제야 물 속에 있다가 바깥으로 나와 간신히 숨통이 트인 사람처럼 숨을 내뱉고 떨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냐, 답변 고맙다. 잘 자라."
뚝, 나는 휴대폰을 꽉 쥐었다. 동공이 떨려오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나 스스로 소름이 끼치는 감각이 전신을 휘감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번엔 노아 형에게 연락을 하려고 연락처에 손을 대려는 순간, 나는 노아 형에게 연락하는 것을 관뒀다. 또 똑같은 대답을 들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이 형은 전화 걸어서 한 번에 받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하민이에게? 나는 한참 동안 하민이의 전화번호를 찾아 쳐다보았다. 심호흡을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전화를 걸어보는 것으로 결심이 서서 전화 연결 버튼을 눌렀다.
[연결이 되지않아, 삐~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하지만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하민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함인지 자연스럽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수액을 꽂은 팔에 힘이 들어가서 인지, 피가 역류하여 수액 호스를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깜짝 놀라 몸에 힘을 풀었다. 병실에 돌아가서 간호사님께 말씀 드려야겠다.
유하민.
이녀석, 대체 정체가 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