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꽉 문채 흘린 눈물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직시로 알아듣는다.'
by_이새아
8화
***
윤여주는 그렇게 지친 발걸음으로 천천히 아주아주 천천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 윤여주는 느꼈다. 모든 게 끝이 났다는 것을. 유토피아 같은 건, 낙원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가능할 거라고 믿었다. 너무나 간절했기에, 너무나 바랐었기에. 하지만 1%의 희망은 99%의 실패를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윤여주는 제 손에 밀려 저 깊은 바닷속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유토피아를 만들 수도, 낙원을 만들 수도 없었고, 모두를 지킬 수도 없었다. 어디서부터가 문제였을까. 아니 애초에 시작이 잘못된 걸 수도 있다. 결국 신도, 악마도 모두 내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웃기고도 한심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윤여주의 신념은 사실 깨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력하지 않아도 살아진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제일 노력했던 건 윤여주가 아니었던가. 노력이 모든 것은 구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구원해 줄 것 같았었다.
하지만 역시 노력은 모든 걸 구원해 주지 않았다.
어쩌면 긴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 그랬는데. 꿈은 실현하고 싶은 이상을 뜻한다고. 아니 그럴 리가. 그랬다면 지금 윤여주가 옥상에 올라와 세상과 하나가 될 준비를 하고 있지도, 네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결국 윤여주의 인생은 비극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윤여주의 인생은 왜 항상 불행한지에 대해 묻는다면 그건 윤여주의 결말은 비극으로 정해져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윤여주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윤여주는 제 손으로 추락하는 방법을 택했다. 날지 못하는 새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저 너머로 뛰어오르고야 말았다. 떨어지는 내내 옛날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주마등이었다. 주마등은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거라고 했는데 윤여주의 인생에서 살 수 있는 방법 따위가 있을 리는 없었다.
어쩌면 유토피아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윤여주에게 너무나 큰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여주는 이상하게 후회되지 않았다. 아마 끝까지 발버둥 쳤던 것 때문이겠지. 윤여주는 간절히 바랐다. 부디 네 사람은 이런 비참한 끝을 마주하지 않기를. 그렇게 윤여주는 아무런 고통도 없이 눈을 감았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윤여주가 세상과 하나가 된지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은 크고 작게 바뀌었다. 물론 유토피아라던가 낙원이 되어있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유토피아라는 곳이 존재하기는 할까.
네 사람은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 그날에 멈춰있던 시간이 조금씩은 흐르고 있다는 거겠지. 네 사람은 오랜만에 윤여주를 찾아갔다. 온갖 핑계로 피했던 자리를 2년 만에 용기내 다 같이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네 세람은 조심히 앉아 말했다.

"당연한 결과였나 봐. 인생은 돈과 재능, 그리고 권력이 전부니까"
"후회하진 않아? 그런 선택을 한 거"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냐. 우린··· 뭐 어떡하라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 우리들을 위해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나 할까?"
네 사람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윤여주는 그들의 곁에 살며시 앉았다. 아무도 윤여주를 보지 못했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엔 윤여주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눈물을 참는 걸까, 깊은 생각에 잠긴 걸까. 알 길이 없지만 그 침묵이 나쁘진 않았다.
후회하지 않냐고 물으면 윤여주는 그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딱히 아무런 생각도 들지가 않았기 때문에, 윤여주의 마지막은 이상할 정도로 편안하고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윤여주는 자신이 후회를 하고 있는 건지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건지 말할 수가 없었다.
어쪄면 윤여주에게 네 사람은 불행의 매개체일지도 모른다. 네 사람을 만나서 구원을 받고,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결국 자신의 손에 밀려 세상과 하나가 된 꼴이라니. 어쩌면 윤여주는 믿고 싶었던 것이다. 이 불행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는걸.
애초에 윤여주가 그들의 손을 잡은 것도 자기합리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윤여주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토피아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그런 걸 만들 수도 없을 거라는걸. 그래서 윤여주는 그들의 손을 잡은 것이었다.
윤여주는 윤여주의 생각보다, 네 사람의 생각보다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네 사람도 다르진 않았다. 윤여주는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불행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고, 네 사람은 그저 본인들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던 것이었다.
결국 다섯은 끝까지 이기적이었고, 본인이 원하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다섯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할 수가 없었다.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선택이었고, 자신들의 이기적인 선택이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어버렸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다섯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섯은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생각 이상으로 많은 마음을 줬었기에. 이미 생각 이상으로, 상상 이상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이 기대고 의지했기에. 무거울 줄 알았던 윤여주의 추락이 가벼울 수 있었던 건 넷을 만났기 때문이고, 넷의 시간이 다시 흐를 수 있던 것도 윤여주를 만나러 왔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무슨 짓을 해도 돈도, 재능도, 권력도 무엇도 없는 그들의 힘으로는 죽어도 바뀌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유토피아라는 곳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네 사람은 이제라도 조금씩 바뀌는 세상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아까 누군가 윤여주에게 후회하지는 않냐고 물었었다. 윤여주는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진짜 원해서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기에, 감정과 충동만이 윤여주를 지배했기에 어쩌면 윤여주는 죽기 직전에도 살기 위한 발버둥을 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윤여주는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다.
한번의 균열은 윤여주의 세상을 흔들었다. 하지만 한 번의 균열로 흔들린 윤여주의 세상은 그렇게 평화롭고 편안할 수가 없었다. 윤여주는 드디어 자신만의 낙원을 찾은 것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낙원을 윤여주는 한 번의 균열로 찾았다.

"우린 이만 가볼게."

"잘 가, 여주야"
"또 올게"
"안녕, 윤여주"
"안녕, 얘들아"
그리고
"안녕, 나의 낙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