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틴!

하이, 틴!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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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전학생은 빠른 속도로 학교에 적응했다. 낯을 가리는 탓에 혹시나 소외되지는 않을까 하던 내 걱정과 별개였다. 날이 지날수록 전학생의 자리에 모여드는 애들이며, 그런 애들을 받아주는 전학생을 보며 느꼈다. 첫째, 전학생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둘째, 전학생은 낯만 가릴 뿐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지난 며칠간 나와 전학생의 첫 마디가 항상 전학생이었던 것을 보면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셋째, 나와 전학생을 둘러싼 시선들이 심상치 않았다.


오늘도 그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해탈할 때쯤이었다. 새 짝꿍, 그러니까 전학생이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사실 두드렸다고도 말하기 애매한 힘에 뭐지 싶었다. 나를 애기 취급하는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전학생의 눈동자를 보는 순간 사실이 되었다. 두 눈에 덕지덕지 붙여진 애정이 며칠 사이에 익숙해져 있었다. 한없이 해맑기만 한 전학생을 마주하며, 이러니까 애들이 의미심장하게 쳐다보는 걸까 생각했다.




“···왜?”

“늠아, 마이쮸 먹을래?”

“아까 애들한테 다 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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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또 있어!”




전학생은 손사래를 치며 제 가방 지퍼를 열었다. 가방에서 마이쮸를 꺼내느라 숙였던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마이쮸 한 통을 내밀었다. 낱개도 아니고 그 많은 한 통을 주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얼떨결에 마이쮸를 받아들자 전학생의 얼굴이 확 펴졌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다더니 이걸 소극적이라고 봐야 할지 적극적이라고 봐야 할지 가늠이 안 갔다. 이렇게 대놓고 행동하는 것만 보면 모를까, 내가 조금만 반응이 늦어지면 풀이 죽는 전학생이었으니 말이다.




“음, 저기···. 한 개만 줘도 괜찮은데.”

“···싫어?”

“아니, 싫은 게 아니라 너무 무리하는 걸까 봐 그런 거야.”




내 변명에도 전학생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개만 끄덕였다. 아까의 대담한 모습은 어디 갔는지 풀이 죽은 전학생을 보고 어쩔 줄 몰랐다. 정작 애기 취급을 받는 게 아니라 하는 쪽은 나였나 보다. 머리 하나가 차이 나는 남녀가, 그것도 여자 쪽에서 쭈그리 된 남자에게 쩔쩔매는 광경은 꽤나 볼만했다. 우리 주위의 애들이 재밌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뒷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김태형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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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희 무슨 얘기해?”

“마이쮸, 얘기.”

“마이쮸? 헐, 제이! 내 건?”

“으응···?”

“나 며칠 학교 못 나왔잖아. 그래서 못 받았어!”




안 그래도 경직되어 있던 전학생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었다. 김태형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달라고 하는 것일 테니 없다고 해도 되는데. 쟤도 참 미련하게 착했다. 애꿎은 손만 괴롭히는 전학생을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김태형의 머리를 한 대 팍 쳐버렸다. 난데없는 주먹다짐에 전학생이 놀란 듯 흠칫거렸다. 반대로 김태형은 맞은 부위를 감싸 쥐며 우는소리를 냈다. 아프지 않게 살짝 때렸는데도 보란 듯이 입술을 비죽이는 꼴이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때려···. 뭐야, 나 또 뭐 잘못한 건데.”

“네가 사 먹어, 네가.”

“장난이었단 말이야. 내가 설마 달라고 협박하겠어?”

“기대가 협박이지.”

“진짜 제이한테만 친절한 김여름. 서럽다, 서러워~”




김태형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시무룩해진 김태형을 보고 못내 손에 쥐고 있던 마이쮸 포장지를 뜯었다. 어차피 양도 많으니 반 줄 생각으로 깐 것이었다. 귀신같이 내 생각을 알아챈 김태형의 눈이 반짝였다. 곧 저의 손에 마이쮸 대여섯 개가 놓이자 웃음을 지었다. 한 개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까지 했다.




“먹고 떨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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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요! 눈앞에서 사라져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얄미운 말투로 멀어지는 김태형이었다. 그런 김태형을 보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또 저 망아지에게 말려들었다는 자각이 뒤늦게 들었다. 남은 마이쮸를 탈탈 털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다음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꾹 담아냈다. 갑자기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두루뭉술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전학생이 있었다. 어딘가 맘에 안 들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정말 말 그대로 오묘한 얼굴이었다. 화난 걸까? 그 전학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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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 화났다. 저건 화난 거다. 아무래도 김태형에게 마이쮸를 준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나 보다. 내가 아는 정색에 비하면 순한 맛이었지만 전학생이 지으니 무섭게 느껴졌다. 평소에 잘 웃고 다녀서 그런가, 익숙하지 않아서 별로였다. 실상 별로인 것보다 무서운 쪽이 맞았지만 말이다. 전학생은 제 눈을 피하는 나를 보고 기가 꺾였다. 자그마해진 목소리로 전학생이 사근사근 말했다.




“···늠아, 내일 또 줘도 돼?”

“어? 어어···. 근데 왜 계속 주는 거야?”

“친구니까.”

···.”

“친구니까, 늠아.”




도대체 마이쮸는 전학생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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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김태형, 요 며칠 왜 안 나온 거야?”




입가심 겸 과자를 먹으며 물었다. 내 질문의 답이 궁금한지 전학생도 김태형을 쳐다봤다. 누구보다 학교를 좋아하는 애라서 안 물어보고 배길 수 없었다. 몸살이 나도 꾸역꾸역 학교에 나오던 김태형이었다. 그런 김태형이 하루도 아니고 며칠을 빠진다? 나와 전학생을 포함, 반 애들은 모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음료수를 한 번 쭉 빨아들인 김태형이 퉁명스러운 투로 대답했다.




“말도 마. 뮤지컬에 연극, 콘서트까지 보고 왔어.”

"뮤지컬?"

"응! 나 꿈이 배우거든.”

“잘,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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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이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은근 기분 좋아지네.”




김태형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헤집었다. 하하, 하는 어색한 웃음은 덤이었다. 제아무리 김태형이라도 칭찬을 받는 것은 아직 미숙한 듯했다.




“큼큼, 아무튼 이곳저곳 다녀오느라 못 나왔다.”

“경험은 됐겠네.”

“경험은 무슨. 내가 노래부를 것도 아닌데 콘서트가 웬 말이야.”

“좀 시선을 넓혀봐. 나중에 가수 역을 맡을 수도 있잖아.”

“아, 쓰읍···. 역시 너랑은 말싸움하면 안 돼.”




팔랑귀를 가진 김태형답게 잠깐 솔깃했나 보다. 그러다가도 금방 부정하는 꼴이 여간 웃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방금 한 말은 나름 진심이었다. 세상일 어떻게 될 줄 모른다고, 김태형이 뜻밖의 배역을 받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솔직히 김태형의 외모가 준수한 것은 사실이니까 가수는 무슨 아이돌도 가능하겠다 생각했다. 정작 본인은 모르지만 말이었다.


전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김태형은 신난 티가 났다. 난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면 말을 잘 안 붙였기에, 전학생은 김태형한테 단비 같은 존재였다. 저의 말을 이렇게 공감해 주는 애는 처음이라는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이 점차 설렘으로 바뀌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태형은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학생과 나는 눈만 끔뻑거리며 김태형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김태형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우리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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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뮤지컬 보러 올래?”

“보러 가는 게 아니고 보러 오라고?”

“응! 나 곧 공연할 거 같아서. 친구 좋다는 게 뭐야, 내가 티켓 딱 구해줄게!” 

···언제 하는데?”

“아, 9월 모고*끝나고 해!”
(모의고사)*




김태형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학을 뗐다. 9월 모의고사가 며칠 안 남은 시점이라 내가 예민한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질색할 줄은 몰라서 웃음만 나왔다.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 후에나 김태형의 표정은 풀어졌다. 김태형이 기대를 던지면 난 싹둑 자른다. 그러나 그렇게 자른 기대를 내가 다시 붙여준다. 5년 동안 이어진 우리 둘의 레파토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전학생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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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모고가 뭐야?”

“아.”

“아.”




단말마의 탄식이 김태형과 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한국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 된 애가 모고라는 단어를 알 리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야!! 모고 일주일 남았는데 그럼 어떡해?!”




나보다 먼저 상황 파악을 마친 김태형이 경악했다. 김태형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전학생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난 가루처럼 바스스 사라졌다. 비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