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짐승을 집에 들였습니다

8화 - 해도 돼?

사귀기 시작한 뒤로 며칠이 흘렀다. 우리 사이에는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다.

나는 하민의 방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고, 매일 밤 잠들기 전 내 방문까지 나를 데려다줬다. 그리곤 나를 내려다보다가,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춰주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첫날에는 갑자기 당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둘째 날에는 오늘도 해줄까? 하는 기대감에 조금 부풀어있었고,

셋째 날부터는 내 일상생활 중 하나가 되었다.

 

절대 기다리고 있다는 티는 내지 않았다. 하민이는 내가 그러든 말든 상관없이 늘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잘 자, 누나.”

 

 

큰 손이 내 양 볼을 감싸고, 도톰한 입술이 이마에 붙었다가 천천히 떨어진다. 짧게 닿았을 뿐인데 입술이 머물렀던 자리는 언제나 뜨거웠다. 하민이가 방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열기가 쉽게 식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울 때마다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부드럽고, 도톰하고.

닿을 때마다 뜨거웠던 입술.

 

자꾸 그 감촉을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도 따라왔다.

저 입술이 이마 말고 다른 곳에 닿으면 어떤 느낌일까.

 

“…….”

 

미쳤나 봐, 진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이불 밖으로, 방 너머로 들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정도로 컸다.

 

 

 

*

 

 

 

여느 때처럼 학생 신분에 충실하지 않았던 날. 드디어 담임 선생님의 종례까지 마쳤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책상 위에 펼쳐둔 책을 덮고 가방을 챙기는데, 옆자리 친구가 팔을 툭 건드렸다.

 

 

“야, 네 강아지 왔다.”

 

 

친구가 턱으로 교실 뒷문을 가리킨다. 고개를 돌리자 하민이가 뒷문 바깥쪽에 서 있었다.

오늘도 나를 데리러 온 모양이었다. 아니, 쟤넨 종례가 왜 이리 빨라. 째는 건가 혹시?

 

하민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살짝 굽힌 채 서 있는 모습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너네 진짜 사귀는 거 아니야?”

“야, 뭐래.”

 

 

뜨끔, 가슴 한 켠이 콕콕 찔렸다. 이게 양심의 위치인가. 친구는 가방을 어깨에 메며 하민이를 한 번 더 바라봤다.

 

 

“강아지도 아니고 주인 잘 기다리네.”

“누가 주인이야.”

“매일 너 데리러 오잖아.”

“집 가는 방향이 같아서 그런 거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같은 집으로 가는 사이니까.

친구는 믿지 않는 얼굴로 웃더니 먼저 교실을 나갔다.

 

남자애들은 뒷문을 지나가며 하민이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그새 몇 번 얼굴을 봤다고 제법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오늘도 왔어?”

“네.”

“먼저 간다.”

“가세요.”

 

 

나름 형들이랑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그중에는 예준이도 있었다. 예준은 하민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고 지나갔다. 하민이를 지나쳐가는 애들마다 한 마디씩 건네고 간다. 하나둘, 학생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가방 지퍼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애가 앞문으로 나가고 나서야 하민이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왔어?”

“응.”

 

 

하민이는 열린 뒷문 안쪽에 멈춰 섰다. 미닫이문에 가려진 자리는 복도에서 교실 안을 들여다봐도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가리는 게 좋긴 하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말을 내뱉곤 하민 쪽으로 점점 걸어간다. 왠지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강아지 같잖아.

뭐, 귀여운 것 같기도.

 

 

“음?”

 

 

가까이 다가가니 넥타이가 한쪽으로 삐뚤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매듭도 느슨하게 내려가 있었다.

 

 

“넥타이 왜 이리 삐뚤어졌어.”

 

 

하민이 고개를 내려 자기 넥타이를 내려다봤다.

 

 

“아, 오늘 체육….”

“완전 삐뚤어졌잖아. 가만있어 봐.”

 

 

나는 가방을 옆 책상에 잠시 내려놓고 하민이의 넥타이를 붙잡았다. 나는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하민의 눈이 순간 커졌다.

한쪽으로 돌아간 매듭을 가운데로 옮기고, 느슨해진 넥타이를 위로 당겼다. 손끝에 힘을 줄 때마다 하민이의 목이 조금씩 움직였다. 꿀꺽, 침을 삼키는 목젖이 보였다.

 

 

“야, 너 긴장했냐? 웃기네.”

 

 

 

넥타이에선 아직 손을 떼지 않은 채로 하민을 쳐다봤다. 꽤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귀여웠다. 어때, 나도 이렇게 연상미가 있는 여자친구라고. 큼!

 

정갈해진 넥타이 위로 한껏 긴장해서 빳빳해진 목과 날카로운 턱선이 보였다. 그리고 시선이 더 올라갔을 때 눈에 들어온 건, 매일 밤 내 이마에 붙었다가 떨어진 발갛고 도톰한 입술이었다.

 

나는 넥타이를 쥔 채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 입술이 다른 데 닿으면… 하고 상상한 적이 있었지. 잠깐.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상황, 분위기. 조금 이상한 것 같아. 꼭 유혹하는 것 같잖아. 하민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쩐지 뜨거운 시선이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괜히 내가 민망해져 입술을 뻐끔, 열었다.

 

내 시선이 꽂혀 있던 입술도 아주 조금 벌어지다, 이윽고 나를 불렀다.

 

 

“누나.”

 

 

고개를 들자 하민이 나를 내려다보는 하민과 눈이 마주쳤다. 당황하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뜨거운 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 들킨 것 같았다. 황급히 손을 놓으려는데 하민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해도 돼?”

 

 

 

무엇을 말하는 건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넥타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어깨에 하민의 큰 손이 내려앉았다. 어떡해, 하려나 봐!

 

…그렇지만, 이번에도 리드 당하는 건 싫어…! 내가 연상이라고!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넥타이를 세게 내 쪽으로 끌었다. 그리곤 두 눈을 꼭 감곤 까치발을 들어 입술을 부딪혔다.

 

 

“키스는 내가 먼저 리드했다…!”

“…….”

“어때, 별거 없지?”

 

 

이때 아니면 어른미를 보여주겠어. 나는 제법 늠름한 얼굴을 하곤 하민이를 쳐다봤다. 하민이는 눈을 크게 뜨고, 손등으로 입술을 가리며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붉은 얼굴일까? 생각하는데, 내 말을 들은 하민이 눈가를 구기더니 손을 내리곤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니라고?”

“응.”

“…….”

“뭐, 그냥 뽀뽀잖아.”

 

 

허세 넘치는 내 말을 들은 하민은 꽤 열이 받았는지 다시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럼 한 번 더 해볼까.”

“…아니,”

“이번엔 내가.”

 

 

어느새 다가온 두 손은 내 볼을 감싸쥐고 있었다. 도망도 가지 못하고, 시선도 피하지 못한 채 입술이 맞닿았다. 눈을 감을 새조차 없었다.

 

쪽.

입술에 말캉한 입술이 닿았다가, 살짝 떨어졌다.

쪽.

그리곤 다시 다가왔다. 짧은 입맞춤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입맞춤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입술이 점점 촉촉해졌다. 아까랑은 다른 생경한 감촉과 소리에 나는 두 눈을 꾹 감았다.

 

몇 번이고 입술을 부딪히면서 쪽 소리가 점차 짙어졌을 때, 하민이 내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가 놓았다.

 

 

“……!”

 

 

놀라서 눈을 뜨니 하민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 집중하는 얼굴로. 장난기 하나 없는 얼굴엔 오히려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두근.

두근.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하민이를 바라봤다. 이윽고 떨리는 숨결이 잇새를 비집고 나왔을 때, 붙잡고 있던 하민의 소매에 조금 더 힘을 줬다.

그제야 하민이 다시 입술을 겹쳐왔다. 잠시 떨어졌다고 차가워졌던 입가는 빠르게 데워졌다. 뜨거운 입술은 떨어질 줄 모르더니, 그대로 내 아랫입술을 삼켰다. 한 번 입술이 삼켜지자 저절로 입가가 벌어졌다. 그 틈을 비집고 뜨거운 하민의 혀가 들어왔다.

 

 

“읍…!”

 

 

입술이, 혀와 혀가, 침이 섞이며 질척이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아, 누가 지나가진 않겠지. 들키면 안 되는데. 그러한 배덕감은 오히려 마음을 붕 뜨게 만들었다.

부드럽지만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키스에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우스운 신음이 맞물린 입 사이로 삐져나왔다

 

 

“우읏….”

 

 

나는 눈을 더 꽉 감곤, 이젠 매달리다시피 하민의 팔을 잡아왔다. 점점 내 쪽으로 상체가 기울었고, 숨도 가빠졌다. 별거 아니라고 말했던 게 무색할 만큼 심장이 거세게 뛰고, 다리에 힘이 조금씩 풀렸다. 그럴 때마다 하민은 입술을 지독하게 부벼오면서 내 허리를 받쳐 안아주었다.

머릿속이 점점 새하얘졌다.

 

마치 서로를 갈망하는 듯한 오랜 키스가 지나가고 허리가 꺾이는 통증이 느껴질 무렵, 하민은 내게서 떨어졌다.

눈가에 눈물이 작게 맺혔다.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하민의 달게 부풀어오른 입술이, 붉은 입술이 보였다. 침 때문에 윤기가 흐르는 그 입술을 바라보았다.

 

내 입술도 하민이처럼 빨개졌을까.

괜히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

“하, 장여주….”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보다는 더 뜨거워진 듯한 시선이.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분명 키스를 했는데, 귓가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별거 아니냐고 되물을 줄 알았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예상과 달리 하민이 오히려 내 눈도 못 마주쳤다.

하민은 내 악력으로 쭈글거리는 제 넥타이를 빳빳하게 펴 고쳐 메고, 내 헝클어진 머리와 옷매무새도 정돈을 해주었다. 그리곤 책상 위에 얹어두었던 내 가방을 들었다.

 

 

“가자.”

“어, 어….”

“…앞으론 도발하지 마.”

 

 

하민은 그렇게 말하곤 빠르게 걷기 시작해 먼저 뒷문을 빠져나갔다.

무슨 뜻이지, 난… 좋았는데.

입술에 남은 감촉의 기억과 열기가 떠올라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어쩐지 뜨거운 것 같아.

 

별거 아니기는커녕.

한동안은 이 감각밖에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오랜만이죠 핳... 좀 바빳습니당 (노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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