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연회장에 모여 곧 있을 시험을 위해 열심히 자습 중이었다. 그렇지만 꼭 안 그러는 학생들도 있기 마련이지. 나는 돌아다니며 떠들고 있는 학생이 있나, 없나 눈치나 주는 역할로 있었다. 슬리데린 3학년에 공부를 포기한 듯한 애들이 있었는데, 문제는 거기서 시작했다. 그들 중 하나는 내가 돌아다니는 걸 알면서도 나에 대한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리 그런 애들이 있어도 어쩌라고 마인드로 벌점만 주고 마는데, 문제는 선이라는 것을 계속 넘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에휴, 진짜. 박우진 어떻게 교수직 맡았는지 모르겠지만 진짜 수업 수준 낮다니까. 내가 이딴 수업 들으면서 학교 다니는 거 우리 아빠가 알면 엄청 놀라실 거야.”
“엥. 난 마법약 수업만큼 어려운 수업 없는 거 같은데? 너 지금 포션 마스터 무시하냐, 게다가 우리 기숙사 사감이시잖아.”
“넌 동양인이 뭐가 좋다고 지금...”
옆에 있던 애들은 내가 포션 마스터고 수업 수준도 너무 높아서 힘들 지경이라는 말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 한 남학생은 내가 싫다는 것을 대놓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것, 나도 걔를 싫어한다. 아무튼 걔네 아빠는 유명한 포션 책 작가였다. 그렇든, 말든 명성은 다가 아니지. 내가 생각하기엔 그의 책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런 인간 아들 주제에 어디서 포션 마스터인 내게.
“진짜 동양인 왜 우리 학교까지 와서 지랄인지...나였으면 쪽팔려서라도 고개 못 들고 다닌다.”
“내가 너처럼 멍청했다면 쪽팔려서라도 고개 못 들고 다닌다.”
“뭐? 아니, 교수님...!”
“슬리데린 10점 감점.”
명성이라는 것이 있지, 슬리데린이라는 인간이 벌점이나 받고 말이야. 그는 나를 살짝 원망스럽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나는 들고 있던 종이 뭉텅이로 머리를 대충 치고 지나갔다.
그날은 하루 종일 무엇 때문인지 몸이 내 멋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수업 도중에도 식은땀이 났고 없던 수전증이 갑자기 생겼나, 손이 달달 떨렸다. 나는 계속 대충 손을 탈탈 털었고 모든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의자에 앉아 마지막 수업까지 끝났음을 확인하고 살짝 눈을 감았다.
똑똑- 평소였다면 작았을 그 노크 소리도 그날은 크게 느껴졌다. 나는 마른 세수를 하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문 밖에는 말포이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그, 교수님께서 연회장에 안 내려오셔서요. 무슨 일이 있나 보러 왔어요.”
나는 고개를 돌려 벽에 붙어 있는 시계로 시간을 봤다. 벌써 저녁 식사 시간보다 30분 정도 지났었다.
“곧 가지. 먼저 가 있어.”
“저, 교수님! 전에 말씀드린 퀴디치 선수 관련된...그니까...대답 좀 듣고 싶은데요.”
나는 빨리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말포이는 문을 잡고는 퀴디치 얘기를 꺼냈다. 젠장, 말할 생각도 안 해봤는데.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퀴디치라는 게 굉장히 위험한 스포츠라는 건 말포이 군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루시우스가 알면 쓰러지겠군.”
“저희 아빠는 제가 설득할게요, 그러니까...시켜주세요.”
“난 내가 아끼는 학생이 위험에 처하는 건 싫어서 말이다. 넌 아직 어려. 내년에 정식적으로 지원하는 게 어떠한지 묻고 싶다만.”
말포이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고는 연회장으로 올라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쉬고는 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주저앉았다.
나는 가기 싫어서 책상에 앉아 덤블도어 교수님께 대충 아프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곤 부엉이를 통해 보냈다. 나는 바로 자려고 커튼을 닫으려고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 밖에는 달과 별들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봄이처럼.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눈물이 났다. 내가 왜 이러나 싶을 때는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끅끅 거리며 두 소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대충 쓱쓱 닦고 책상 서랍을 열어 커터칼을 꺼내들었다. 10여 년 전에 내가 직접 죽죽 그어대며 망가진 손목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지금은 당장 덜 힘들었으면 해서, 또다시 죽죽 그어댔다. 그리고 바로 커터칼은 바닥에 던져두고 침대로 가 누웠다.
눈을 떠 보니 왠지 익숙한데 정확히 어디라고는 알 수 없는 곳에 와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았고 내 시선의 끝에는 봄이가 서 있었다. 나는 그때 ‘역시 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브, 왜 이제 와! 한참 기다렸잖아...”
“미안해, 저기 어떤 바보들 때문에.”
봄이는 과거의 나를 향해 살짝 얼굴을 찡그렸고 나는 바로 미안하다고 둘러댔다. 봄이는 곧바로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래서, 얼굴 보고 해야 되는 말이 뭔데?”
“...어?”
“네가 며칠 전부터 나 피하다가 갑자기 얼굴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그게 뭐냐고.”
“아, 그게...”
나는 머뭇거렸다. 지금 봄이가 살아있고 결혼도 안 했다고 가정한 다음, 가서 말하라고 해도 분명히 이럴 거긴 하다. 그때와 달라진 건 봄이가 내 옆에 없다는 거. 그거 하나뿐이니까.
바보같이. 그냥 좀 말하지, 빨리 좀 말하지. 1초도 1분처럼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한 마음만 커졌다. 꿈속에서라도 말했으면 좋을 텐데.
“나 곧 친구들이랑 도서관 가야 되거든. 네가 5분리면 된다고 해서 만난 건데...늦게 오고, 말도 안 하고 그렇게 서 있는 건 나 그냥 가도 된다는 거야?”
“그...아니야, 시간 뺏어서 미안. 잘 가.”
“너도.”

나 사실 너 좋아해. 호그와트 입학하기 전부터. 나 같은 사람이랑도 잘 지내준 너를 내가 감히 좋아하고 있어. 너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너는 그동안 나를 어떻게 생각해왔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너밖에 없었어. 너의 그 예쁜 미소 때문에, 처음으로 나를 사람처럼 대해준 너의 그 착한 마음씨 때문에 나는 너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
너무 갑작스러운 것도 알고 너는 나를 친구로만 생각하는 것도 알아. 혼자 마음 정리해야지 생각하고 있다가도 그린핀도르 애들이 나 괴롭힐 때면 네가 와서 날 도와주는데 어떻게 널 그만 좋아하겠어.
너랑 사귄다는 꿈은 꾸지도 않아. 그냥 한 번이라도 네게 말하고 싶었어, 봄아.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내가 이렇게 이기적인 애라서.
이 말을 하기도 엄청 오래 걸렸네. 물론 직접 네게 하는 말도 아닌 너를 바라 보고 속으로만 지껄이는 거지만. 봄아, 거기서 이가을이랑은 잘 지내? 나는 네가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 이가을이 네 말 잘 안 듣고 속 썩이면 나한테 말해. 내가 위로해 줄게. 사랑해, 봄아.
나는 한참을 봄이가 간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슬퍼서가 아니라 기뻐서, 행복해서 그렇더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았다.
“스니벨리!”
나는 급하게 뒤를 돌아봤다. 나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있는 이가을과 철 없이 키득 거리며 이가을을 부추기고 있는 시리우스와 나를 조롱하고 있는 애들이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고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익스펠리아르무스!”
내 손에 있던 지팡이는 저 멀리로 날아갔다. 나는 푹 한숨을 쉬고는 이가을을 노려 보았다. 한심한 놈. 그러자 시리우스도 지팡이를 꺼내 들면서 나를 비웃기 시작했다.
“스니벨루스, 디핀도!”
시리우스는 내 얼굴을 향해 주문을 외쳤다. 나는 서둘러 팔로 내 얼굴을 가렸다. 그 주문은 내 팔에 자국을 남기고 갔고 그곳에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를 보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나에게 한 번이라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애는 없었다. 오히려 비웃으며 더 하라고 부추겼다.
“스코지파이!”
“그만 좀 해, 형!”
내 입에서는 분홍색 비누거품이 흘러나왔고 나는 컥컥 거렸다. 레귤러스는 시리우스를 말리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선배님, 들어가요.”
“...고마워, 블랙.”
레귤러스는 시리우스의 동생인데 내 옆방에 지내는 애이기도 하다. 그렇게 친하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그냥 시리우스가 나한테 주문 걸 때마다 와서 도와주는 그런 애다. 얘는 나보다 덩치도 크고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애라서 나는 뭘 도와준 적이 없어서 그런가, 좀 빚지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블랙 형제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기도 하고. 시리우스한테는 안 미안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