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루는 여러 의미로 제국이 떠들썩했던 날이었다. 라일리의 선포와 돌아선 언론, 황제 측 사람들의 태세 전환까지, 제국이 세워진 이래 가장 소란스러운 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가장 소란스러웠던 날의 주인공, 라일리는 어제에 일어났던 많은 일로 늦게 잠들어 그런지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뒤늦게 일어 낮다.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났더라면 시녀들이 잔소리를 해왔겠지만, 시녀들도 라일리의 힘들을 알고 있는지 차를 내올 뿐이었다.
그렇게 라일리가 침대의 걸터앉아 차를 한 모금 들이키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_
"황후 폐하, 일어나셨습니까?"
라일리가 궁 내에서 맘 편히 믿을 수 있는 몇 없는 사람인 집사 톰이었다. 라일리를 어릴 적부터 봐오며 모두가 라일리에게서 돌아섰을 때도 라일리의 곁을 지키며 지켜준 라일리에겐 유일한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 들어오너라."
라일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톰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오는 톰의 손에는 많은 양의 종이봉투들이 들려있었다.
그중에서도 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는 봉투가 제일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이더냐."
"황후 폐하의 앞으로 온 초대장과 축하 편지들을 전하러 이리 왔습니다."
라일리는 예상했다는 듯이 톰에게서 편지들을 받아들어 아까 전 눈에 띄었던 금빛 봉투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읽어보기 시작했다.

귀족 가문들에게서 온 파티 초대장들이 거의 전부였다. 그렇게 라일리가 지겹다는 듯 편지를 넘겨보던 중 익숙한 글자가 라일리의 눈에 들어왔다.
"전정국" 라일리의 배후자이자 경쟁자,
"무슨 말을 하시려고 편지를 다 쓰셨데- 어울리지 않게 말이야."
라일리는 평소 정국이 자신에게 편지를 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의아해하기도 하였지만, 편지의 어떤 재미있는 내용이 적혀 있을까 생각하며 코웃음을 쳤고 이내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어 글을 읽어보았다.
"이게...."
라일리는 손에 들고 있던 편지를 구겨버렸고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모두가 라일리가 엄청나게 화났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시녀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라일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황후 폐하....."
"에나멜, 종이와 펜을 준비해 오너라."
라일리는 에나멜의 말을 끊고 종이와 펜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 말을 하는 라일리는 자신이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생각했지만, 그 말속에는 라일리의 화가 그대로 담겨있었다.
에나멜이 종이를 가져오는 동안 라일리는 나머지 편지들도 읽어보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눈에 띄는 편지를 하나 발견했다.
"재밌네-"
라일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루체트 가에서 온 파티 초대장이었다. 라일리가 이렇게 웃고 있는 이유를 말하자면, 이 루체터 가문이 라일리를 가장 싫어하고 욕하던 가문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가문이 세상을 다 가져다 드릴만큼 존경한다는 듯이 사근사근한 말투로 라일리를 파티에 초대하려 애쓰는 모습이 라일리에게는 재미있는 광경이었던 듯하다.
"뭐, 이렇게 애쓰는데 내가 가줘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
라일리는 초대장을 보며 웃음을 짓다가 문뜩 자신의 앞에 있는 시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에이, 시녀들한테 왜 그래-"
창문 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일제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갤 돌려 그쪽을 쳐다보았고 그곳에는 한 남자가 창틀에 앉아 라일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나도 참 너무하다니까, 이러니 사람들이 누나를 싫어하지."
"김태형, 죽여버린다."
라일리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태형에게 다가갔다.
"누나는 참 몇 년을 봐도 알 수가 없다니까?"
태형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창문으로 다시 사라져버렸다. 정확히는 뛰어내렸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만 말이다.

"누가 쟤한테 문으로 다니라고 전해둬라."
라일리는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태형이 뛰어내린 창문 밖 풍경을 보며 말했다.
똑똑똑_
"황후 폐하 종이와 펜 준비되었습니다."
에나멜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이리 놔주거라."
라일리는 펜을 들어 글을 적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모습까지도 기품이 배어있었다. 황태녀리 자라오고 교육받으며 생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라일리가 30분쯤 펜을 붙들고 있었을까 라일리는 펜을 내려 놓으며 글을 마쳤다.
"이것들 좀 전해주거라."
라일리는 시녀에게 두 개에 편지를 내밀었다. 가문에 인장이 붉게 찍힌 편지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 속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

"황자는 창문으로 다니는 게 취미인가?"
적막한 저녁 식사 자리, 정국이 그 적막을 깨고 라일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가 보더라고요."
정국은 망나니 황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라일리는 시큰둥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라일리의 반응 때문인지, 긴 식탁에 각 끝에 떨어져 앉은 탓인지, 분위기가 더욱 싸하게 느껴졌다.
"황자도 이제 혼인을 해야 하지 않겠나?"
"글쎄요, 걔가 알아서 잘하겠죠."
정국은 오늘따라 황자 태형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놨다. 그런 그의 모습은 라일리의 신경을 긁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정국은 그런 자신의 의도를 은근히 내비치고 있는 줄 알고 있지만, 모두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말투가 공격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황자가 저녁 식사에 참여를 안 했네."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요. 그래서 그렇게 욕하신 거 아닌가요?"
그렇게 의미 없는 신경전만이 이어졌다. 정국은 자신의 자리를 뺏긴 것이 분해서인지 계속해서 라일리에게 시비를 걸었고 라일리는 그런 정국에게 지지 않으려 계속해 맞받아치는, 끝나지 않는 싸움이었다.
그런 신경전 속 정국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말을 꺼냈다.
"서왕국과 무역협정은 어떻게 되어가나."
"그렇지 않아도 내일 협정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큰 이슈, 서왕국과의 무역협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