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장인의 짧글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photo












  어릴 적 꿈은 딱히 뭐라 형용할 수 없었는데, 매번 뒤바뀌는 바람의 중심은 대개 '사랑받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돌이란 직업군은 내게 천성과도 같았다. 가끔 먹통이 되는 티비 화면 앞에 눌러앉아 그런 꿈을 키웠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들을 보면서, 가만히 동경하며. 무대 위의 모두가 빛났다. 반짝였다. 반짝이고 싶었다. 열다섯에 깡시골을 벗어나 도심으로 간 이유는 그런 류의 열망에서 자랐다. 이렇다 할 재능은 없었지만서도 그나마 반반한 얼굴이 무기였다. 알바를 오전에 몰아뛰고 저녁엔 쪽방에서 노래와 춤 연습을 병행했다. 주인 아저씨가 몇 번 주의를 주고 간 통에 집 앞 공원 구석에서 이어폰을 꼽고 흥얼거리던 날이 많았다. 영 머저리는 아닌지 할수록 늘었다. 빠른 습득력이 내가 유일하게 희망을 품는 구석이었다.



  크게는 대형, 작게는 사명이 등재조차 되지 않은 곳까지 오디션만 해도 계란 두 판은 더 본 것 같다. 문자만 되는 2G폰엔 불합격 소식이 대거 쌓였다. 중국집 부엌에서 양파를 까다가 칼을 바닥에 내던지고 펑펑 울었다. 머리는 산발이 되선. 한낮에 미친 사람처럼 눈물을 속절없이 흘렸다. 같이 일하던 언니가 많이 매우면 저가 마저 하겠다고 선뜻 얘기할 정도였다. 아주 조금은 고마웠던 것도 같다. 하마터면 정을 붙일 뻔했으니 말이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 며칠 뒤 전해 들은 그녀의 소식에 나는 그럴 뻔했던 걸 다행으로 여겼다. 모든 관계에 있어 신중해야겠다고 다짐한 건 아마 그때쯤이었을 거다. 잃을 바엔 애당초 가지지 않는 게 나았다. 나는 더이상 울지 못 했다. 양파는 여전히 매웠지만, 그날 이후로 반쯤 미친 듯이 연습에 목을 맸다. 뒤따른 결과로는 한 중소 기획사로부터 온 합격 통보가 있겠다. 그리 당연한 것도, 금세 지나고 마는 행운도 아닌 딱 내 희생만큼의 대가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8살에 소속사에 들어간 나는, 1년도 채 안 돼 데뷔조에 편성되었다.



  따로 숙소가 생겨 살던 방을 내놓았다. 연습생이 열하나인데 평수는 고작 여덟 평 남짓이었다.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목욕도 순번을 정해야 했다. 막내인 나는 눈치껏 마지막을 자처했다. 서먹한 분위기는 일찍이 가시고 한 달 가량 지나자 다들 가까워진 듯 보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겉으로만. 분위기가 워낙 휙휙 바뀌는 게 이쪽 판이라 누구도 마지막까지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열하나는 결코 적당하지 않은 수였고 몇몇은 떨어져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모두로 하여금 가슴 깊이 경계심을 돋게 했다. 때문에 은근한 기싸움이 오가는 숙소보단 연습실이 내 안식처였다. 늦은 새벽즈음에 몰래 구식 카세트를 챙겨 연습실 구석에 박혀 있는 게 낙이었다. 춤을 외우다 거울에 땀에 젖은 몸을 비출 적이면 막연한 두려움이 사그라들기도 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언뜻 본 구절이 주는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노력은 곧잘 배신을 하지만, 그 모든 게 구색만 갖춘 허울이라는 걸 알지만, 나는 세 시간을 내내 연습에 매진했다. 돌아설 기로도 막혀 앞으로 나아갈 길만이 유일했다. 멈추지 않았다. 숨이 덜어가고 살짝 벅찬 감이 찾아오자 노래를 끄고선 생수를 집어들었다. 그때 찾아온 남자. 남색 비니가 덜컥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기분 참 묘했다. 회사 사람인가? 했는데 반바지 아래로 다 까진 무릎이 눈에 띄었다. 저 사람도 나 못지 않게 부단히 연습했나 싶다. 덕에 연습생인 줄 단번에 알았다. 한 손에 빈 종이컵을 쥐고 있던 그는 잠시 벽에 기대 있던 내게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더니 대뜸 묻는다.

  "불 있냐?"

   "···."

  민윤기는 초면부터 뭔가가 남달랐다.



  첫 날은 불이었고, 다음 날은 또 불이었다. 알면서도 꿋꿋이 묻는 까닭이 궁금했다. 없어요, 없다고요. 마침내 셋째날까지도 라이터를 찾는 그를 매섭게 쏘았다. 설령 있다 해도··· 동반퇴출 당할 일 있나. 회사 규칙에 금연도 명시되어 있단 사실은 연습생인 그도 당연 알 터였다. 이쯤되면 거절 당하는 걸 일종의 유희거리로 여기는 건 아닌가 싶다. 민윤기가 아쉬운 듯 포장지도 뜯지 않은 담배곽을 훑었다. 만날 끼고 다니는 비니를 벗으니 연노랑의 머리가 흐트러졌다. 그는 연습실에 와서도 하는 게 없었다. 간간이 내 춤에 지적을 놓거나 노래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보컬학원 원장마냥 훈수를 뒀다. 야, 목 말고 배에 힘을 줘야지.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훅 간다. 처음엔 아득바득 맞받아치던 나도 잔소리를 야무지게 등 뒤로 흘리는 스킬을 터득했다. 대강 끄덕끄덕. 시비를 걸어도 묵묵한 모습에 그가 입맛을 쩝 다셨다. 시덥잖은 말로 관심 끌긴 글렀다는 걸 그제야 알았나, 이후론 먹을 걸 들고 왔다. 살찐다고 카라멜 라떼를 거부했더니 툴툴거리며 또 담날엔 아메리카노를 쏙 쥐어줬다. 쓴 건 내 입맛에 안 맞았지만 이 새벽에 사온 정성을 봐서 마셔줬다. 흐뭇한 시선이 머리맡에 닿았다. 지금 와서 아메를 입에 달고 사는 건 그의 탓도 있다고 본다. 민윤기는 아닌 척 내게 살갑게 굴었다. 꼭 자기가 나한테 뭐가 된 것처럼. 그래서, 정말 뭐라도 된 건지. 정신을 퍼뜩 차리면 나도 모르게 그와 마주 웃고 있었다. 그는 스며드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나마 친하다 싶은 팀 멤버들과도 안 한 얘기를 민윤기에게 훌훌 털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침에 말예요, 안무 연습하는데 지가 틀렸음서 괜히 나보고··· 애써 기분 나쁜 티도 안 냈던 오전의 일화를 그에게 모조리 쏟아냈다. 따라 욕해준다거나 따지러 간다거나 하는 직접적인 액션은 없었지만 그는 잔뜩 성난 주둥이에 생수를 대는 것만으로 나를 달랬다. 응, 일단 물 마셔. 그러면 난 어미새 먹이 쪼아먹는 아가새마냥 입을 슬쩍 벌렸다. 무심하게 손목을 기울이며, 민윤기는 정적 속에 그렇게 말해줬다.

  "실력 부진한 것도 아닌데 맨날 새벽에 연습하러 오는 애가 어딨냐. 웬만한 프로도 안 하는 개고생인데."

  넌 뭘 해도 성공해, 내가 알아. 그렇게 말해준다. 대표도 실장도 아닌 일개 연습생이 하는 격려가 컸다. 정말이지, 크게 왔다. 퍽 어른스런 조언을 하는 순간 그의 눈은 지나치게 차분해지곤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알려 하지도 않았다. 이제 막 열아홉 된 나로서는 남 얘기까지 들어줄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않았다. 무시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여즉 후회로 남아 있는 일이었다. 그는 종종 mp3를 들고 다녔는데, 내게 이어폰 한 쪽을 빌려주기도 했다. 어김없이 잔잔한 팝송이 귓새로 흘러들으면 고개를 돌려 민윤기를 흘긋거렸다. 시원하게 뻗은 콧대 위로 금발이 내려앉었다. 백에 가까운 피부색은 군데군데 빨갛다. 특히 눈가가. 음악을 들으며 그는 자주 눈을 부볐다. 가사는 그냥저냥 단조로웠다.



  희소식이었다. 한 명이 자진해서 중도 탈퇴를 한 덕에 인원수를 총 열 명으로 잡아 우리 팀은 데뷔가 확정되었다는, 오후에 매니저를 통해 통보받은 일이었다. 멤버들은 기뻐했다. 다만 그 하나의 사정은 누구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하고도 냉혹한 것이었다. 그녀와 영혼의 단짝으로 불리며 죽이 가장 잘 맞던 동갑의 멤버는 전혀 슬픈 기색이 없었다. 곧장 전화를 잡아 건너편에 방방 뛰며 소식을 전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서도 가슴으론 무리인 것들이 있다. 그날이 딱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나서서 민윤기를 찾은 날이었다. 소속사 건물이 복잡하지 않은 덕택도 있지만 민윤기가 단순한 게 더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연습실에 있었다. 날이 다 샌 새벽에, 서프라이즈라도 해줄 심정으로 문을 벌컥 열었건만. 민윤기는 몸을 흠칫 떨었다. 어정쩡히 서 있는 모습이 뭔가 이질적이었다고 해야 하나. 비밀을 들킨 것마냥, 그랬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너스레를 떨었지만.

  "왔어? 요즘 연습 게을리 하네."

  "오빠."

  내가 말했다. 저 데뷔래요. 데뷔 확정이래. 우리 이제 행사도 가고, 방송도 나가고 그런대요. 꿈을 이뤘다는 건 멋진 일이다. 멋져 보이고 싶었다. 가장 의지가 됐던 이에게, 가장 소중했던 이에게, 가장 좋아했던 이에게. 활짝 웃으며 연습실 복도를 가로질러갔다. 부러움을 사진 못 하더라도, 칭찬은 해주길 바랐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 따뜻한 목소리로. 여지껏 수고했다고, 이제 고생 끝이라고. 네가 한 만큼 보상 받은 거라고. 오늘 밤도 지나온 우리의 밤과 같길 바란 거, 그게 그리 주제넘는 바람이었을까? 세 발자국 정도로 거리를 좁혀 그를 올려 봤다. 민윤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처음엔 장난인가 싶었다. 그는 원체 사람을 놀리는 걸 좋아했다. 초반에도 그랬고, 전적을 나열해 보자면 못 다 셀 정도로 아주 많았다.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답다 생각했다. 부러 분위기를 띄우려 마른 손목을 향해 손을 뻗자, 탁. 일련의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했다.

  "···."

  "··· 오빠?"

  기대가 무색하게 내쳐진 손. 싸늘한 정적.

  "··· 아."

  "···."

  "미안해··· 미안."

  "···."

  "이만 가 볼게."

  데뷔 축하해. 그게 끝이었다. 민윤기는 도망치듯 옆을 지나쳐갔다. 길게도 벙쪄있었다. 텅 빈 연습실 안. 오랜만에 혼자가 됐다. 그제야 손등이 저릿해졌고, 심장은 조금 더 그랬다. 왜? 내가 잘못한 거야? 같은 처지에 먼저 데뷔하게 돼서? 하지만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잖아. 내가 얼마나 발버둥쳤는지 알잖아. 그러면. 그러면 더 축하해줘야 할 일 아니야? 그 시절의 나는 이기적이었다. 치기 어렸고, 지나치게 예민했으며, 또 자기중심적이었다. 차게 식은 바닥의 온기가 발끝을 타고 그대로 옮겨질 때도, 내쳐진 손이 후끈 달아올랐을 때도, 굳이 뛰쳐나가 그를 잡을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허망함에 가려 끝내 헤아리지 못했다. 그가 오늘 어땠을지를. 아니, 그냥 어땠을지를. 민윤기가 어색하게 있던 자리에는 쓰레기통이 있었다. 안에는 담배곽이 들어 있었고, 새 것같이 둘러진 비닐은 여전히 뜯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최악의 하루다.



  그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민윤기는 정말 나를 안 볼 작정인지 이후로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일부러인지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화가 났다. 화가 나다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방송국으로 향하는 벤 안에서 괜스레 손을 꽉 쥐었다. 모든 관계에서 신중을 기하겠다는 다짐을 번복했다. 제멋대로 오고 가는 게 사람이다. 난 알면서도. 또다시. 가끔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지 못 했다. 옆에서 멤버들이 무슨 일이냐 물어도 답할 수 없었다. 나조차도 이유를 몰랐으니. 그리던 대로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데뷔 앨범이 히트를 치게 되면서 일정도 나름 바빠졌다. 인터넷에 널린 게 우리 그룹의 기삿거리였고, 몇 달 새 대폭 늘어난 인지도로 인해 직원 모두가 바빠졌다. 회사로 오는 개인 팬레터는 하루만 해도 오백 장이 넘어갔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남부럽지 않게. 창밖을 바라보다가도 눈을 감았다. 틀림없이 멋진 풍경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헤진 밤하늘이 그리웠다. 그때쯤 아메리카노를 사먹기 시작했다.



  민윤기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그의 어깨에 장난스레 고개를 대면 섬유유연제 향이 훅 끼쳐왔다. 잘 잊혀지지 않는. 나는 그래서 향수가 아주 많았다. 돈을 벌자마자 닥치는대로 향수를 사들였다. 잊어야 했다. 그의 냄새가, 내겐 너무도 역했다. 종종 견딜 수 없어 헛구역질도 몇 번 했다. 그에 대한 향수는 꾸역꾸역 뇌리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새로 들어온 패션 브랜드 광고 건으로 대표실로 향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이럴 리가 없는데··· 생각과 딴판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복도 한가운데서 나를 마주본 이가 있었다. 가끔은 믿기지 못 할 일이 단번에 들이닥치기도 한다. 믿음과 불신은 선택에서 온다. 여전히 향기는 진동을 했고, 나는.

  "잘 지냈냐, 김여주."

  "···."

  나는.



  오랜만에 본 그는 부쩍 달라져 있었다. 금발로 뒤덮여 있던 정수리에는 다시 자란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 까진 무릎 훤히 보이던 반바지 대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채였다. 눈가는 더이상 붉지 않았고, 그건 내게 옅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대표님에게는 이미 일러둔 일이었다. 멋쩍게 뒷목을 긁적이던  민윤기가 먼저 운을 뗐다. 요즘 되게 잘나가더라. 티비만 틀면 너네 그룹 나와. 세모난 그의 눈이 미소와 함께 예쁘게 접혔다. 딱 내 말대로네. 잘도 그런 얘기를 꺼냈다. 멋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얼굴도 안 비춰준 사람이.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었지만 일단은 속을 내렸다.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들어 마셨다.

  "어땠어요?"

  "뭐가?"

  "맨날 내 추레한 꼴만 보다가. 거기서 보는 모습은 좀 색달랐을 것 같아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가 괴로워하길 원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정상으로 발돋움한 나를 보면서, 한껏 부러워하고 한탄하고. 그런 식으로나마 내게 속죄하기를 원했다. 민윤기는 쓰게 웃었다.

  "예뻤어."

   "······."

  "반짝이더라."

  아무렇지 않았던 마음은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이제와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하는 표정이라던가, 진심임을 부정할 수 없는 초연한 눈에. 이를 악물었다. 고통을 감수하고 좋아했던 기억을 통째로 도려내고 싶었으나, 그는 이미 그 기억 그 자체라는 것을. 나 또한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뭐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요?"

  "응."

  "그때. 우리 되게··· 가까웠을 때."

"······."

  "내가 싫었어요?"

  내내 담담하던 상대에게 돌을 던진 듯, 아주 작은 파장이 일었다. 눈시울이 벌써부터 달궈진다. 나는 힘들었어요. 오빠 가고, 기댈 수 있는 구석이 하나 없어서. 대체 왜 말도 없이 잠적한 건지. 내가 그날 뭘 잘못한 건지. 우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도 되는 건지. 데뷔 직후에는 오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려서 정말 무너지기 직전이었거든요. 정말. 그렇게 말했다. 최대한 진정시켰음에도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의 손에 차츰 힘이 들어간다. 나는 추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 묻는 거예요. 그냥. 궁금해서."

  말의 무게는 한사코 숨겨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민윤기는 이것이 내 마지막 미련임을 안다. 

  "미안해."

  "뭐가요?"

  "다."

  무책임한 대답. 그 대답 뒤로 그가 목을 축였다.

  "이제 해줄게, 내 얘기."

  "···."

  "조금 길어."



  민윤기는 가족이고 고향이고 다 버린 채 데뷔에만 목숨을 걸었다고 했다. 집안환경 때문인지 본래 성정이 그런 건지 얼른 안정적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더 조급했고, 앞서나갔다. 연습생 시절을 거쳐 8개월만에 데뷔 직전까지 간 천재. 새벽에까지 연습에 몰두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함께 늦은 시각까지 곧잘 버텨내던 모습은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그렇게, 저도 모르게 몸을 혹사시키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오른쪽 발목이 아려옴을 느꼈다. 단순 근육통으로만 여기던 통증은 퇴행성 관절염의 전조 증상이었다. 처치가 느렸다. 그게 다리에 철심을 박은 원인이 됐다. 민윤기는 끝으로 다리를 절게 되었다. 춤은 고사하고 몇 달은 그냥 걷기도 버거웠다. 병원의 진단을 받게 된 그는 처음으로 회사 옥상에 발을 들였다. 몇 시간 전에 실장으로부터 그런 소식을 전해 들었더랬다. 데뷔 예정인 그룹에서 제외되었다는. 민윤기의 남은 계약 기간은 6개월이었다. 그 6개월안에 다리 상태가 나아진다면 충분히 다른 팀에 넣어줄 수 있다고는 했으나, 이미 그럴 가능성이 만무하단 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사실상 6개월동안 유령처럼 회사에 있다 나가야 한다는 통보였다. 옥상 난간에 선 민윤기는 아래를 봤다. 죽을까? 도 싶었다. 하지만 죽진 않았다. 다만, 담배를 하나 샀다.



  담배를 산 이유는 하루빨리 회사를 나가기 위함이었다. 걷긴 좀 수월해졌지만 관절염은 도통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데뷔는 글렀다. 민윤기는 저가 여태 보낸 허송세월이 너무, 너무도 허탈해서. 그냥 시원하게 담배나 한 대 피고 회사에서 쫓겨날까 라는 심산으로 건물 안으로 담배를 챙겨왔다고 했다. 연습실 정중앙에 담배 꽁초 하나 당당히 버려두면 그것도 꽤 웃긴 그림이 될 거라 생각하며. 근데 갓스무살, 전직 아이돌 연습생인 민윤기는 한 번도 흡연을 시도해 본 적이 없단 게 흠이었다. 라이터를 깜박했다. 그 사실을 연습실 문 앞에 와서야 깨달았다. 내일은 꼭 라이터도 동봉해오리라 생각하며 문고리를 틀어잡았는데, 거기 내가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아주 햇병아리 같은 내가.



  누가 들어와도 제 할 일에만 집중을 기하는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고 했다. 심심해서 있을 리 없는 라이터 타령 좀 몇 번 했더니 짜증내는 꼴은 또 웃겼다고. 온전히 내 탓이라 할 순 없지만 그가 담배에서 관심을 뗀 건 어느 정도 내게 지분이 있었다. 민윤기는 나에게서 스스로를 겹쳐봤다. 종종 씁쓸한 웃음을 지었던 것도 그 이유에서일까. 나는 그가 왜 매번 연습실에서 가만 앉아만 있었던 건지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가 내 옆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원망을 했는지, 무슨 후회를 했는지를, 말이다.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무심하게 던지던 조언과 격려는 되려 자신을 향했더랬다. 넌 성공할 거야, 따위의 말을 하며. 그는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좋아했다. 말은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알았다. 단순히 우정이라 정의 내리기엔 하염없이 깊은 감정의 굴레였다. 언뜻 겹쳐잡은 손을 타고 심장고동이 전해져 내려왔다. 먼저 알아챈 건 민윤기였다. 그는 수만 번의 고민 끝에 이 마음을 드러내기로 했다. 처음으로 한 일은 담배를 버리는 것. 그에게는 이제 회사를 나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연습실엔 내가 있었고, 비록 몇 개월만 남았을 뿐이다만 그 시간은 값졌다. 나서서 줄일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기에, 오랫동안 뜯지 않은, 새 것의 담배곽을 쓰레기통에 처 박았다. 모든 건 완벽했다. 누가 됐든 간에 한쪽이 표현만 한다면 이루어질 관계였다. 정말 한끗이었다. 단지 그 한끗을, 누구도 섣불리 다가서지 못 했을 뿐이다. 그 날은 내 데뷔가 확정된 날이었다.

  하필 그날이, 그랬었다.

  "··· 오빠?"

  "···."

  민윤기는 어땠을까.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원망이 도리어 나를 향했을까, 아니면 제 속을 천천히 갉아먹었을까. 그는 틀림없이 기뻤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 연습을 도와가며 함께 밤을 지샜던 그도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비단, 현실은 조금 더 가혹했다. 말로 뱉은 것과 실감은 천지 차이다. 매사 무덤덤하던 민윤기일지라도 이게 그렇게 아플 줄 몰랐던 거다. 오른쪽 다리가 괜히 저릿해졌다. 해맑게 웃는 내 눈을 피했다. 목이 메어와 축하가 잘 안 나왔다고 한다. 우리가 조금 다르게 만났더라면, 뭐가 좀 달랐을까? 이런 관계가 아니라··· 다른 어떤.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지금은 너무, 어쩌면 조금 많이. 아팠다. 사랑하는 이에게 느끼는 시기와 열등감은 배로 다가온다. 그 역함을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부터 향수를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대로 내 손을 내치고선 연습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대 섰다. 민윤기의 눈가는 유독 붉었다. 나와 함께 했던 그의 지난날이 그날과 달랐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는 그날, 아무 말 없이 울었다.



  "이게 끝이야."

  "···."

  "막상 얘기하니까··· 별 거 아니네."

  아메리카노가 차게 식었다. 민윤기가 살풋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눈을 돌렸다. 그저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직 낮이었다. 우리는, 바래진 새벽에 만난 우리는. 너무도 환한 낮의 서로에게 낯설었다. 솔직하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서로를 좋아한다. 다만 한끗 차이였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고작 그 보폭을 먼저 좁힐 용기를 내지 않았다. 난 데뷔한 아이돌이었고, 민윤기는 이젠 데뷔와는 거리가 꽤나 멀어진 전 연습생이었다. 정적 속에 눈이 마주쳤다. 누구든 한 마디만 하면 뒤바뀔 관계.



  그렇지만,



"······."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