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공식 [연재 중단]

05. 깨진 파편은, 이어붙일 수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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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공식





W. 망개찐떡









“정국씨, 광고 파일 최종본 좀 넘겨주실래요?.”
“네, 잠시만요.”


이튿날 아침. 회사는 평소와 같이 평화롭게 굴러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서. 바삐 움직이는 같은 팀 직원들. 프린트를 하는 직원과, 통화를 하는 직원, 그리고 열심히 기획안을 짜는 직원들 사이에서, 집중하지 못하는 건 나뿐인 듯 했다. 생각이 이래저래 신경쓰이는 일이 많았다. 가영이 해주었던 말도 있고, 전정국이 지었던 표정도 있고. 하나같이 쉽게 답이 있는 것들이 아니라, 머리는 더욱 지끈지끈 죄여오는데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주요는 그것들이 아니였다.


나의 집중을 방해하는 본격적인 방해물. 시선이 건너편에 앉아있는 정국이를 향했다. 전정국. 그가 주된 범인이였다. 그날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거 잘해. 차여주.’ 라는 말을 남기고서 떠난 전정국은, 내가 선을 단호하게 그어서 삐친건지 화가 난건지… 아주 대놓고 날 피해다니는 중이다. 유치해서 정말.


혼자 착각하는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있다만, 나도 처음에 피했을 때는 우연인 줄 알았다. 전정국이 날 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두 번째가 되니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티가나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탕비실에 커피를 마시러 들어가면, 문을 열자말자 밖으로 튀어나가고. 구내 식당에 내가 들어서면,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나가는 모습을 보며 기가 찼다. 게다가 업무 건으로 다가가면, 파일로 넘겨달란 말을 하고서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내가 이 나이먹고 술래잡기 할 일인가. 나는 하루종일 전정국 따라다니다가, 체력에 한계가 찾아와 사내 카페에 앉아 머리를 쳐박았다.


“…똥개 훈련시키는거야, 뭐야.”


차라리, 대놓고 화를 내던가. 그러면 서로 치고박고 싸우던지, 아니면 욕을 하던지. 어떻게든 이 사이를 풀텐데. 아무말도 안하고 꽁- 한 얼굴로 하루종일 피해만 다니니, 고생을 하는 건 나 뿐이였다. 5년만이였다. 신입사원 시절 이후로, 회사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닌건. 반강제로 다이어트 하는 느낌이였다. 이 참에 다이어트를 해야하나;…ㅎ


다 풀려버린 체력에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 지려는 찰나, 끼익- 하고 내 건너편 의자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겨우, 눈동자만 지켜 세워 누군인지 확인하려던 찰나. 상대방이 먼저 내 손을 낚아챘다.


“여주야!…”
“…어?, 선배님?.”
“여주-, 혹시 소개팅 잘 됐어?.”


테이블에 늘어져있던 몸을 일으킨 나는 눈을 끔뻑거렸다. 요즘따라, 나한테 소개팅 잘 됐냐고 묻는 사람이 많네. 소개팅 잘 됐냐고 묻는 이 사람은 박보영. 내 입사 시절 사수를 맡아준 아-주 친한 선배였다. 


“아뇨, 잘 안 됐는데… 그건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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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이-… 우리 여주, 소개팅 할 생각이 없을까나?.”


어딘가 어색한 몸짓과 말투, 그리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눈동자가 허공에 이리저리로 움직였다. 보통, 이렇게 물어오면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다. 소개팅이 펑크났구나.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바라보니, 보영이 고개를 쿵- 하고 숙이며 말했다. 


“예쁜 우리 여주 동생, 소개팅 좀 나가주면 안될까?.”
“선배는, 저 말고 다른 동생 없어요?.”
“…우리 여주만큼 예쁜 동생은 없지.”


헤실헤실한 얼굴로 바라보는데 더 뭐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소개팅은 더이상 하지 않으려고 했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얼마간은 정말 미친듯이 소개팅만 해서, 이제 그만 쉴 때도 됐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못 만났기 때문에 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였는데… 저런 불쌍한 얼굴로 쳐다보면, 내가 뭐라고 할 수 없잖아…


“여주야, 응?. 내 얼굴을 봐서라도. 밥만 먹고와도 돼. 
내가 사람을 소개받아서, 이번에 내뺼 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이거다. 절대로 뺄 수 없는 소개팅인데, 한다고 한 사람이 갑자기 안 한다고 하는 바람에 소개팅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네가 해주면 안되겠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라면 보영을 봐서라도, 한 번쯤 나가주었을테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기분이 아니였다. 전정국도 신경쓰이고, 이런 기분으로 가서 소개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거절하려던 찰나. 보영이 말 한 마디를 덧 붙였다.


“잘생겼어. 무엇보다.”
“…네?.”
“키 187. 사업하고 있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핸드폰을 내미는 행동에, 나의 시선은 화면으로 향했다. ‘어?… 진짜로 잘생겼네.’ 그동안 보아왔던 소개팅남 들과는 차원이 달랐달까. 순간 혹- 할 뻔하던 그 순간. 날카로운 파열음이 카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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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죄송, 합니다. 그 유리컵을 떨어뜨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전정국의 얼굴. 손을 뻗어 유리 파편을 잡으려던 그때,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갔다. ‘손 대지마!.’ 나는 내가 친 소리로 인해 카페에 모든 시선이 쏠리는 것도 모른채, 전정국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으며 잔소리를 쏟아냈다. ‘함부로 잡지마. 다칠려고 환장했어?.’ 뒤늦게 소란을 듣고 나온 직원이 유리 파편들을 치우기 시작하고나서야, 나는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아무거나 함부로 잡지마. 그러다가 손에 흉… ㅌ.”




휙, ㅡ




“…재 지금 또, 도망간거야?.”


난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번에도 놓칠 것 같아?. 의자에서 일어나 상황을 살피고 있는 보영을 향해 ‘선배, 나중에 이야기 해요!!.’ 라는 말을 남기고, 얼마 남지 않은 체력으로 또 다시 뛰었다. 뛰는게 아까워서라도, 꼭 붙잡고 만다. 의지를 활활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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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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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안녕 우린 헤어져야만 해 - 전상근, 신예영









“야, 전정국!!… 너 자꾸 도망갈래!!!.”


소리를 치자 멈칫- 하는 모습에 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단박에 가까워졌다. 드디어 잡을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나는 손을 뻗어 멱살부터 휘어잡았다. 아무런 저항없이 붙잡히는 전정국은, 힘 없이 뒷걸음치다가 벽에 부딪혔다. 


“너, 왜 자꾸 도망쳐.”
“그냥.”


도망쳤다는 걸 부정도 안 하시겠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도 안나와 눈동자만 쳐다보고있는 날 두고, 정국은 멱살을 잡고있는 내 손목을 잡아 떼였다. 아무리 힘이 쎄다고 자부한 나였어도, 전정국의 힘에는 손절없이 손이 풀렸다.


힘을 최대한 풀었다는 것을 느껴졌음에도, 남자와 여자의 힘 차이는 어쩔 수 없는지 손목이 약간 아려왔다. 손목을 매만지며 바라본 정국의 모습은, 한 없이 나약한 얼굴로 벽에 찰싹 붙어있었다. 그 모습이 거슬려 나지막하게 물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데?.


“… …”
“뭐가 문제이길래, 사람을 이렇게 피하는데.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 …”
“내가 공과 사 구분하라고해서 그래?. 애초에 틀린 말은 아니잖아. 회사에서는…”


하아-… 많은 감정이 뒤섞인 한숨이 정국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전정국도 말하지 않고 가슴에 품어놓은 것이 많은 듯 보였다. 차라리, 대놓고 말하면 좋으려만. 말도 하지않고 행동을 보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상황이였다.


“누가 뭐래?.”
“뭐?…”
“누가 뭐라고 했냐고. 왜 너 혼자서 또 도끼질인데.”


인상 쓴 정국의 얼굴은 처음보았다. 7년 연애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인상 쓴 적 없던 전정국이였는데, 헤어지고 나니 인상 쓰는걸 더 많이 보는 것 같았다. 도끼질이란 말에 울컥- 한 나는 더 강하게 밀어 붙였다. ‘그럼 애초에 사람 신경쓰이게 하지를 말던가.’ 억울했다. 사람 신경쓰이게 해놓고, 이제와서 착각이라는 듯한 모양새의 말을하고 있으니… 나는 농락당한 기분에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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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누가 누구를 신경쓰이게 했다는거야.
너 혼자 또, 착각한거 아니고?.”


정국의 말에는 조소가 섞여있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있단 늬양스의 말에 심장이 아렸다. 나도 나름 네가 걱정되서 따라다닌건데…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참했다. …상처 준 것은 그 뿐만 아니였다. ‘또’ 라는 말이 내 심장을 찌르다 못해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말은 즉, 연애하던 그 시절에도 나 혼자 착각한 적이 있다는 말이 되니까. 7년 연애 동안 전정국과의 나의 감정은 같다고 생각했는데… 전정국은 그게 아니였던건가?. 울분이 터져나왔다. 


네 앞에서 그 누구보다도 비참해지기 싫었는데. 결국 터진 울분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 그렇게까지, 나한테 상처주고 싶니?. 내가 미워?, 그렇게 버리고 가서?.”
“… …”
“근데 너였어도 똑같은 생각했을걸?, 다를거라고 자만하지마.”
“… …”
“…그때 나만 무너졌어?, 넌 몰랐겠지만… 아니, 모르는 척 하고싶었겠지만... 너도 무너지고 있었어.”


휘몰아쳐오는 불행과 버겁기만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선,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아야하던 시기였다. 소중한 것은 내려놓으면 그리움은 잠시지만, 불행은 견디려고 하면 할수록, 진흙탕에 진창 빠지는 느낌이니까. 그래서, 널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죽는건 너와 나일테니까.


“내가 그 상황에서 무슨 선택을 달리 할 수 있었을까.”
“… …”
“그럼, 정말 너랑 함께 불구덩이로 자살했어야 했어?.”


정국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때의 난 무너지고 있었고, 너 또한 그랬다. 헤어질 때도 그랬다. 오히려 다행이란 감정이 더 들었다. 거기까진 똑같다 쳐, 하지만 정국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지금도 선을 긋고 밀어내는지, 아직도 힘든 일이 있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시 일이 되풀이 될까봐 두려워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너랑은 나쁜 사이가 되고싶지는 않았는데.”


나는 손으로 얼굴을 덮고 중얼거렸다. 지친다. 아니, 애초부터 말이 안된다. 헤어진 전 연인과 좋은 사이로 남는다니. 여기가 할리우드도 아니고. 나는 가영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제는 더이상 지체하지 않고 선택해야했다. 받아들일지, 아님 버릴지. 나는 전정국에게서 한 걸음 멀어지고서 말했다.


“그래. 네 뜻대로 하자.”
“…무슨”
“친구 말고, 동료만 하자. 동료만.”


헤어졌어도 좋은 기억만 있었기에,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 믿었다. 그건 자만이였다. 한 번 깨진 파편이 원상복구가 될 수 없듯이. 한 번 깨져버린 사이도, 금이 가긴 마련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잠깐,”
“아니, 그만 말해. 네가 왜 이렇게까지 행동하는지도 알 것같아. 근데 전정국.”
“… …”
“나는 무서워.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소중하기에 더 무섭다.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서 가버린 여주에, 정국은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서운함에 이성을 잃어버렸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상처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또 상처를 주고 말았다. 


머리로는 알고있는 이론이면서, 대체 왜 몸은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건지. 정국은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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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닌데…”



























[찐떡이의 사담]
쌍수덕에 앞이 잘 안보여서 오타 있을 수도 있어요.
나중에 회복이 다 되면, 한 꺼번에 고칠게요.
그리고, 여주의 이름 오류는 제 불찰입니다. 헷갈렸어요.
일단 보이는대로 다 고치긴 했는데, 또 있으면 반드시 고칠게요.

ㄴ그리고, 정국이와 여주의 관계성을 설명하자면.
정국이는 자신을 밀어내는 여주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또 거친 말로 상처를 줬어요. 여주도 정국이가 자신에게 험한 말을 하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아챘지만 무서운거에요. 옛날 일이 반복될까봐.
정국이도 여주와 제가 쉽게 재회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는 있지만, 머리로 알고있는거랑 서운한 건 따로라 제 의지와 다르게 상처주는 말을 하게된겁니다.


[구독자 갑자기 늘어난 거랑, 많은 사랑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로 보답할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