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 공식
W. 망개찐떡
거리를 두겠다는 선언을 들은 후,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곤에 찌든 몸을 침대에 누였다. 이상한 일이였다. 몸은 분명히 피곤한데, 머리는 말똥말똥한게 회사에서 여주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 치듯이 계속 생각났다.
‘아니, 그만 말해. 네가 왜 이렇게까지 행동하는지도
알 것같아. 근데 전정국.”
“… …”
“나는 무서워. 예전으로 돌아가기가.”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네가 얼마나 고민하고 망설였을까, 마음이 저리면서도 한켠으로는 그런 말을 꺼낸 네가 미웠다. 조금만 더 망설여주지, 조금만 더 고민해주지.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마음은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하아, 차여주.”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차여주란 이름을 곱씹으며, 가방 안에 손을 넣어 담배를 찾았다. 5년 전엔 절대 피우지 않았던 나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결과물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었던 나는 담배를 찾았다. 그 덕에 5년만에 골초가 다 되어, 이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담배를 찾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후으…”
담배의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필터를 한 번 빨아들이고 내뱉을 때마다, 폐 속 가득 연기가 차올랐다가 빠지는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순간 과거도 연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뱉겠다고 마음먹으면, 사라질 수 있도록. 하지만,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씨, 정신 차려봐요. 여기에요?.”
입에 물고있던 필터를 빼곤 잿덜이에 짓누른 나는 복도에 울리는 남자 목소리에 한숨을 쉬었다. 다 좋은데, 여기는 복도 방음이 잘 안됐다. 값도 싸고, 인테리어도 좋은데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토를 할 때마다 그 소리를 듣고 깰정도니. 그냥 누가 술 취해서 지인이 데려다주겠거니, 하고 침대에 몸을 다시 누이는데 순간 온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잠시만, 우리 앞 집… 차여주 잖아?.’
나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현관문을 여는데 성큼성큼, 다섯 발자국도 가질 않았는데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두 볼을 붉게 물들이고, 걸어온게 아니라 거의 들리다싶이 남자의 손에 붙잡혀 있는 여주의 얼굴이 보였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신건지, 문을 열자마자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풍겨댔다.

“…아, 죄송합니다. 많이 시끄러우셨어요?.”
미간이 자동적으로 찌푸려졌다. 여주의 옆에 남자가 있는 것 만으로도 신경쓰여 죽겠는데, 같이 술을 기울였는지 남자에게도 미세하게 술 냄새가 났다. 그것도 모자라서… 시선이 여주의 허리춤으로 옮겨갔다. 다정하게 허리를 받쳐주고 있기까지. 여러모로 눈살을 찌푸리게했다.
“죄송해요. 금방 데려다드리고 갈게요. 여주씨, 비밀번호 좀…”
“흐흫, 어!! 졍구기다. 전졍국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이 풀린 여주는 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헤실거리며 웃더니, 삿대질을 하며 가르킨다. 여주의 말에 남자도 당황했는지 나와 여주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여주씨랑 아시는 분이였구나…”
“으응. 마자요. 졍국이, 내 친구... 아니아니, 직!장!동!료!.”
친구라 말하던 입이 방향을 틀어 직장동료라고 말한다. 술은 먹었어도 낮에 있었던 일은 기억한다 이건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고는 금세 손을 뻗어 여주의 얼굴을 살짝 눌렀다. 아니, 짓뭉겠다는 말이 더 어울린 행동이였다. 으붑.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며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는 여주를 보며 나는 낮게 읆조렸다.

“니가 인간 알콜솜이야?. 하루도 술을 안 먹는 살이 없어.”
제 얼굴을 충분히 덮은 내 손에서 겨우 벗어난 여주는, 자신을 얼굴을 만지작거리더니 미간을 찌푸리고는 입술을 내밀었다. 어딘가 상당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인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다. 술 마신 너도, 옆에 있는 남자도.
“저기 아무리 친구라도, 얼굴을 그렇게…”
“당신 나 알아?.”
“네?…”
“나 아냐고.”
“아ㄴ,”
“그럼 차여주랑도 잘 모르겠네. 차여주랑 나랑은 인생의 반을 함께한 사이거든.”
너보다 내가 차여주를 더 잘안다는 뜻이 내포된 말이였다. 미세하지만 남자의 미간이 구겨진게 눈에 뛰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눈 앞에 남자보다는, 내 앞에서 무방비하게 웃고있는 차여주가 더 신경쓰였으니까.
“차여주. 똑바로 걸ㅇ,”
“근데 앞으로 더 알아갈 사이라서요.”
남자의 말에 신경이 팍- 꽂혔다. 알아갈 사이?. 시발, 이건 또 뭔 개소리야. 나는 여주의 허리에 팔을 감싸고는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여주의 허리에 팔을 감싸려던 찰나의 순간, 나는 허리를 끌어당겨 내 품에 여주를 안았다. 차여주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거의 감다싶이 하고는 가슴팍에 기댔다.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왔다. 알아갈 사이?, 를 입으로 한 번 더 곱씹던 나는 조소를 내보였다. 나만큼 차여주를 잘 아는 사람이 없는데, 차여주를 알아가겠다?. 그 말은 말도안되는 소리였다. 여주가 나 이외에 경계를 풀 일도 없을 뿐더러, 내가 그냥 지켜볼 리가 없지 않은가.
“충분히 그럴 자격 있는거 아닌가요?. 난 엄연히 소개팅 남인데.”
“소개팅?.”
품에 안겨있는 여주를 힐끗- 내려봤다. 아, 낮에 카페에서 소개팅 얘기를 하더니. 결국, 나랑 이야기 끝내고 소개팅을 하러 간건가. 나도 모르게 이를 뿌득- 갈 뻔했다.
“네. 그쪽이 여주씨랑은 무슨 사이인지는 모르겠는데, 여주씨 함부로 대하지마세요. 당신이 그렇게 대할 사람 아닙니다.”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내가 차여주를 어떻게 대했다는 건데. 여주에 대해 나보다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는 보란듯이 웃으며 여주의 머리에 입술을 대며 말했다. ‘이 세상에 차여주는, 내가 제일 잘 알 걸?.’ 속이 뒤틀리라고 일부러 비꼬면서 말했던건데, 남자는 잠시 균열이 가는가 싶더니 입꼬리에 미소를 담았다.

“아, 전 남친 뭐 이런건가. 근데, 여주씨가 그쪽 다시 받아준데요?. 내 생각에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랬다면 여주씨가 소개팅에 나올리가 없잖아.”
이번 공격은 내게 제대로 먹혔다. 여주의 어깨를 붙잡은 손이 움찔거리자, 남자는 빈틈을 찾은 것마냥 이겼다는 얼굴로 코트에 손을 집어넣더니 어깨를 들썩 거린다.
“보아하니, 혼자 미련 남은 것 같은데.”
“… …”
“내가 여주씨라면 좀 소름끼치겠어요. 전 남친이 집까지 근처로 이사오고.”
“…그런거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면 함부로 지껄이지 마.”
이 면에는 억울했다. 내가 쫒아온게 아니고 이건 정말로 우연이였다. 내가 여주가 다니는 회사로 이직한 것과, 우연히 이사오게 된 것. 전부 다 우연이였는데, 오늘 처음 본 남자에게 스토커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더러워 발끈했다. 그러나, 남자는 기회를 잡은듯 더욱 나를 압박했다.
“우연?. 뭐, 이사 온 건 그렇다 치고… 그렇게 여주씨를 ‘아직도’ 제 연인인 것 마냥 해동하지마세요. 그건 일방적인 폭력이잖아.”
“… …”
정말로 맞는 말 하나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분해서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니, 남자가 어깨에 손을 올려왔다. 성인군자처럼 가르치려는 모양새가 퍽, 역겨웠다.
“뭐, 오늘은 그냥 갈테니까. 여주씨 집에 잘 데려다 주세요. 난 잠든 여주씨를 상대로 무슨 짓 하는, 당신이 그 정도로 쓰레기라고는 생각안할테니.”
“…무슨 개소리를,”
대체 무슨 역겨운 소리를 하는거냐고 한 소리를 하려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는 남자의 발걸음이 뚝- 멈추더니 핸드폰을 꺼내 찰칵-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혹시모르니까, 사진은 찍어놓고 갈게요-.’ 란다. 무슨 저런 또라이가 있나 싶어서, 그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 있었다.
.
.
.
.
.
잠이 들다싶이 한 여주를 내 침대에 눕힌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어앉아 바라보았다. 그 남자가 가기 전에 했던 말이 머리에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일방적인 폭력’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너도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내 미련이 너에게는 정말로 폭력이 될 수 있는걸까. 나는 매트리스 시트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로 그런거라면, 널 이제는 진짜로 놓아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힘들던 순간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흘러서 시트를 적셨다.
“…진짜로 그런거야?.”
흡, 나도 모르게 흐느껴서 울었다. 깰까봐 최대한 숨죽여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긴 했지만, 한 번 복받힌 감정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시트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히 새어나갔다. 참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됐다.그때 따뜻한 손길이 내 머리통에 닿았다.
“…전정국.”
“…흐으, 여주야… 흡.”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올린 나는, 손으로 최대한 붉어진 눈을 가리려고 애썼으나 입술 새로 흐느끼는 소리는 막지 못했다. 나는 네게 묻고 싶었다. 정말로 내 미련이 너에게 폭력을 날리는 것이냐고. 그렇다면 진짜 이제는 미련을 끊어내야 할 때가 왔다.
제발 대답해주길 바랬다.
폭력이 아니라고,
.
.
.
너도, 미련이 남았다고.

“내 미련이… 너한테는 폭력이야?.”
[찐떡이의 사담]
정국이 계속 울리고 싶다. 진심으로. 개 커엽.😆
댓 20개 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