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의 달은 나를 스치고

02 _ 왜 겨우 내게 밝고 따뜻한 네가 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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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_ 왜 겨우 내게 밝고 따뜻한 네가 왔는지





중학교 1학년, 아직 어린 우주에게는 입학하는 학교의 정문은 너무 높았고, 다니게 될 학교는 너무 넓었다. 중학교는 처음이라 두려운 마음에 습관적으로 손을 움직여 아빠의 손을 찾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자신의 양 옆이 휑하니 비어있었다. 잘게 흔들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았다. 어쨋거나 자신은 살아가야한다. 난 잘 살수 있어.

몇번을 다짐하고 들어간 중학교는 더 차가웠고 소문은 빨랐다. 반 아이 중에는 아빠가 기자인 아이가 있었고, 얼마전 그 사건에 대해 취재한 아빠의 어깨 너머로 구경한 자료들을 들먹이며 우주에게 새 이름을 지어줬다. 너 김우주지, 맞지? 살인자 딸. 그럼 너도, 살인자의 피가 흐르겠네? 살인자. 우주의 이름이 된 새로운 이름이었다. 반 아이들은 우주를 살인자로 기억했고 우주의 중학교 1학년, 첫날은 처참히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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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우주는 혼자가 되었다. 얼마나 바랬던가. 누군가, 제게 손을 내밀어주길. 왜 아무도 오지 않는거지? 왜 난 혼자지? 그런 생각들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러기를 5개월 쯤. 우주의 독백은 지워졌다. 빈 저의 옆자리가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진 시기였다. 그래, 난 살인자의 딸이니까. 비겁하게 도망친 살인자의 딸이니까. 어느새 저를 혐오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수 있었다. 우주 자신조차도,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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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 날은 특별할줄 알았다. 무지개가 뜬다던가, 비가 온다던가. 말 그대로 다른 날들과 다를 줄 알았다. 사실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될 날은 평범한게 특별한 것이다. 다른 날보다 더, 이상함을 느낄만큼, 평안하고. 순조롭게.

우주에게도 그런 이상하리만치 평범한 날이 찾아왔다. 24시간, 그 평범한 시간 속에 딱 하나 환하게 빛나고 유달리 특별한게 하나 있었다면,

“이런 곳이 있네?”

망가진 내 삶 속에 들어온 너라는 아이였다. 전정국.

반에 있으면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릴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그렇게 싫었다. 이미 우주 자신도 저를 살인자로 느끼고 있는데, 그럼에도 살인자라는 단어가 싫었다. 그래서 우주가 보통 지내는 곳은 학교 건물 뒤편의 벤치였다. 입학식, 아이들의 차가움에 따뜻한 곳을 찾아 학교 이곳저곳을 떠돌다 발견한 장소였다. 아이들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날로 그 벤치는 우주의 것이 되었고 우주가 안정을 얻는 곳이 되었고 우주가 가장 자주 오는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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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범한 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피해 벤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들리는 발걸음 소리와 남학생의 목소리에 눈을 떴었다. 아이는 내가 앉은 벤치의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이상함이었다. 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다른 아이들에게서 잘 보여지는 감정이 보이지 않는지. 왜 너는 웃고 있으며, 그 웃음이 거짓이 아닌것 같은지. 멍한 바라만 보는 나에게 그는 다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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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전정국이야, 너는?”

전정국. 입안에서 이름을 천천히 굴렸다. 스스로 저를 살인자로 정의해버린 우주는 입안의 이름에서 따뜻함을 느꼈고, 자신이 스스로 살인자로 정의하고 있었던 의식 너머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감정에 알수 있었다. 나는 살인자가 되기 싫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살인자가 아니야. 여태 외치지 못했던, 여태 스스로에게도 숨겨왔던, 우주의 다짐이자 마지막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