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무관심

*Trigger warning : 자살과 관련된 묘사가 포함되어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수호신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 볼 수 있는 19살 생일. 유현이 침대에 누워 아무런 미동도 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생일이라기엔 너무나 어둡고 사람의 온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집안, 유현이는 3년 전에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었다. 한 번의 사고로 두 명의 사람이 죽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고였다. 충분히 세 명 다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의 사고였다. 하지만 가혹하게도 사고 이후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은 유현 한명 뿐이었다. 유현은 수호신을 믿지 않는다. 물론 존재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수호신이 인간들을 지켜준다는 말을 믿지 않을 뿐.



/



그 시각 유현의 수호신인 민혁은 설레는 얼굴로 신전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유현이가 올 때까지. 그동안은 자기만 유현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살았는데, 오늘을 기점으로 유현이도 자기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환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결국 해가 떨어질 때까지도 신전엔 사람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평소 유현의 옆에서 항상 예의주시를 하며 유현이만 쳐다보고 있던 민혁이었기에 유현이가 수호신을 싫어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까지도. 하지만 도대체 그 수호신이 뭐길래 궁금해서라도 자신을 보러 나올 줄 알았다. 결국 유현이의 생일이 허무하게 지나고, 민혁은 쓸쓸하게 신전을 나와 유현의 집으로 향했다.



/



“안녕.”Gravatar


낮은 목소리가 텅 빈 방 안에 울려 퍼진다. 민혁이 유현이에게 처음으로 건넨 인사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해진 그 애의 표정과 목소리였다.


“누구신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오시는 거죠?”


유현의 물음에 자신을 반기지 않을 걸 아는 민혁은 애꿎은 자신의 손만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자기는 유현이를 오랫동안 봐 왔고 그 애를 너무 사랑했기에, 미움 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튀어나온 약간의 반항이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하지만 민혁이 입을 다문 채로 시간이 지나갈 수록 유현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하...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빨리 나가세요.”


유현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선 손을 휘휘 내저은 뒤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민혁은 지레 겁이 났다. 내 정체를 밝혔을 때도 이런 표정이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소개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꼼짝없이 이 집에서 쫓겨나야 했기에. 민혁은 그렇게 심호흡을 몇번을 더 한 뒤에야 유현에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안녕. 나는 민혁이야, 이민혁. 네 수호신이야.”Gravatar


유현은 수호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민혁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방금 뭐라고 했어...? 뭐라고 했냐고.’ 되물어보는 유현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그 예쁜 눈에서 투명한 액체가 툭- 하고 떨어졌다. 민혁은 유현이 울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저릿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이 못 지켜준 것 같아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그런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천천히 그 애에게로 다가가 깊게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진정된 유현은 바로 민혁의 어깨를 밀쳐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또다시 자신의 침대 위에 등을 돌리고 누웠다. 슬프게도 민혁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유현을 보며 침대 아래에 앉아 집 안이 불 없이 환해질 때까지 유현이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있는 것 뿐이었다. 유현이가 날 반기지 않으니까. 불편하지 않게 옆에 얌전히 있어야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다짐이었다.


“잘 잤어?”Gravatar


민혁이 맛있는 밥을 차리고 있는 동안 유현이 방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집에서 오랜만에 밥 냄새가 나니 자다가도 배가 고팠나보다. 민혁이 활짝 웃으며 유현에게 밥을 먹으라 말을 전했고, 유현은 그런 민혁을 다 보고서도 무시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이후로도 유현은 민혁을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민혁이 보이기 전처럼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밖에 나가고. 민혁은 불편한 티를 팍팍 내는 유현을 보고서도 떨어져 주지는 못했다. 마음 같아선 눈에 안 뜨이도록 멀리 사라져주고 싶었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유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되니까.


민혁이 유현을 과보호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니까 유현의 부모가 모두 죽었던 날. 원래는 그 사고에서 유현이 죽어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현이만. 하지만 수호신을 볼 수 있었던 부모가 민혁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했다. 제발 자신들이 죽어도 좋으니 유현이만 살려달라고. 유현이만 지켜달라고. 유현의 부모에게도 각자 수호신이 있었기에, 허락을 구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살아남은 아이였다 유현이는. 두 명의 인간을 희생하고 얻은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사실을 굳이 유현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지금도 죽으려고 하는데 자기 때문에 부모가 죽었다고 하면 오죽할까. 그러니까 이건, 유현의 부모와 그들의 수호신, 그리고 민혁만 아는 비밀이었다.


하지만 그런 민혁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유현은 오늘도 세상을 뜰 준비를 한다. 유서는 굳이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읽어줄 사람도 없고 슬퍼해 줄 사람도 없으니.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민혁은 먼 발치에서 유현을 주시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으면 바로 막기 위해. 조금이라도 아플 것 같으면 바로 치료해주기 위해.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항상 준비하던 수면제도 없고, 커터칼도 보이지 않고. 그냥 앉아있는 유현의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물뿐이었다. 민혁은 또 어떤 방법을 생각해왔나 싶어 바짝 긴장하고 있었지만, 찰나였다. 유현이 물을 마시고 쓰러진 순간은. 민혁은 곧바로 유현에게로 달려갔다. 입에 거품을 문 것을 보니 독극물을 마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민혁이 옆에서 다 막아왔기에 생명까지는 지장이 없어 민혁이 개입하기 쉬웠지만, 목숨이 걸린 일은 당사자의 동의 없인 수호신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있어 꽤나 까다롭게 되었다. 


여기서 만약 민혁이 유현을 살리게 된다면, 민혁은 분명 유현 대신 죽을 것이다. 수호신이 절대적인 존재는 맞지만, 만약 수호신들이 지켜야 할 몇 가지의 조항을 지키지 않는다면 수호신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세상에 영원이 어디 있겠는가. 신들 사이에서도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민혁은 그것을 잘 안다. 유현의 부모들의 수호신들이 그렇게 된 것을 옆에서 다 지켜봤으니까. 유현을 살릴 때 부모의 동의는 다 받아냈지만, 딱 하나. 유현의 동의를 받지 못한 것이 흠이 되어 부모의 수호신들은 그들과 함께 땅에서 발을 뗐다. 그리고 이젠 민혁의 차례이다. 유현의 몸에서 독극물을 다 빼낸 민혁은 온몸에 찾아오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 정신을 잃으면 유현이 깨는 모습을 못 보니 이를 물고 버텼다. 몇분쯤 지났을까, 천천히 눈을 뜬 유현이 놀란 기색을 하며 민혁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창백해진 민혁이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민혁은 자신의 몸도 성치 않으면서 유현부터 먼저 챙기고는 괜찮아진 것을 확인하자 힘겹게 입을 뗐다.


“내가 다시 수호신으로 찾아올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게 누구든.”Grava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