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04화. 늦은 고백



"알겠어요. 미겔.

전해 줘서 고마워요. 곧 갈게요."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었다.




"무슨 소리예요?

줄리앙이요?

그 사람이... 지금 미겔 카페에 와 있다는 거예요?"





"하..."

"그런가 봐요...

뭐지...?"





"가서 만나려구요?"





"그래야죠.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용건 없이 오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럼... 나랑 같이 만나요."





"훈지 씨랑 같이 가자구요?

무슨 말이에요.

내가 애도 아니고...

줄리앙도 파리에 살 뿐이지 한국 사람이잖아요.

굳이 훈지 씨까지 마주쳐서 좋을 게 없어요."





"무슨 이야기 하려는 건지,

나도 들어봐야겠어요."




그는 당장이라도 따라 나설 기세였다.




"내가 다녀와서 있는 그대로 전부 이야기할게요.

나 못 믿어요?"




"당신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남자를 못 믿는 거죠.

아니...

끝난 지 몇 달이나 됐는데 왜 이제 와서 찾아와요?"





"어?? 훈지 씨도 스페인까지 찾아왔잖아요..."





"아니... 나랑 줄리앙이 같아요?"





"아니에요. 전혀 다르죠.

완전히 다르죠."





흥분한 그를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훈지 씨. 앉아봐요.

이건 내가 혼자 만나야 할 것 같아요.

훈지 씨한테도, 그 사람한테도

그게 예의인 것 같아요."





"..."





"응?"

대답이 없는 그를 향해 다시 한 번 물었다.






훈지 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훈지 씨... 나 다녀올게요.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되도록이면 책은 읽지 말고

차라리 음악을 들어요."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그를 집에 혼자 두고 나와도 불안하고,

같이 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진 줄리앙을

다시 만난다는 것 역시 부담스러웠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왜 미리 연락도 없이 온 걸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를 보고 일어서는 줄리앙이 보였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정아 씨?"





"줄리앙, 오랜만이에요.

나는 잘 지냈어요. 줄리앙은요?"





"이제 줄리라고 부르지 않네요?"



순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 앉아요. 줄리앙."





"여전히 라떼를 가장 좋아해요?"





"네..."





"내가 주문하고 올게요."





그는 여전히 매너가 좋았고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몇 달 만에 이렇게 다시 보니까...

신기하게도 우리가 헤어졌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네요."




주문을 하고 돌아와 앉으면서 줄리앙이 말했다.





나는 사실...

그와 만났던 시간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참...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셨어요?"






"네. 그때 정아 씨를 못 보셔서 많이 아쉬워하셨어요.

헤어졌다고 바로 말씀을 못 드렸어요.

사실... 아직도 모르세요."





나는 그의 말에 당황스러운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네? 그럼 아직 우리가 만나는 걸로 알고 계세요?"





"처음엔 말씀드릴 타이밍을 놓쳤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졌다고 말씀드리기가 싫어졌어요.

내가 당신을 아직 놓지 못했어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당신을 훨씬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몇 달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겨우 용기를 내서 이렇게 온 거예요."





"줄리앙... "





"나도 처음에는

나를 까맣게 잊고 한국으로 한걸음에 달려간

당신이 밉고 화가 났는데...

당신은 처음부터 나한테 솔직하게 얘기했었잖아요.

남자 친구를 못 잊고 있다고.

어떻게 보면...

당신이 아니라 나한테 화가 난 것 같기도 해요.

당신이 예전 남자 친구를 잊을 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 주지 못했으니까요."





"아니에요. 줄리앙.

그건 줄리앙 잘못이 아니에요.

나한테 충분히 잘 해 줬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제발 우리가 헤어진 게 줄리앙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말아요."





"그렇다면...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어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네?"




"나보고 이대로 있으라고요?" <105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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