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여주
— 안녕하세요!!
박지민
— 어? 최여주 씨, 맞죠?
최여주
— 오~ 기억하시네요. 저도 기억해요, 박지민 씨 맞죠.
박지민
— 네, 맞아요. 기억해 주셔서 고맙네요. 타투 받으러 온 거죠?
최여주
— 당연하죠. 그때 무료로 해주신다고 해서 제가 덥석 물고 왔죠.
[ 한 달 전 ]
최여주
— 네, 알겠습니다. 지금 빨리 갈게요. 아!!
급한 일이 있어 정신없이 비좁고 북적거리는 골목길을 뛰어 지나가다가 어떤 남자분과 부딪혔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가방이 떨어지면서 속 물건이 다 떨어졌고 그 남자분도 놀라서 내 물건을 끝까지 주워줬다.

박지민
— 죄송해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최여주
— 아, 네···. 괜찮아요, 제가 주울게요.
박지민
— 아니에요. 저 때문에 떨어졌는데. 바쁘신 거 같은데 죄송해요.
최여주
— 아니에요, 괜찮아요.
박지민
— 혹시나 훼손된 물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해주세요. 보상해 드릴게요.
그 남자분이 전해준 명함을 보니 ‘박지민’이라는 이름과 함께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손에 문신이 있어서 좀 날카로워 보였는데 생각보다 말을 하니 되게 친절하면서 인상도 좋아보이고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최여주
— 어,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박지민
— 그럼··· 타투하고 싶은 생각 있으면 연락 주세요. 오시면 무료로 해드릴게요. 진짜 죄송해서 그래요.
최여주
— 진짜 괜찮은데··· 정 그러시면 받을게요.
타투를 해보진 않았는데 사실 조금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해서, 그리고 ‘무료’라는 소리를 듣고 굳이 밀어낼 필요는 없겠다 싶어 명함을 받았다.
박지민
— 이름이 뭐예요?
최여주
— 네?
박지민
— 누군지 알아야 무료로 받죠. 제가 워낙 사람을 많이 만나서 아무리 예뻐도 잘 못 알아보거든요···.
최여주
— 아··· 최여주예요.
박지민
— 여주 씨···. 알겠어요, 바쁘신 거 같은데 얼른 가보세요.
최여주
— 네, 실례 많았습니다!
[ 현재 ]
박지민
— 아~ 또 기억하고 있으셨네요. 그냥 한 소린데.
최여주
— 네? 아, 그럼 다시 갈까요?

박지민
— 아뇨?! 거짓말이에요ㅋㅋㅋ
한 달 전 한 번밖에 안 보고 지금 두 번째 만남인데 왜인지 모르게 편했다. 또 편하게 대해주셨기도 하고. 타투샵에서 타투이스트로 만나니 색다름도 약간 있었다.
최여주
— 뭐야ㅋㅋㅋ 저 정자로 알파벳 J 해주세요.
박지민
— 무슨 의미인지 물어봐도 돼요?
최여주
— 음··· 있어요.
박지민
— 아, 알았다. 여주라서 J?
최여주
— 그것도 있는데 사실 남자친구 이름에도 J가 들어가서요. 남친 몰래 온 거거든요.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요.
박지민
— 아··· 남자친구 있으셨구나.
최여주
— 왜 실망해요?
박지민
— 제가요?
최여주
— 방금 실망했는데.
박지민
— 아니거든요- 어디에 하실 거예요?
최여주
— 손목 쪽에 할게요. 혹시··· 많이 아파요?
박지민
— 아, 처음이에요?
최여주
— 네···.
박지민
— 걱정 말아요. 안 아프게 해줄게요.
목소리부터 마음마저 한 달 전에도 그랬듯이 지민 씨에게서 따뜻한 기운은 아직 여전했다. 남친이 다른 남자랑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거 싫어하는데 남친 몰래 온 거라 걸릴까 봐 좀 무섭긴 했지만, 오랜만에 남친 말고 따뜻한 남자를 만나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이 분위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박지민
— 도안 뽑고 올게요. 이거 인형 안고 있어요.
최여주
— 뭐예요? 귀엽네요.
박지민
— 아프시면 이거 막 꽉 쥐어도 되고, 던져도 돼요.
최여주
— 아, 저 그렇게 난리는 안 필 거예요.

박지민
— 모르죠~?
지민 씨는 은근히 웃긴 면도 많았다. 나에게 귀여운 인형을 안겨주고는 도안을 뽑으러 갔다. 막상 하려니까 아프다고 주변에서 그러던데 조금 떨렸다.
.
박지민
— 이제 시작할게요. 아프면 말해요.
최여주
— 네···.
박지민
— 왜 벌써 힘들어해요ㅋㅋㅋ
최여주
— 떨려서요. 아플 거 같아···.
박지민
— 알파벳 하나라 금방 끝날 거예요. 시작할게요. 긴장 풀어요.
최여주
— 네···.
.
박지민
— 생각보다 안 아프지 않아요?
최여주
— 오··· 생각보다 안 아파요.
박지민
— 제가 잘하는 거예요.
최여주
— 네? ㅋㅋㅋ
🎵📱🎵📱
그때 내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친구 정국 오빠였다. 왜 하필이면 이때 전화가 걸려 오는지···. 내가 타투 받고 있는 걸 아는 사람 마냥 딱 걸려왔다. 그냥 받지 말까 생각도 했다.
박지민
— 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받아요.
최여주
— 아, 네···.
.
최여주
📞 응, 오빠.
전정국
📞 어디야? 너 집에 왔는데 없길래.
최여주
📞 내 집에 왔다고?
전정국
📞 원래는 서프라이즈로 오려고 했는데 망했다. 근데 어디야?
최여주
📞 어? 아··· 여기···.
머뭇거리고 있는 그때 핸드폰을 본인에게 줘보라며 손짓을 했다. 난 눈이 동그래져 놀랐는데 지민 씨가 내 핸드폰을 가져가 통화를 했다.
박지민
📞 안녕하세요, 여주 친구예요. 지금 친구들이랑 모여서 술 한잔 하고 있어서요.
전정국
📞 네? 술이요? 그러기엔 너무 조용한데.
박지민
📞 다들 취해서 곯아떨어져서 그래요.
전정국
📞 거기 어디에요? 여주 좀 바꿔주세요.
박지민
📞 여주도 약간 취해서요.
전정국
📞 그러니까 어디냐고요. 진짜 친구 맞아요? 안 알려주면 위치추적 합니다.
박지민
📞 네? 그··· 민정대 출구 쪽 골목···.
.
최여주
— 왜요? 끊었어요? 뭐래요? 남자친구 화 많이 났죠···.
박지민
— 우선 이거부터 얼른 끝내고요.
최여주
— 망했다.
박지민
— 여주 씨 오늘 취한 척 좀 해야겠네요. 미안해요.
최여주
— 아니에요. 이렇게 된 마당에 취해서 타투까지 했다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 오히려 잘 됐어요.
박지민
— 아··· 이제 끝났어요. 예쁘다.
최여주
— 헐··· 예쁜데요? 고마워요.
박지민
— 다음에 또 받고 싶으면 와요. 무료는 아니더라도 싸게 해줄게요.
최여주
— 에이, 계속 받기만 하면 안 되죠. 남친도 사실 반응이 어떨지 몰라서.
박지민
— 그래요.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조심히 가요. 취한 척도 잘 하시고요ㅋㅋㅋ
최여주
— 걱정 마세요ㅋㅋㅋ 갈게요. 고마워요.
타투가 작아서 꽤 금방 끝나 지민 씨와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재밌는 일들도 짜릿함도 모두 들어가 있다. 난 타투를 보며 여기 골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최여주
— 근데 너무 예쁜데···.
전정국
— 뭘까 이건?
최여주
— 악!!! 깜짝이야. 언제··· 왔어?
전정국
— 타투한 거야?
최여주
— 어?

전정국
— 술 마셨다면서 하나도 안 취한 거 같은데.
최여주
— 으에? 나 취했는데에···?
전정국
— 최여주.
정국 오빠의 얼굴을 보니 속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타투를 예쁘게 보면서 한눈팔고 있다가 오빠가 왔는지 모르고 이렇게 허무하게 들키고 말았다.
최여주
— 미안해···. 아니 오빠한테 서프라이즈로 보여주려고···.
전정국
— 타투한 것 때문에 뭐라 그러는 거 아니야. 왜 거짓말해.
최여주
— 그야··· 오빠가 알아챌까 봐···. 아~ 기분 풀어. 얼른 집 가자, 나 춥다.
전정국
— 이걸 귀여워서 혼낼 수나 있어야지.
다행히도 내 애교에 기분이 좀 풀린 거 같았다. 그제야 난 긴장을 풀고 오빠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
전정국
— 그래서 J가 무슨 뜻이야?
최여주
— 여주, 정국 J.
전정국
— 뭐야, 우리 이름 들어간 거였어?
최여주
— 내가 이만큼이나 오빠를 사랑한다는 뜻이겠지?
전정국
— 그럼 나도 여주랑 똑같이 그거 J 타투 해야겠다. 어디서 했어? 방금 한 거 같은데 이 근처에서 한 거야?
최여주
— ㅇ, 어? 아니!! 여기 아니야.
전정국
— 왜 갑자기 흥분하고 그래.
최여주
— 아무튼··· 여기 아니야.
전정국
— 저기 타투샵 바로 있던데?
최여주
— 아니래도?
진짜 눈치가 왜 이렇게나 빠른 건지, 타투샵 있는 건 또 어떻게 봐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내가 남자한테 받았다는 걸 알면 또 화 뚜껑이 열릴지도 모른다.
전정국
— 여주가 한 곳이 아니어도 괜찮지. 저기로 가자.
최여주
— 아니!! 아니야!
전정국
— 최여주. 왜 이렇게 말릴까?
최여주
— 어···? 내가 뭘···.

전정국
— 너 설마 저기 남자한테 받았어?
‘망했다.’
전정국
— 최여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