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남자아이

이야기 13

오전 3:50

결국, 나는 오늘 가는 수학여행에 너무나도 설레어 잠에 들지 못하고 밤을 새버렸다. 밖은 아직 깜깜한 새벽이고, 10분 뒤면 수연이를 깨울 시간.

한번 톡이라도 남겨볼까, 하고 카카오톡창을 열었다.

시간이 지나도 답이 안 오는 걸 보면 얘는 자는구나, 생각했다. 그래 내가 이상한 거지.라고 생각해도 나는 수연이가 답을 주기를 기대했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나와 같이 안 잔 건지, 아니면 지금 일어난 건지 모를 수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기대했던 만큼 신났다.

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흘러나온 후, 수연이의 목소리가 휴대폰 속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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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ㅡ 여보세요.

정여주

“야, 너도 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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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ㅡ 응. 밤샜다, ㅋㅋㅋㅋ.

수연이도 나와 같이 밤을 새웠구나. 지금 시각은 오전 4시 3분. 둘 다 현재 깨어있으니 딱 한 시간 뒤에 준비를 끝내고 만나기로 했다.

정여주

“그럼 나중에 봐, 나의 작은 아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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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ㅡ 지랄.

그렇게 나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에 수연이를 만나러 화장실로 향했다.

오전 4:58

정여주

“다녀오겠습니다!!!”

준비를 다 끝낸 나는, 초코우유를 입에 문 채 현관을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항상 학교 갈 때마다 현관에서 마주치는 전정국에게 초코우유를 받지만, 오늘은 수연이를 만나기 위해 엄청 이른 시간에 나왔으니 전정국에게 받을 일이 없어 그냥 내가 준비했다.

하루를 달달하게 만들어주는 초코우유를 먹으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우리 집은 14층. 엘리베이터가 12층에 있을 무렵, 삐빅-하고 저 멀리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시간에 누가 밖을 나왔는지 궁금해 소리가 난 곳으로 뒤를 돌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사람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정국이 잠옷 차림으로 밖을 나왔기 때문이다.

정여주

“………전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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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우ㅡㅇ…. 여주ㅇㅑ…. 이ㅣ거ㅡ….”

정말 방금 잠에서 깬 건지 눈도 못 뜬 채 하품을 쉴 새 없이 하면서 나에게 초코우유 하나를 건네주는 그런 전정국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튀어나왔다.

정여주

“아닠…. 초코우유 주려고 지금 깬 거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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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우ㅡㅇ응…. 빨리 ㄱㅏ….”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나에게 초코우유가 주고 싶었나, 집에 초코우유가 넘쳐흐르는 건가, 왜 이 새벽에 깨어서까지 나에게 초코우유를 주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야 했다.

흰 반팔 티에 수면바지. 누가 봐도 자취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나에게 손 흔들어주는 전정국이었다. 혼자 사는 건가, 생각하며 닫힌 문을 바라보며 1층으로 향했다.

근데 얘 나 지금 나가는 거 어떻게 알았지.

“정여주!!!”

정여주

“오,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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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수학여행이잖냐~.”

수연이를 만난 나는 한 손에는 내 초코우유, 다른 한 손에는 내 캐리어, 그리고 겨드랑이 사이에 전정국이 준 초코우유를 들고 학교로 향했다.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어쩔 수 없지. 최수연이 놀려대는 거 빼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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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근데 왜 초코우유 굳이 2개를 가져오냐, ㅋㅋㅋ.”

정여주

“전정국이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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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헐, 허어어얼…ㅋㅋㅋㅋㅋ 대박. 와….”

뭐야…. 오늘따라 반응이 참 격한 수연이.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려보려고 애쓰지만 그것조차 되지 않고 그냥 활짝 웃으며 편의점으로 향했다는.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

“근데 캐리어 진짜 크다, ㅋㅋㅋㅋㅋ.”

“응. 네 뱃살처럼.”

“개새끼가.”

아침은 뭐 나는 X뚜기 미역국 컵 밥 먹고, 수연이는 육개장국밥이었나, 아무튼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학교로 갔더니 벌써 몇몇 온 애들이 보였다.

생각보다 캐리어 끌고 온 친구들이 많아 수연이의 뱃살처럼 커다란 내 캐리어가 부끄럽지 않았다.

이제 30분 후면 버스 탈 시간인데 정말 어제 일 때문인지 자리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다. 우주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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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근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정여주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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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아니 버스 자리를 우리 둘이 붙여주고 인천 39 애들 붙여주면 될 것을 굳이 왜 인천 39 애들이랑 우리 둘을 붙여 논겨.”

맞는 말이다. 우리의 버스 자리를 본 너희들은 알겠지만 선생님이 정해주신 버스 자리는

수연 인천39 인천39 나 인천39 인천39

이렇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정말 굳이 이렇게 하지 말고,

수연 나 인천39 인천39 인천39 인천39

이렇게 하면 참 좋을 텐데. 왜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하신 걸까. 내 짝인 애랑 수연이 짝인 애랑 싸운 건가, 아닌데 둘이 말하던데.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 1반이랑 2반 애들 반절 1호 차 타고!!! 나머지 2반 애들이랑 3반 애들 2호 차 타!!! 빨리빨리!!!”

“4반 5반 이리 오세요~!!! 6반은 저기로 가!!!”

“김남준!!! 핸드폰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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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헉!!! 네!!!”

드디어 우리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한창 시끌시끌했다. 이제 드디어 시작이구나. 2박 3일간의 스펙터클한 모험을 떠나려니 다들 떨리나 보다. 나도 마찬가지. 최수연은 그냥 미쳤고.

그새 다른 애들한테 가서 무언갈하려는 듯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언제 또 간 거고 나는 언제 버려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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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자 얘들아, 하나, 둘, 셋!!!”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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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수연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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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학교는 지겹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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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여기 제주도에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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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행복하길 바래앸!!!!”

“와아아아아아아!!!! 만세!!!”

정말 미쳤구나. 사행시는 언제 준비한 거야.

“야 너 도시락 뭐 싸왔냐.”

“배이컨말이지 당연히.”

“야 여기 내 자리야!!!”

“지랄 마, 내가 여기고 너는 저기야!!!”

“올~ 민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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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지

“……아…. 너 왜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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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민윤기 단발 버전~ㅋㅋㅋㅋㅋㅋ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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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내 분신년아, 운명이 더럽지? 버스 자리도 붙었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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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지

“닥쳐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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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ㅇ야….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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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풓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엄마 같대 미친년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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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지

“……씨발.”

웅성웅성, 역시 버스 안은 생각처럼 시끄러웠다. 도시락 뭐 싸왔냐고 물어보는 애들, 자리 때문에 싸우는 애들, 신나서 소리 지르는 애들 등등 많은 목소리들이 내 귀를 때렸다.

정여주

“내 자리가~ 어디일ㄲ,”

여기저기 둘러보며 다다르자 머리에는 헤어롤을 차고, 검정 마스크를 내린 채 사탕을 물고 누군가와 페메를 하고 있는 김도희가 보였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말을 걸어 말아, 고민하고 있을 때 김도희는 나를 발견하고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켜주어서 별말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폰만 하다가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직 많은 애들이 밖에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 물어보기로 했다.

정여주

"쌤, 저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130초 만에 다녀올 수 있는데.”

이석철 선생님

“다녀와. 숫자 센다. 1, ”

정여주

“아 지금부터 세는 게 어디 있어요!!!”

괘씸하게 지금부터 숫자를 세시는 선생님 덕분에 나는 화장실을 뛰어서 갈 수밖에 없었다.

정여주

“아오씨!!!”

그렇게 나는 마치 우사인 볼트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최대한 빨리 뛰었다. 진짜 130초 구라였는데.

정여주

“세이프!!!”

이석철 선생님

“…27…128초! 2초 남기고 돌아왔네. 정말 130초 만에 올 줄 몰랐는데.”

정여주

“저도 선생님이 정말 세실 줄 몰랐어요.”

나중에 여쭤보니까 안 세다가 내가 달려오는 거 보시고 126부터 세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시더라.

그렇게 나는 이제 버스가 출발한다는 소리에 얼른 내 자리로 돌아가려고 몸을 틀었다. 나 때문에 버스가 늦게 출발하면 안 되잖냐.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나는 내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맑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면서.

정여주

“응…?”

뭐야. 얘가 왜 여기에 있지. 버스를 잘못 탄 줄 알고 수연이 자리를 봤는데 얘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다행히 버스는 잘 탔지만 지금 내 옆자리인 김도희 자리에 누가 앉아있는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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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뭐해? 앉아.”

그래 앉아야지, 하지만 네 옆은 안돼. 대체 얘가 왜 김도희 자리에 앉아있고, 왜 태평하게 앉으라는 소리를 하고, 왜 아무도 얘가 자리를 바꿨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까. 아, 무서워서 그런가.

정여주

“왜 네가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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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왜? 있으면 안돼?”

참 당당하게 말하는 우리 전정국이. 미쳐 돌아버릴 것만 같다.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말아야 해.

정여주

“……하, 쌤!!!”

결국 말하기로 결정난 나의 머릿속 인사이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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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어, 야…!”

정여주

“얘가 자ㄹ, 으헠!!!”

정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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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지금 무슨 상황일까. 본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나와 전정국은 벽치기 자세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내가 전정국을 벽쿵한 자세가 되어버렸다.

우리 둘의 사이는 아주 가깝고도 가깝고도 가까웠다. 이건 무슨 둘 중 하나가 입술을 내밀면 바로 뽀뽀가 되는 거리라고 해야 하나.

정여주

“……뭐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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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

상황을 파악하다가 정신을 되찾은 나는 바로 전정국에게서 떨어졌다. 정말 이게 무슨 일인지.

아마도 내가 선생님께 이르려고 한순간 전정국이 내 팔을 붙잡고 자기 쪽으로 끈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되어버린 거고. 정말 수학여행 첫날에 이런 꼴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나는 제발 아무도 못 봤기를 바라며 자리에 앉았다. 하필 아까 일 때문에 우리 둘 자리가 더 붙어있는 느낌이 든다지. 정말 짜증 난다.

근데 냄새는 좋더라. 다우니 꺼 이름 뭐였지. 내 전남친이 썼던 거랑 비슷했는데. 그래서 더 짜증 나긴 하지만 정말 냄새 하나는 좋았다. 그 새끼보다 더 잘 어울리는 거 같더라.

“정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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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야 정여주!!! 안 일어나!!?!!?”

정여주

“ㅇ응…. 일ㅇㅓ나씀.”

언제 잔 거야. 아무래도 밤을 새우다 보니 옆에 전정국이 있든 말든 잠이 쏟아졌나 보다. 그새 우리는 공항에 도착해있었고, 버스 안에는 나와 수연이밖에 없었다.

정여주

“……. 뭐야 얘는 언제 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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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연

“누구.”

아 얘는 모르지. 처음부터 코 골고 잘만 자더구먼. 굳이 말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서, 말 안 해야지. 어차피 말하면 또 난리를 칠게 뻔하니.

정여주

“있어. 그런게.”

이제 2박 3일 동안 엄청난 수학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3일 동안 전정국 포함 모든 스트레스들은 다 잊고 왕창 놀 생각이다.

숨겨진 이야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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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야, 김도희.”

버스 출발하기 전, 여주가 화장실을 간 틈을 타 자리를 바꾸려는 나, 전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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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뭐.”

어제 일 때문인가, 되게 띠껍네 이 친구.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나는 꼭 여기를 앉아야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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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자리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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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왜, 그렇게 정여주 옆에 앉고 싶어 안달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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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나

“욜. 전정국 좋아하는 애 생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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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아…. 씨발 아니라고. 박지민이 바꾸래잖아 ㅅㅂ.”

물론 개구라. 박지민한테도 똑같이 말했지롱. 김도희가 바꿔달라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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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 아…ㅎ 알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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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진

“뭘 그리 관심이 많은 거야, 전정국이 누굴 좋아하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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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어~ 아니고~ 지도 관심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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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ㅋㅋㅋㅋㅋㅋㅋ 빨리 가봐 도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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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희

“나 간당~.”

아싸, 이제 이 자리는 정국이 꺼.

스토리 2 뒤편_

진짜 아까 심장 터질뻔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여주가 쌤한테 말하려고 하자 실수로 내가 팔을 잡아당겨서 우리 둘의 얼굴이, 아 더 이상 못 말하겠다.

아무튼 그것도 설렜고, 두 번째로 설렜던 거는,

“야 전정국 이거 봐봐,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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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뭐.”

“단톡 못 봤냐, 박소현이 보냈던데 ㅋㅋㅋ.”

친구가 내민 것은 나와 여주가 자는 사진이었다. 말만 들으면 별거 없는 사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특별한 게 있다면,

머리를 맞대고 자는 우리 둘의 모습이었다.

전정국 image

전정국

“엏ㅎ 야, 크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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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ㅎ미칞ㅎ.”

내가 저렇게 여주와 잤다니, 생각만 해도 웃음이 새어나온다. 친구 앞이라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지만 자꾸 웃음이 나오는 걸 어떡해.

“뭐냐? 너 왜 웃냐 ㅋㅋ.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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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ㅎ뭐? 안 좋아해 미친놈아.”

“응 아니고~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