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수사일지

Ep. 03 ° 흑장미 살인사건 (2)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소리는 김 경장님이 내 심문 유도에 감탄 했다면서 날 칭찬하고 계시는 소리였다. 내 마음도 모르고 칭찬 해주시는 게 한편으로는 칭찬 받아서 좋기도, 한편으로는 부담감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김태형 [29] image

김태형 [29]

"저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김태형 [29] image

김태형 [29]

"처음 하는 심문을 그렇게 침착하게 잘 하다니..."

김태형 [29] image

김태형 [29]

"일단 하 순경 머리는 확신의 재능으로 가지고 태어난 탈랜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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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32]

"그래서, 온 지 하루밖에 안된 애를 심문 하도록 시켰다고?"

민윤기 [31] image

민윤기 [31]

"내가 그러라고 하 순경 보낸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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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아- 김 경감님이랑 민 경위님도 보셨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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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저 원래 심문할 때 안 웃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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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근데 막 웃음이 튀어나오고..."

김남준 [30] image

김남준 [30]

"어? 하 순경 언제 왔어?"

하여주 [28]

"...아. 방금..."

박지민 [29] image

박지민 [29]

"김 경장이 하 순경 칭찬하는 거 다 들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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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아무튼 하 순경. 진짜 잘했어 알았지?"

하여주 [28]

"감사합니다..."

정호석 [30] image

정호석 [30]

"뭐 알아낸 거 있어?"

하여주 [28]

"...우선."

그래. 그건 이따 생각하고... 한 사건에 집중 좀 하자. 앞으로 머리 아플 일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끙끙거리면 앞으로의 일들이 너무 암담할 게 보여서 말이지.

하여주 [28]

"피해자 김유선씨와 꽃집 주인 한경숙씨는 친한 언니동생 사이였고 김유선씨가 '블랙플라워' 단골이었다고 합니다."

하여주 [28]

"사건 당일, 꽃집 마감 전 김유선씨가 꽃집으로 찾아왔고 수다를 떨다가 같이 꽃집을 나왔다고 합니다. 꽃집 문도 다 잠그고 마감을 했고요."

하여주 [28]

"둘은 귀가하는 방향이 달라서 꽃집 앞에서 바로 헤어졌고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한 한경숙씨가 사망한 김유선씨를 잠긴 꽃집 내부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김남준 [30] image

김남준 [30]

"...잠긴 꽃집 내부?"

하여주 [28]

"네. 그리고 최근 김유선씨와 김유선씨의 남편 이한민씨가 부부싸움을 심하게, 그리고 자주 해서 이혼까지 논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하니 이한민씨의 우발적인 범행도 예측 되고 있습니다."

박지민 [29] image

박지민 [29]

"알았어. 수고했고... 오늘 더 하실 거 있으세요 김 경감님?"

김석진 [32] image

김석진 [32]

"오늘은... 없는 것 같다. 부검 결과는 내일 저녁 쯤 나온다니까 야근 한다 해도 내일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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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32]

"오늘은 퇴근. 수고했다."

김석진 [32] image

김석진 [32]

"하 순경도, 오늘 첫 출근 했는데 살인사건 맡고 적응 하느라 수고 많았어."

하여주 [28]

"아, 네 감사합니다."

05:37 PM

다행히 오늘은 제시간에 집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시계의 분침이 오후 5시 40분에 가까워져 가는 시간에 무렵, 나는 강력 1팀 첫 출근 날을 무사히 마치고 비교적 조용히 퇴근할 수 있었다.

여주가 제일 먼저 강력 1팀 사무실을 나가고 그 안에는 일곱 명의 경찰들이 머리만 쥐어뜯고 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짐작 가다시피, 여주가 의문점을 가진 김 경감과 김 경사의 말 속에 숨어있는 진실들 때문이겠지.

정호석 [30] image

정호석 [30]

"...이번에는 기필코."

정호석 [30] image

정호석 [30]

"누군가를 희생 시키는 일을 만들지 않을거야."

하여주 [28]

"다녀왔습니다."

윤도운 [35] image

윤도운 [35]

"여주 벌써 왔어?"

하여주 [28]

"퇴근 하셨어요?"

윤도운 [35] image

윤도운 [35]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었지. 일 나가기 싫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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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운 [35]

"그래서 첫 출근의 소감은?"

하여주 [28]

"...음-"

소감이라. 너무 정신 없게 흘러가서 뭘 했는지 기억조차 안 나는 날이었다.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해서 의자에 앉아 옅게 미소만 지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챈 아저씨가 아무 티 안 내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릴 뿐, 감사하게도 더 이상은 내게 묻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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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운 [35]

"점심은 먹었어?"

하여주 [28]

"못 먹었지요... 오늘 엄청 바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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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운 [35]

"그러겠지_ 첫 날이기도 해서 긴장 또한 엄청 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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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운 [35]

"그럼 지금 엄청 배고프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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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운 [35]

"아침밥도 안 먹고 간 이 말 안 듣는 기지배야."

하여주 [28]

"딱히 배가 안 고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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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운 [35]

"그래도 먹어_ 굶고 내일 출근할 순 없잖아."

하여주 [28]

"...하긴. 무모한 짓이긴 했죠?"

여느 날처럼 수다를 떨며 실없는 웃음만 터뜨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내 핸드폰. 확인 해보니... 모르는 번호다. 평소에도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 편이라서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_

그와 동시에 귀에서 선배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여주 [28]

"아 뭐야...!"

알고보니 무전기와 연결 되는 인이어 통신을 안 끊고 퇴근 했다는 것이었다. 하도 바쁘게 일해서 인이어를 꽂고 있었는지 자각조차 못한 내가 신기했다.

정신 차리고 인이어를 꾹 누르자 더 커지는 선배들의 목소리. 그리고는 연결 됐다며 한껏 더 격양 된 선배들의 목소리가 내 귀를 따갑게 울려댔다.

전정국 [27] image

전정국 [27]

@ "하 순경!!"

하여주 [28]

@ "아. ㄴ, 네...! 하여주 순경 응답입니다."

정호석 [30] image

정호석 [30]

@ "지금 당장 서로 와. 알았지?!"

하여주 [28]

@ "네...?"

김태형 [29] image

김태형 [29]

@ "퇴근까지 시킨 마당에 미안한데 생전 김유선씨의 일기장이 발견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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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 "최대한 빨리!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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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 "대답해 하 순경!!"

하여주 [28]

@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시끄럽던 인이어가 끊기고 그제서야 내 귀도 좀 평온 해졌지만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재호출이라니, 꽤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는 모양이었다.

윤도운 [35] image

윤도운 [35]

"왜... 무슨 일 생겼대?"

하여주 [28]

"...바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새 증거가 나와서."

하여주 [28]

"늦게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저 기다리지 마시고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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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운 [35]

"어, 어어 그래...! 잘 갔다 와-"

덩달아 같이 당황해서 그 당황함이 섞인 아저씨의 응원을 받으며 신발을 구겨신고 서로 한 번도 쉬지 않으며 뜀박질 했다. 그래... 일찍 퇴근이라며 신나한 내가 이상한 거지.

도보 20분 거리에 있는 경찰서였지만 10분만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단정했던 제복은 어느새 땀범벅이 된 나로 인해 흠뻑 젖어있었다. 너무 뛰느라 겨우 멈춘 지금에서야 손이 덜덜 떨리기도 했다.

선배들도 그런 내 모습에 많이 놀랐는지 얼굴에 있는 땀이라도 닦으라며 휴지를 건네주고 시원한 물과 사무실 냉장고 안에 얼려놓았던 얼음까지 꺼내셔서 내게 주셨다.

하여주 [28]

"하, 아... 흐아, 괜찮아요 전..."

하여주 [28]

"김유선씨의 일기장이 들어왔다고요?"

김석진 [32] image

김석진 [32]

"...어, 어..."

하여주 [28]

"줘보세요."

민윤기 [31] image

민윤기 [31]

"...여기."

날 보고 적잖게 놀란 선배들을 뒤로 하고 김유선씨의 일기장을 살폈다. 생전 일기장이라... 이 안에 아주 중요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일기장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2002년 4월 29일 오늘도 남편이랑 싸웠다. 서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싸우다가 남편의 회사 상사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야 상황이 종료됐다. 이 끝도 안 보이는 지긋지긋한 싸움은 언제쯤 끝날까.

사건 발생 며칠 전부터 부부는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일단 한경숙씨가 말했던 자주 이어진 부부싸움 진술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2년 5월 3일 오늘도 한바탕 싸우다가 결국 이혼이 거론됐다. 동사무소로 이혼서류 뽑으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생각하건대 차라리 잘 됐다. 더 이상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되고 저 인간도 안 볼 수 있으니.

3일, 사건 발생 6일 전. 싸우다가 이혼하자는 소리가 나온 건 6일 전이 처음인 것 같았다. 김유선씨는 이혼이 차라리 나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편 이한민씨도 동의를 했는지 동사무소로 이혼서류를 뽑으러 갔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여주 [28]

"마지막 일기는... 5월 9일이니까 사건 당일."

2002년 5월 9일 재산 분배 문제로 싸우다가 경숙이 언니 꽃집에 갈거라며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싸움이 마무리 되었다. 이미 이혼서류에는 각자의 도장이 찍혀있는 상태였다. 나한테 칼을 들이밀며 죽으라고 소리치는 남편을 보니•••

...잠깐. 사건 당일 부부싸움 도중 이한민씨가 김유선씨에게 칼을 들이밀며 죽으라고 소리 쳤다... 조금은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건 당일 작성 된 일기의 마지막 대목.

나한테 칼을 들이밀며 죽으라고 소리 치는 남편을 보니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없었다. 내일이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하여주 [28]

"이게 끝인가요?"

김태형 [29] image

김태형 [29]

응. 뭐 감 잡힌 거 있으면 말해 봐.

하여주 [28]

"김유선씨가 최근에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는 한경숙씨의 진술은 거짓이 아니에요."

하여주 [28]

"4월 29일에 작성된 일기를 보면 '오늘도 남편이랑 싸웠다.'라는 대목이 있어요. 4월 29일은 사건 발생일로부터 10일 전이에요. 그러ㄴ,"

...잠깐. 분명 오늘'도'라고 했다. 사건 발생일로부터 10일 전인 날에 오늘'도'라고 했으면 10일 전보다 더 전부터 싸웠다는 건데. 한경숙씨의 진술은 요즘에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고 했다.

둘이 아무리 친한 언니동생 사이지만 가정사기 때문에 말을 안하고 숨기다가 최근에 말했거나 아예 말을 안했는데 한경숙씨가 대충 눈치로 알았거나 이한민씨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대충 부부싸움을 했다며 진술 했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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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왜. 뭐 짚히는 거라도 있어?"

하여주 [28]

"...이한민씨도 나중에 만나뵈어야 할 것 같네요."

하여주 [28]

"한경숙씨의 진술과 김유선씨의 일기 내용에서 어긋 나는 부분을 물어봐야겠어요."

하여주 [28]

"아무튼, 두 사람은 사건 발생일 6일 전. 싸우다가 이혼 얘기가 나왔고 이한민씨가 동사무소로 이혼서류를 뽑으러 간 사이 김유선씨가 쓴 일기가 5월 3일자인 것 같아요."

하여주 [28]

"이때 이혼 얘기가 처음으로 언급됐고 둘 다 이혼에 수긍한 것 같아요."

하여주 [28]

"김유선씨는 '차라리 잘 됐다. 더 이상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되고 저 인간도 안 볼 수 있으니.'라고 했고, 이한민씨가 서류를 뽑으러 갔으니 이한민씨도 동의한 것으로 보여요."

하여주 [28]

"진짜 동의 했는지는... 이한민씨 본인만 알겠죠."

하여주 [28]

"그리고 5월 9일. 사건 당일에도 일기가 적혀있어요."

하여주 [28]

"둘이 부부싸움 중 이한민씨가 김유선씨에게 칼을 들이밀며 죽으라고 소리쳤고, 김유선씨는 한경숙씨의 꽃집에 간다며 거의 도망쳐 나온 것 같아요."

하여주 [28]

"이 과정에서 이한민씨가 분노를 주체 못한 채 김유선씨를 쫓아가 살해 했을 가능성도 있고요."

하여주 [28]

"한경숙씨의 진술에서도 아직 의심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진술과 일기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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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32]

"김 경사. 이한민씨 위치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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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김유선씨와 같이 살던 집에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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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30]

"우리가 가서 진술 받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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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7]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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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30]

"주소 찍어 김 경사. 차 대기 시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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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30]

"선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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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아까 잘하더라 하 순경."

하여주 [28]

"감사합니다_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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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경무관님께 보고 드릴게. 너 포지션 정해주라고."

하여주 [28]

"포지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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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응_ 우리 다 맡고 있는 포지션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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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아마 한 번 일해보면 대충 알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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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너도 곧 확실한 포지션이 생길테니까 이대로만 해줘. 알았지?"

하여주 [28]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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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 [31]

"박 경장, 하 순경! 빨리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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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갑니다~!"

평소, 아니 첫 날부터 내게 무뚝뚝 했던 박 경장님의 칭찬까지 듣고 나서야 어깨를 피며 내가 강력 1팀에 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경찰이 된 것에 대해 잠깐 후회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이한민씨, 그러니까 김유선씨와 이한민씨가 같이 살던 집으로 와 집 앞에서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았고 혹시나 우릴 경계하는 건가 싶어서 여덟 명 중에 그나마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리는 내가 현관문을 두드리며 이한민씨를 불렀다.

하여주 [28]

"이한민씨- 계십니까?"

하여주 [28]

"이한민씨. 우리는 당신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입니다."

하여주 [28]

"저희가 부디 이한민씨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안에 계시다면 응답을 해주세요."

애처로운 목소리로 간절하게 이한민씨를 불러보지만 돌아오지 않는 신호. 하는 수 없이 혹시라도 안에 있을 이한민씨와 타협 같은 거라도 하자 싶었다.

하여주 [28]

"좋아요. 대답 안해줘도 되니까 안에 있다면 제 말을 잘 듣고 따라주세요."

하여주 [28]

"이한민씨. 지금 안에 계시다면 텔레비전을 키고 볼륨을 최대로 올려주세요."

하여주 [28]

"우리가 한민씨를 도와드릴 수 있도록, 응답 해주세요."

그렇게 숨 죽여 기다린지 얼마나 지났을까. 고요했던 집 안에서 시끄러운 홈쇼핑 방송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릴 뻔 했지만 겨우 힘을 주고 이한민씨에게 말을 걸었다.

하여주 [28]

"고마워요 용기 내줘서."

하여주 [28]

"저희는 흑장미 살인사건, 아내분이신 김유선씨가 살해 당한 사건을 수사 중인 강력 1팀입니다."

하여주 [28]

"많이 힘드시죠? 하루만에 아내분을 잃으셔서..."

말을 계속 이어나가려고 하는데 그때 정 경사님이 내 손목을 잡으시더니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싸인을 보내셨다. 그리고 문에 귀를 가져다대니 희미하게 들리는, 이한민씨의 울먹거림이 다소 섞이고 다 갈라져가는 목소리.

이한민 [38]

"유선이가 그렇게 된 건... 다 제 탓이에요..."

이한민 [38]

"제가 조금만 더 감정 조절을 했더라면... 그랬다면, 유선이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 말을 꺼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 말하다가는 울 것 같은 목소리, 여태까지 계속 울었는지 잠긴 목소리•••. 일단 김유선씨에게 미안해 하고 있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어림 잡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여주 [28]

"김유선씨에게 미안하시다면 저희를 집으로 들여보내주세요 이한민씨."

하여주 [28]

"저희와 이야기 하시면 김유선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을 하루 더 빨리 잡을 수 있습니다."

이한민 [38]

"...경찰분들이신가요?"

하여주 [28]

"네_ 잠시 저희와 이야기 좀 하시죠."

이한민 [38]

"몇 분... 오셨나요?"

하여주 [28]

"여덟 명 왔긴 했습니다만 불편 하시다면 몇 명만이라도 들여보내주세요."

이한민 [38]

"...잠시만 기다리세요. 집이 많이... 더럽네요."

집안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집안에서 풍겨져나와 코를 찌르는 지독한 술 냄새. 그리고 퉁퉁 부은 눈과 벌개지고 촉촉해진 눈가, 부시시한 머리, 역한 냄새... 다 이한민씨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이한민 [38]

"다 들어오세요- 누추하지만..."

역한 냄새를 꾹 참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한민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부디 이게 함정이 아니어야 했고, 돌발상황이 일어나질 않게 빌 수밖에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 한켠에 급히 치운 듯 한 술병들이 바닥에 나뒹굴었고 설거지 거리들은 싱크대에 산처럼 쌓여져 있었다. 설거지 거리라고 해봤자 라면밖에 안 드셨는지 양은냄비와 젓가락들만이 싱크대에 들어가있었다.

김유선씨와 이한민씨가 사이 좋게 같이 찍힌 액자들은 모조리 다 깨져있었고 눈물에 젖었는지 축축한 사진들도 몇 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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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27]

"...세상에."

이한민 [38]

"집이 좀... 많이 더럽죠?"

이한민 [38]

"아 유리 조각들 밟지 마시고 천천히 들어오세요."

하여주 [28]

"...아내분이 떠나시고. 많이 힘드셨나봐요?"

이한민 [38]

"...그렇죠 뭐. 마지막까지 못 되게 군 게 전데."

하여주 [28]

"오늘 김유선씨가 생전 쓰던 일기장이 발견 되었습니다."

하여주 [28]

"저희 쪽에서 증거품으로 입수를 했고요."

이한민 [38]

"뭐라... 적혀있던가요. 제 욕이 한가득 적혀있던가요?"

하여주 [28]

"요새 들어 두 분이 자주 싸우신다고 한경숙씨께서 그러시더군요."

하여주 [28]

"일기장에도 그런 내용들이 적혀있었어요."

하여주 [28]

"두 분이 자주 싸우시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쯤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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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32]

"...김 경장. 녹음기 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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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32]

"정 경사는 카메라 키고."

맨 뒤에 서계셨던 김 경감님이 조용히 행동싸인을 내리셨고 정 경사님과 김 경장님도 그 말에 따라 조용히 녹음기와 카메라를 작동 시키며 이한민씨 쪽으로 가까이 갔다. 진술에는 꼭 물증들이 있어야 하니까.

이한민 [38]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한 달 전부터였을 거예요."

역시. 한 달 전... 10일보다 훨씬 더 전부터 둘은 부부싸움을 해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한경숙씨는 요즘이라고 했지만, 한 달 전부터 매일 싸웠던 거면 절대 그게 요즘이라는 단어와 같이 쓰일수는 없는 법.

이한민 [38]

"원래는 사이가 좋았으니까... 하루 싸우고 말겠지라는 생각이었어요."

이한민 [38]

"근데 그게 한 달이나 이어지고, 결국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투명한 눈물을 바닥에 떨구는 이한민씨... 이게 과연 연기일까, 진심일까를 고민해야만 하는 내가 싫었다. 사람의 눈물을 보고도 냉정해야 하다니. 이보다 더 슬픔에 잠길만한 일이 없었다.

하여주 [28]

"...싸우셨던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이한민 [38]

"그냥 다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집안일 분배는 왜 안하냐, 술 많이 마시지 마라, 새벽에 자는 사람 옆에 두고 텔레비전 보지 마라, 늦게 들어오지 마라..."

이한민 [38]

"그 과정에서 제가 칼을 들고 유선이한테 죽으라며 소리 지르기까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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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9]

"그때 김유선씨는 어떤 행동을 취하셨나요?"

이한민 [38]

"방석으로 절 막으며 자기가 나가주겠다며 소리를 질렀고 옷을 갈아입었어요..."

이한민 [38]

"어디 가냐고 소리 치니까 경숙이네 꽃집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하여주 [28]

"사건 당일날에는 이미 이혼서류에 서로의 도장이 다 찍혀있다던데. 맞나요?"

이한민 [38]

"네... 아 죄송하지만 더 이상 말하기 힘드네요..."

이한민 [38]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고... 부검 해야 된다며 장례도 못 치루게 하는 터라..."

진술을 피하는 이한민씨 때문에 더 이상의 진술을 얻어내기에는 힘들어보였다. 그러자 녹음기를 끄고 범인이 누군 것 같냐며 내게 묻는 정 경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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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석 [30]

"여기서 바로 이한민씨를 체포해도 되고 아니면 좀 더 생각해도 돼."

하여주 [28]

"...박 경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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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응?"

하여주 [28]

"수갑... 챙겨온 거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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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있지...? 왜?"

하여주 [28]

"저 좀 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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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9]

"어, 어어... 그래."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바지춤에서 수갑을 꺼내 내게 건네는 박 경장님. 수갑을 받아들고 이한민씨 앞에 서서 입술도 몇 번 깨물고 심호흡도 한 다음에 이한민씨에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했다.

하여주 [28]

"...이한민씨,"

하여주 [28]

"당신을 김유선씨 살인 및 폭력 혐의로 긴급체포 합니다."

부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놀란 선배들을 뒤로 하고 눈이 커진 이한민씨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억울한 사람이 나로 인해 생기지 않기를... 지금 이 상황으로서는 간절하게 하늘에 빌어볼 수밖에 없었다.

_ 글자수 : 8298자 [제가 사실 분량조절을 잘 못합니다... 넘치는 분량을 그냥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봐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