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야한 점

04: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에게

04: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에게

11:08 PM

지금 시각 11시 8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저 놈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

전정국에게 따뜻한 보리차를 건네주자 저 놈은 내 눈을 피하면서도 보리차가 담긴 컵을 자신의 손에 쥐었다.

보리차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울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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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근데 있잖아, 너 나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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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커흡-! 켁..

전정국이 한 말은 나를 꽤나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전정국은 사레에 들린 나를 기다리고는 한 번 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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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정말, 나 보고 싶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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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크흠.. 아니? 홧김에 나온 말이었어.

홧김에 나온 말은 개뿔, 내가 얼마나 보고싶었는데!!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애써 내 마음을 모른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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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난 너 보고 싶었거든.

상당히 당황스럽고 괘씸했다. 사람 마음을 휘젓고 떠났으면서 하는 말이 내가 보고 싶었다고?

퍽이나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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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그 때, 너무 갑작스럽게 유학을 가게 되어서 아무 말도 못 했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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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그 이후 한국에 와서 계속 너 찾아다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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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그만해, 이미 내 기억 속에서 너는 지나가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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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이제부터 그냥 이웃사이로 지내자. 내 부탁이야. 불과 몇 일 전까지 서로가 없어도 잘 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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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서로에게 단순한, 그런 존재였잖아. 네 기억 속의 난 어떤지 모르겠지만 지나간 과거 미화시키지 마.

내가 말을 마쳤을 때는 침묵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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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한 번만, 들어주면 안 되는 거야?

이러면 내 마음이 약해지잖아.

너로 인해 더 독하게 잡았던 내 마음이, 너로 인해 무너져 내리잖아. 뎔국 나는 또 너에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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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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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그 날 아빠가 술에 취해 우리 엄마를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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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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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사실 우리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였어. 술에 취해 이유 없이 타오른 화를 못 참고 엄마를 죽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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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그게 너무 무서워서, 온 집안을 뒤져서 통장 2개를 찾아냈어. 엄마가 내 대학등록비로 쓸려고 돈을 모으던 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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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그 통장 찾자마자 할아버지께 전화하고 뉴질랜드로 갔어. 할아버지는 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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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그럼.. 유학 간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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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ㅎ.. 정확히는 유학이 아니고 도망이었지. 그 날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너한테 말도 못 하고 떠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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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그럼 연락이라도 했어야지, 이 바보야..! 나는 그것도 모르고 평생을 원망하면서 살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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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이 오해 풀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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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지금이라도 풀게 되어서.

저 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고 있었다. 나는 미안래 죽겠는데.

그 속을 아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그 때나 지금이나 무해한 놈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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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

나 사실 나 아까 너 보고 싶지 않다는 말, 거짓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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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 국

다행이네, 나만 그리워한 게 아니어서.

지금 이 대화들이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임을 느꼈다.

현아, 너 정국이 그렇게 미워하지는 마. 널 버린 게 아니야.

전정국. 김현 너무 보고 싶어 하지 마. 다시 만난다, 그러니까

"서로 그리워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