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어》

깨달음

지금 옆에서 말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그림자가 달빛에 비춰졌다. 유난히 길었던 그림자를 본 여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림자를 따라 수영장에 담겨있는 물로 향했다. 

은은하게 흔들리고 있던 물결에 비췬 얼굴은 김민규였다. 식은땀인지, 물에 젖은 것 때문인지 모르는 액체가 온몸을 적신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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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너 혹시 김민..."

결국 자신이 들켰다는 걸 알았는지 급하게 말을 가로막으며 간결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주에게 들켜버렸다.

여주는 왠지 그 표정이 안쓰러워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대체 무슨 이유때문인걸까. 밤에 혼자 연습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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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내 모습을 더이상 보려고 하지마... 제발."

애절한 민규의 반응에 자신이 봤던 장면이 사실이었다는 걸 여주는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표정을 봐버린 여주는 차마 그를 봤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그에게 매료된 듯 그의 모습에 멍때리고 있던 여주가 다시 정실을 차리고는 민규에게 말했다. 기나긴 침묵 끝에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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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걱정하지마. 아무에게도 말 안할테니까... 빨리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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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어, 그래...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의 안심하는 한숨소리가 여주에 귀에도 잘 들려왔다. 여주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음을 자부했다. 이유가 뭐든지 간에,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겠지.

민규는 여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두번이나 반복해서 말하고는 튀어나와있던 지느러미마저 숨겼다. 급하게 나오느라 비늘도 몇개 뒤집혀 버린 것 같았다.

벽에 붙어있는 거울로 비늘이 나오지는 않았나 확인하고는 여주가 있는 벽모서리를 잠시 바라봤다. 튀어나온 그림자를 보아하니 아직도 그녀가 그 자리에 서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호기심이 커져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확실히 그녀가 있음을 확인하고 뒷뜰로 뛰어갔다. 

민규는 마음속으로 정말 고맙다고 되새기고는 담장을 넘어 학교를 빠져나갔다. 그의 눈동자와 젖은 머리카락이 마구 흔들렸다. 

항구까지 열심히 뛰어간 그는 방파제에서 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헐떡이던 숨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왠지 오늘 이후로는 더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만든 여유로움이었다. 

그 자리에 남아있던 여주는 아까 그 장면을 잊으려 노력했다. 왠지 잘 잊혀지지도 않았고, 잊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 괜히 애석하게도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위해 깔끔하게 잊어버리기로 하고 그녀도 학교를 빠져나왔다. 달빛이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여주에게는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민규가 핀수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육상 선수인줄로만 알았는데 장비도 안벗고 어떻게?

이윽고 여주의 머릿속에는 그가 '인어왕자' 같았다는 한 문장만이 남았다.

09:15 AM

 끝내 집에 도착한 여주는 책상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아까 봤던 장면을 흐릿하게라도 그려냈다. 

마치 정확하게는 알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바다속에 있는 아름다운 것이 나타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민규가 정말 그랬을까?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 이후로 뭔가 그가 있었던 수영장이라는 장소마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펜을 이리저리 굴리며 고민하던 여주가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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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한번이라도..."

어느새 창문틈새로 비춰든 햇빛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있는 여주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08:35 AM

여주 엄마

"이 가쓰나야! 오늘도 지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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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으응...?"

시계를 확인하고는 여주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도 늦을 수는 없다며 빠르게 씻고 집 밖을 나섰다.

08:4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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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이여주,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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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아... 한번만?"

절대 안돼. 단호하게 거절하며 여주를 불러세웠다. 전과가 한두번이 아니라며 혼내자 여주는 그 와중에도 어제 일을 떠올리며 한 귀로 흘려듣는다.

체육쌤

"지각생은 다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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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우

"배여주 한명 뿐입니다."

체육쌤이 여주라는 말에 여주를 바라보자 최대한 불쌍한 눈빛을 보낸다. 그러자 원우와 여주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하는가 싶더니 말했다.

체육쌤

"얘는 내가 맡을테니 너희는 이제 반으로 돌아가."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선도부가 사라지자 여주를 풀어주는 체육쌤이다. 여주가 활짝 웃으며 크게 하트를 보내주자 입꼬리는 씩 올라가면서 빨리 들어가라며 혼내는 척한다.

여주는 다시 선도부에게 들키지 않을까 조용히 반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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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야, 배여주는 어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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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오늘은 별다른 짓 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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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현

"걔 혹시 지각해서 혼나는거 아니겠지."

석민이 여주가 지각해서 혼난다는 말에 방방 뛰며 좋아한다. 그러자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주를 보고 자빠졌다.

여주는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의자에 앉고는 언제 왔냐는 주현의 물음에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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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에이, 배여주님이 걸리면 말이 안..."

그러자 자신을 바라보던 민규와 눈이 마주쳐버리는 여주다. 왠지 모를 비장함에 얼어붙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자 분위기를 감지한 주현이 석민에게 물었다.

11:2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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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주현

"야, 쟤네 둘이 뭔가 있는 거 같지 않냐? 아까부터 가만히 앉아서 말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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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민

"에이, 김민규도 눈이 안 달려있는 건 아니거든?"

그래도 뭔가 이상하잖아. 주현이 석민에게 말하자 석민은 혹시 모른다며 조용히 빠져주기로 한다. 하지만 석민은 그럴리가 없다면서도 시선을 응시한다.

멍 때리던 여주가 어느새 주현과 석민이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근처에 민규밖에 없는 상황이 되버리자 온 몸에 돋아버리는 소름이 여주의 심정을 대신한다.

마침 의문점이 하나가 아니었던 지라 어색함을 이겨버리려 민규에게 용기내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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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어, 어제 일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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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신경 쓰지마. 뭘 봤든 진실이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뒷수습을 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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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거겠지."

여주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자 민규가 책상을 제치고 일어나더니 여주의 손을 잡아끌었다. 당황한 여주는 저항하지도 못하고 끌려갔다.

이를 지켜보던 주현과 석민이 서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쟤네 뭔가 있는 거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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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어제 날 보고 어떻게 생각했는데."

어제 둘이 마주쳤던 벽 모서리에 천천히 여주를 몰아 민규는 두 팔로 가둬버렸다. 이제 빼도박도 못하는 여주는 위협감에 자리가 후들거렸다.

여주가 말도 못하고 덜덜 떨자 민규는 팔을 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여주는 그가 이렇게까지 캐묻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제의 일이 중요하기라도 했던걸까?

여주가 민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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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그때 넌... 진짜 인어왕자 같았어. 멋있었다고. 그래서, 잊을 수가 없어."

민규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여주의 솔직한 말에 민규는 결심한 듯 말했다. 눈동자와 함께 목소리도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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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네 말이 틀렸어. 난,"

여주가 예상치도 못했던 말에 어리둥절하단 표정으로 민규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표정엔 진지함이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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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이곳에 처참하게 버려졌어."

고여있던 눈물이 민규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아픈 상처 때문이었다. 여주는 당황했지만 이내 그 말 뜻을 이해하고는 그를 가볍게 안아주었다.

민규는 왠지 멈추지 않는 눈물이 야속했다. 하지만 느껴지는 후련함에 어떻게 되던지 상관없다며 여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여주는 조금 당황하는가 싶더니 민규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며 달랬다. 여주는 민규에게서 자신의 어린모습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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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주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이제 울지마."

그 후로도 말없이 한참동안 서로를 안아준 그들이다.

민규는 여주에 품에 안겨 울면서 깨달았다.

차라리, 혼자 아파하는 것보다는 먼저 말하는 편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나와 같은, 사람이있었구나 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음에도,

인간은 믿지 못한 자신이 한심했다.

ㆍㆍㆍ

이젠 알아버린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