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에도 예보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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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주

작가님, 좀 늦었죠.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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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괜찮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먼저 작가님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작가님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그야 나도 물론 반가웠지만, 밖으로 꺼내 표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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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어떻게 지냈어요?

윤여주

뭐··· 바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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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아···.

윤여주

본론부터··· 그냥 바로 말할까요?

작가님과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안부나 묻고 있을 기분은 못됐다. 나는 이미 마음 정리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말하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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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

윤여주

작가님···?

작가님은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진 채로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내가 할 말을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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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말 안 하면 안 돼요?

윤여주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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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알 거 같아서···. 내가 너무 눈치가 없었네요.

윤여주

미안해요. 우리 다시 멀어져 봐요. 그럼 작가님도 다시 나 잊게 될 거고 나도···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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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정말 생각 충분히 하고 말하는 거 맞아요? 이게··· 최선이었어요?

윤여주

우리는 그냥 몰랐던 때가 서로에게 가장 좋았던 거 같아요···.

눈물이 정말 흘러넘칠 거 같았는데 꾹꾹 눌렀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또 약해질 걸 내가 나를 잘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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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그럼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소리예요? 내가 이해한 게··· 이게 맞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님 얼굴 말고 시선을 아래에 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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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 쳐다보고 말해봐요. 진심이에요?

윤여주

···네. 그냥 서로 오랫동안 보지 않으면 좋아하는 마음도 사라질 거고, 얼굴도 잊힐 거고. 다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정말 모든 사람에게 물어봐도 내가 다 바보 같다고 할 거다. 그토록 원하던 걸 이제 이룰 수 있게 됐는데 나는 이 기회를 너무나도 허무하게 날려버린다.

나는 그저 아팠던 기억을 모두 잊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지금 작가님과 만난다고 해도 그렇게 반갑고, 기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아서. 또 내가 작가님을 망칠까 봐··· 그게 싫었다.

이제는 작가님이 이런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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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큐레이터님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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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그런데, 나는 큐레이터님이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건지는 이해가 잘 안 가요.

윤여주

···잘 지내요.

작가님의 마지막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잘 지내라는 말과 동시에 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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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진짜··· 갈 거예요?

윤여주

잘 지내요, 행복하고. ···진심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그냥 나와버렸다.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흐르고 넘쳤다.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매번 엇갈리고, 틀어지고 슬픔을 반복하기 마련이었다.

작가님을 많이 좋아하지만, 자신이 없어졌다. 작가님을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무엇보다도 내가 많이 지친 상태라 이렇게 사랑을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

..

[3년 후]

3년이란 시간을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살았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어도 김석진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 얼굴이 계속 떠오르곤 한다.

잊히긴 개뿔···. 3년 동안 같은 동네에 사는데도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정말 그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스쳐 지나간 적도 없다.

.

오랜만에 기분 전환이나 할 겸 쇼핑하러 나섰다. 그런데 무슨 아이돌 팬 사인회를 하는 건지 사람이 한 곳에 엄청나게 몰려있었다.

윤여주

뭐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헙···!!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나는 빼꼼 내밀어 본 몸을 재빨리 뒤로 다시 넣었다. 김석진 작가님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윤여주

‘뭐지? 왜 하필 여기서 사인회를 하는 거야···?’

윤여주

‘아직도 작가 활동 잘하는구나···.‘

어차피 작가님은 날 봐도 모를 텐데 숨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거의 끝 무렵인지 내가 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자리 잡을 쯤 포토타임을 갖는다고 하였다.

모두가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 들어 정신없이 찍어댈 때 나는 작가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이렇게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윤여주

여전히 잘생기긴 했네···.

그때, 작가님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너무 놀랐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을 다 봐주다가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확 틀었다.

윤여주

‘뭐지···? 뭐야, 왜 나한테 다가와···?!!‘

갑자기 나를 향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작가님에 너무 당황스러워 순간 그 자리를 빠르게 달려 나와 화장실로 피신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윤여주

원래 나를 알아보면 안 되는 건데, 나인지 어떻게 알고 다가온 거지···?

예전의 작가님이라면 나를 알아볼 수 없다. 특히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나를 절대 알아볼 수가 없다.

겨우 화장실로 피신해 숨 좀 고르고 쇼핑도 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와 신호등을 기다렸다. 그때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B

혹시··· 윤여주 씨 되시나요?

윤여주

네···? 그걸 어떻게···. 누구세요?

매니저

아, 저는 김석진 작가님 매니저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작가님께서 여주 씨를 뵙고 싶어 하셔서요. 잠깐 같이 좀 가주실 수 있나요?

나를 알아본 것이 맞았다. 나를 대체 어떻게 알아본 건지, 왜 매니저까지 시켜서 나를 찾는 건지 너무나 궁금한 게 많았지만, 갈 수 없었다.

윤여주

···죄송하지만, 제가 바빠서요. 그리고 이렇게 전해주세요. 다시는 나를 또 보게 되더라도 이렇게 찾지 말라고.

매니저

잠깐이면 되는데···,

윤여주

죄송해요. 그럼 이만···.

입술을 꽉 깨물고 돌아섰다. 이 우연이라는 상황 때문에 다시 작가님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3년이나 지났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윤여주

하···.

.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어느새 해는 저물어 있었고 터벅터벅 힘이 빠진 채로 걷고 있던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렸고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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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큐레이터님···.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당연히 알았다. 못 들은 척을 하고 다시 한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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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잠깐만 얘기 좀 해요.

진짜 아까부터 나를 어떻게 알아보는 건지 나를 귀신처럼 잘도 알아본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이 자리를 계속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끝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 지금 내가 여기서 작가님과 얘기하면 예전과 같이 상황이 반복될 게 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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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나 이제 큐레이터님 알아봐요. 장애··· 다 나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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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Y메이

오랜만이에요. 🥺 완결 지으러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