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선에서 왔어요, 도련님
23 | 여주의 꿈, 정국의 희생



지난 이야기


여주가 무심코 뱉어버린, 몸으로도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정국은 여주를 놀려보기로 마음먹는다.

괜히 여주만 응큼한 사람이라며 낙인찍혀버린데다가,

배가 안 고프다는 말과는 달리 지극히 솔직한 여주의 배의 꼬르륵 소리 덕에 정국은 저녁을 하러 가게 됐지.



설여주
헌데... 도련님은 뭐든지 다 잘하시는 건가요?

_정국이 정성껏 만든 저녁 식사를 오물오물, 입에 한가득 넣어 음미하던 여주가 말한다.


전정국
내가 그렇게 보여요?

설여주
네_!

설여주
요리에도 재능이 많으신 듯 하고

설여주
아까 과제를 하실 때도 집중하시는 모습이 꽤 훌륭하시던 걸요!


전정국
아ㅎ


전정국
'열심히 하는 척만 했지, 사실상 문제 푼 건 별로 없는ㄷ, 큼'


전정국
제가 좀... 여러 분야에서 특출나긴 하죠.

설여주
멋지십니다-ㅎ

설여주
그런 도련님은 뭐가 되고 싶으십니까?


전정국
······음_


전정국
아직까진 잘 모르겠어요_


전정국
여주 씨는요?

설여주
저는 어릴 적부터_

설여주
그림을 그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_밥을 먹다 말고, 수저를 내려놓은 여주는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이어간다.

설여주
아버지는 양반 집의 노비이셨고, 집에 들어오시는 날은 드물었습니다.

설여주
그래서 늘 제 하나뿐인 오라버니랑 살아야 했죠.

설여주
그런 저에게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치였건만-

설여주
그런 침울한 나날들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그림입니다ㅎ

설여주
그러다보니 아무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 꿈이 되었고요_


전정국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전정국
그럼 그 가족들은 어ㄷ···

_아, 말을 하다 저절로 입을 꾹_ 누르는 정국이지.

_점점 표정이 어두워져 가는 여주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설여주
···오늘은 이상하게 배가 부르네요ㅎ 잘 먹었습니다-

_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여주가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전정국
저기... 여주 씨!

설여주
네?


전정국
···나 여주 씨 그림 보고 싶은데_



전정국
그림 한 번 그려주면 안 돼요?


···


_와르르, 정국은 낡은 종이 가방 안에 있던 물품을 쏟아낸다.

설여주
이것이··· 다 무엇입니까?


전정국
초등학교 다닐 때 썼던 미술 도구요ㅎ


전정국
쓸만한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정국
물감이랑 팔레트는 좋은 회사 제품이니까 괜찮을 거예요ㅎ

설여주
물···감?

설여주
팔레트는 또 무엇ㅇ···

_짠, 52색 물감 세트를 꺼내 여주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정국.

설여주
우와... 이게 다 색깔들입니까?


전정국
네ㅎ

설여주
아니 어찌 이리 귀한 색들이···

_여주에게는 보기도, 구하기도 어려웠던 형형색색의 물감들이 가득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지.

설여주
···이걸 다 써도 되는 겁니까?


전정국
당연하죠_

설여주
감사히 쓰겠습니다...ㅎ

설여주
아 참,

설여주
무엇을 그리면 좋을까요?


전정국
···그걸 고민하다니- 조금 서운한데요?


전정국
모델이 여주 씨 앞에 있는 걸-

_양 손으로 자신의 턱을 받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여주를 바라보는 정국이다.

설여주
도련님 서운하셨습니까?!

설여주
그러면 제가 벌을 받아ㅇ···


전정국
농담이에요, 농담.ㅎ


전정국
벌 받는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면 어떡해요-

설여주
이게... 아닙니까?


전정국
아니에요ㅎ


전정국
나 그려줘요, 나.

설여주
도련님을요?


전정국
왜요, 싫은 거예요?

설여주
ㅇ, 아뇨! 싫긴요_

설여주
대신, 한동안 가만히 계셔야 합니다.


전정국
얼마든지 할 수 있죠ㅎ



전정국
···근데- 얼마정도 걸려요?

설여주
몇... 시간은 걸릴 것 같습니다.


전정국
정확히 몇 시간 정도...?

설여주
세 시간, 네 시간...?

아,

내 뼈와 관절은 오늘이 제삿날이구나.

즐거웠다, 그동안 튼튼해줘서 고마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