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15


태형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김태형
율은 어디있느냐...?

전정국
..모르겠사옵니다. 찾아올까요?

김태형
아니다... 괜찮...!! 크윽....

그 순간 태형이 심장을 움켜잡으며 휘청하고 쓰러졌다.

김태형
허억...헉...으윽.... 왜 이러지.. 왜 이러는 것이냐. 심장이.. 심장이

전정국
의녀를 불러와라, 어서!

"예"

태형이 잠든 사이에 정국과 율은 심각한 얼굴로 그를 살펴보았다.

전정국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무엇이냐? 회복하시던 중이었는데..

율
모르겠사옵니다. 그 독이 워낙 맹독이기도 하고.. 세자저하의 옥체도 많이 약해지신 탓인듯 합니다. 방심할 수는 없을 것 같사옵니다.

그 시각, 윤대성은 책상을 탁치며 화를 내고 있었다.

윤대성
어째서.. 어째서 목숨이 이리도 질기냔 말이냐!

"저...저기 어르신. 그.. 세자저하께서 목숨이 질기신 것도 있겠지만 그 의녀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옵니다."

"그 의녀가 저하를 간호한 이후로 눈에 띄게 상태가 호전됐다고...."

윤대성
의녀? 이름이 무엇이라고 하더냐?

"율...이라고 하던 것 같았사옵니다."

윤대성
율...? 흠...

윤대성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윤대성
율....율이란 말이지?

율은 앞에 누워있는 태형을 바라보았다.

그가 잠든 이 순간만큼은 율이 아닌 월이고 싶었다.

허 월
저하..저하. 도대체 누가 저하의 옥체에 손을...흐윽...흡..읍읍...

월은 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태형이 깰까봐 소리를 낼수도 없었다.

허 월
소첩.. 이렇게 율로서라도 저하 곁에 있고 싶었사옵니다. 그래서.. 찾아왔는데. 어째서..

월은 눈물을 흘리며 그날을 회상했다.

"의원님!! 세자저하께서 쓰러지셨다 하옵니다!"

월은 그 순간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율
정녕....사실입니까...? 어째서.. 이유가 무엇입니까....

"독살 시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왜 그러느냐?"

월은 다리의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율아!! 괜찮은 것이냐?"

율
예...예, 저는 괜찮사옵니다. 저기...

율
의원님, 제가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 그래. 일단 어서 가자."

'저하.. 아니됩니다. 꼭 버티셔야 합니다!'

끔찍하게 괴로운 날이었다.

그를 만나는 날을 상상하고 또 상상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율
저하.. 저하, 제발.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월이라고, 내가 왔다고 소리치며 품에 안기고 싶었다.

내 이름을 율이라고 소개할수 밖에 없는 내 처지가 싫어서,

세자저하가 너무 그리워서 울고 또 울었다.

그가 눈을 떴을때는 너무 아름다워서 어지러울 정도였다.

"뭐가 어떻게 된것이냐...?"

라고 묻는 그의 낮고 달콤한, 나의 모든 불안을 없애주는 목소리.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월이라고 불렀을때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죽도록 힘들었다.

"월이라고 부르지 마시옵소서."

이 말을 할때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율
흐읍...윽윽...흑....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워하며 울고 있던 그때

"...넌...왜 울고 있는 것이냐?"

나즈막하게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율은 순간 당황하여 급히 눈물을 훔쳤다.

율
누가..누가 운다고 그러십니까...?

태형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김태형
내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귀를 닫고 있던 것은 아니다.

김태형
너는 어찌하여 그리 서럽게 우는 것이냐?

소리를 죽인다고 했는데 들린 모양이었다. 율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율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소녀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김태형
그래.. 가보거라.

율이 태형의 처소에서 나가던 그때, 정국이 급히 뛰어들어왔다.

그러고서는 율을 보고 멈칫하더니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율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눈으로 그를 잠시 쳐다보고는 고개를 까딱 숙이고 휙 지나갔다.

김태형
정국아.. 무슨 일이냐....?

전정국
그...그것이, 저하. 저 의녀의 생년월일을 알아냈사옵니다.

김태형
그런데?

전정국
...폐비마마와 같사옵니다.

김태형
뭐...뭐라고?

전정국
폐비마마의 생년월일이... 그 여인과 똑같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