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사람 친구

10. 평범한 클리셰

남자 사람 친구,

제 10화. 평범한 클리셰

윤여주

…내가 봤을 때는,

우르르 반으로 몰려 들어오는 애들 속에서, 나란히 발을 맞춰 들어온 나와 박지민은 오는 내내 잡다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바빴다.

윤여주

이번 경기는 네가 없어서 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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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아, 내가 있어야 이기는 거야?

내가 하는 말마다 웃는 박지민. 뭐가 그렇게 좋은지 숨넘어갈 듯이 웃는데, 그런 와중에 그의 얼굴에 깊이도 박힌 자그만 상처 하나하나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내가 붙여줬던 뽀로로 밴드는 뗀 모양인지, 새 밴드로 다시 붙인 듯했다.

윤여주

아, 이거 이제 봤네. 상처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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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괜찮아.

윤여주

……흉 질라, 약 꾸준히 발라. 내가 어제 연고 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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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응. 오늘 아침에도 발랐어.

윤여주

잘 했네-.

그렇게 그의 얼굴을 살피다 얼떨결에 보게 된 새까만 눈동자, 오똑한 코, 결점 없이 매끈한 피부… 심지어는 붉은 입술까지. 어디 하나 흠 잡을 것 없이 완벽한 그의 얼굴에 새삼 감탄을 자아냈다.

혼자 그래놓고 약간 변태 된 기분 같길래,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하며 화제를 돌렸다.

윤여주

또 그런 험악하게 생긴 놈이 찾아와서 너 이렇게 만들면,

윤여주

그때는 나 진짜 가만히 안 있어.

아니나 다를까, 내 말 듣더니 웃는 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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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윤여주

응. 나 지금 완전 진심.

윤여주

너 다치는 거 절대 못 보겠어.

다짜고짜 얘의 양 볼 꾹 누르며 다람쥐 마냥 통통한 볼살을 만들었는데… 뭔데 이렇게 귀엽지.

윤여주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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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갑자기 사람 앞에다 대고 욕하네.

윤여주

……어? 아니 아니, 나 방금 뭐랬어?

갑자기 볼이 화끈거려서, 황급히 그의 볼에서 손을 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날 쳐다보는 박지민.

윤여주

음… 우리 다음 시간은 뭐더라-?

윤여주

교과서를 챙기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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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너 지금 나 피하네.

윤여주

…에이, 무슨 그런 섭한 소리를 해. 피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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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맞잖아. 내 눈 안 마주치는데.

윤여주

내가 언제! 난 너 몇 시간이고 보고 있을 수 있거든.

괜히 말도 안 되는 자신감만 분출해서는.

사물함으로 다가가는 내게, 서서히 다가오는 박지민으로 인해 조금씩 뒷걸음질 쳤더니 어느새 내 등에 맞닥뜨린 사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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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해 봐.

내가 못 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한, 저 자신만만한 눈빛에 괜히 오기가 생긴 모양이다.

심기일전하고,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금 눈을 뜨고서 그를 올려다봤다. 정확히 두 눈을 마주한 채로.

그렇게 둘만의 눈싸움이 진행되고 있었을까. 심장박동 수가 점점 빨라지면서 호흡이 깨지니까, 당황해서 눈이 흔들렸다.

그런 나임을 그도 눈치챘는지, 서서히 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생기더니 이내 나를 향해 팔을 뻗는 거 있지.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몸을 움츠렸더니 글쎄, 내 뒤에 있던 사물함에 팔을 두며 더 가까이 다가와 다정하게 속삭여주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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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다음 시간은 교과서 필요 없고, 체육.

후다닥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체육관에 도착. 들어오긴 들어왔는데… 어째 예감이 좋지 않다.

다른 반도 이 시간에 체육을 하는지, 이미 준비 체조를 하고 있는 못 보던 애들이 보였기 때문에.

보통 우리 쌤 성격이라면… 99퍼센트, 아니? 100퍼센트의 확률로 피구 공 던져주고 피구하라 하실 테ㄷ…

"자, 오늘은 반대항전 피구!"

에라이. 내가 촉은 더럽게 좋은 편이다.

윤여주

…진짜 싫다!

"어우… 말도 마. 남자애들 피구할 때마다 눈깔이 돌아서, 그냥 사람 죽일 듯이 던지잖아."

윤여주

…그 공에 맞기 싫어서 죽기 살기로 피한다, 내가.

"ㅋㅋㅋㅋ… 나도. 저번에 머리 한 번 맞았다고 골로 갈 뻔했잖아 나."

윤여주

ㅋㅋㅋㅋㅋㅋ 맞다, 너 저번에 ㅋㅋㅋ

다른 반 남자애한테 풀 파워로 공 맞아서 멘탈도 털리고 안경도 털리던 친구. 그때 이후로 반사 신경이 늘어서, 졸지에 피구 에이스 되어버렸다.

윤여주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끝까지 살아계셔주세요~

"아유, 그럼요. 저만 믿으시죠."

교무실에 볼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는 체육 선생님. 체육 부장들끼리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각반의 구역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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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윤여주 피구 제일 못 하는데. 그치.

그때 갑자기 뒤에서 속삭여오는 박지민이 하는 말에, 팩트로 맞아버렸다.

윤여주

……나도 알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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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얼마 못 가서 죽겠네.

윤여주

…각오하고 있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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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외롭겠다. 수비수 혼자서 하면.

…? 얘 지금 나 놀리는 데 재미 들렸는데?

윤여주

…와, 같은 팀인데 공 안 맞게 지켜주진 못할망정!

윤여주

지금 아군한테 그런 독설을…!

너무한 자식.

아니나 다를까, 내 어깨 툭툭 두드려 주면서 웃음 참는 착잡한 표정으로 그가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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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행운을 빌어.

윤여주

…! 하.

사람 약 올리는 데에 소질 있다, 얘 진짜. 자꾸 사람 오기 생기게 하네.

두고 봐. 절대 처음으로 죽진 않겠어.

마침내 시작된 첫 경기. 심판이 없어서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나… 걱정중이다.

상대팀으로 넘어간 공. 키는 엄청 크고 어깨는 또 그에 맞게 넓은 한 남학생이 우리를 스캔하더니 이내 공을 집어던졌다.

다행히 아무도 죽지는 않았는데, 거의 뭐… 저 정도면 공 시속 120km.

다시금 이 위협적인 피구 시간에 대한 공포심을 얻고… 선 모퉁이에 숨어서 겨우 목숨 연명하기로 했다.

윤여주

으악... 무서워.

"ㅋㅋㅋㅋ 윤여주 쫄았다."

윤여주

하……. 진짜 너무 싫어.

울상이 되어 있으면… 그때마다 더 놀라게 내 눈앞으로 휙휙 날라오는 피구 공.

피구 잘 하는 놈들은 못 하는 놈들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골라서 죽여, 막.

몇 명이 죽은지도 모르고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재주껏 도망다니고 있는데… 오 이런. 망했다.

느낌이라는게… 왜인지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삼각형으로 공 주고받고 하는 수비수들 사이에 끼어서 위협을 받고 있었거든.

이제 죽을 때가 됐나 보다… 체념하니까 나를 향해 매섭게 날아오는 공. 눈을 질끈 감았는데……

어라?

아무 감각도 없이 내 앞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길래 눈을 떠보니… 박지민이 공을 잡은 상태였다.

윤여주

…헥.

놀라기도 잠시, 수비수들의 아- 하는 탄식과 우리편의 짧은 환호 소리. 그리고 그 반응의 원인인 네가 내 옆을 지나치며 건네는 그 한 마디가.

나를 설레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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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오늘은 좀 오래 사네. 누구 덕에.

++ 정말 설레는 피구 시간. 글로 보면 식상하지만, 공 막아주는 거 실제로 겪어보면… 다른 거 아시죠😉 아차 곧 다음 화에서 거대한 사건 하나가 터질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