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생이, 일진의 아내?
고통 전달 (김태형)


깊고, 깊은 바다로 빨려들어가는 꿈을 꿨다.

꿈에서 깨어난 태형은 눈을 뜨고선, 피식 웃었다. 시니컬하게, 마치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이 연기하듯이.

그리고 배수지가 그랬듯이 허리를 휘면서 웃었다.

그는 자신의 이불을 흐린 점으로 채워 나갔다.

그의 옷 위에 한가득 비가 내렸다.


김태형
000, 너 나한테 그럼 안 됐어. 내가 뛰어나오자고 할 때 같이 나왔어야 했어.

텅 빈 집에서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무도 없는, 그 홀로 있는 집.

그의 가정 환경은 꽤나 척박했다. 잘 살아본 적 없이 사라진 어머니와 둘을 버리고 사라진 아버지.

그가 공부에 집중하지 못 한 데에는 가정 환경의 영향이 컸다.

그리고 태형은 그 날 학교에 나가지 못 했다.


김태형
어떻게 이러냐. 하필 나한테 또 이러냐.

그는 붉어진 눈에서 눈물을 계속 흘렸다. 꿈을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손이 불어올라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바닥에서 본 그 빛 사이에 000이 있었다.

태형은 무릎을 끌어안고 엎드렸다. 그리곤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여자애가 뭐라고 그랬어, 김태형. 걔가 뭐라고 죽기까지 했어. 걔가 인생에 뭐가 그렇게 중요했어,

슬픔은 후생으로 전달된다.

기쁨은 전생에서 머무른다.

그것이 석진이 꿈 속에서 말해 줬던 이야기였다. 전생과 후세의 가장 근본적인 개념.


김태형
000 보고 싶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둘의 죽음이 일러졌고, 밝혀졌다.

전생을 묶어놓은 물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들의 죽음을 알 수밖에 없도록 손가락을 놀린 것이다.

태형은 하늘에 높이 뜬 해를 흘겨보았다. 꼭 죄 지은 사람처럼.

그리고는 휴대폰을 켰다. 푸른 빛이 그의 눈 앞에 드리웠다.

『진』이라고 적힌 카카오톡 채팅창,


김태형
➤ 김석진 ⑴

대답이 없다.


김태형
➤ 형

1이 사라졌지만,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김태형
➤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김석진
➤ 봤네

태형은 숨을 삼켰다. 자신이 죽는 장면을 눈 앞에서 봤다는 것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김태형
➤ 왜 안 말했어?

석진은 한참 동안이나 답을 하지 않았다. 태형이 다시 한 번 물었다.


김태형
➤ 형 왜 안 말해줬어?

석진 역시 화장실에서 눈물을 밀어넣었다.

가족의 죽음을 느끼는 건, 그게 전생이든 아니든 간에 찢어지는 고통이었다.


김석진
➤ 이럴 거 같아서


김석진
➤ 니가 이럴 거 같아서


김석진
➤ 바보같이 울고 학교도 안 나오고

태형은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여전히 석진은 그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김석진
➤ 00이도 그랬어 ⑴


김석진
➤ 00이도 울었어 태형아 ⑴


김석진
➤ 이번 생은 살아야지 ⑴


김석진
➤ 어쩌겠어 ⑴

석진은 사라지지 않는 1에 시선을 두었다.

전생부터 그는 눈치가 꽤 빨랐다. 이미 준비하고 있는 누군가를 알아냈고, 또 그를 대비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후세에 와서는 사람의 기척도 알아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석진은 알았다, 태형이 다시 자신의 문자를 보지 않으리라는 것.


김석진
➤ 00이가 너를 풀어주기로 했대 ⑴


김석진
➤ 너 수지한테 그냥 돌려주기로 했대 나한테 그러더라 ⑴


김석진
➤ 너랑 00이 처음부터 연이 아니었대 ⑴

석진은 잠깐 고심했다.


김석진
➤ 너랑 00이 사귄 적 없었어 전생에서도 ⑴


김석진
➤ 박지민이 가마에 불을 질러 죽여버렸었어 ⑴


김석진
➤ 기운 차려 ⑴


000
선배.

나는 배수지가 있을 창고를 찾아갔다. 오늘 오후 일곱 시에.


배수지
와 줘서 고마워, 00아.


배수지
너도 너에 대해서 알았구나?

수지 선배는 해맑게 웃었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배수지
연을 거슬렀어. 사귀었다면 더 위험한 사람이 너와 태형이를 떨궈놓았을 거야, 00아.


배수지
그래도 내가 너한테 도망칠 구실은 마련해줄게.

수지 선배가 쇠로 된 장대를 손에 쥐고 나에게 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녀가 나의 뒷목을 장대로 내리쳤다.

손을 꿈틀거렸다. 조금씩 기운이 사라진다.

그녀가 웃는 소리가 들린다.



배수지
흐흐하하. 00아. 그냥 줘 버리면 네가 나쁜 년 될까 봐.


수지
- 소녀가 이리 있다면, 공주마마가 악인이 되는 꼴이 아니옵니까?


배수지
맞아서 넘겨줬다고 하면 되겠다, 그치? 죽을 만큼 맞아서.


수지
- 세자저하와 놀아나시지, 왜 죽을 때에서야 저에게 찾아오십니까.


000
- 나를, 나를 살려주면 큰 포상을 내리겠다.


수지
- 연기 속의 공주마마라니, 아주 보기 좋으십니다!


배수지
내가 너 죽을 만큼 때리고 여기 버리고 가면 완벽하겠다. 그치?

한 번 맞을 때마다 전생과 지금이 겹쳐 보였다.

속았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다.


수지
- 소녀가 원하는 것은 태형입니다, 여태껏 안 주시고선 죽을 때에서야.


000
- 사람, 사람을.

내 팔들과 다리들이 한 번씩 장대로 짓이겨졌다.

다리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지만, 극심한 고통에도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아픈데, 너무 고통스러운데도 불로 타던 그 때보단 나은 거 같아서.

조금이라도 전생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눈을 감았을 때였다.

???
배수지. 이럴 줄 알았어.


배수지
박지민?

들쳐업히는 느낌이 들었다.


박지민
죽여도 내가 죽여. 넌 내 여자한테 손 댈 권리 없어.


배수지
죽여? 죽일 거야. 00이를?

수지는 해사하게 웃으며 박지민을 본다. 박지민은 그런 그녀를 째린다.


박지민
아니, 살려도 내가 살릴 거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할 거야.

박지민, 넌 날 죽였어.

한 번 더 죽이면 두 번 죽이는 셈이 되는 거야.


지민
- 그녀는 나를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네.

내 피부에는 시원한 바람 빼고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다리는 치료되고 있을까?

내가 왜 하필 얘네들이랑 엮일 생각을 했지?

전생에 대해 알아내고 난 후 훨씬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내가 쓰러진 이후 하루가 지났다면, 오늘은 겨울방학의 시작일 것이다.

난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잠이 몰려온다. 눈꺼풀이 내려온다.

겨울방학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해야겠다. 웬만해서 친구들만 봐야지.

아무런 경고 없이, 아무런 말 없이.

내 머리 위로 비가 내려온다.


000
으흐,

아, 지금은 후세네. 따뜻한 비에 눈을 떴다.

???
공주, 공주님. 죽었어?


박지민
안 죽었어, 뭘 죽어?


박지민
그리고 넌 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거슬리게. 관계도 없는 게.

???
다물어, 그야말로 쓰레기인 세자. 모든 사람의 죽음을 보고 느끼고, 관계에 대해 다 알아보긴 했어?

???
니넨 고작 한두 달 인연을 느꼈겠지, 난 이 년이야. 비교가 될 거라고 생각해?

박지민과 예쁜 목소리를 가진 소녀가 대화하는 게 들린다. 나는 눈을 뜨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구길래 나를 가지고 이렇게 울면서, 박지민과 싸워 주는 거지?

???
니가 가지고 놀았지? 배수지. 니가 가지고 놀았지?

잠깐 방이 조용해졌다.


박지민
니네 집은, 어디랬지?

???
창원.


박지민
그걸 서울까지 올라온다고? 독하다, 진짜.

???
니가 또 얘한테 무슨 짓 벌일지 어떻게 알고? 대학교 휴학까지 하고 있는데, 못 할 게 어디 있다고?

헐, 대학생?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천천히 눈을 떴다.


???
공주님! 좀 괜찮아졌어?


000
누구, 세요?


박지민
야.

박지민은 의자에 걸터앉아 우리를 보고 있다.


박지민
000이란 이름이 있는데 왜 자꾸 공주님이래.


김유정
쟤는 무시해. 난 김유정이야.


000
아, 네에.

나는 고개를 까닥였다. 우등생인 편인 박지민이 여기에 있는 것을 보면, 오늘은 방학인가 보다.


김유정
전생에 네 호위 기사였어, 공주님. 떠올리면 졸릴 테니 미리 눈을 감아.

그녀는 내 눈을 가려 주었다.


유정
- 공주 마마! 이게 무슨, 무슨 일이옵니까.

아아, 내가 죽었을 때 울어 주던 사람, 그 사람이 기사였구나.

나는 내가 앉은 의자가 뒤집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