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아고물

3화

11:5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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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

시계에 고정 되어 있는 백현의 시선은 꽤나 매서웠다.

10시. 11시..

벌써 12시를 향해 달려가는 시곗바늘에 정갈하던 백현의 뒷머리는 어느새 엉망이었다.

여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여은에게 전화를 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띠디디딕..`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

백현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백현을 맞이한 것은 낯선 이의 등에 업혀있는 여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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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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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누구신지. 김여주 가족이신가요? 그렇게는안 보이는데

아빠라기에는 너무 젊고 오빠라기엔 나이 차이가 심한데다 결정적으로 가족이라기엔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민석은 백현을 위아래로 여러번 훑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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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어찌 됐든 좀 받아주실래요? 아님 제가 들어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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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이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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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그러죠.

민석에게서 여주를 건네받은 백현은 현관에 멀뚱히 서있는 민석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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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안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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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가족 맞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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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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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그래요? 그런 걸로 치죠 뭐.

민석은 고개를 작게 숙여 인사하곤 나갔다.

기분 나쁜 사람이다.

백현은 민석을 그렇게 정의 내리곤 완전히 잠에 빠진 여주를 내려다봤다.

술을 마셔서 취하지는 않았을 거고, 그냥 오다가 잠에 들었나.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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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수작 부리지 말고 눈 떠라.

여주

ㅎㅎ..어떻게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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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뻔하지 뭐.

여주

쳇. 안아서 옮겨주려나 했는데..!

백현에게 기대고 있던 여주는 가볍게 일어나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민석의 차에서 잠이 들어 업혀오기는 했지만 사실 백현에게 건네지면서 잠이 깼었다.

조금만 더 자지 그랬냐 김여주.. 쓸데없이 예민하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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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무슨 회사가 어린 애를 이 시간에 보내?

여주

다들 가라고 하셨는데 제가 늦장 부린 거예요. 다 착하고 좋으신 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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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참 나. 뭘 잘했다고 눈을 크게 떠.

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실로 향했다.

여주도 그런 백현을 따라 거실로 들어섰다.

여주

아저씨 밥은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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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어. 밖에서 먹고 들어왔어.

여주

그렇구나. 나는 또 아저씨가 나랑 저녁 먹으려고 미리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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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내가 너를 왜 기다려.

여주

헐. 그건 좀 상처잖아요.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여주는 상처 받은 표정으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물을 다 마신 여주가 제 방으로 들어가자 백현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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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쟤한테 왜 이렇게 휘둘리냐 나.)

백현의 회사는 성장하는 중이었다.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회사인만큼 백현의 책임과 부담감은 컸다.

오늘도 자신의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일을 하고 있는 백현이었다.

그런 백현의 사무실에 들어온 비서 경수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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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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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아. `꼬맹이` 분한테 문자가 계속 와서요. 급한 일인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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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이리 주세요.

진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일어났나 싶은 마음에 서둘러 확인한 여주의 메세지는..

죄다 자기 셀카. 셀카였다.

`아저씨 나 귀엽죠?` `회사 사람들이 나 오늘 예쁘대서 셀카 왕창 찍었음!!` 따위의 글과 함께 보내진 여주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열어 본 백현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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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무슨 좋은 소식인가 봅니다. 얼굴에 꽃이 피셨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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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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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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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잘못 보신 것 같네요.

백현은 경수의 말을 못 들은 척 무심히 책상 위에 시선을 던지다 우연히 동그라미가 쳐진 달력을 보았다.

7일이면 어제인데.. 어제가 꼬맹이 생일이었다고? 멘붕이 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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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19살 여학생은 어떤 걸 좋아할까요. 경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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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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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사장님 취향에서 딱 반대로 사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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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나 디스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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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제가요? 사장님을요? 설마요~

능청을 떠는 경수에 백현은 헛웃음만 뱉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백현은 결국 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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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오늘 퇴근 몇 시야.

여주

그건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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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밥 먹자고. 어제 생일이었잖아.

여주

헐. 어떻게 알았어요?

여주

오늘 일찍 끝나요. 사장님한테 물어보고 카톡할게요!

그렇게 전화는 끊어졌다.

잠깐 통화한 건데 귓가가 아직도 쩌렁쩌렁한게 기운 참 좋다.

백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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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또 웃으시네. 대체 꼬맹이가 누굽니까? 애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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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제정신입니까? 19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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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대박 능력 좋으시다.. 역시 잘생기고 돈 많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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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애인 아니라니까요.

말을 말자.. 어쩐지 경수에게 계속 말려들어가는 느낌에 백현은 더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새 여주에게 온 카톡은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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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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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저 오늘 퇴근 일찍합니다.

07:10 PM

여주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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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왜 이렇게 늦어.

여주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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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아냐. 타라.

조수석에 여주를 태운 백현은 이어 자신도 운전석에 올랐다.

백현은 옆에서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참지 못하고 결국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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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왜 그렇게 쳐다봐.

여주

아저씨 잘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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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왜이래.

여주

좋아해요.

여주의 말에 백현은 차를 잠시 갓길에 세웠다.

굳어지는 백현의 표정을 본 여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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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너. 내가 정말 좋아?

여주

...? 네.. 완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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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내가 왜 좋아.

여주

착하고, 그냥.. 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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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그래서. 나랑 연애라도 하자고?

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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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그럼. 나중엔 나랑 자고, 결혼도 하게?

여주의 심장이 덜컥 가라앉았다.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운 말투에 지레 겁을 먹은 여주의 눈에 눈물이 고이자 백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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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미안하다. 밥은 나중에 먹자.

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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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집에 가자.

여주

..아니요. 저 그냥 여기 내려주세요.

...? 백현이 뭐라 말을 건네기도 전에 여주는 차에서 내렸다.

멀어져 가는 여주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넋을 놓고 바라보던 백현은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주

..나빠 진짜.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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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은

..내가 죽여버릴까?

여주

네 사장님. 죽여주세요.

무작정 여은에게 전화를 건 여주였다.

펑펑 우는 여주에 깜짝 놀란 여은은 늦은 저녁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에 달려나와 여주를 제 집에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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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은

여주야. 그냥.. 변백현 집에서 나오는 건 어때?

여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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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은

언니네 집에 있으면 되지. 같은 여자니까 더 편하지 않아?

여은의 제안은 솔깃했다.

이대로 백현의 집에 다시 들어가기도 뭐하고, 무엇보다도 여은은 여주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니까.

여주는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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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은

그럼 내가 내일 네 짐이랑 다 가지고 올게.

여주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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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은

됐어. 네가 귀여워서 그래.

배고프지?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여은의 뒷모습에 여주는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꾹 눌러담았다.

여주

...사장님. 사장님도 제가 지금 아저씨한테 느끼는 감정이 장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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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은

음.. 아니? 근데 여주가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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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은

그래도 변백현은 개새끼야.

여은은 그렇게 말하며 와인을 원샷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