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사냥꾼

<16화>: 당황

You

"..하.."

오늘따라 유독 꿈자리가 사나웠다. 발이 족쇄에 채이는가 하면, 겨우 도망친 곳에서는 꽃밭인 줄 알았더니만, 가시덩쿨이 겹겹이 쌓여 엉킨 장미밭길이었다.

교복을 차려입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요즘 잡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걸까 모르겠지만, 외면이라는 좋은 선택지가 있으니 부정해보기로 한다.

차피, 내 감정은 원래 없었던 것으로 치부한지 오래이니 말이다.

슬프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다.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올 것 같은 이 기분도 낯설었다.

막상 눈물이 마른지는 오래되었지만 말이다.

떨어진 신발의 밑창을 무시하고 신발끈을 묶었다. 이번 달까지만 신을까. 오랜만에 시장도 가고.

배진영의 목도리를 가방에 담곤 민현의, 아니.

아마도 주인은 그 여자라 생각되는 가디건을 고이 접어 욱여넣었다.

You

"..미련일까."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것을 좋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들의 사이에 있을 암묵적인 믿음이 지켜지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기댈 수 있어서 좋았는데.

최대한 무표정을 지으며, 입꼬리를 한껏내리곤 학교를 향했다.

나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말이다.

다른 누구라도 내가 기댈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교실에 울렸다. 예쁘장한 여자아이를 중심으로 해서, 그 옆자리와 주위가 모두 둘러싸여져 있었다.

배 주현 image

배 주현

"그럼- 플랜카드는 강당에 걸어두기로 했다니까ᆢ."

물론 나를 제외하고.

중간에서 조용히 앉아 피켓 몇가지를 꾸미고 종이를 도려내며 있으니 모든 관심은 반장인 배주현에게, 남은 아이들은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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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나 왔어."

털썩, 내 옆에 앉는 배진영에게 시선이 쏠리기 전까진 말이다.

자신한테 온 신경이 쏟아져있건 말건, 마스크를 내리더니 해사하게 웃으며 나를 보는 배진영에 의아해하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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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주현

"여! 배진영도 왔네!"

잠시간의 눈맞춤을 배주현이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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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인사, 안 해줄거야?"

You

"아,.. 안녕."

격하게 고개를 아래위로 흔드는 배진영에 옆에 있던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 둘러주었다.

옷도 춥게 교복만 입고 와서는 마스크 하나 씌우면 단 줄 아나, 하고 툴툴대는 것도 잊지 않고.

"오- 뭐냐, 둘이 뭐 있냐?"

You

"뭐래. 안 닥치냐."

살벌한 분위기를 일부러 조성하곤 뭣도 모르고 웃고만 있는 배진영에 너 원래 싸가지 없고 조용한 이미지 아니였냐며 묻고 싶었지만, 별 수 있나. 숨 죽이고 있어야지.

배 주현 image

배 주현

"그래, 다들 해오라는 거 다 해왔지? 자기 것만 출력하건 그리건 하라고 했으니까."

남학생들 여럿이 고개를 저으며 한 명이 눈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한테 몰아주자는 것 같은데, 그러면-

"야, 쟤가 잘한다며- 쟤 보고 조금만 더 하라해. 왜 굳이 우리가 다 해야되냐?"

말이 끝나자 일어서서 싸대기 한 대를 날리려했더니, 배진영의 낮게 깔린 목소리로 침묵이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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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지랄."

그와 동시에 내 손을 낚아채며 배진영은 내가 직전까지 붙들고 있던 종이를 던지두곤 그 아이들을 노렸다. 아, 물론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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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능력 없는 게 자랑이란다. 한심한 놈."

평소 말도 없던 배진영의 쉴드에 감싸진 나도 어안이 벙벙한데, 다른 애들은 어떨까. 한숨을 깊이 하고 가방 깊숙이 있던 내 분량의 과제를 한 아름 꺼내두고 배진영의 손을 잡아 일어섰다.

You

"내가 할 일 다 했고, 덮어씌우려는 것도 작작해라. 나 정도면 안 해온 너희 양 세 배는 될 것 같은데, 적당히 하고 배진영 것도 퉁치자."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배진영을 이끌었다.

쌀쌀한 바람이 내 가방을 쳐댔지만 품에 꼬옥 안고서는 배진영을 번갈아보았다.

You

"왜 내 일에 니가 열폭이셔. 친구된지 한 달도 안됬는데."

아, 씨.. 진짜.. 마스크를 다시 올리려 하는 배진영의 붉어진 볼을 살짝 치며 대답이나 하셔, 하곤 짖궂게 말하니 배진영이 영악한 미소를 지으며 예쁜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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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난 이때까지 내 이상형이 덜렁인 줄 알았다."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는 배진영에 동문서답이다, 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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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근데 아니었나봐. 똑 부러지는 애가 더 좋다."

내 이마에 짧게 무언가 말캉한 것이 닿았다.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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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진영

"예를 들면,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