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강력반입니다 S2

#30 “고등학생의 죽음(6)”

설민이 알려준대로 와보니 먼지가 뿌옇게 쌓이다 못해 나뒹구는 창고가 나왔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름 뜀틀과 공 몇 개, 훌라후프 등이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이끌려 나오는 악취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고 들어가길 망설였다.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사람 형체에 서둘러 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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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형

와… 냄새 장난 아닌데요? 이정도면 시체 부패한지 한 3일정도 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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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남 준

둘이서 누구 오기 전에 빨리 시체 수색해. 난 창고에 증거 없나 둘러볼게.

태형과 여주는 시체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복에는 피는 커녕 어떤 얼룩도 없었고 먼지만 뿌옇게 묻어있을 뿐이었다.

남준은 창고 벽을 손으로 짚으며 외곽을 따라 걷고 있었다. 간혹 발에 걸리는 돌들이 있긴 했지만 그 외에는 아직 별다른 특징은 없는 듯 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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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어… 태형선배?

여주가 원국의 시체를 이곳저곳 살펴보다 옆에서 악취 때문에 고생하는 태형을 불렀다. 태형은 애써 웃어보이며 여주를 마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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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피해자가 오른손잡이에요, 왼손잡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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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형

그건 왜? 뭐 이상한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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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이것 좀 보세요.

태형이 여주의 시선을 따라가자 보이는 건 손목에 커터칼로 그어진 상처 자국. 여주는 상처가 생긴 오른손목을 들어 상처가 천장을 향하게 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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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상처가 뭔가 이상해요. 일단 오른손에 상처가 있는걸 보면 왼손으로 그었다는 소린데 보통 위에서 아래로 긋잖아요. 피해자 상처는 아래서 위로 그은 모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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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꼭 누군가 옆에서 그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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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형

꼭 모두가 위에서 아래로 긋는다는 보장은 없잖아. 이것만으로는 타살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되기는 힘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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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선배는 그 심정을 아세요?

태형이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여주를 마주보았다. 지금껏 처음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여주였다. 슬픈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화난 표정, 기쁜 표정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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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사람이 손목을 그을 때는요, 진짜 힘들 때거든요. 그럼 한 번에 죽기를 바라요. 어중간하게 그어서 아프기만 하려고 손목을 긋는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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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제가 해봐서 알아요.

여주는 타살을 확신하는 듯 했다. 그런 여주를 눈 앞에 두고도 태형은 아직 타살과 자살 중 어느것 하나로 확신하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심증은 경찰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유혹 중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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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형

네 말대로 타살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럼 피해자가 다잉메세비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물증을 찾아. 우리한테 증거는 물증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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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네… 찾는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꽤나 실망한 표정이었다. 자신에게 동의해주지 않는 태형에게가 아니라 어느정도 짬을 먹고도 심증에 목 메어 감정에 휘둘린 자신에게 실망해서였다.

한창 창고 수색 중이던 그 때 여주는 주머니에 꽂힌 휴대폰에서 울리는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밝은 화면에 보이는 건 [발신자 : 김석진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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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형

팀장님이네? 신원조회한거 결과 나왔나보다.

남 여 주 image

남 여 주

[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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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진

[ 어, 여주야. 수사반에서 결과 올라왔는데 별다른 점은 없는데? 그냥 평범한 여고생이야. 자매고… 부모님도 멀쩡히 중소기업에 취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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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 자매요? 자매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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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진

[ 좀 신기한건 예지라는 애 동생이 너네 학교 1학년이야. 이름은 현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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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 현예림이요?

여주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퍼졌다. 가뜩이나 조용했으니 얼마나 크게 울렸겠어. 저멀리서 천천히 둘을 향해 걸어오던 남준에게도 들렸나보다.

남준은 잠시 멈춰서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잰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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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남 준

현예림이면 이번 사건 최초 발견자 아니야? 1학년 미술부원이라던 걔 이름이 현예림이었던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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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형

맞네! 피해자 처음으로 발견하고 소리지른게 현예림이네요.

여주와 석진은 전화를 끊은지 오래였고 태형과 남준의 말에 여주는 예지를 만나보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점심시간. 교실은 왁자지껄했고 예지는 혼자 수행평가 정리를 하고 있었다. 뒤에서 그림자가 졌고 예지가 돌아봤을 땐 이미 여주가 그녀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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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하이고… 이거 국어 수행이지? 양 좀 봐라, 니들이 고생이 많네 진짜… 쌤이 좀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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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 지

네…?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괜찮다는 예지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여주는 이미 수행종이 절반을 본인 앞 책상으로 끌고 온 뒤였다. 종이뭉치를 툭툭 치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꽤나 능숙한 솜씨였다.

아이들은 여주가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여주에게는 아무쪼록 다행인 일이었다. 힘들게 장소를 오가지 않아도 둘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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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너… 동생이 1학년 현예림이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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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 지

네? 아, 네…

예지는 잠시 놀라며 여주를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며 작게 대답했다. 그에 여주는 별 반응없이, 정확히는 그런 척하며 덤덤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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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최원국 알지? 왜, 얼마전에 사고…를 겪었다는 3학년 남자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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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 지

원국선배는 왜요…? 쌤은 교생이라서 신경 쓸 일 아니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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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그래도… 이제 나도 여기 선생님인데 학교 일정도는 알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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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예림이가 최초 발견자라면서. 뭐 들은거 없어? 쌤도 진짜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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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 지

쌤, 여기서 이러시는거 알면 교감쌤이 가만 안 있으실걸요? 얼른 가세요. 계속 일하고 싶으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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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미안한데 학생의 협박 따위 안 무서워. 그리고 나도 나름 이 일에 대해 알아야할 이유가 있단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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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 지

모른다니까요? 몰라요! 나도 힘들어요. 현예림 그 년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나하고는 말도 안 하려고 하고 우울증인지 애가 하루 아침에 미쳐버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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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 지

존나 무서워요…

예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과 눈꺼풀, 입술마저. 책상 위에 가지런히 주먹쥔 두 손이 떨리자 옆 책상 여주에게도 그 진동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주는 잠시 눈을 감고 아무말도 없었다. 예지는 그런 여주를 몰래 힐끔하고 보았지만 미동도 없는 그녀에 민망함을 느끼며 시선을 거두었다.

이내 여주가 천천히 눈을 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예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예지는 눈치를 보며 여주를 곁눈질로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리는 여주의 입에 다급히 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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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내가 경찰이라면… ? 그럼 좀 협조할 마음이 생기려나?

여주의 말에 예지의 표정이 급속도로 변해갔다. 놀라움. 그 외에는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는 표정. 여주는 생각했다. 감정이 얼굴에 굉장히 잘 드러나는 성격이구나, 라고.

꽤 인상깊은 예지의 반응에 여주는 피식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그러자 예지는 아차 싶었는지 여주의 반대로 고개를 돌렸지만 마음이 기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수업 시작 5분 전에 예비종이 울렸고 여주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지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반대편에 고정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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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갈게.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와.

여주가 교실을 나갔고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교시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예지는 어쩔 수 없이 여주 생각을 떨처내야했다.

+

보자… 반장? 국어 수행 다 정리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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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예 지

네? 아, 네…

+

되게 빨리 했네… 너희 반은 인원수도 많아서 더 오래걸렸을텐데. 아무튼 수고했다.

그 날 저녁, 태어나서 처음으로 퇴근하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특강반으로 돌아온 셋이었다. 다들 굉장히 궁금해하는 눈치였고 그들 또한 빨리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픈 심정이었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았고 셋은 돌아가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여주의 차례가 되었고 예지에게 본인이 경찰임을 밝혔다는 이야기를 하자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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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윤 기

야, 너 미쳤어? 우리 잠복이야, 잠복. 대놓고 나 경찰이에요, 수사하러 몰래 왔어요. 어디 광고할 일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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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아니…! 그럼 어떡해요? 애가 나에 대해서 신뢰가 없으니까 진술이고 나발이고 입 꾹 다물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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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걔 동생이 최초 목격자래요. 그나마 학교 통제를 덜 받는 인물이면서 증거가 될만한게 걔랑 걔 동생이라고요. 어떻게든 걔네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죠. 안 그래요?

윤기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엄연히 잠복수사였고 학교에서는 쉬쉬하는데 거기에 경찰이라는 소문이 돈다면? 아마 그들은 증거는 커녕 학교에 발조차 못 들일지도 모른다.

다들 한숨만 내쉬는 윤기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미동 하나 없는 여주를 보며 때아닌 눈치싸움 중이었다. 한창 어색해지려는 때에 정적을 깬 건 석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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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진

여주가 어련히 잘 대처하겠지. 이제 얘도 그정도 대처할 짬은 되잖냐? 우리가 알던 그 병아리 경찰 아니야.

석진에 말해 여주는 웃음을 윤기는 인상을 품었다.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는 판이기에 윤기가 한발자국 물러나는 듯 해보였다.

그런 윤기를 보며 석진은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윤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석진은 이내 고개를 여주 쪽으로 돌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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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석 진

그래서? 걔는 뭐래? 경찰이라는거 듣고 마음을 좀 열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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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아직 모르겠어요. 꽤 당황한 모양이더라고요, 표정 보니까.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기다려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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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여 주

고2면 어디 붙어야 본인이 살 수 있는지 쯤은 알 나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