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알아보기까지
00. 내가 널 떠나기까지


나는 막 대학을 졸업한 25살 김여주다. 나에겐 1살 연상인 사진작가 남자친구가 있고, 오늘도 그와 데이트를 하기위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간간히 그의 사진 모델로도 출연하기 때문에 옷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그의 문자를 받아보니 오늘은 꽃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간단다. 그래서 꽃무늬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사실...사놓고 안입어서 한번 입어본거긴 한데 나름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시간 약속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10분 일찍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꽃내음이 퍼졌다. 그리고 저 멀리, 내 남자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김민규
먼저 와 있었네? 오늘 예쁘게 하고왔네? 들어갈까?


김여주
응응, 가자! 근데 무슨 벌써 사진기를 들고있어~ 진짜 못말려 김민규.


한손엔 사진기를 들고 한손엔 살포시 내 손을 잡아오는 민규가 마냥 싫진 않았다. 바람도 선선하니 좋고, 오늘은 정말 좋은일만 있을것같았다.


김민규
여주야, 거기 서봐.

김여주
...여기? 포즈는 뭐...아무렇게나 해볼게!

「찰칵」



김민규
누구 여보 아니랄까봐, 진짜 잘 나왔다.

김여주
그러게. 아 진짜 김민규, 유명해져서 바빠지면 어떡하지? 그래도 나 너 맨날 나오라고 부를거야...


김민규
글쎄, 내가 유명해지면...? 그때쯤이면 맨날 나오라고 안해도 될걸?

김여주
...뭐? 왜?


김민규
그전에 결혼할거야. 김여주랑.

김여주
아...뭐, 뭐래! 배고파. 빨리 점심이나 먹으러가자...


김민규
응? 나랑 할거지?

김여주
아 몰라...음...여기 식당 엄청많네?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그런지 주변엔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민규랑 나는 뭐 먹을까 고민하다가 근처 파스타 집에 들어왔다. 오늘은 내가 쏜다! 화려하게 카드를 꺼내며 음식을 주문했다.


꽃으로 플레이팅 된 파스타였다. 맛도 일품이었고 나도 민규도 매우 만족한 식사였다.

나와 민규는 그 뒤로도 꽃밭을 더 걸으며 사진도 찍고 놀았다.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했다.

지금까진 정말 행복할것 같았다.

김여주
헤어지기 싫다...우리 또 언제보냐...


김민규
그러게...초록불이다. 얼른 가. 도착하면 꼭 전화하고 너 면접만 보고 또 만나자.

김여주
응응, 들어가서 전화할게! 너도 잘 들어가 사랑해!

나는 민규한테 손을 흔들며 초록불이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건넜다. 취준생 주제에 감히 놀았다는 신의 벌인걸까. 왼쪽에선 큰 경적소리가 울리고 민규가 갑자기 다급히 뛰어왔다.


정말 바보같다. 드라마나 영화볼때 차가 오면 피해야지 왜 가만히 있냐고 화 냈었는데, 이젠 그 이유를 알것같다. 순간 멍해지고 다른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민규는 내게 뛰어오고 가까워진 그 순간 내 몸이 붕 뜨는걸 느꼈다. 그리고 그냥 계속 날아갔다. 바닥에 떨어졌을때, 아무 고통도 아무 소리도 느끼지 못했다. 죽는 실감조차 안들었다. 마지막으로 보인건 눈물을 흘리고있는 민규였다.

그리곤 나도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처음 눈을 떴을땐 수술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실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민규도 같이 뛰며 내 손을 꼭 잡고 눈물만 흘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민규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수술실에 들어가야해서 손을 결국 못잡고 말았다. 나는 숨을 힘겹게 몰아쉬며 또 눈을 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땐 병원이 아니라 웬 해변가였다. 아픈거도 없고 그냥 덩그러니 해변가에서 깨어났다. 아직 상황파악을 하고있는데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JH
안타까워서 어째...

김여주
네...? 아, 저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아니 전 분명히 병원에 있었는데...


쳐다보니 왠 잘생긴 남자가 바다에서 장난을 치며 혼자 놀고 있었다. 사실 그냥 관광객처럼 보였는데 이런걸 물어보는거도 참 나지만 그냥...정신이 너무 없었다.


JH
여기 천국이지. 정확히 말하면 천국과 지옥의 중간? 음...인간들이 많이 쓰는 저세상 정도로 하면 알아들으려나?

김여주
......


JH
울어? 뭐, 죽는다는건 매우 슬픈일이지. 여기까지 왔다는건 돌이킬수 없다는거고.

물론 내가 생각하던 그런 천국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트럭에 치이던 그때, 분명 죽을거라고. 수술실에서 희미한 의식으로 눈물을 흘리던 민규를 봤을때도 온통 머릿속에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사람은 죽기전에 자신이 죽을걸 예감 한다던데 딱 그 느낌이었다. 수술해봤자 죽겠구나. 이 사람이 한번 더 그걸 알려주니 말로는 표현못할 큰 슬픔이 다가왔다.

나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하지만 내게 가족과 친구보다 더 소중해져버린 민규가 있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재수가 좋더라. 어쩐지 날씨가 좋더라. 어렸을때부터 학대와 왕따로 행복할일 없던 나에게 이런 행복이 온게 실수였구나.

나는 진짜 몇분, 몇시간을 펑펑 울었다. 그 남자는 그냥 가만히 나를 지켜만 봤다. 기다려주는것 같았다.


JH
다 울었어? 괜찮아? 힘이 하나도 없어보여.

김여주
......


JH
묻진 않을게. 마냥 죽었다는거 말고 다른 슬픔이 있다는거 알아. 물론 죽었다는게 제일 크겠지만...

김여주
...저 어떡하죠...저 아직 죽으면 안돼요...마지막으로 민규만 보고오면 안될까요...제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마지막이라면 민규 얼굴 한번만 보고싶어. 나를 최대한 빨리 잊되, 너무 많이 잊지는 말고. 매일 울지말고 슬퍼하지말고...하지만 가끔은 슬퍼해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았는데.


JH
뚝. 그만 울어. 그자가 그렇게 보고 싶으면 방법이 없진 않지.

김여주
에...? 민규를 다시 만날 방법이 있어요?


JH
아예 환생할수도 있지. 대신 너가 그자를 기억해야해.

김여주
제가...민규를요...?에이 당연히 하ㅈ,


JH
대신 너의 기억은 모두 지워질거야. 그...민규라는 사람하고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아, 물론 나도 지워지지.

김여주
아니 그게 무슨...


JH
6개월. 딱 6개월이야. 그때까지 너가 기억을 못하면 영영 잃어버리면서 살면서 딱 6개월 후에 똑같은 이유로 넌 다시 여기로 와서 날 만나게 될거야.


JH
하지만 너가 기억을 하면? 평생 그 남자와 사는거지. 아 평생은 보장못하고 뭐...너희가 헤어질수도 있고 중간에...쨌든 여기 오는일은 좀 늦춰질수도 있지? 노화로 올수도있고...병으로 올수도 있고...

김여주
6개월이요...?


JH
어때. 꽤 괜찮은 딜 아닌가? 해볼래?

김여주
...해볼래요. 저 다시 민규한테 보내주세요.

사실 자신은 없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제일 못했던게 암기였고 정말 추리 장르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건 딱 질색이었지만 민규를 다시 볼수있는 기회를 도전도 안해보고 놓치기 싫었다.


JH
아 참고로 나는 그냥 정한 천사야. 우리 12개월 후에 다시 안봤으면 좋겠다. 잘 가.

갑자기 몸이 무거워지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바닷속으로 더 깊게. 그리고 머리가 매우 지끈거렸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