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왕족 [시즌 2]

44.

스윽 -

계속 훌쩍거리던 백현은 천천히 진정하며 눈물을 닦았다. 몸이 으슬으슬한 게, 열이라도 나는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태형에게 더 짐이 될 수는 없었다.

예언을 말해준다고 하자 태형은 줄곧 백현의 눈동자만 응시했다. 그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겠다는 행동이라 마음이 놓이기도 하는 백현이다.

백현의 눈동자가 서서히 중심을 찾았다. 그 무엇도 담겨 있지 않았던 방금 전의 눈빛과는 달리, 이번에는 두려움과 결심으로 희미하게 채워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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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첫 마디를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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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태형."

여리고 아름다운 선의 기운을 물씬 풍기면서도, 동시에 기댈 수 있을 것만 같은 단단한 느낌을 주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나 그러겠다는 듯 가만히 저를 바라봐주는 느낌이 좋았다.

이 자와 함께인 누이는, 행복하겠구나.

그거면 된다. 백현의 삶에서 다른 목적은 없었다. 오로지 제 누이가 행복하게 웃으며 지내는 것. 그것이 백현의 유일한 삶의 목표이자 살아가는 목적이었다.

싱그러운 느티나무 아래에서 저에게 웃어주던 누이가 생각났다. 오늘도 마을의 작은 경기에서 1등을 했다며 쫑알거리는 저를 미소 지으며 바라봤던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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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그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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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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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태형,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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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닮아요? 뭘... 요?"

저를 바라봐주던 누이의 굳건한 눈빛. 태형과 누이의 눈빛은 참 많이도 닮아 있다고 백현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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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사랑하면 닮는다는데."

누이는 정말 태형을 사랑하고, 태형은 정말 누이를 사랑하는구나.

서로 많이 아끼는구나.

이제 괜찮겠구나.

'누이에게도... 내가 누이를 생각하는 것처럼 참으로 소중한 자가 생겼구나.'

챠앙 -

보름달이 넘실거리는 넓은 벌판에서 별안간 칼을 뽑아드는 소리가 세상 날카롭게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순식간에 분위기는 삭막 그 자체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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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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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지금, 내 앞에서 이게 무슨 짓이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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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사과를 바란 게 아니야. 무슨 짓이냐고 물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숲을 거의 기다시피 해서 빠져나왔건만, 죽을 상태로 숲 근처의 군사 대기실을 찾아온 석진의 일행을 맞이한 건 눈부신 칼을 뽑아드는 군사들이었다.

석진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두통으로 죽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진짜 하나뿐인 제 동생 김태형을 어쩌면 좋은가. 이 위기는 또 어떻게 탈출한담.

지금 싸우는 건 무리였다. 가장 강한 정국이 부상을 입었고, 정한도 아무래도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늑대라 해도 많이 지쳐 있었다. 게다가, 싸움에 낄 수도 없는 인간도 세 명이나 있으니 당연히 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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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배후가 누구인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칼을 꼭 말아쥔 팀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는 자가 말했다. 쉽게 말하면 군사팀, 경호팀 팀장. 어릴 적부터 말을 섞으며 많은 정을 쌓아왔건만. 그 권위와 재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되는 삶에 석진은 다시 한 번 지쳤다.

보나마나 배후는 한승우겠지. 왕궁에서 사라진 태형을 기회로 잡아 순식간에 권력을 취득해 휘둘렀겠지. 저들을 잡으라고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자 석진은 미칠 것 같았다. 김태형 이 놈의 새끼가 한승우라는 미친 놈은 나한테 맡기고 지금 변백현이랑 불구덩이로 튀었겠다? 시발, 다시 보기만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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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 말로 끝내자. 우리 오래 봤잖아요. 해치고 싶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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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아니 아까부터 무슨 앵무새도 아니고 계속 같은 말만 하네. 이래서 어떻게 끝내게요."

"..."

"목을 잘라 머리를 가져오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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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뭐, 씨발?"

진짜 골 때린다, 한승우... 석진은 뒷골이 당겨오는 것 같은 느낌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제 뒤에 죽을 듯 부축 당하는 정국, 그런 정국을 부축하는 남준. 뒤에서 긴장한 채 늑대의 상태로 엄호하는 정한, 그리고 눈이 동그래진 인간 셋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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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내가 뭐 어쩌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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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자, 그래요. 내가 진짜 어떻게든 진짜... 뭐 일단 정리를 하면 한승우가 우리 대가리를 원한다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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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하, 그래... 당연히 이런 질문 대답 안 하시죠."

석진은 머리를 헝클이며 말을 툭툭 내뱉었다. 그때, 뒤에서 저를 부르는 떨리는 목소리. 석진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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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김석... 진... 저기... 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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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뭐?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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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저기... 걸어오는... 저... 경호 받으면서... 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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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아."

지민이었다.

당당하게 경호를 받으며 걸어오는 지민의 표정에는 즐겁다는 감정이 가득했다. 석진은 힘을 주느라 바들거리는 제 손을 어설프게 감추며 그를 노려보았다.

감히 무슨 생각으로 우리한테 얼굴을 다시 비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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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5)

"...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는 말았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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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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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5)

"정호석 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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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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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5)

"내 인생의 걸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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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 (27)

"미쳐도 단단히 미친 인간이구나."

석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딱딱하게 목소리를 굳혔다. 저 자의 입에서 호석의 이름이 나오다니, 게다가 걸작이라고 칭하다니. 분통이 터져 죽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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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5)

"또 그렇게 미친 건 아니고. 저기 저 늑대 꼬맹이랑은 꽤 잘 지냈었어요. 그렇지, 정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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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한 (14)

"..."

언제부터 변해 있었는지 인간의 모습을 한 정한이 눈물을 살짝 보이며 지민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민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살짝 웃기까지 하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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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25)

"뭐... 여기서 죽는 거 싫으면... 끌려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그가 작게 고갯짓하자 순식간에 군사들이 석진의 일행을 애워쌌다. 정한은 반사적으로 늑대의 모습을 했고, 석진과 남준의 손에서는 능력이 튀어나갈 준비가 끝나 있었다.

하지만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표출하는 석진을 보던 지민은 시원한 밤 바람에 머리를 기분 좋게 넘기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결말은 죽는 걸로 다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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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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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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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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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나는 누이 지키겠다고 내 몸까지 팔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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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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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그리고 그 몸을 산 사람이, 도련님이야."

태형은 기운 없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 백현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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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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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난 수많은 자들을 죽이고, 아프게 했어. 내 눈 앞에서 바지를 붙들고 엉엉 우는 어린 아이까지 아무런 감정도 주지 않고 가차 없이 찔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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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하는 내내 고통이었어. 그래도 버텼지. 신라에서 이곳으로 넘어오곤 소문을 하나 들었는데, 그 소문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해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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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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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누이가 폐하의 곁에 있다는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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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처음에 신라에서 뭣도 모르고 넘어왔을 때는 그냥 어떻게든 누이를 다시 볼 때까지, 내가 잘 지켜줄 수 있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날 거두겠다는 도련님께 갔어. 숲에서 생활하는 게 새롭고 피곤했지만 나름 괜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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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그렇게 지내던 하루, 도련님이 나에게 말해줬어. 내 누이가 폐하의 곁에 있는 거 같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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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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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백현은 금방 그친 눈물을 또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눈물은 진짜 마르지도 않을까. 이제 어이가 없어서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제 앞에서 이렇게 담담히 들어주는 태형을 보는 게 너무 힘들고 아팠다. 지금까지 차가움으로 일관하며 혹독하게 저 스스로를 내리치던 버릇이 점점 없어지는 건 더 고맙고 아팠다.

울음을 참느라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백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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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어리고 굳건한 왕은 가장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닌 자에게서 죽음을 얻게 될 것이다."

"태형은,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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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이게 예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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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백현 씨."

채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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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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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

숨 막히는 정적. 바람을 선명하게 가르는 무거운 쇳덩이의 소리에 태형은 말 하려던 무언가를 멈추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태형이 낸 소리가 아니었고, 그에 따라 백현이 낸 소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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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가장 고통스러운 관계를 지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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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호석이 형."

태형의 등 뒤에서 칼을 든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백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이 굳어 제 손으로 입을 꾹 막고 눈물만 펑펑 쏟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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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25)

"..."

"형이었구나."

오늘은 작에 등장하는 백현이의 생일이자, 입대일이에요! 건강 문제로 (자세한 건 기사로!)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백현이는 훈련소 2주 + 공익으로 1년 9개월 동안 지내게 됐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애 생일 날 입대가 뭐야 국방부 이 놈들아.. ㅠㅠ)

부디 백현이가 아무 탈 없이 안전하게 잘 다녀오면 좋겠어요. 전 백현이가 오기 전까지 정말 열심히 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린이날 쉬지도 못하고 공부를 했네요... ^^

저 시험 10, 11일이에요! 얼른 끝내고 와서 여러분들께 더 좋은 얘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오늘도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