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쓰는 조각글

자각몽 [ 사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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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몽

현실과, 꿈결





야근에 찌들어 퇴근해보니 새벽에 가까운 밤, 물감회사에 다니는 나는 과장이라는 놈이 준 색상정리, 보고서까지 다 하고  오늘도 꿈꿔본 칼퇴근은 역시 헛된 희망이라는 듯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솔직히 매일매일  보니 기대도 안했지만 ) 우리 부서로 일을 주는 타이밍은 참으로 기가 막힌다.  (주는 거라고 쓰고 미뤄 넘기는 거라 읽는다) 어떻게 칼퇴를 꿈꾸는 순간에 일을 주는 건지 이제는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게 있나? 그래도 난 모든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고 윗사람에겐 싹싹하게 대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가 일 처리를 너무 잘하는 거라고 억지로 긍정적으로 포장해보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과장님이 미친 듯이 미뤄 넘겨주신 일 덕분에 팀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다. 이걸 과장 덕이라고 봐야 하나... 이 퇴근을 하는 기쁜 순간에 과장 놈을 생각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꼴통 과장은 이 순간만큼은 내 기억 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회사를 나와 거리를 걷다 보니 상쾌한 밤공기가 느껴진다. 이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는지 시끄러운 술집,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붐비는 클럽이 보인다. 거리에 무지개 ㅌ 아 아니 여기까지... 나도 돈이 있긴 하지만 친구들이 무엇보다 내가 너무 바빠서 못 만난 지 몇 달은 된 것 같다. 저번 주에 열렸던 동창회도 갑자기 부서에 취소가 나는 바람에 가지도 못했다. 남들 잘 사는 걸 보는 거 그다지 내겐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친구들을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 아 나 왜 이렇게 불쌍해 보이지 ) 

' 집에 가서 캔맥주나 마셔야지 ' 

매일 바빴지만 요즈음 너무 바빠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질 못한 것 같다. 잠깐 휴가라는 신성한 것을 생각했지만 월급의 노예인 나는 얼른 생각을 지우고 안주를 사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만원에 캔맥주 4개인 것을 보고 얼른 집어 들었다. 이런 행사를 생각한 사람은 누구지... 진짜 천재인 것 같다. 아니면.. 천사? 기획자님... 날개 제거 수술은 안 아프셨나요...! 신나는 발걸음으로 편의점을 나와 집에 도착했다. 몇 년간 밥과 물욕을 줄여가며 저축한 돈으로 산, 전세지만 멋지고 포근한 나의 집...!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냉동고에 넣으며 살얼음이 낀 맥주를 생각하니 벌써 행복해진다. 야근으로 인해 녹초 같은 몸을 위해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 달달한 샴푸향을 맡으니 피로가 조금은 가신 느낌이다. 언제나처럼 화장으로 지우고 있자면 어차피 또 칠할 얼굴인데 굳이 지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하얗고 트러블 없는 피부를 위해서 귀찮음과 고통을 감내하며 깔끔하게 지워냈다. 포근한 잠옷으로 갈아입으니 역시 호캉스 호캉스 해도 역시 이게 휴식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차가워진 맥주를 까니 탄산이 터지는 소리에 내가 이걸 마시려고 회사를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모금 마시니 살얼음 낀 맥주가 톡톡 튀는 탄산으로 내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고 간다. 크으... 이 맛이지! 감칠맛 넘치는 오징어를 씹으며 TV를 보고 있으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문화시민답게 오랜만에 문화를 즐겨보려 채널을 돌리고 있지만 딱히 볼거리가 없어 애꿎은 리모컨만 고생이다. 

' 요즘 트로트가 유행인가 보네... '
채널을 돌리고 있자면 모두 트로트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다. 회사에 지박령처럼 사는 나는 한참을 유행하고 있는 트로트를 이제 알았다는 것에 현실을 깨닫게 됨과 동시에 역시나 내 인생을 망치는 회사에 대한 원망은 더욱 깊어졌다. 채널을 한참을 넘기고 있을 때 ' 당신이 모르던 괴담일지'라는 프로그램이 보였다. 줄여서 당모괴. 연예인들이 나와 자신이 직접 겪은 귀신과 관련된 사연을 읽어주는 아주 유명한 프로그램이다. 요즘 유행이라는데 나도 학생 괴담에 미쳐 살았던 터라 회사에서 휴식 시간에 가끔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 오늘의 사연은... 자각몽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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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야심한 밤 퇴근한 저는 피곤함에 찌들어 샤워하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그날은 오랜만에 야근한 날이라 너무 피곤했는지 저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꿈보다 특별하고 자유로운 꿈이었어요. 그 꿈은 흔히 말하는 '자각몽'이었습니다. 그 꿈에서 저는 현실에서 못 이룰 것들을  꿈에서라도 이뤄보자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 상사에게 쌓인 울분들을 모두 토해냈습니다. 현실이라면 절대 못 했을 일이었죠. 알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회사에 나가야 했지만, 평소보다 조금 후련한 마음으로 출근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1주일 동안 자각몽을 꾸었고 그때마다 저는 사람들에게 쌓였던 앙금을 풀었습니다. " 

"1주일이 되었고 월요일, 전 상사에게 성차별적인 모욕과 수치심을 겪었습니다. 상사라서 토를 달지 못하고, 그렇다고 신고하기엔 회사는 제 편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동기 말대로, 저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던 거죠 " 

" 짜증이 나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저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꿈에서라도 복수하기 위해 자각몽이라도 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에 들었습니다. 잠이 들 참에 내가 너무 자각몽에 의지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하지만 어느새 저에게 자각몽은 피곤하고 각박한 현실에 오아시스가 되었습니다. 오늘만큼은 꿈에 찾아온 자각몽이 아까 걱정했던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말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저의 화는 사그라들 기색이 안보였습니다. 저는 꿈속에서 차를 끌고 회사 로비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던 저는 로비 유리창을 부수고 차에 내렸는데요 차 밑에는 저를 모욕했던 팀장이 깔려 죽어있었습니다. 꿈이었기도 했고, 수치심과 모욕 때문에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저는 그냥 통쾌하다는 생각과 망할 회사가 로비는 회사의 얼굴이라며 직원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로비를 부쉈다는 있지도 않은 죄책감보단 ' 어차피 꿈이니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습니다 " 

" 그렇게 다음날 전 회사로 출근했습니다. 그렇게 풀고 나니, 확실히 후련하고 통쾌하더군요. 열심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제 친구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확인한 순간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 너무 싫어했던 선배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이더라고요. 제가 놀랐던 이유는 꿈에서 선배에게 화풀이했던 것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꿈에서 제가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말싸움이었죠. 그래서 저는 저와 연관 없이 그저 ' 우연히'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좋지 못한 일은 선배일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좋은 목적으로 꿈으로 불렀든, 안 좋은 의미였든 모두 좋지 않은 일을 겪었습니다. 결국 다른 지방에 살고 계셔서 보고 싶어서 꿈으로 불러낸 부모님까지도 사고를 당했다는 걸 알고 그제야 전 사태에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 

"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빼놓지 않고 일이 생기고 있을 때, 전 제가 유일하게 해를 가한 사람, 팀장이 생각났습니다. 그날만큼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혹시나 똑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내가 과연 죄책감을 이겨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결국 전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퇴근했습니다. 이걸 말해야 하나 싶었지만 내심 이 사람이 내 인생에서 살아지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처음엔 의심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의문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습니다. 예상대로 혼란스러우셨는지 생각을 정리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으시더군요. 그날 밤, 아무 문자를 받지 못한 저는 불안에 떨어 잠에 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 문제는 모두 출근을 마쳤어야 하는 9시 정각이었을 때입니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을 때 로비 쪽에서 '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는 너무 놀라 로비로 뛰쳐나갔습니다. 로비 쪽으로 나와 있는, 산산조각이 난 자동차와 그 앞엔 넘어져 있는 팀장님이 계셨습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다고 전해 들었지만,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자동차 조종석엔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 시동은 꺼져있는 상태였다. 이것들은 사건 당시 경찰분에게 사정하여 들었습니다. 또한, 나중에 팀장님께 들은 바로는 그 자동차는 마치 자신을 노리고 달려들었다고 하시더군요. 다치지 않으셨다는 전화 한 통으로 저는 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퇴근하고 집 앞 문에 도착했을 때, 문 앞에 쪽지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피로 쓰인 듯한 붉은 색으로 쓰인 것 쪽지었습니다. 

'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어? ' 

" 갑자기 눈이 깜깜해지더니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습니다. 신고하신 분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옆집 아주머니였는데요.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를 들어보니,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보니 빈 종이를 들고 쓰러져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역시나 주머니에 그 쪽지를 보니 빈 종이더군요. 다행히 그 일 이후로 전 평소처럼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벌써 3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고 소름이 끼쳐 사연 보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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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괴담 사연인지라 집중이 잘되어서 벌써 맥주를 모두 비어버렸다. 아... 아껴먹으려고 했는데... 이번 사연은 뭐랄까... 자각몽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이다 보니 궁금하기도 하다 물론 주변 사람에게 해가 간다니 생각만 해도 너무 싫지만... 과장 놈은 괜찮을 것 같기도... 내일도 회사에 갈 생각에 온몸이 짜릿해진다. 아 젠장 미래가 암울해... 조금 있으면 12시이기에 얼른 맥주를 치우고 화장실로 가서 양치했다.  자기 전 양치는 역시 너무 귀찮아... 침대에 눕자 알코올 덕인지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아... 잠에 들면 또 출근ㅇ.....아악!! 또 아침이야!!! 그 지긋지긋한 아침이 밝아왔다. 다행히도 알코올에 강한 나이기에 4캔을 마셨지만, 숙취는 없었다. 하지만 그 과장 놈 면상을 볼 생각에 없던 숙취도 생겨날 지경이었다.. 망할.. 아 나 진짜 퇴사하고 싶어... 하지만 먼저 말했듯 나는 월급의 노예... 오늘도 출근 준비를 해본다.. 출근하자마자 반겨주는 동기님들... 그래! 내가 동기님들 덕분에 출근을 할 힘이 나지!!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를 놓아주는 나의 절친 로진 씨.. 아 진짜 천사인가 봐... 카페인을 수혈하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좀 살만하니 로진 씨 이야기를 해보자면 면접 대기 때 처음 보았던 사이였다. 성까지 하면 유로진. 살가운 로진 씨의 성격 덕에 면접 자리에서 친해졌고 그 자리에서 번호까지 교환했다... 이렇게 갑자기 친해져 번호 교환은 처음이었는데 진짜 설레더라... 내가 이런 멋진 사람이었던가...? 친구를 이렇게 사귀다니... 그 자리에서 면접 합격을 축복하며 집으로 돌아가 몇 시간 동안 카톡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톡 내용은 물감회사에 취직한 이유, 가장 좋아하는 물감 브랜드, 색 같은 내용이었다. 로진에는 특이하게도 ' 머미 브라운'이라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봤을 때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깊이 있는 색이라나 뭐라나.. 그때부터 머미 브라운이라는 색을 좋아한다고... 다른 색은 빨간색이나 파란색 같은 원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게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면접 결과 통보 날... 둘 다 통화를 하며 이메일을 확인했을 땐 둘 다 소리를 너무 질러 목이 쉬어버렸다... 아무튼 학창 시절 괴담을 좋아하던 취향까지 똑 닮아버린 우리는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으며 함께 놀러 다니는 정도까지 친해졌다...? 아무튼 로진 씨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 아 밤에 당모괴봤어? 으 너무 무섭더라... " 

" 어제 맥주 먹으면서 봐서 무섭긴 해도 좀 궁금하긴 했어. 되게 신기하긴 했잖아? " 

" 아 그렇긴 ㅎ... 아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 

" 어이구 할 일이 없나 봐? 수다 소리가 로비까지 들려 아주 " 

" 앗 죄송합니다.. 일하겠습니다... " 

아 우리 불쌍한 로진이... 과장 놈 나타나는 타이밍 참... 그래 이제 내 일 해야지... 오늘도 정의로운 월급도둑이 되길 허락해주세요. 신이시어...! 이야 오늘 일 참 많다!! 이메일은 아주 터지기 직전이다. 그래 월급도둑은 무슨... 노예지 노예야... 일하는 중에도 밀려드는 일이 아주 끝이 안 보인다 끝이 안 보여... 와 오늘은 무슨 날인가? 신이 나 불행해지라고 점 찍어 논 날인가... 옆 부서에서 난리 났다고 우리 부서로 도움을 요청하고 심지어 우리 부서 캔슬까지 났다... 아니 이게 말이야?? 미친 듯이 타자를 치고있으니 손목이 아파진다... 내 월급 병원비로 다 나가겠다... 일을 중간까지 했을 땐 새벽 1시였다. 그래도 월급은 더 주겠지... 아니 줘야지 이 미친 회사야.. 폰에 알람이 울려 핸드폰을 보니 로진이가 아메리카노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아 진짜 미친 거지 진짜 천사야... 일을 끝내자마자 나는 진심으로 걸었다라는 말보단 뛰쳐나갔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이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이 월급날... 아 짜릿... 하지만 지금은 월급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서 자고 싶다... 평소에 버스로 퇴근하지만, 오늘만큼은 택시를 타기로 했다. 역시 버스보다 시원하고 편하다... 역시 흠은 돈이겠지만... 아악 몰라 그게 지금 내 알바야??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 내일이 토요일임에 감사하며 씻지도 않고 잠이 들었다. 침대가 이렇게 그리웠던 적은 처음이다... 내 소중한 비싸디 비싼 매트리스... 그대로 난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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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들려오는 차 소리에 눈을 떠보니 도로 한복판이다. 꽤 익숙한 건물이 보이는 것을 보니 회사 앞 도로인 것 같다.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차들은 양옆으로 쌩-하고 지나간다. 인도에는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흔한 원색 간판조차 보이지 않는 흑백이었다. 그저 내가 서 있는 자리만 유일하게 색이 있었다. 미친 이게 뭐야...?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미친 듯이 달려오는 차 앞에 가만히 서 있는 한 여자가 보였다. 자살...? 아니면 놀라서 굳은 걸까? 이런 생각조차 할 겨를 없이 본능적으로 여자를 끌어당겨 피했다. 반동 때문에 넘어졌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 아 꿈이구나..? '일단 꿈이라는 것까진 좋았는데 왜 하필 이런류인가... 무릎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남자는 사라져있었다. 아니, 사라진 건 남자뿐만이 아니라 하늘을 찌를듯한 건물도, 미친 듯한 속도로 지나다니던 차들도 사라져있었다. 그저 백색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것도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쭉한 새하얀 공간에 말이다. 예전에 자각몽을 아주 여러 번 꿨던 친구가 말해준 경험담이 생각났다. 꿈이라는 걸 자각하면 바닷속에 잠겼다가 누군가 수면으로 억지로 올려주는 듯한 답답함과 이질감이 있다고. 그리고 보통 자각몽은 깰 때쯤 꾸는 거라 아, 곧 깨겠구나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친구의 말대로 일단 지금에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친구가 말해준 특유에 이질감도, 깨겠구나하는 느낌도 없다. 친구가 말한 답답함도 없어서 정말 현실에서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갈림길이 나타났다. 한쪽은 똑같은 흰색 공간, 다른 한쪽은 페인트처럼 보이는 빨간색 액체가 쏟아져 있는 방이었다. 예전부터 나의 직감은 꽤 쓸만했다. 하지만 보통은 호기심이 이기는 편이었다. 이 꿈도 그런듯하다. 내 직감은 흰색 공간으로 가라고 하지만 나의 호기심은 빨간 액체가 쏟아져 있는 방으로 가라고 한다. 내 결정은 빨간 방이다. 이유는... 호기심을 이길 수 없어서...? 빨간 액체 방으로 들어가자 흰색 대신 빨간색으로 빈틈없이 칠해져 있었고 곳곳엔 새빨간 그림이 걸려있었다. 

" 에이 별일이 있겠어? 어차피 꿈인ㄷ... " 

그때, 내 머릿속에 한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오며 기억하라는 듯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덕분이 머릿속은 깨질 듯이 아파졌다. 

" 어차피 ' 꿈이니까'라는 생각이... " 

갑자기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눈앞 공간이 뒤틀리는 느낌이다. 노이즈가 낀, 낮은 톤으로 변조된 듯한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서 몇 번이든 몇백 번이든 계속 재생되어 머리를 헤집어놓고 깨질 것처럼 어지럽고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코를 비집고 들어와 맡아지는 냄새는... 쇳내.. 페인트가 아니라 피였다. 코를 찌르는 듯한 강렬한 피 냄새와 수백 번 반복되는 목소리는 날 미치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 아아악!! "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원하는 소리를 들은 듯 사라졌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싶어 멍하니 생각을 조금 정리해본 나는 방을 단단히 잘못 들어온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니 벽은 이미 막혀있었다. 가로막힌 벽에 벽지를 자세히 보자 꽤 오래전에 피를 바른 듯한 갈색이 곳곳에 섞여 있었다. 걸려있던 그림조차 미라로 만든 머미 브라운이라는 물감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걸어가면서 본 풍경은 모든 그림은 모두 전 세계에 알려진 그림들, 예를 들어 별이 빛나는 밤, 이삭 줍는 여인들 같은 명작들이 조금씩 각색되어 있었고 또한, 머미 브라운 특유에 갈색빛 색감이었다. 로진이가 보여준 그림들은 따뜻해 보이는 색이었는데 이 그림들은 모두 소름이 끼치고 굳어있는 피처럼 보였다. 그림들을 보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방 끝에 다다랐다. 방 끝벽에는 로진이 와 내가 우정 여행 때맞춘 벚꽃모양이 걸려있었다. 살 때는 안에 박혀있는 벚꽃잎의  분홍색이 너무 마음에 무척 들어 이 곳에서의 빨간 물감에 억지로 오랫동안 담궈둔 그런담가둔 색이었다. 하지만 그런 게 내가 될 거라는 듯, 사방에서 빨간색 피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방 전체에 특유의 피 냄새가 진동을하고  아까 다시 괜찮아진 머리가 더욱 아파지기 시작했다. 쏟아져 내리는 피가 밖으로 나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없었고 어느새 피가 내 허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생생한 물의 촉감에 나는 더 이상 이게 꿈일것이라는 생각은 이미 지워버렸다. 어느새 피가 내 머리 끝까지 폐 안으로 비집고 들어와 산소 대신 모든 자리를 꽉 메워버렸다.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을 쳤지만 어떤 거대한 손이 날 핏속으로 끌고가는 게 느껴졌다.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않는공급되지 않는점 길어져가고,길어져 가고 빨간 피 대신 새카만 어둠이 찾아왔다. 정신이 점점 아득해져갔다. 

" 으악! "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깨어나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치던 게 모두 헛수고라는 듯, 아주 허무하게도 깨어났다. 어젯밤에 실수로 켜둔 걸 알람 덕분에 일어나게 되었다. 깨어나고 보니 아직 오전 8시 무렵, 나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고, 침대 바로 앞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평소였다면 아 개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다. 꿈은 깨어나면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지지만, 이건 내가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생생했다. 점점 차오르던 물, 미친 듯이 반복되던 노이즈 낀 목소리, 둔기로 내려친 듯한 그 두통까지도, 꿈만 생각하다 주말이 날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간 방에 충격이 꽤 커서 그런가, 집에 있는 빨간 물품만 봐도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꿈에서 내 머리를 쪼갤듯한 두통은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 각인된 듯 조금씩 조금씩 내 현실로 괴물처럼 비집고 들어왔다. 잘 시간이 되었을 땐, 꿈에서 겪은 그 고통 그대로 내게 전해져왔다. 마치 자라는 것처럼. 상냥하지 못한 자장가였다. 나는 꿈으로 돌아오라는 이 부름이 두려웠다. 또다시 그곳에 가두어져 한 번도 빼앗긴 적 없는, 평범한 일상을 영원히 빼앗겨 마치 허상처럼 그리게 될까 두려웠다. 나는 조금이라도 잠을 안 자기 위해 평소 마시지 않던 카페인 음료를 마셨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다는 듯, 카페인을 마셔도 잠이 왔다. 조금씩 버티기 시작했던 나는 본능, 아니 부름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똑같은 차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똑같은 여자가 똑같은 차 앞에서 똑같은 장소에서 죽으려고 한다. 나는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여자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적어도 이 꿈이 평범한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어차피 아프지도 않은 거 구하기로 했다.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이 잡아당긴 손, 똑같은 자세... 그리고 똑같이 와버린 공간. 그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한번 겪고 나니 더욱 이질감이 들고 소름이 끼치는 하얀색 방이었다. 오늘도 앞으로 걸어갔다. 나에게 선택지는 없기에. 

또 양 갈림길, 이번엔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이 흐르는 방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파란 방으로 향했다. 누가 이끄는듯한 느낌이었다. 곱게 말해서 이끈다는 거지, 사실상 붙잡아서 끌어당기는 느낌이다. 깜짝 놀란 나는 뒤로 넘어지게 되었고, 파란 방에서 커다란 손이 나와 내 다리를 붙잡아 끌고 갔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주변에 잡을 만한 사물이 없어 결국 난 파란색 방으로 끌어당겨졌다. 버틴답시고 손톱이라도 박아넣어 버텼지만, 애꿎은 나의 손톱만 깨졌다. 어쩔 수 없이 들어왔으니, 물에 잠겨서라도 이 반복되는 환각 같은 곳에서 나가보자는 마음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 방도 빨간 방과 마찬가지로 새파랗게 칠해진 방이었다. 이번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검은색과 진한 파란색의 선으로만 이루어진 차가운 그림이었다. 왠지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빨간 방에서 생긴 고통들이 너무 힘들어서? 트라우마 때문에? 모두 아니다. 날 억지로 눈물이 나게 하고 있다. 마치 네가 잘못한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라는 것처럼 갑자기 눈앞에는 액자들이 나타났다. 그 액자는 내가 잘 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순간엔 내 눈꺼풀이 내려가지 못하게 누군가가 막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 너의 뇌에 새겨놓고 반성하라고. 눈물은 미친 듯이 흘러나왔다. 나중에는 날 무릎까지 꿇려놓았다. 한참을 울고 있을 때, 이 파란 방에 어울리지 않는 그 새빨간 벚꽃 키링이 앞에 떨어졌다. 그때야 내 눈물은 수도꼭지가 잠긴 듯 뚝 하고 멈췄다. 키링은 할 일을 다 한 듯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제야 난 아픈 다리를 펴고 일어날 수 있었다. 내 잠옷은 눈물에 적셔져 있어야 했지만, 웬일인지 뽀송했다. 저번에 로진이가 읽은 책 구절을 소개해줬는데, 남이 흘리게 한 거짓된 눈물은 이 세상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영향을 주다 못해 그들을 용서하고, 지지할 정도가 되었다. 아무튼 나는 점점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그림은 울트라 마린이라는 원색에 물감으로 그려져 있었다. 나는 파란색을 좋아하기에 구경할 만도 했지만, 지금 나에겐 그저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드디어 방 끝에 다다랐다. 그 방 끝엔 분수가 있었는데, 파란 물감이 흐르는 분수였다. 화려한 분수였지만 관리를 안 한 듯한 녹슨 감이 있는 분수였다. 흐르고 있는 물감에 손을 대자, 분수대에서 검은손이 나와 날 분수 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손에 놀라 아무 저항 없이 분수대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물감 속이었지만 마치 물처럼 먼 곳까지 보일 정도로 맑디맑았다. 또 이렇게 익사를 체험하는 건가 싶을 찰나에, 내 앞에 쪽지가 보였다. 그 쪽지를 잡자, 숨이 쉬어졌다. 마치 쪽지를 읽을 시간을 주는 것 같았다. 쪽지를 펼쳐서 내용을 확인해보았는데,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꼭 물이 다가가지 않는 것처럼 글자 크기에 맞춰 공기 방울이 붙어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아까 본 그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내일모레 12시까지. ' 

그 쪽지를 확인한 순간 난 꿈에서 깨어났다. 이번엔 땀에 젖어있지도,  창백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변한 건... 내 집 안에 있는 빨간 물건들이 모두 파란색으로 변해있었다. 마치 그 꿈을 기억해내라는 것처럼 그리고 내 머릿속엔 두통 대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일단은 기억나는 대로 만나서, 문자로, 통화로 용서를 구했다. 놀랍게도 그 사람 얼굴을 보면 사과해야 할 것들이 생각이 나고,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의 뇌를 지배했다. 그리고 내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내가 사과했던 사람들은 모두 용서해줬다. 그러곤 하나같이 하는 말이 ' 너 너무 창백한데...? '라는 소리였다. 마치 귀신이 날 조종하는 것 같았다고, 나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했다. 내가 겪은 꿈에 대해서 말할 참엔 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무거운 추를 입에 달아놓은 느낌이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죄책감이 들었다며 얼버무릴 수 밖엔 없었다. 그렇게 밤까지 기억나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딱 한 사람, 어떤 여자가 기억나지 않았다. 중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끔 뇌에 무언갈 집어넣으려는 것처럼 아파졌는데, 그때마다 내 뇌는 필사적으로 지워냈다. 마치 꿈에서 기억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지우고 있는 것처럼.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입장으로선 일단 자야 한다. 지금 머릿속에 두통은 없다. 지금 잠이 들면 또 그 꿈을 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또다시 그 꿈에서 무슨 일을 겪지 않을까 하며 조금 긴장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 놀랍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다. 전엔 꿈 때문에 잔 게 자는 것 같지 않았다. 정상적인 잠을 아니까 지금까지 겪었던 피로가 사라졌다. 출근하자마자 탕비실로 가 커피를 타 마셨다. 일하려고 자리로 돌아가니 로진이가 안보였다. 분명 나보다 먼저 출근하니 자리에 있어야 정상이었다. 출근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로진인가 출근하지 않았다. 지각하면 난리가 나는 팀장님이 오늘따라 조용했다. 모두 로진이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평소 나와 친하게 지냈던 시안 씨께 로진이 어디 있냐고 하니 어리둥절해하며 " 로진 씨가 누구예요? "라며 황당해했다. 모두 로진을 잊었다. 아 나 그 여자아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를 타면서도 집으로 걸어올 때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11시, 두통도 나타나지 않고, 아무 변화도 없는 게 너무 두려웠다. 12시에 가까워질수록 사과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꽉 채웠다. 11시 30분. 갑자기 커피가 너무 미친 듯이 마시고 싶어졌다. 마침 로진이가 보내준 커피 기프티콘이 생각나 집 앞 5분 거리 카페에서 교환해 집으로 돌아와 마셨다. 맛은 조금 미묘했지만, 물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던 갈증이 해소되었다. 그렇게 11시 59분 사과라는 단어마저 맴돌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생각하려고 할수록 텅 비어버렸다. 그저 그 커피만 자꾸 마셔서 되었다. 커피를 다 마시자 12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물속. 다시 그 쪽지가 있는 물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쪽지는 다시 접어져 있었고, 읽으라는 듯 밝게 빛나고 있냐고 있었다. 저번과 달리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그저 눈앞이 어둡지 않고 맑기만 했다. 쪽지를 펼쳐서 본 내용은 

' 넌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네, '
'사과? 아니 기억만 해도 널 살려주려고 했어. 지금이라도 기억해내. 그리고 후회해 ' 

' 기억해 '를 읽자마자 떠올랐다. 나의 양심 없는 행동을. 중학교 때 내 절친 디아라는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가 없던 나는 먼저 다가와 준 디아가 너무 고마웠다. 나와 너무 잘 맞았던 나는 중3 때도 함께 지냈다. 운명도 우리의 우정을 알아보았는지, 중3 때도 우리는 같은 반이었다. 같은 학원, 같은 학교, 같은 아파트, 같은 동, 옆집까지... 우리는 친해질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같이 학원을 가던 어느 날, 디아보다 달리기가 빨랐던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신호등 초를 보며 달렸다. 가까스로 도착한 나는 뒤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들어버렸다. 뒤를 돌아보니 디아가 차에 치어있었고, 차는 도망치듯 멀리 떠나버렸다. 충격을 받은 나는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원으로 필사적으로 달렸다. 학원에 도착한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뛰기 직전 마주친 디아에 눈빛이 날 원망하는 듯했다.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다른 사람이 신고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다음날, 디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디아 책상 위에 놓여있는 국화가, 친구들이 디아를 위해 책상으로 국화를 놓을 때 내 심장도 같이 떨어지는 듯했다. 반 친구들은 내가 디아와 친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에게 다가와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나와 놀아주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도 날 위로해주던 무리에 자연스럽게 끼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디아를 마음속한 구석에 넣어두었다. 난 분명 넣어둔 줄 알았는데, 나의 이기적인 뇌는 나의 일상에 가끔식 들어오는 디아가 거슬렸는지, 넣어둔 척하며 지워버렸다. 내가 작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몰래. 그리고 면접 날, 처음 본 로진이의 얼굴이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그 쪽지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새로운 내용을 써 내려갔다. 

' 안녕 나의 오랜 친구, 난 널 원망한 적이 없었어. 하지만 넌 날 지워버리더라? '
' 하지만 넌 나의 하나뿐인 친구잖아? 이곳에서 같이 놀자. 나의 하나뿐인 친구야,  넌 날 버렸지만 난 널 버리지 않을꺼야 ' 

쪽지를 다 읽자마자 검은 손이 날 암흑으로 이끌었다. 나는 죄책감에 발버둥 치지 않고 가만히 눈물을 흘렸다. 물속이라 어차피 보이지 않을 텐데도. 

' 넌 나에게 안정제이자, 환각을 보게해 '

그렇게 4일 후, 뉴스에 보도되었다. 

" 오늘 아침 김모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
" 김모씨는 욕조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었고, 이는 자살로 추정되며 옆에 있던 커피에서 치사량에 20배가 넘는 다량에 수면제인 '유로진'과 독버섯인 알광대버섯, 환각제인 LSD가 검출되었습니다. 침대에서 '디아제팜'이라는 신경안정제가 발견되어 평소에 우울증으로 복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평소 직장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갑자기 실실 웃는 등 이상행동을 자주 보였다고 증언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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