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영혼의 발자취

05. 이상현상, 감지하다. (5)

그러니까, 내가 그 남자애를 처음 봤던 건 아마 2년 전쯤이었을 거야.

여느 때처럼 학교를 돌아다니고 있었어. 학생들이 수업하고 있던 시간인지라 수업하는 선생들 목소리 정도만 드문드문 들리고 있었지. 당연히 돌아다니는 학생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어떤 교실에 웬 남자애가 멍하니 앉아 있던 거야. 뭔가 긴장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고 초조해 보이는 것도 같았어. 어쨌든 기분 좋아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지.

‘땡땡이치는 학생인가?’

그런데 솔직히 잘생긴 남자애한테는 시선이 갈 수밖에 없잖아. 거기다 나는 귀신이라 살아있는 애들은 당연히 날 못 보고. 그 애도 그럴 거로 생각해서 뻔뻔하게 다가가서 그 애 주변을 돌며 쳐다봤지. 그리고 감탄했어. '얘 무지하게 잘생겼구나.' 하고.

“아니, 결혼하셨다고 하지 않았어요?”
“잘생긴 사내는 보물이란다. 아무리 재산이 많은 갑부라도 귀한 보물이 있으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지.”
"…그런 거예요?"
"물론 난 주제를 알고 보물을 탐하지 않는 정상인이야. 그래서 얌전히 눈으로 보기만 했다고. 그리고 너도 그 보물 축에 들어간다?"
"가, 감사합니다?"

어쨌든 간에 당시 나는 상대가 날 인식하지 못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어서 켕기는 것 없었었지.
그러다가 천장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던 남자애가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려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거 있지? 정말, 지박령이 된 이후로 그때만큼 깜짝 놀란 적은 없을 거야.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없는 심장이 쿵쿵 뛰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 내 심장은 없어진 지 오래인데!

"안녕하세요?"
"너, 너 내가 보이니?"
"김춘옥 씨 맞으시죠? 나는 하민이에요. 유하민."
"귀, 귀신이다!! 아 맞다! 나도 귀신이지!"
"나 귀신 아닌데…."

알려준 적도 없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생긋 웃는 그 모습에 깜짝 놀라버렸어. 지금껏 나를 알아본 사람은 같은 귀신이거나, 영적 기운이 강한 종교인 몇몇 정도 밖에 없었거든.
전자의 경우는 상대가 악령이 아니라면 크게 경계할 필요 없었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나를 퇴마시킬지도 모르니 약간의 경계가 필요해.
일단 본인 입으로 귀신이 아니라고 한데다가 겉모습이나 느껴지는 기운이 정말 귀신과 거리가 멀어 나는 그 애가 후자라고 생각했어.
그때부터 약간 소름이 돋아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로 그 애한테서 멀어졌어.

"날 퇴마시킬 거야?"
"아뇨. 제가 퇴마사도 아니고. 게다가 나쁜 귀신은 아니시잖아요."

그 뒤로는, 그 동아리실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 애와 자주 마주쳤지. 사실 내가 찾아간 적도 많았어. 살아있는 사람과 말이 통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죽은 영혼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물이 사람으로 둔갑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너라는 존재가 빠져버려도 아무도 그걸 인지하지 못해, 하지만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 너 혹시 신(神)적 존재야?"
"헤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네요."
"너는 무슨 일로 이 학교에 붙어 있는 거야? 그 동아리? 아이들이랑 관련 있는 거야?"
"꼭 해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고, 실패한다면 계속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 말이에요."
"학교 아이들한테 피해 가는 일은 아니지?"
"물론이죠. 그거라면 제 모든 걸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자세한 사정을 캐묻는 것은 내키지 않았던지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아니라는 것만 듣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어.
그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상당히 밝은 모습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뭔가 좀 외로워 보이고, 지쳐 보였다는 게 기억난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일에 성공한다는 확신도 없는 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

"사람들이 널 알아보지 못하던데, 그건 뭐야? 환각? 여우한테 홀리는 그런 요술이야?"

누구보다 그 동아리 사람들을, 아니 정확하게는 남예준, 한노아라는 학생을 아끼는 것 같은데 가끔 멀리 거리를 두곤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민이 학생들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서 지켜볼 때면, 그 누구도 그의 빈자리는 느끼지 못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럽게 서로 어울렸다.

"역시 너, 사람을 막 홀리는 걸 보니 구미호인가 보구나!"
"뿌뿌- 틀렸어요. 아니지롱."
"귀신도 아니고 요괴도 아니면 진짜 넌 뭘까? 알 수가 없네. 알려주면 안 돼?"
"일단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나머지는 비-밀."

예상한 것들은 전부 틀려버렸고, 하민은 본인의 입으로 자신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만 알려줄 뿐이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하민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 학교에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 그 사실만 알게 되어도 충분했다.

굳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이에게 억지로 사실을 캐내려고 했다가, 자신과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인연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 * *

"어때. 궁금한 게 조금 풀렸어?"
"일단 하민이가 귀신이 아니고 날 해치지 않을 거란 건 확실한 거겠죠…?"
"그 애를 알게 된 지 2년 정도밖에 안 됐지만, 사람에게 해를 입힌 건 본 적이 없어. 오히려 사람을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일단 내 생명이 위협당할 확률이 확 줄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좀 후련해진 기분이었다.
솔직히 내가 보아온 하민이의 이미지는 누굴 해칠만한 인간상과 거리가 상당히 멀어 보였지만, 영화 같은 거 보면 보이는 것만 믿다 큰일 나는 클리셰가 워낙 많았던 탓에 좀 많이 쫄- 아니, 긴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저나, 하민이가 이 학교, 우리 플레이브 동아리에 머무는 이유가 '실패하면 안 되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떤 일' 때문이라는 거지?

"그 일이 뭔지는 모르시는 거죠?"
"한 번 물어봤긴 했는데, 답을 피하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그냥 안 물어봤지."
"으음…. 걔가 어디 사는지는 모르실 테고…."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지박령이니까 알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혼잣말하듯 내뱉은 궁금증이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귀신 누님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하는 소리를 내며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쳤다.

"학교가 끝나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평범한 인간은 못 가는 데라고 하더라."
"…. 저승?"
"걔는 귀신이 아니라니깐?"

천천히 떨어지던 경계심이 다시 툭 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어깨를 툭툭 털고 있자, 귀신 누님이 약간 어처구니없다는 듯 짜게 식은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사내대장부가 되어선 겁이 그렇게 많으면 어떡하니."
"요즘은 그런 말 잘 안 써요…."
"그래, 나 늙었다."

그래도, 새침하게 팔짱을 낀 귀신 누님을 보고 있자니 귀신에 대한 편견이 상당히 사라진 기분이었다.
유명한 귀신 이야기인 장화홍련전 같은 내용을 보면, 한 많은 귀신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밤에 사또를 찾아갔다가 담 약한 사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갔다는…. 그런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 얘기가 사실이었다면 담 약한 나는 바로 하민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안 상태에서 마주치자마자 바로 하늘로 승천했을 것이다.

"어, 누가 온다."
"느에, 네?"

생각에 잠겨있던 때 귀신 누님이 갑자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깜짝 놀라서 같이 문 쪽을 돌아보자, 머지않아 문이 드르륵 열리며 보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어? 어디가 아파서 왔니?"
"아, 안녕하세요. 그냥, 그…. 속이 안 좋고 어지러워서요. 아마 어제 동아리 연습하느라 늦게 자서 그런가 봐요."
"아이고, 잠은 잘 자야지. 너 나이 때 막 밤새고 그러면 키 안 큰다?"

실제로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보건 선생님에게 받은 약을 먹고 동아리 활동 시간 동안 침대에서 쉴 권리를 얻게 되었다. 침대 쪽으로 가서 커튼을 붙잡고 눈을 굴려 귀신 누님을 쳐다보니, 생긋 웃는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편히 쉬어! 봉구라고 했지? 나중에 또 만나자. 안녕!"

손을 흔들며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넨 그녀는 자연스럽게 벽을 통과해서 보건실 바깥으로 나갔다. 스르륵 벽을 통과하는 모습에 흠칫 놀라 뻣뻣하게 서 있으니, 왜 그러고 있느냐는 보건 선생님의 물음이 들려왔다.

"아, 아니에요. 그럼, 조금 쉬다 갈게요."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침대에 누운 다음 커튼을 쳤다.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오늘 알게 된 온갖 정보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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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아…. 너 대체 어디 갔냐."

이러다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못 보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 * *

다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쇠 비린내 같은 향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으며, 어둑어둑한 공간에서 도망치고 있다는 누군가의 다급한 마음이 심장을 두들겼다.
숨통을 죄어오고 있었다.
단순히 목이 조이는 그런 느낌이 아닌, 와이어 줄로 목을 묶어 잡아당겨, 살이 베임과 동시에 통로가 묶이는 그런 소름 돋는 감각.

"…. 아직, 안돼. 조금 더 버텨야 해."

검은 머리 소년은 목을 조이고 있는 낚시줄 같은 끈을 손으로 잡아 뜯었다. 쇠 비린내가 나며 붉은 액체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급한 마음이 눈빛을 흔들고 있었다.
자신을 쫓고 있던 것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아이는 벽에 등을 기대며 스르륵 주저앉았다. 털썩, 하고 주저앉음과 동시에 컴퓨터 그래픽이 깨진 것처럼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녹색 빛으로 흩어지려 했다.

"나 혼자 있기 싫어요…. 형."

보고 싶어.
소년은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독백하듯 고독함을 내뱉었지만, 안타깝게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