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으로 돌아왔습니다

#3

 








| 전생으로 돌아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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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가 깨어나기 1년 전  - 






검정잉크가 만년필을 타고 종이에 뚝 떨어졌다. 글씨 끝자락이 퍼졌다. 아, 번졌네. 지민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뒷목을 덮은 머리카락을 지민은 항상 질끈 묶고다녔다. 뒷목에 닿는게 거슬렸기 때문이다.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던 머리끈이 사라져 서랍을 뒤지던 참이었다. 검은색에 흰 이니셜이 있는 머리끈. 지민의 집무실에 대공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예정에 없던 방문에 당황한 지민은 대공의 시선을 피하다 의자에 앉는 아버지에 자신도 맞은편에 앉았다. 탁 탁 - 검지로 엄지손톱을 뜯어 피가 고였다. 





“ 황제 알현을 준비해라.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잡아야지. ”



“ ..네? 갑자기 알현이라니요. ”



좋은기회라니. 대공의 말에 따르면 오늘 오전 황녀가 독살당할뻔 했단다. 독살이라니, 누가, 누구를. 감히 ...,
지민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목 끝까지 차오르는 질문들을 도로 
모두 삼켰다. 기분 좋으실 때에 망치지 말자, 흔치 않은 날이잖아. 그래서 황녀는 살았다는거니까. 아직, 안죽었어. 지민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평소처럼 순종적이게.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웃으며 대공을 대했다. 


“ 네. 바로 채비할게요. ”


대공은 지민의 대답을 듣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며 대공은 말했다.


“ 흉터가 보이는구나. ”
“ 한번만 더 보이면 그냥은 안넘어갈 줄 알아라. ”



지나가듯 던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민에겐 숨이 막힐 듯한, 자신을 질책하는 말이었다. 

지민의 동공이 흔들리며 대답을 더듬었다.


“ 아..,... 그 ....네...죄송합니다. ”


지민은 대공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묶고있던 머리를 부산스럽게 풀어헤쳤다. 평소 대공을 만날땐 꼭 머리카락으로 뒷목을 가렸는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러지 못했다. 또 한번 실수했다간 일이 날지도 몰라 지민은 앞으로 머리를 묶지 않기로 했다. 머리카락이 살결에 닿는 느낌이 가끔 까슬했지만 그깟게 대수일까.

대공의 기분이, 하루 하루 인생의 중점인 지민이였다.


그래, 그냥 그런건데... 
오늘따라 왜이리 속이 안좋은지 모르겠다. 무언가 꽉 막혀 마음 속 깊은 곳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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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인가, 황제폐하를 뵙는게. 
지민은 황제궁으로 가며 피브릭궁의 상태가 영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럴만 했다. 사용인들은 모두 분주했고 궁은 활기가 돋지 않았다. 주인이 어두우니 그 주변도 어두운게 어찌보면 당연했다.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 위험, 황녀의 안위가 불안정하다. 



지민은 자신의 아버지를 한번 쳐다보았다. 서늘한 눈매에 조금 올라가있는 입꼬리. 지금 당장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구는 아버지가, 바로 제 아버지란 사실을 인지할때마다 그의 옆에서 도망치고 싶어졌다. 차기 황제처럼 굴어라, 그렇다고 황제처럼 굴진 말고. 무심코 고개만 끄덕이자 절 잡아먹을 것같은 어두운 눈빛에 다시 소리내어 대답했다. 대공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황제는 대공을 반겼다.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오다니, 황녀는 좋겠군 그래. 대공은 황녀님이 그리되셔서 근심이 심상치 않으실텐데 모쪼록 평안을 빈다며 속 빈말을 했다. 황제는 입을 열지 않는 지민에 허허 웃으며 말했다.


“ 대공자는 여전히 무뚝뚝하군. 대공과 나는 할 말이 길어질테니 연이와 식사를 하는 것이 어떤가. ”


대공이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쓸모없는 놈, 황제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어야 하거늘. 


“ ....좋습니다, 폐하. ”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위와 함께 식사장으로 발을 옮겼다.
.....차기 황제처럼 굴라고. 현 황제 앞에서 내가? 자신의 조카인 그녀의 비극을 좋아라 하는 대공의 아들인 내가, 
... 고작 그런 내가, 감히 그녀의 것을 뺏을 수 있을리가 없다.
처음부터 황녀의 자리였고, 지금도 그녀의 자리고. 그 자리에 끼어들 틈은 없어. 내가 아니라 그 누구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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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황녀 이연님 드십니다. ”


지민이 자리에 앉고 얼마 안지나 연이 식사장에 들었다.
짙은 갈색의 예쁜 곱슬머리에 누가 봐도 '이쁘다'라는 감탄사를 내놓을 정도로 수려한 외모를 가진 2황녀는 그녀와 같은 핏줄을 가졌지만, 다른 어미에게서 태어났다. 어떻게 보면 첩실의 딸. 하지만 현재, 제 1황녀인 그녀보다 더 대접받고 이쁨받는 황녀다.
짜증나게도.




“ 안녕, 지민. ” 

연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뭐 먹고싶어? 스테이크?
 아니면.. 뭐 먹고싶은게 따로 있어?


지민은 천진난만하게 메뉴를 묻는 연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 전 수프면 됩니다. ”


“ 어어, 그래. .... 음.. 근데 이왕 온김에 더 맛있는 거 먹지 않겠어? ”


“ 1황녀님의 생사가 오가는 중인데 한가롭게 고기나 썰고싶지는 않아서요. ”

지민의 말에 뼈가 있단 것은 연도 알아챘다. 연의 표정이 잠시 굳더니 이내 다시 웃으며 옆에 대기중이던 요리장에게 말했다. 


“ 스테이크 두개 줘. 나머지는 알아서 올리고. ”

요리장이 알겠다며 주방으로 나가고 지민은 뭐하는짓이냐는 눈빛으로 연을 바라봤다. 분명 수프라 말했을텐데, 말끼를 못알아먹나. 지민이 입을 열려는 순간 연은 식탁의 물잔에 물을 채우던 시녀에게 난데없이 손을 올렸다. 


짜악 - 



뺨 맞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시녀는 놀라 소리를 지르곤 이내 숨을 죽였다. 눈물을 머금고서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의 여자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 그것도 이 나라 황녀였기에 어처구니없는 불합리함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지민은 그 광경을 무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조금 놀라긴 하였다. 갖잖은 가면을 쓰고 있다는건 이전부터 알았는데, 내 눈앞에서 그걸 지금 드러내는 이유가 뭐지? 그것도 이런 횡포로, 갑자기.


연은 엎드린 시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 미안, 천한게 내가 마실 물을 따르는 것이 마음에 안들어서
나도모르게. 근데 .. 방금 일을 누구에게 발설했다간 뺨이아니라 니 목이 날아갈거야. 


“ .....명, 명심하겠습니다.. ”


“ 그만 나가봐. ”



연이 들어왔을 때부터 호위를 포함해 모든 시종인들을 물렸기 때문에 이 상황을 목격한 건 오직 저 시녀와 지민뿐이었다. 시녀는 목숨이 두려워 절대 어딘가 떠벌리지 않을 것이고 지민은 굳이 소문 낼 필요가 없으므로 제 2황녀가 시녀를 때렸단 소리는 이 황궁안에 돌 일이 없다. 

연은 미소를 지었다. 지민은 그런 연을 보며 불쾌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남에게 악을 삼는 것부터 그걸 숨기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까지 어느하나 1황녀와 비슷한것이 없어 더욱 그랬다. 지민이 머리를 쓸어넘기고 어느새 다시 1황녀의 생각에 빠지려는 순간 미소를 걸친 연이 입을 열었다. 


“ 그냥 스테이크 썰어. 피차 황녀님이 위독하셔서 가장 좋을 건 너일텐데. 축배를 들어도 모자를게 없는 상황이지. ”




“ ...멍청하긴. ”


지민은 여전히 동요없는 표정으로 연을 마주보았다. 일부로 예민한 주제를 꺼냈건만 민망할정도로 무반응인 지민에 심경이 뒤틀린 연이 지민이 낮게 중얼거린 말을 듣곤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화를 냈다.



“ 뭐, 멍청? 미친게 아니고서야 황녀한테! ., ”


“ 황녀님, ”

큰 소리를 내는 연에 지민도 짜증난다는 듯 쓸모없고 재미도 없는 이 자리를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진심을 꾹 눌러 연을 불렀다. 연은 자신을 마주보는 인심이라곤 일도 없는 새카만 눈동자에 조금 주춤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황녀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말하고 싶었지만 지민을 더 건들였다간 탈이 날까 싶어 그만 이쯤해야지 생각하곤 성질을 죽였다.


“ 지나치게 신이나신 듯 합니다. ”


하지만 이어지는 지민의 말에 주먹을 꽉쥐고 지민을 노려보는 연이었다.


“ 비록 황녀님의 기분이 날뛰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누가 보면 1황녀님이 생사를 오가며 헐떡이는 독의 출처가 2황녀님인 줄 알겠습니다. 언행을 조심하시어 불순한 소문이 돌지 않겠끔 하셔야지요. ”



“ 멍청하단 말은 황녀님께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랜만에 황궁을 오니 잠시 스쳐지나가는 기억 속에,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설쳐대던 어떤 것이 생각나서요. ”



“ 근데 그 어떤 작자, 날이 가면 갈수록 명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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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황녀님은 그 연유를 아십니까. ”


지민의 말끝에 힘이 실렸다. 서늘하고도 섬뜩한 음성에 연은 몸을 흠칫 떨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향한 말임을 모를리 없지만 명확히 지칭한 것도 아니였기에 뭐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높고 높은 위치에 앉은 건 저인데, 고작 이딴 사내를 핍박하지 못하는 현실이 분하고 같은 목적을 가졌으면서 깨끗한 척, 선한 척, 아닌 척하는 지민이 꼴보기 싫었다. 사실 너도 걔가 죽는게 좋잖아.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잖아, ..올려다 볼 사람없는 절대적인 자리에 앉고싶잖아. 아니야? 난 1황녀를 볼 때마다 역함이 올라오는데. 이 자와 마주본 것이 몇 번째일까. 분명한 것은 그의 눈은 항상 자신의 밑바닥을 들춰 추악함을 가려내고 있는 듯 했다. 직접적인 공격은 아예 없었는데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여주에 대한 악의는 좀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번져서 옳고그름 따윈 저 멀리 보내버린 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