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단) 한여름밤의 너, 그리고

02. 한여름밤의 너, 그리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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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반댓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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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여기 와 있노."



"아 왜 또 너랑 같은반? 기분 잡치네.''



"나라고 좋을줄 아나. 내 아이스크림 다 녹았잖아."



이 장면은 서로를 안지 약 10년 정도 지난 두 18세 고등학생들이다. 이 남자아이는 김태형. 내가 말하기 조금 그렇지만 잘생겼다. 아이돌 연습생도 해봤다는데, 회사가 자신을 너무 짓궂게 대해서 나왔다고 한다.


아무튼 서로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실이 연결된 것 같다. 서로를 보면 으르렁거리다가도 서로를 욕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누구라도 미친개처럼 그 상대방에게 달려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둘 사이에 연애 감정이 있는건 아니다. 그냥 친구 사이다. 얘가 이사 간다고 둘이 울고불고 우리 사이는 영원해! 이러지만 않았어도 우리 둘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같이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울어놓고 바로 옆 아파트로 이사 간 건 함정.


그래도 좋은 친구다. 예전에 내가 한번 전 남자친구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집착이 정도를 지나쳐 헤어졌었던. 어느날 갑자기 날 잊지 못했다 하면서 스토킹까지 하는 미친놈이었는데, 김태형이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그 아이의 집까지 찾아가서 덩치가 될 때까지 때린 적이 있었다. 알고 보면 성격도 좋은 친구란 말이야.



"왜 아침부터 네 얼굴을 봐야 하냐고."


"첫날부터 기분 안 좋게 시작하네. 이번 학기 공부도 망한 듯."



"그냥 네가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고?"



"진짜 학기 첫날부터 쌈박질하게 만들지 마."



"헐, 어떻게 여자를 칠 수 있어?"



"네가 어떻게 여자냐. 먹는 것만 봐도 남자구먼."



방금 성격 좋다고 한거 취소. 말하는 싹수가 진짜 없다. 재수도 없고 싹수도 없다. 근데 왜 인기가 많냔 말이야. 아마 내가 생각하는 김태형의 이미지와 다른 이들에게 알려진 김태형의 이미지는 180도 다르겠지.














***
















"와, 담임이 국어?? 이번 학기 진짜 운 좋다."



다들 놀랐을 것이다. 국어선생님이 담임인 게 좋다고? 하지만 우리 학교는 진짜 좋다. 선생님이 유쾌하시고 가끔씩 졸면 자라고 하시는 말 그대로 모두가 원하는 선생님이시다. 근데 그런 분이 담임이라니. 이번 학기는 생기부 걱정 없겠구나.


내 앞자리의 앉은 김태형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안 보아도 보인다. 아마 자고 있으면 깨우지 않는 선생님이라 좋아하는 것이겠지. 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자도 상관하지 않는 것뿐이지 시험 난이도가 낮아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게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이었다.


하나가 더 있다. 정말 놀랍게도 국어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몇 달간 학교를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옆에 있는 교생 선생님이 당분간 대신한다고 하는데, 진짜 잘생겼다. 앞으로 눈 호강 좀 하겠구먼.


정말 이상하게도 교생선생님, 그리고 예쁘신 국어선생님이 담임이라는 걸 알게 되자 여학생 남학생 구분할 것 없이 다 앞자리로 향했다. 그렇게 되자 가장 관심을 받지 않을 것 같은 맨 뒤 창가 자리가 비어  운이 좋게도 창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보니 내 옆자리에 학생이 없다. 뭐지, 실수로 하나 더 놔둔 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국어 선생님께 자리 하나 남는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국어 선생님은 그럴 리가 없다며 말씀하셨다. 그럴 리가 없는데• • •.


아직 풀리지 않은 궁금증을 뒤로한 채 1교시에 집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중하려 했다. 수업 중 갑자기 쾅 - 하는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뒷문을 열고 헉헉대며 들어왔다. 그 아이가 바로 남은 한자리의 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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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죄송합니다. 반을 착각해서요."



아, 잘생겼다. 그게 이 아이의 첫인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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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옆자리에 앉은 이 남자애는 박지민. 외국에서 살다 와 이 학교가 처음이라고 했다. 어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고.


아버지가 한국 분이시라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라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선생님이 알려주신 정보다. 이 아이도 잘생겼다.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많을 것 같구먼. 가만히 이 아이를 쳐다본지 어느 정도 지났을까.



"...?"



아이가 나에게 한 쪽지를 건네주었다. 뭐지. 너무 부담스럽다고 그만 쳐다보라고 쓴 건가? 아니면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쪽지에 쓰여있는 내용은,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을 다 깨고 나온 의외의 말이었다.


네 이름이 뭐야?

민윤아.

좋아하는건?

달콤한 디저트.

싫어하는건?

네 앞자리 남자애.



놀랍게도 이게 쪽지의 내용이다. 사소한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던 거일지도 몰라. 얘, 생각보다 귀여운 애일지도..?


수업이 끝나기 약 5분 전. 그 아이가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게 보였다. 역시는 역시지. 아무렇지도 않게 쪽지를 통해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은 바로,



무서워하는 거 있어?

귀신. 귀신 나오면 나 기절할지도 몰라.



그렇게 질문에 대한 답을 적고 난 후 쪽지를 돌려주었다. 쪽지의 내용을 보더니 갑자기 푹 - 고개를 숙였다. 딱 보아도 웃음을 참는듯해 보였다. 참 나. 귀신 무서워하는 게 그렇게 웃을 일인가.
















***






















"드디어 쉬는시간이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 후 반 애들은 각자 다른 반에 배정된 친구들을 보러나갔다. 교생 선생님은 다음 수업 자료를 가지러 잠시 교무실로 가셨고, 그 때문에 여학생들 몇 명이 교생 선생님을 따라 나갔다.


이제 드디어 조용해졌나. 싶어 책상에 엎드린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김태형인가, 생각이 들어 당장 일어나 한대 때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계속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떠보니,



"..."



"..."



옆자리의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의 정적이 이어진 후, 몰려오는 민망함에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 아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민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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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cute. 민윤아."



내가 지금 잘못 들은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