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장인의 짧글

살아







김석진이 죽었다. 자그마치 다섯 번의 봄을 함께한, 또 다가올 여섯 번째 봄을 맞이하길 기다렸던 유일한 사람이. 유난히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빌어먹을 예고라도 해주려 했던 건지. 느지막히 떠오르던 달 아래, 차는 가드레일에 처박혔다. 며칠 전부터 동네가 떠들썩하게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던 치매 노인 하나를 피하려다 핸들을 급하게 틀었다고 했다. 사고 경위는 그랬다. 그는 끝까지 착한 사람이어서, 그래서 죽은 거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으며, 이후에는 믿지 않으려 했다. 네 존재가 내겐 그만큼 당연했으니까. 네가 없는 미래 따윈 상상도 한 적 없으니까. 만발한 국화꽃에 둘러싸인 그의 사진은 퍽 이질적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미운 나머지 돌연 시도때도 없이 떠올라 나를 갉아먹었다. 처음 삼일은 밤낮을 꼬박 지새웠다. 그렇게 일주일. 또 몇 달. 방 한켠에 주저앉아 부르튼 입술로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석진아, 석진아. 그런 내 어깨를 세차게 흔들어준 건 그였다.





"정여주, 너 언제까지 이럴 건데."

"···."





민윤기. 우리 셋은 친했다. 먼저 알게 된 건 그였고, 나중은 김석진이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멀쩡할 수 있어? 김석진이 죽었잖아.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훌훌 털고 일어나면 안 되는 거잖아. 조금 원망 섞인 눈길로 쳐다봤던 것도 같다. 아쉬움 하나 없는 건조한 얼굴이 나를 마주할 때면.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기야··· 나 못 하겠어."

"···."

"내가 걔 없이 어떻게 살아? 나는 그거 못 해. 못 버텨."





눈 아래를 유영하던 것이 툭 떨어졌다. 사위가 흐릿해진다. 하루하루가 정말 너무··· 힘들어. 무덤덤히 죽을 데우던 그가 멈칫했다. 나를 돌아보던 민윤기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뭔가를 참는 듯 싶으면서도 이내 가라앉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꾹꾹 눌러온 그리움일 거라 믿었다. 다 헤진 손톱을 연신 틱틱대는 내 앞에 죽을 한 술 뜬 숟가락을 내밀었다. 먹어. 그 말투가 정말이지 무심하기 짝이 없어서, 그럼에도 내비치는 이 다정함이 김석진을 연상케 해서.





"이제 이런 거 하지 마."

"뭐?"

"집에 찾아오지도 말고, 죽 같은 거 사오지도 말라고."





말이 자꾸만 모질게 나온다.





"민윤기. 제발··· 그만 좀 해."

"···."





갈라진 목소리 새로 울음이 섞여들어갔다. 사실 네 탓이 아닌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감내하며 살아가야 할 짐을 나 혼자 미련하게 끌어안고서 멈춰있다는 걸. 아무리 기다려도 여섯 번째 봄은 오지 않으리라는 걸. 그저 나는, 김석진이 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뿐이라는 걸. 민윤기는 숟가락을 천천히 내려놨다. 푹 젖어 있는 볼 위로 거칠한 손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선 여전히 무심해빠진 얼굴로, 우리가 셋이었던 그때와 하나도 달라진 구석이 없는 다정함으로.





"나라도 원망해."

"···."

"너는 잘못 없어. 그러니까, 괜히 너 미워하지 말고 나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날 미워하면서 살아 정여주."

"···."





photo

"··· 그렇게 살아." 





어떻게 너는, 끝까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