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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봄날의 짧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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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봄날의 짧은 글


박필터
















“일기장..?“
볼 일이 있어 도서관에 들렸던 나는 우연찮게 바닥에 떨어진 누군가의 일기장을 주웠다. 조그만 글씨로 간결하고 담백하게 쓰인 문체는 얼핏 보아 남자아이가 쓴 듯했다. 일기라고 하기엔 몇 줄 되지 않는 짧은 끄적임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글엔 누군가의 감정이 생생히 담겨있었다. 홀린 듯이 책장을 넘기며 글들을 읽다 보니 어느새 그 남자아이의 일상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나와 다를 것 없는 학생이라는 것과 그 아이에겐 작은 병이 있다는 것.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병을 알게 되는 것은, 조금은 서글프고 오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잠시 동안 시공간의 흐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 그거 내 거 같은데."
나를 향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일기장의 주인인 듯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 아, 미안.
"그거.. 봤어?"

- ..아니

서로 간의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 짧은 정적이 익숙하지 않아 급히 자리를 피했다.
'다시 얼굴 볼 일은 없겠지.'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

.

.

그 일이 있고서 두 달이 지났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개학날이 벌써 다가왔다.
시끄러운 교실 풍경도 꽤 오랜만이었다. 어느덧 조회시간이 다가오고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져 있었다. 교실문이 열리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9반 안녕! 너희 반 새 담임을 맡게 된..."
새로운 선생님을 맞이하니 문득 두 달 전의 일이 생각났다. 분명 그 아이도 내 또래였던 것 같은데.
선생님은 소개를 마친 뒤, 말했다.

"첫날부터 우리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왔어. 우리 학교는 처음일 테니 너희들이 잘 도와주길 바라."
그 말을 끝으로 교실문이 열렸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는데.
"박지민이라고 해."
한 번 스치면 인연이라는 말이 진짜였나 보다.

"지민이는.. 저기 맨 뒤 창가 자리 가서 앉으렴."

그렇게 긴 조회가 끝났다.
한동안 벙쪄 있던 나에게 그 애는 말을 걸어왔다.

"일기장.. 걔 맞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애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도무지 병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만큼.

그 이후엔 그 아이와 거의 말을 섞지 않았다. 나는 반에서 조용히 책을 보는 편이었고, 그 애는 어딜 가나 친구들과
함께였으니까. 흔히인 싸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같았다. 가끔은 그런 게 부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딱히 티를 내진 않았다. 한 달 정도가 지난 4월이 되자 나는 그 애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집을 가는 방향이 똑같다는 것도,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난다는 것도. 책을 읽는 척 그 아이를 유심히 지켜본 결과였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던 날, 나는 용기를 냈다. 집에 가는 길에 그 아이에게 인사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학교가 끝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길을 가다 보니 어느새 내 뒤에는 그 아이가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그 아이는 깜짝 놀란 듯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그.. 그때 말도 없이 가서 미안.
한참이나 지난 일을 이제서야 말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괜찮아, 그땐 나도 좀 놀라서."
나의 사과를 받아주는 그 아이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있잖아, 너한테 말 걸어보고 싶었는데 항상 책 읽고 있길래.."
"나랑 친구.. 하자."

그렇게 말하곤 수줍게 웃어 보이는 그는 무척이나 4월의 벚꽃과 잘 어울렸다.

.

그와 친해지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애와 친해질수록 함께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하지만, 그의 병은 우리의 사이를 헤집어놓을 뿐이었다. 우리가 친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병은 더욱 악화되어 그는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가 끝난 뒤, 나는 재빨리 그의 병문안을 갔다. 병실 문을 열자, 외로이 누워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곤, 나를 발견하자 평소처럼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웃음은 예전처럼 밝지 못했다. 그런 그는 왜인지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한동안 말없이 그의 체온을 느꼈다. 먼저 입을 뗀 건 그였다. 그는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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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어떨 것 같아? 네가 언제 죽을지 알게 된다면."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나는 너무나 명확히 알았기에.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의 감정을 알 수 있다는 이 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의 눈동자는 감히 내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옆에 있어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나는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 지민아, 우리 벚꽃 보러 가자. 요즘 벚꽃이 진짜 예쁘더라.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의 입원 기간은 그리 길진 않았다.
2주 정도가 지난, 벚꽃이 한창인 그 봄날에. 그는 퇴원을 했다. 그는 무척이나 바깥이 그리웠는지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퇴원을 하자마자 우리는 부리나케 벚꽃 구경을 하러 떠났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분홍빛으로 물든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 풍경은,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만큼이나 예뻤다. 그는 계속해서 감탄을 자아내던 나를 보곤 쭈뼛거리며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 ..이게 뭐, 일기장?

그의 일기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선물."
- 이거.. 네 일기장이잖아.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집에 가서 열어봐. 지금 보려고 하지 말고."
그는 말을 마치고 혼자 조용히 중얼거리는 듯했지만 소리가 작아 잘 듣지는 못했다.

"오늘 진짜 재밌었어. 내 생의 가장 기쁜 날은 아마 오늘 일 거야."
그렇게, 우리의 벚꽃여행은 마무리됐다.

지민과 헤어지고 나는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우니 문득, 그가 준 선물이 떠올랐다. 나는 그의 일기장을 천천히 열어보았다. 일기장의 맨 앞장엔 나를 향해 하는 말처럼 보이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맨 뒤부터 봐. 일기는 나중에 읽고."

뭐야.. 일기장인데 왜 일기를 나중에 보래.
나는 중얼거리며 일기장의 맨 뒤 페이지를 펼쳤다. 빽빽하게 쓰여있던 그 페이지의 첫 문장은, 놀랍게도 나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여주에게'
사실 우리가 도서관에서 만난 건 정말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지나고 보니까 우리는 어떻게든 만나게 되었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내 일기장을 읽고 있는 걸 봤을 땐.. 뭐랄까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되게 뻘쭘했거든. 근데 막상 들키고 나니까 조금은 후련한 거 있지?
네가 부모님을 제외하고 내 병을 알게 된 첫 번째 사람이라는 게 조금 신기하더라고. 그래서 너를 꼭 다시 만나고 싶었어. 그래서였나.. 그때 네가 떨어트린 학생증을 보고 네 학교로 전학 갔어. 그거 돌려주려고 했는데 개학하고 나니까 네가 이미 학생증을 재발급 받았더라고. 핑계 같지만 그래서 못 돌려줬어. 그것 때문에 평소에 널 눈여겨봤었는데, 너는 나랑은 진짜 정반대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어. 나는 사소한 거에도 잘 신경 쓰고 상처받는 편인데 너는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넘겨버리더라고. 그거에 영향을 받아서 나도 그렇게 되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 그때.. 그냥 무심히 생각해 봤던 것 같아. 너라면 어땠을까. 죽음도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까.. 내가 저번에 너한테 했던 질문 그날 의사 선생님께 들었어. 내가 언제 죽는지. 두 달도 안 남았다고 그러셨는데, 진짜 머리가 새하얘지더라.
그래도 너한테는 말해야겠다 싶어서 간접적으로 질문했는데 네가 말을 돌려버리더라고. 한 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네 그런 성격이 진짜 부러웠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더라. 그냥 네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게 좋았어. 그런 네가 나랑 마지막을 함께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갑자기 느껴지더라고. 내가 널 좋아하는구나. 이 편지를 쓴 목적도 사실 이거였는데, 말이 너무 길어졌지?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만나서 말하는 건 너무 부끄럽길래.. 괜찮다면, 내 마지막을 네가 장식해 줬으면 좋겠어.


.


그 문장을 읽은 순간의 감정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무작정 일기장을 덮고 그의 집으로 뛰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아무 생각 없이 부리나케 달리는 바람에 금방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려고 손을 뻗는데, 그가 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왔다. 왜 여기에 있냐는 듯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을 보자 안도감에 절로 눈물이 흘렀다.
그의 짧은 생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고, 무서웠다.

"왜 그래, 나 안 죽었어.."

장난스레 웃음꽃을 피우는 그가, 무척이나 그리웠다는 걸 알기나 할까.

-좋아해.
"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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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도 좋아해."










너와 함께라면,














긴 봄날의 짧은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