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 공식
W. 망개찐떡
- 미리 공지합니다.
키스 묘사 자극적입니다. 그렇다고, 수위의 선을 넘진 않습니다. 어린이, 심장이 약한 분, 감당이 불가능한 분은 되도록 이번편은 넘기는 걸 추천드립니다.
스물이였다.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오던 그날. 검은색 옷을 입고 찾아간 장례식장에는 네가 상복을 입고 앉은채 허공을 보고있었다. 장례식이 시작한 뒤로 물 한 모금 조차도 마시지 않은건지 입술은 건조해져 끝이 갈라져있었고, 잠도 제대로 못잔건지 눈 밑은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넌 굉장히 슬퍼보였다. 이 날은 네가 미워하다 못해 증오해 늘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던, 어머니의 장례식 이였는데.

“여주야 나왔어.”
왔다는 소리를 하고나서야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넌, 나와 마주치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왜일까, 저 미소가 이렇게도 슬퍼보이는 것은.
“우선 밥 부터 먹어. 얼굴이 이게 뭐야.”
“…밥 안 넘어가는데.”
이럴 때 일수록 잘 먹어야해. 나는 손에 직접 수저까지 쥐어주었다. 금방 끓인 육개장과, 금방 푼 밥은 따끈따끈해서 김을 뿜어내고있었다. 여전히 그릇에 수저를 선뜻 가져가지 못하는 너를 보며, 나는 수저 하나를 더 꺼내 밥을 퍼 입김으로 식혔다. 입김에 얼마안가 사납게 내뿜던 김이 어느정도 사라졌을 때쯤, 난 그녀의 입가에 수저를 내밀었다.
“잘 먹어야, 잘 보내드리지.”
“… …”
잘 보내드린다는 말에 너의 눈동자는 크게 동요했다. 잘 보내고 싶은게 아니라고, 그런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제 감정을 알아차려버린 여주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손에 든 수저를 뺏아들고, 밥을 푼 수저를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알아. 네 감정이 어떤건지. 그러니까, 애써 말하지 않아도 돼.”
여주의 입에 잘게 떨렸다. 울음을 애써 참으려는 행동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나도 뭐, 누굴 동정할 처지는 아닌데. 그때부터, 여주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꾸역꾸역, 입으로 가져가는 수저는 밥을 먹는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틀어막기 위해 쑤셔넣는 느낌이였다. 그리고, 틀어막으려는 그 무언가는… 역시 슬픔이겠지. 인정하기 어렵겠지,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기쁨보단 슬픔이 몰려오니. 나는 그런 여주를 막지 않았다. 제 감정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틀어막겠나. 나는 틀에 박힌 위로 대신, 투명하게 찰랑이는 물컵을 전해주는 것으로 나만의 위로를 전했다.

“… …”
그 뒤로도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여주의 곁을 지켰다. 여주는 돌아가도 된다고는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쉬울까. 불편해주겠다는 여주가 눈에 훤이 들어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지금은 그냥, 여주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장례식장에는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였고, 종종 찾아오는 사람들은 화려한 화장을 하고서 온 몸에 명품을 둘둘 두르고 오는 여자들 뿐이였다. 여주는 말했다. 저 사람들은 자신의 엄마와 같이 일했던 술집 여자들이라고. 여주는 그래도 고마운 듯 보였다. 미워도 엄마는 엄마라는 건가. 홀로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란 얼굴이였다. 그마저도, 여주에게 고인을 욕하러 온 것이였지만.
“너도 엄마 닮았구나?.
옆에 반반하게 생긴 남자도 데리고 다니고 말이야.”
여자는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누가봐도 죽은 제 엄마와 자신을 엮어서 같이 욕하는건데, 넌 아무말도 못한 채 땅만 바라보더라. 결국, 보다못한 내가 한 마디 하려고 나서려는데. 여주의 손이 내손목을 잡고 막아섰다. 그 순간의 네 얼굴을 봤다. 이를 악 문 네 모습을.
“그거 유감이네요.”
“…허,”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나는 궁금했다. 저건 체 친모를 욕하는 저 여자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죽어서까지 자신을 이런 취급을 받게한 친모에 대한 분노였을까. 너는 지지않고 나섰다. 아니, 비굴해지지 않으려고 ‘애썼다.’ 라는 말이 맞을 것이였다. 넌 입꼬리를 최대한 싱긋- 올리면서 웃었다.
“그런데요. 저희 엄마한테 남자라도 뺏기셨나봐요.
장례식장까지 찾아와서 이러는 걸 보면.”
“뭐?…”
“정말 유감인데… 그거 열등감이에요.
얼굴도 재능인데, 재능없는 누굴 탓해.”
정말 그 말이 맞았던 것인지, 독한 향수 냄새를 풍기던 여자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하게 변해갔다. 나는 알고있었다. 그 말이 여주가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 발톱의 때만큼 남아있는 그 자존심이라도 지키고자 했던 말임을.
짜악, ㅡ
부들거리는 모습이 불안했는데, 기어코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찢을듯이 울려퍼졌다. 천장 높이 쳐올려진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과, 새하얀 뺨에 스크래치가 나듯 그어진 붉은 선. 뺨에선 결국, 새 빨간 피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이먹고 미쳤나. 어디서 손찌검을 함부로…”
“… …”
그 여자는 떠나기 직전까지도 진상을 부리고 나갔다. 여우가, 구미호를 낳았다는 둥.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둥. 해선 안 되는 말까지 섞어가며, 여주는 험한 말을 꿋꿋히 들었다. 제 존재의 이유를 다시 되새기듯.
결국, 여자는 술에 취해 떠났고. 너는 그와중에 꿋꿋히 버티고 있던 다리에 힘이 풀린건지 주저앉았다. 다치지않게 양어깨를 붙잡아주었다지만, 놀란 마음은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 듯 결국, 참았던 눈물이 투명한 뺨 위로 흘러내렸다. 그때가 처음이자 시작이였다. 술만 먹으면 울기 시작하는 네 술버릇도.
* * *

“…하아, 미치겠네.”
결국, 술취한 너를 안아들고 들어온 것은 나였다. 얼마전에 이사한 내 집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앞에 엎어져있었으니 일단 데려와야하진 않겠는가. …헤어지긴 했어도,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감은 눈 위로 팔랑이는 속눈썹이 보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더럽게 예쁘네… 짜증나게. 이불을 끌어 침대에 눕히고, 목까지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 왜 이러고 있냐.”
등 뒤에 벽을 기댄채 앉은 나는 정면을 한 번,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든 여주를 한 번. 번갈아 바라보고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뒤로젖혔다. 헤어진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것도 당황스러운데, 또 다시 술먹은 네 모습을 볼 줄이야. 널 볼 수 있는건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
“헤어지자.”
“뭐… 그러던가.”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마주하다니. 처음에 만났을 때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멀리서보아도 너의 당황한 모습이 눈에 띄긴 하더라. 애써 담담한 척 하긴 했지만, 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근데 넌… 오늘도 우냐.”
침대에 팔을 지지대 삼아 기댄 나는, 5년 만에 만난 전 여친의 얼굴을 꼼꼼히 훑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눈, 코, 입 어느 하나 달라진 건 없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넌 많이 변한 느낌이였다. 늘 조급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빠보였던 5년전과 달리. 지금은 예전보다 성숙해져서 그런가, 여유롭다고 해야하나… 훨씬 더 차분해진 느낌이였다.
밝던 너를, 어두운 일이 널 차분하게 만든건 아닐지… 안쓰러워졌다. 헤어진 5년동안 좋은 꼴만 봤을리가 없다. 하물며, 멘탈이 강한 나 조차도 헤어지고 5년동안 무너진적이 여러번이였다. 그런데, 너라고 멀쩡했을리가. 감고있던 눈이 천천히 열렸다.

“다시 눈 감아. 뜨지말고.”
“… …”
“…어서.”
“정국아…”
“왜.”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너는 한참을 바라만 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지. 술 취한 사람이랑 무슨 대화를 하겠냐는 생각에 손을 뻗어 그녀의 눈을 가렸다. 어서 잤으면 하는 마음이였다. 얘기를 해도 문제지. 다음날 일어나면 어쩌려고. 짧은 시간 그러고 있었을까. 손을 덥석- 잡아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는 너에 나는 속절없이 너의 위로 떨어졌다.
“야, 너 미쳤…어?.”
가까스로 여주의 머리 옆에 팔로 지탱한 나는 네게 미쳤냐고 했지만, 넌 아무렇지도 않은지 눈만 깜빡일 뿐이였다. 다른 이가 봤다면, 내가 여주를 덮치는 걸로 오해하기 딱 좋은 자세였다. 내 집이라 그런 일은 없을테지만, 그런 오해는 딱 질색이기에 금방 상체를 세우려했다. 그 순간, 목에 팔을 걸어오는 너였다.
“…야, 이건 놔.”
“…싫어.”
“너 내일 후회해. 그러니까, 어서 이거 놓ㄱ…”
“…후회 안 해.”
후회 안 하긴 개뿔. 나는 목에 휘감은 너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쳐 손을 빼내려고 했다. 어찌나 힘이 세던지 꼼짝도 안 하더라. 아플까봐 힘도 주지도 못 하겠고.
문제였다. 내일 후회할 차여주도 차여주지만. 이러다가 이성을 잃을 것 같은 내가 더 문제였다. 5년만에 직장에서 만난 전여친과의 잠자리. 이건 절대 안될 말이였다. 가까스로 이성을 부여잡은 나는 아까와 달리 험학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놔, 진짜 화 내기전에.”
“… …”
“내 말 안들려?, 이거 놓으라ㄱ,”
“…흐윽… 흡, 나쁜 놈…”
다시금 눈물을 쏟아내는 너에, 나도 모르게 아래에 있는 침대 시트를 휘어잡았다. 진짜 미치게 하는 건 누군데. 다시 한 번 낮게 읆조렸다. ‘놔.’ 겁을 먹어도 상관없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만 하면 되니까. 네 움직임이 한층 느려졌다. 겁을 먹었구나.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때였다. 너의 얼굴이 불쑥- 하고 다가온게.
막을 틈도 없었다. 속절없이 가까워 지는 네 얼굴을 보면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진뜩했다. 5년만에 너와 한 키스는 질척이다 못해 야했다. 5년 전까지만해도 키스가 야하다고 생각 못 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능숙해져서 그런가. 이제는 키스만으로도 야하다고 느끼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말랑하고 촉촉한 것이 기어코 입을 비집고 들어왔다. 뜨거운거… 진짜 오랜만이였다. 여주와 헤어진 후 다른 여자를 만난 적 없었다. 여자를 만나지 않았으니, 키스도 자연스레 5년만.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나는 너의 뒷목을 붙잡고 질척하게 입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키스는 멈출 수 없었다. 키스는 길었고, 숨소리도 거칠어 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숨이 찬지 넌 내 가슴팍을 밀어냈다.

“…하아, 하아… 정국아…”
“내가 너 후회한다고 했지.”
밀려나는 것도 잠시, 나는 다시 다가가 아랫입술을 머금고 지분거렸다.그리고 눈동자를 지켜세워, 바라본 네 얼굴은… 풀린 눈 하며, 내뱉은 거친 숨 하며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하지말라고 할 때 말을 들었어야지. 사람 짜증나게.”
“…괜찮아. 그러니까, 계속…”
다가오는 입술을 맞댄 여주는 입술 사이로 중간중간 떨어질 때마다, 입 사이로 웅얼거리며 말했다. 신기루같이 들렸다가 금방 사라지는 얕은 목소리였다.
“…괜찮아, 어차피 꿈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꿈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