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렸어 한참을
나는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동갑내기 엄마아빠 사이에서 세워진 철저한 2세 계획 아래 태어났다. 날 위해서 아빠는 10여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댔다. 나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술 한모금 입에 대지도 않았다던데. 그렇게 태어난 외동딸인 나는 사랑만 받아도 모자람이 없을 아이였는데 어째서. 우리 아빠는 내가 유치원 때 교통사고로 눈을 감았다. 분명 퇴근길에 치킨을 사온다던 사람이 치킨은 커녕 회사를 나오던 길에 뺑소니로. 그렇게 허망하게. 아빠 없이 엄마와 단둘이 지내온지 10년이 되던 해였다. 우리 엄마가 새로운 남자를 데려온 것이.
“안녕하세요.“
”…“
“여주야, 인사드려야지. 어서.”
엄마의 새로운 남자에겐 나와 동갑내기인 아들이 있었다. 그때 당시 열일곱. 그 남자와 그의 아들, 그리고 엄마와 내가 살림을 합치던 날. 그쪽 아들은 뭐가 그리 달가운지 먼저 인사를 건네왔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뻐보이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이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진 않는 듯했다. 오히려 나를 보고선 흥미롭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올리는 그였으니. 기분이 썩 불쾌했다. 마치 나를 토라진 애완견 쯤으로 취급하는 눈빛이었으니까.
끝내 새아빠에겐 인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아니다. 10년이란 시간, 엄마는 아빠를 충분히 그리워했다. 아빠도 엄마가 죽을 때까지 혼자 사는 걸 원하진 않았을거고. 그럼에도 나는… 그러니까 나는. 아직 아빠를 못 잊었으니까. 엄마가 새 사랑을 찾아 행복하다 말한 그 순간을 용서하지 못한게 아니다. 다만 내가 나의 아빠의 자리를 처음 보는 낯선 남자에게 넘겨줄 수 없었던 것 뿐이다.

“누나.”
예상치 못한 복병은 엄마의 남자 쪽이 아니었다. 엄연한 동갑인 그쪽 아들이 나를 부를 때마다 무슨 이유에선지 저런 호칭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것. 난 3월에, 쟤는 12월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징그러운 관계가 된 것이다. 난 십여년간 외동이었는데.
“나도 데려가.”
“…따라오든가.”

“손도 좀 잡아주고. 응?”
“응?“
세상에 등굣길에 손 잡아달라는 남동생이 어디 있냐만은. 나에겐 남동생도, 누나라 불러주는 동생도, 학교를 함께 가는 동생도. 그 모든게 처음이었으니까. 당연한 줄 알았다. 아, 모든 남매는 이렇게 지내는구나. 그런줄 알았지.

“…”
“많이 기다렸어?”
“조금. 누나 남친인가?”
“남친은 무슨.”
하굣길에도 예외는 없었다. 나는 항상 그의 아들과 함께였다. 늘 그랬듯 그가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면, 함께 교실에서 나오는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궁금해하는 동생이었다. 든든했다. 마냥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를 챙겨주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남동생에게 챙김 받는 기분. 우리 아빠가 있었더라면 이랬을까 생각도 해봤다.
조금 별난 점, 아니 애초에 별난 아이지만 특히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애가 조금도 공부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책을 스스로 펼치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1학년 때에는 그러려니 해도 학년이 거듭날수록 그냥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내가 누나인데. 방과후에 내도록 축구만 하다가 아주 가끔씩 옆 학교 패거리들과 싸움이 붙는 내 동생을 구제해야했다. 책임지고.
그렇게 다른 날과 다름 없이 야자를 빼먹고 도망간 내 동생을 찾기 위해 나 역시 학교 담을 넘던 날.
그날따라 으스스한 뒷골목이었다. 유일하게 빛을 내던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며 제 기능을 못하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골목 끝에 패거리로 보이는 열댓 명의 교복 차림. 서로 맞고 때리는 둔탁한 소리에 순간 겁이 나 그쪽을 향해 달렸던 것 같다. 김태형이 싸움을 잘했던가.

“누나?”
“야…!”
아니나 다를까. 너의 눈 옆으로 흐르는 진득한 핏줄기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눈에는 왜 또 힘이 없는 건데. 교복 셔츠는 이미 땅에서 굴렀다는 걸 증명하듯 흙투성이인데다가 입술 가에도 부르튼 흔적이 보였다. 빨갛게. 그런데……
“당신들 누구야.”
늘상 싸움이 붙던 패거리들이 아니었다. 옆 학교 교복을 입은 이들이 아니었다. 멀리서 달려올 땐 몰랐지만, 그들은 학생도 아니었다. 적게 봐도 스물다섯은 되어보이는 남자들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김태형을 상대했던 것이다. 자그마치 여덟이서. 그렇다고 그들이 멀쩡했던 것도 아니었다. 기억 상으론 김태형 상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했던 건 아니야. 하지만 그땐 온전히 널 믿었다. 피를 흘리며 내 손을 움켜쥐던 네 손을. 뜨거운 핏줄기와 함께 내쉬던 급박한 숨소리를.
넌 그때 이렇게 말했었다. 정체 모를 남자들이 널 죽일 듯이 때렸다고.
더 생각할 틈이 없었다. 난 너를 데리고 그들이 시선을 돌린 틈을 타 온 힘을 다해 뛰어 빠져나왔다.

“어떻게 와줬어. 기특하게.”
“너 피가…!”
내가 말하기 무섭게 넌 손등으로 다 닦아냈다. 마치 거슬리는 것마냥 손짓 한두번으로 벅벅. 이런 건 대화 주제로 삼기에도 하찮다는 듯이. 동시에 나는 울음이 터졌던 것 같다. 단순히 너가 죽진 않겠다는 안도감 하나로.
”울어…?“
”아니. 전혀.“
누나, 그냥 가끔 있는 일이야. 그렇게 위로를 하곤 했다. 어른들이랑 몸싸움을 하고 유혈사태까지 벌어진 상황에. 넌 어떻게 보면 섬찟한 말로 위로를 했어. 그때는 몰랐지만. 물어볼 순 없었어. 나에겐 조심스러운 동생이었으니까. 괜히 곤란한 질문이 되어 그게 너와 날 멀어지게 하면 어떡해.
그냥 그렇게 네가 내 볼 몇번 쓸어주면 진정이 됐다. 때를 불구하고 목소리 하나, 손짓 하나, 말 하나로 나는 안심했다. 서로 모르던 날들이 함께하던 날보다 많은 동생이지만 동생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그런 순간 하나하나로.
“잔인한 사람…”
“미안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래, 열아홉의 해 중 그날이었다. 내 두 번째 아빠를 또 잃은 것이. 잃었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없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애초에 가져보고 싶었던 적이 없으니까. 동생은 이미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나, 새로운 아빠는 필요 없었다.
새아빠는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기업, 정상적인 회사 이런 거 말고. 그 대기업의 우두머리를 비밀스레 돕는 뒤가 어두운 조직. 사람 하나 썰어내는 건 일도 아니고, 더러운 돈이 오가는 어두운 쪽. 없어보이는 말로 조폭 뭐 이런거. 그래서 부족함 없이 오히려 넘치게 살았다. 단둘이 살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우리 엄마는 처음 새아빠의 정체를 알고 놀랐더랬다. 퇴근하고 세탁기에 넣은 셔츠 몇개에 핏자국이 있을 때부터 의심했다고 했다. 점점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불쾌한 체취가 나고, 결정적으로 그의 차 트렁크에서 시체 한 구가 나와 경찰에서 조사를 받기까지. 물론 구속은 피했다. 대기업이 손을 써서.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가만히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든 생각은

그럼 우린 다시 가족에서 남이 되는 건가. 애초에 동생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여주야. 아저씨가”
“…태형이는요?”
“응?”
“태형이요. 어딨어요?”
참 이상하지. 내 앞에 있는 이 아저씨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든 조폭이든 이혼을 하든 말든 지금 이곳에 네가 없다는 게 신경 쓰이는 나는. 이와중에 네가 저번처럼 또 어디서 다쳐오는 게 아닐지 걱정되는 나는.
“…주차장에 있다.”
“…”
이미 집 안에 부자의 물건은 없었다. 완전한 끝이었다. 새아빠는 지금 살고 있는 집만큼은 엄마의 명의이기에 남기고 간다고 말했다. 더이상 미룰 겨를이 없었다. 난 김태형을 봐야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을 나왔고, 엘레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택했다. 두 계단씩 뛰어내려가며 자꾸 그날이 떠올랐다. 네가 피투성이로 나를 부르던 모습.

”…“
찾았다.
“너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누나.”
“그날. 너 엄청 다친 날.”
“…”
“그 사람들 네 아빠랑 관련 있어?“
“…”
“그런거야? 대답해.”
달게 누나를 부르던 그 입술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당장이라도 나를 부르며 손을 잡아달라 애교를 떨던 그 얼굴이, 없다. 다만 그 입술 사이에 끼워진 담배꽁초의 끝에서 연기만 피어오를 뿐. 아. 네가 담배도 피웠던가. 분명 아니었는데.
“누나.”
“…”

“그런 눈빛 하지마.“
“너도 그럼…”
“누나.”
“…아저씨처럼 그런 일을“
아저씨가 살인자라는 건 내게 별 의미가 없어. 그치만 네가 그 아저씨의 아들이라는 건.
“누나.”
“…”
“우린 안 달라져.”
“어떻게 그래.”
엄마아빠가 다른데 어떻게 우리가 남매 사이가 돼! 슬퍼서, 알 수 없이 화가 나서, 억울해서 소리를 질렀다. 네 면전에다 대고. 내 이런 표정을 처음 봤겠지. 너는 덩달아 미묘하게 표정이 바뀌었다. 물고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더니 발로 뭉개버렸다.
나는 네가 내 동생이었으면 좋겠다고. 내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준게 너잖아. 그런데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 그래. 우린 남이잖아. …나쁜 아저씨. 왜 하필 그런 사람이어서.
3년 후.
이후로 나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마치 2년간의 완전한 가족이었던 시간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아빠의 부재를 느끼며. 그렇게. 번듯한 직장이 없는 엄마를 대신해 일찍이 돈을 벌어야했던 나는 대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남기고 간 집을 팔아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 돈만으로 평생을 먹고 살기에 충분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공장에 취직한 건… 그냥 엄마 곁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몸을 굴려야 생각이라도 덜 하게 될 것 같아서.
3년 전 이야기라지만 그래도 그 녀석은 내 인생에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그날 이후로 소식은 모른다. 네가 아저씨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을 수도, 아니 어쩌면 이미 사람을 죽여봤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치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네 얼굴을 한 번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사람일지라도. 그런 건 상관 없으니.

“…여기 있었네.”
그런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이런 더러운 꼴을 한 내 모습으로. 이제 학생 티를 완전히 벗은 너를. 이런 곳에서.
망개망개씌예요
여기 남아있는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