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3세가 꽃집에 빠진 이유

6. 재벌3세가 꽃집에 빠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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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오후 5시

 

 

 

 

19

 김남준의 하루는 늘 비슷했다. 보고서, 일정, 통화. 그리고 오늘은... 하나가 더 추가됐다.

꽃집.

 

그는 차 안에서 가게 맞은편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엔진은 꺼져 있었고, 창문도 반쯤 내려둔 상태였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 위치. 일부러 그런 자리를 골랐다. 여주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가게 문을 열었다. 셔터를 올리며 하품을 한 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에 불이 켜지고, 곧 익숙한 일상이 시작됐다.남준은 메모장에 짧게 적었다.


오전 10시 12분, 정상 영업.

 

점심 무렵, 단골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들렀고 택배가 한 번 왔다. 여주는 화분을 옮기다 엎어서 손에 흙을 묻혔고 앞치마에 털어내며 웃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너무 평범해서....오히려 안심이 되는 하루였달까..? 남준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식어 있었다. 오후 세 시쯤 여주는 꽃집을 잠깐 뒤로 하고 근처 카페에 들렀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돌아오는 길, 휴대폰을 보며 미묘하게 웃는 얼굴이 보였다. 남준은 그 표정을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확인했다.

 

개인 통화 추정. 상대 확인 불가.

 

해가 기울 무렵, 가게는 다시 조용해졌다. 여주는 음악을 틀고 꽃을 정리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남준은 차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표정만으로도 하루가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저녁 8시 40분. 여주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마감을 시작했다. 셔터를 내리기 전, 가게 안을 한 번 더 둘러보고 불을 껐다.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순간, 잠깐 멈춰 서서 골목 끝을 바라봤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여주는 잠깐 아쉬움을 표하는 표정을 짓다가 귀가했다.

 

남준은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차 시동을 걸었다. 보고할 내용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짧은 메시지를 정리했다.

 

특이사항 없음. 하루 정상.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 남준은 잠깐 멈췄다.
그리고 아주 짧게 덧붙였다.

 

…평온합니다.

 

차는 조용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여주의 하루는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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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감시를 이어가던 날, 마감 시간에 가까워질 즈음 여주는 계산대 아래에 두었던 박스를 꺼냈다. 오늘 들어온 꽃들을 정리하고, 남은 화분에 물을 주고 나면 셔터를 내릴 생각이었다. 가게 안에는 잔잔한 음악만 흐르고 있었고,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그때였다.

 

가게 문이 닫히기 직전 종소리가 울렸다. 여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깔끔하다고 하기도 그렇다고 지저분하다고 하기도 애매한 차림. 문제는 눈빛이었다. 가게 안을 훑는 시선이 너무 느렸다.

 

 

“저희 오늘 마감했어요.”

 


여주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내일 다시—”

“아, 잠깐만요.”

 


남자는 말을 끊으며 한 발 더 들어왔다.

 


“이거, 여기서 산 건데요.”

 

 

그가 내민 건 시들기 시작한 작은 화분이었다. 흙은 말라 있었고, 잎은 끝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여주는 한눈에 상태를 파악했다.

 

 

“언제 구매하셨어요?”
“좀 됐죠?”
“교환이나 환불은 구매 당일만 가능해서요.”

“아니, 꽃이 이 모양이 됐는데요?”
“관리 방법 설명을 드렸을 텐데요.”
“그걸 누가 다 기억해요?”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여주는 계산대 옆으로 몸을 이동하며 거리를 유지했다. 무의식적으로 출입문 쪽을 힐끔 봤다. 아직 잠그지 않은 상태였다.

 

 

“제가 다시 설명드릴게요. 이건—”
“지금 나보고 잘못 키웠다는 거예요?”

 

 

남자의 눈은 웃지도 않았는데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분 나쁜 표정이었다. 여주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에요. 다만 이 상태로는—”

“아, 됐고요.”

 


그는 화분을 계산대 위에 탁, 내려놨다. 그리고는 여주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요즘은 혼자 마감하시네요.”

“네....?”
“왜~ 그 요 근래… 남자 한 명 옆에 두더니만? ”

 

 

여주의 반응을 본 남자는 입꼬리를 더 올리며 덧붙였다.

 

 

“그분, 오늘은 안 오나 봐요?”

 

 

말투는 가벼웠지만, 시선은 지나치게 집요했다.
마치 이미 여러 번 이 장면을 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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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는 가벼웠지만, 시선은 지나치게 집요했다. 남자의 눈은 여주의 얼굴에서 멈추지 않았다. 계산대 위에 놓인 화분과 가격표보다 그녀의 얼굴부터 차례대로 목선, 어깨, 등의 움직임을 더 오래 훑고 있었다. 여주는 손에 쥔 영수증을 내려놓았다. 종이가 손끝에서 아주 미세하게 구겨졌다. 불편함을 숨기려는 듯.

 

 

“아, 아무튼 환불은 어려우시고요. 이제 마감 시간이어서ㅡ”

 


그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여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앞으로 다가왔다. 신발 바닥이 바닥 타일을 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러게 왜 날 긁어요. 응?”

 

 

남자는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간, 눈은 그대로인 웃음이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여주의 팔목을 잡았다. 손가락이 손목 안쪽을 정확히 감쌌다. 그것도 마치 매달려 밧줄 잡듯. 그는 계속 힘을 주어 팔을 당겼다. 여주는 순간 숨이 막힌 듯 소리를 삼켰다.

 

 

“손님—!”

 

 

그녀가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남자의 손에 따라 여주는 힘 없이 끌렸다. 여주의 몸이 반 박자 늦게 흔들렸다. 발뒤꿈치가 바닥에서 살짝 들렸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왜 이렇게 예민해요.”
“이것 좀 놓고ㅡ”
“그 남자랑 있을 땐, 말도 잘 하고 좋아 죽더니.”

 


그 순간—

 

 

가게 문이 열리며 종이 울렸다. 이윽고 바로 들려오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

 

 

“이 손 놓으시죠.”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순간 공기가 단번에 달라졌다. 그렇다. 남준은 폭력이라 생각한 행동을 하자마자 바로 차에서 꽃집으로 직진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여주가 아니라, 남자의 손목에 고정돼 있었다. 남준의 손이 남자의 팔을 잡았다. 잡는 순간, 방향을 틀었다. 여주에게 닿아 있던 손을 바깥쪽으로 꺾어내리듯 여주와 분리했다.

 

 

“아!! 미친... 넌 뭐야!”

 

 

남자가 소리를 내며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여주의 팔이 자유로워지자, 그녀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 남준의 뒤로 갔다.

 

 

“지금 이 상황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뭔소리야?”
“신체 접촉. CCTV도 다 돌아가고 있고요.”

 

 

남준은 그 사람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피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키가 커서 내려다 보는 꼴이었지만. 남자가 손목을 문지르며 한 걸음 물러섰다. 순간적으로 상황이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얼굴이었다.

 

남자는 잠시 남준을 노려봤다. 눈이 가늘어지더니, 입술이 비틀리듯 움직였다.

 

 

“하!...주변에 남자가 뭐이리 많아.”

 

 

그는 도망가듯 꽃집을 나오려던 찰나 옆에 보인 중간 사이즈의 화분을 발로 걷어 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분이 넘어졌고,흙과 조각이 바닥으로 튀었다. 여주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쯧, 재수 없기는.”

 

 

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가게 안에 서 있던 여주와 남준을 한 번 훑어보고는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며 종이 거칠게 울렸고,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남았다.

 

잠시, 가게 안에는 깨진 화분과 흩어진 흙, 그리고 가라앉지 않은 숨소리만 남았다. 남준은 문이 완전히 닫힌 걸 확인하고서야 시선을 돌렸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화분 조각을 한 번 내려다본 뒤, 여주 쪽으로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네. 많이 놀라긴 했지만.. 감사해요”

 

 

남준은 그녀의 팔을 잠깐 살폈다. 손목 근처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혹시 통증 있으면 바로 말씀 주세요.”

“아”
“필요하면 병원이라도..”

“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준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남준은 옆에 있는 쓰레받이를 통해 화분을 치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때, 여주가 남준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잠시 고민하듯 눈썹을 살짝 찌푸리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근데 혹시…”

“네 말씀하세요.”

“전에, 석진 씨 차에서 본 적있는 것 같아서요.. 맞을까요? ”

“아, 네.”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

 

 

 

 

22

남준은 쓰레받이를 한쪽에 세워두고, 잠시 여주를 바라봤다. 괜히 둘러댈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선 듯했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네.”

“김석진이 부탁했습니다.”

“네?”
“여주 씨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무슨 일은 없는지… 보고해달라고요.”

 

 

여주의 눈이 조금 커졌다. 놀랐지만, 불쾌함보다는 당황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보고요…?”

“네.”
“석진씨가 저를 감시하라고...하던가요?”
“감시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깝습니다.”

 

 

잠깐의 침묵 뒤, 그는 말을 이었다.

 

 

“석진이는 사랑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요.”

“.....”

“회사에서는 뭐든 계산으로 배웠는데, 사적인 감정에는 아직 많이 서툽니다.”

 

 

여주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경계보다는, 이해하려는 쪽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남준은 여주를 한번 확인하고 그 사실을 변명처럼 말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설명하듯 담담했다.

 

 

“그래서 이런 방식밖에 못 고른 것 같고요. 많이 놀라셨을 거 압니다. 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사과의 뜻을 담아 말했다. 여주는 남준의 말을 다 듣고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가 밉거나 싫어지지 않고 더 좋아졌다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곧이어 생각을 다 끝낸 여주는 깨진 화분 자리, 아직 남아 있는 흙자국을 한 번 보고, 다시 남준을 올려다봤다.

 

 

“흐음…그럼요”

 

 

남준이 그녀를 바라봤다.

 

 

“석진 씨. 좀 보게, 불러주세요. 한동안 문자로만 봤더니 얼굴이 기억이 안나네..”

 

 

말투는 가벼웠지만, 시선은 분명했다. 피하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선택. 오히려 직진이려나. 남준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작게 웃었다.

 

 

 

“아마… 차 막히는 것도 무시하고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