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진 남자아이
이야기 11




이석철 선생님
“앉자-!”

수학여행 가기 전 마지막 종례시간, 아마도 오늘은 버스 자리와 수학여행 모둠을 알려주시겠지.

이석철 선생님이 평소에도 우리 반 친구들과 친하시니 누가 누구랑 친한지, 안친한지 다 아실 거라 믿고 제발 수연이와 같은 모둠이자 버스짝이 되기를 바라는 나이다.


이석철 선생님
“내일 뭐 한다고?”

“수학여행이요!!!”

이석철 선생님
“오늘은 버스 자리랑 수학여행 모둠 알려준다. 모두 홀로그램 창 띄워.”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홀로그램 창을 띄웠고, 결과는 가관이었다.

수연이는 저 멀리 있고, 나는 하나도 안 친한 애와 짝이 되어있었다. 반 분위기가 아주 다운되며 몇몇 짜증 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강여린
"선생님 민윤지 왜 저 뒤에 있어요. 윤지 옆은 제 건데 ㅠㅠ.”


민윤지
“닥쳐, 강여린.”


“하 씨발…개 찐따랑 붙었네.”


저 뒤에서 욕하는 일진 여자애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름이 고유진이었나. 얘도 인천 39무리에 속해있다고 들은 것 같다.

이석철 선생님
“자 조용히 하고, 우리의 버스 자리는 이렇게 하고!”

반에서 안돼요, 바꿔요.라는 말이 오고 갈 때쯤, 수연이가 뭘 발견했는지 혼자 웃음을 참다가 이내 진정하고 손을 마리 위로 번쩍 들어 큰소리로 질문을 했다.


최수연
“선생님! 버스기사님 뒤 대각선에 앉는 학생은 말미잘인가요?? 왜 말미석이죠?”

정여주
“응? 어ㄷ,”

정여주
“푸우우븤ㅋㅋㅋㅋㅋㅋㅋㅋ컼, 캑켘ㅋㅋㅋㅋㅋㅋㅋㅋ컄컼ㅋ켜컼캌ㅋ콬캌…. 아 사레들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시벌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생들도 발견했는지 모두들 하나같이 웃었고, 심지어 선생님께서도 웃으셨다.

이석철 선생님
“아닣흫…오타입니닿흫…. 아ㅎ.”


“쟤 진짜 너무 웃긴 거 같아, 흘러내립니다 때도 그렇고…ㅋㅋㅋㅋㅋ.”

“인정ㅋㅋㅋㅋㅋㅋㅋ.”


역시 ENFP…. ENFP의 정석답게 또 우리 반에 큰 웃음을 준 수연이 덕분에 버스 자리가 망했다는 것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남은 건 수학여행 모둠이라지.

이석철 선생님께 수학여행 모둠 정하기는 맡기면 안될 듯하다. 왜냐하면 보면 알겠지만 버스 자리보다 더더욱 가관이거든. 아미 수연이가 제일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래. 이건 정말 파국이다로 정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생판 모르는 애들에다가 학교에서 조용하고 모범적인 친구들과 수학여행 조라니.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지 생각하고 있어야겠다.

“…….”

우리 반 친구들도 모두 정숙이 되어 애꿎은 홀로그램 창만 바라볼 뿐이었다. 모두들 충격이 컸을까.

이석철 선생님
“자자, 얘들아;ㅎ….”

“선생님.”

이석철 선생님
“어…여린아….”


강여린
“저랑 윤지는 정말 떨어져야 하나요? 한 번이라도 붙여주시면 안 돼요? 저희의 마지막 수학여행인데, 이번 한 번만이라도 저와 윤지가 붙ㄱ,”


민윤지
“아 좀. 득츠브….”

나도 강여린과 같은 마음이다. 수연이와 정녕 떨어져야 하는 운명인 걸까. 강여린과 민윤지를 시작으로 조용하던 우리 반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아니ㅋㅋㅋㅋㅋ 씨발 존나 싸운 애랑 붙음 ㅋㅋ.”

“그럼 수학여행 째던가 병신아ㅋㅋㅋ.”


고유진
“존나 배려심 다 뒤짐 씨발. 한치의 배려도 없어.”


김도희
“ㅋㅋㅋ 지민이가 이따 옥상 오랬는뎅."


고유진
“가던가 ㅅㅂ.”

그다지 좋은 이야기는 아닌듯하다.


아, 갑자기 생각난 수연이. 전정국과 같은 무리인 인천 39 박수현, 김도희와 조용하고 모범생인 조신혜와 같은 모둠인 수연이는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 수연이 자리 쪽을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수연이는 그냥 넋을 잃고 홀로그램 창만 바라볼 뿐이었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얘는 충격을 받았구나.

하지만 뭐 어떡해. 이미 정해진 모둠이니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아니 없다. 말이 잘못 나왔다.


불평불만이 가득했던 조례 시간이 끝나고, 나는 수연이에게로 가서 하소연하기로 했다. 물론 수연이의 기분이 제일 안 좋을 테니 하소연은 미뤄두고 놀려주는 김에 가기로 했다.

정여주
“수연아…. 나 어떡하냐. 다 조용조용한 애들이라 내가 이끌어야 해….”

일단 하소연부터 하고.


최수연
“귀 대봐.”

갑자기 귀를 대라는 소연이의 말에 혹여나 소리를 지르지 않을까 의심하면서 귀를 대주었다.


최수연
“나는 일진 두 명에 조용 한 명이다 닥쳐라.”

정여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굳이 귀 대고 말하냐.”


최수연
“무섭잖아. 아 진짜 쌤…. 왤케 너무하셔.”

나도 수연이의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한다. 제발 이게 꿈이었으면 바란다.


꿈은 개뿔, 그렇게 우리는 기운이 없는 채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학여행 버스 자리와 모둠이 얼마나 중요한데, 망쳐버리면 그냥 나라 잃은 것마냥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을 때쯤,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그토록 한 번도 이렇게 조용하지 않았던 우리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니 놀라셨나 보다.

“너희들 뭔 일 있냐?”


강여린
“버스 자리와 모둠이 망했습니다….”

“그랬습니까? 어떡합니까….”

선생님은 우리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위로 같은 말을 해주셨다. 그에 우리는 이 선생님이 우리 반 쌤을 설득시켜서 버스 자리와 모둠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수업해.”


우리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길고 긴 수업들이 끝나고, 지금은 점심시간. 나는 아까 수업 중에 잠들어서 이제서야 눈을 떴다. 주변을 보니 우리 반 친구들은커녕 아무도 없는지 4층이 고요했다.

수연이도 혼자 가거나 했겠지 하며 다시 눈을 감으려던 때, 저 멀리서 나를 향해 오는 전정국이 보였다. 벌써 밥을 먹은 건가 하고 엎드린 채로 전정국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근데 내 자세가 웃겼는지 표정이 웃겼는지 전정국은 살짝 비웃는듯한 표정이었다. 나를 향해 웃고 있는듯해 보였다.


전정국
“ㅎ정여줗ㅎ.”

정여주
“……왜 웃어.”


전정국
“ㅎ아니, 그냥. 이건 배고플까 봐.”

정여주
“어……고마워. 안 줘도 되는데.”


전정국
“이거 먹고 잠 깨ㅎ.”

전정국이 내민 것은 인기가 너무 많아서 그토록 사지 못했던 내가 가장 좋아하던 빵이었다. 너무 먹고 싶은 빵이어서 아무리 전정국이 줬다 해도 너무 좋았다.

좋으면 표정에 다 드러나는 타입이라, 분명 내 얼굴은 웃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빵을 뜯으려고 할 때,

“어……여주야……?”

내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뒤돌아서 그 친구가 누군지 확인했다.

아마 밥을 다 먹고 우리 반으로 돌아오려던 참에 나와 전정국을 발견한 듯했다.

정여주
“응? 왜?”

“너…쟤랑 친해……?”

정여주
“응? 누구?”


“……전정국…말이야….”

그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전정국의 이름 세 글자를 말하며 나를 이해시켰다. 그에 나는 단번에 이해했지. 물론 이거를 이해 못 하면 한국어를 못하는 거긴 하지만.

정여주
“아, 아니 안 친해.”

이 친구는 내가 앞뒤가 다른 사람인 줄 알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정국에게 빵을 받고 실실 웃고 있었으면서 그리고 그 빵을 지금 손에 소중하게 쥐고 있으면서 안 친하다는 얘기를 하다니.


“그래? 그럼 그 빵은 뭐야? 전정국이 준 거 아니야…?”

정여주
“아 이ㄱ,”

“누가 전정국한테 뭘 받았다고?”

그때 교실 밖 복도 쪽에서 여자애 목소리가 들렸고, 그 친구의 말투는 몹시 짜증이 난 말투였다. 나는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복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왠지 몹시 피곤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숨겨진 이야기_


점심시간, 아까 민윤기가 항상 자신에게 맞는 애를 너무 심하게 때리는 것 같아서 말렸더니 그 애가 고맙다며 준 빵을 먹으려고 우리 반으로 향하던 중,

엎드려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여주가 보였다. 처음에는 나를 보는 게 확실하지 않았는데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자느라 점심시간을 놓친 건가, 해서 손에 빵도 들려있고 어차피 나는 건강 때문에 빵을 잘 안 먹으니 그냥 여주 주기로 했다.

근데, 2반에 도착했을 무렵, 한쪽으로 엎드려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여주의 볼살이 밀려 입술이 •3• 모양이 되어서 너무 귀여운 거 있지.

웃음을 숨기려 했지만 자꾸 새어 나오는 웃음에 그냥 광대승천한 채로 여주에게 빵을 주게 되어버렸다.


전정국
“ㅎ정여줗ㅎ.”

내가 웃은 거 다 봤겠지.

정여주
“……왜 웃어.”


전정국
“ㅎ아니, 그냥. 이건 배고플까 봐.”

정여주
“어……고마워. 안 줘도 되는데.”

엄청 딱딱하고 차가운 말투와 그에 대조되는 귀여운 생김새에 여주에게 한 번 더 반해버린 것 같았다. 정말 그때 나도 모르게 여주를 안아버릴뻔했지 뭔가, 큰일 날 뻔했다.

심장 뛰는 소리 안 들었겠지,
